대한통운 인수전에 강한 의지… 물류리더 ‘화룡점정’

시작은 미약했다. 1953년 11월, 한국전쟁 폐허 속 맨 손으로 부산 땅에 첫 삽을 꽂았다. 우리나라 최초로 설탕 생산 시설을 짓고 제당사업을 시작했다. 삼성그룹 최초의 제조업체인 제일제당공업주식회사가 걸음마를 뗀 순간이었다. 배고프고 가난한 시절, 그렇게 우리 손으로 우리 설탕, 우리 밀가루를 만들어 정겨운 밥상을 만들어줬다.

그로부터 50여 년이 흐른 지금, 제일제당공업은 자산순위 23위(2010년 공정위 자료 기준)의 글로벌 생활문화기업 CJ그룹으로 눈부시게 변모했다. 50여 년 전과 마찬가지로 국민의 식탁을 책임지며 우리 생활 속에서 함께 성장하고 있다. CJ가 반세기가 넘게 여러 난관 속에서도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기업으로 자리 잡을 수 있었던 것은 끊임없는 ‘도약과 혁신’이 있기에 가능했다.

그 핵심 동력은 M&A다. 제일제당공업은 설탕 다음으로 제분과 유지 분야로 사업을 확장했고, 햇반, 컨디션 등 다수의 히트상품을 개발하며 종합식품회사로 발돋움했다. 1993년엔 결국 삼성그룹으로 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1997년 완전한 법적 분리를 이뤄낸다. 적극적인 사업 다각화에 불을 당긴 시점은 이때부터다. CJ제일제당의 탄탄한 수익과 풍부한 자산을 발판 삼아 CJ는 2002년 식품회사에서 엔터테인먼트&미디어, 신유통, 생명공학 분야로 사업군을 확장한다.

이를 위해 CJ는 유망한 기업을 발굴하고 적극적인 M&A 작업을 추진하기 시작했다. 숨 돌릴 여유는 없었다. 2000년부터 최근까지 성사시킨 크고 작은 M&A는 무려 17건에 이른다. 그 중 식품&식품서비스 부문이 9건으로 가장 많다. 식품업계 M&A에 있어선 ‘달인’의 경지에 오를 만한 기록이다. 그 다음으로는 엔터테인먼트&미디어 부문이 4건, 홈쇼핑·물류의 신유통 부문 3건 등이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1995년 1조 7300억 원에 불과하던 매출은 2010년 17조 원을 넘어섰다. 빠른 시간 안에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뤄낸 것 역시 핵심 사업군에서의 전략적인 M&A의 ‘힘’이었다.

유통·엔터테인먼트 사업 순항

#2000년 5월, CJ는 국내 TV홈쇼핑의 원조인 39쇼핑(현 CJ오쇼핑) 인수에 성공한다. CJ의 M&A사업의 신호탄이 올려진 것이다 ‘식품사업’에서만 텃밭을 다졌던 CJ의 39쇼핑의 인수를 통한 유통사업 진출은 세간에 꽤 화제를 뿌렸다. 인수 금액은 2,300억 원. CJ가 인수한 후 CJ오쇼핑은 국내 2위 업체로 빠르게 성장해 나갔다.


인수 당시인 2000년 매출은 4200억 원(취급고 기준)이었으나 2010년엔 2조 7000억 원으로 껑충 뛰어올랐다. 시장 지위 역시 2000년 LG(현 GS)에 이은 2위에서 2010년 현재 해외 포함시 국내 1위, 세계 3위의 위치로 우뚝 올라섰다. 온라인 유통에서도 CJ가 고객 신뢰를 얻을 수 있었던 것은 기존의 높은 브랜드 신뢰가 긍정적인 역할을 했다는 분석이다. 종합생활문화기업으로서 CJ의 좋은 이미지가 초기 홈쇼핑의 약점이었던 신뢰를 높이는 데 단단히 ‘한몫’한 셈이다.

39쇼핑 인수는 이후 CJ그룹의 MSO(케이블TV) 사업 전개의 발판을 마련 했다. 엔터테인먼트와 미디어 부문에서도 활발하고 굵직한 M&A를 통해 영토를 확장해나갔다. 우선 CJ헬로비전(옛 CJ케이블넷)이 SO를 꾸준히 확보하면서 견실한 사업틀을 만들어갔다. 2000년 양천방송 인수시 약 4만 명이었던 가입자 수는 2006년 3581억 원에 드림시티를 인수하면서 40만 가입 가구를 추가로 확보하는 등 수차례 M&A를 통해 총 20개 SO 300만명으로 늘어났다. 현재 CJ헬로비전은 케이블TV 가입자 수로 1,2위를 다투고 있다.

특히 케이블방송 부문은 M&A를 통해 업계를 리드해왔다는 평가다. 대형화 이전에는 각기 지역의 중소 케이블방송에 불과했지만 규모의 경제를 갖추게 되면서 디지털 케이블 전환에 투자를 아끼지 않았다. 그 결과 첨단 양방향 디지털방송을 실시하게 되고 케이블방송 업계의 디지털화를 이끄는 선도업체로 거듭나게 됐다.


게임산업 진출 역시 M&A를 통해서였다. 2004년 CJ는 국내 대표 인터넷 기업인 플래너스(현 CJ인터넷)를 인수해 게임시장에 발을 들여놓는다. CJ인터넷은 ‘서든어택’ ‘마구마구’ 같은 온라인 게임을 성공적으로 퍼블리싱했다. 지난 2009년 온미디어 인수로 업계에 큰 화제를 몰고 왔던 미디어 사업 부문 M&A에선 올 3월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CJ엔터테인먼트, CJ미디어, 온미디어, CJ인터넷, 엠넷미디어, 오미디어홀딩스 6개사를 합병해 종합콘텐츠기업 ‘CJ E&M’을 출범시킨 것.

이를 통해 CJ는 기존 온미디어와 CJ미디어의 핵심 역량을 결합해 총 18개의 국내 최대 MPP 사업자로서 콘텐츠 산업 발전의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얻었다. ‘아시아 No.1 콘텐츠기업’을 지향하는 CJ E&M은 2015년 1조 원에 달하는 글로벌 매출을 목표로 하고 있다. 통합 원년인 올해 매출 1조 3970억 원, 영업이익 1550억 원을 달성해 내년부터는 인수 이후 내부 합병을 통한 시너지 효과가 가시화될 것이란 기대다.

신유통 사업인 CJ GLS의 경우는 M&A를 통해 단기간에 글로벌 물류기업의 가능성을 키운 사례로 손꼽힌다. CJ GLS는 2006년 삼성물산이 보유했던 HTH에 이어, 같은 해 싱가포르에 본사를 둔 다국적 물류회사인 어코드(Accord Express Holdings)사를 인수했다. 국제 물류부문의 경쟁력을 신속히 확보할 수 있는 방법으로 M&A를 전략적으로 선택한 것이다. 예상은 적중했다. 현재 CJ GLS는 중국과 싱가포르를 비롯, 베트남, 말레이시아, 미국, 멕시코 등 아시아 및 미주지역 11개국에 진출해 있다.

CJ제일제당이 국내 대표 식품기업의 입지를 더욱 탄탄히 다질 수 있었던 것도 주력품목에 대한 M&A 활동의 성공적인 연착륙 덕분이었다. 식품분야에서의 M&A는 2000년과 2005년에 나눠 ‘해찬들’(고추장) 지분을 50%씩 인수한 것이 그 시작이었다. 이후 2006년 2월에 삼호F&G(어묵)를, 그해 12월엔 하선정(액젓)을 각각 인수했다.

인수 성과는 성공적이었다. CJ는 기존 1위 품목인 햇반, 다시다, 설탕, 스팸 외에 해찬들 고추장과 쌈장, 하선정 액젓, 삼호어묵 등 인수한 회사의 브랜드와 제품도 시장점유율 1위로 만들었다. 2005년 14개에 불과했던 점유율 1위 품목은 2009년까지 24개로 늘어났다.

이 뿐 아니다. 2006년 인수 당시 1조 8509억 원이던 식품 부문 매출은 3조 908억 원으로 늘었다. 장류 시장에서도 2006년 당시엔 대상에 이은 2위였지만 M&A 이후 1위 자리를 꿰찼다.

대한통운 인수땐 물류업계 1위

#2011년 4월 현재, CJ그룹의 M&A 레이더망은 ‘대한통운’ 인수전에 좁혀져 있다. 지난 3월 28일, 대한통운 매각 주관사인 산업은행과 노무라증권 등 금융권에 따르면 대한통운 지분 인수를 위한 예비입찰에 포스코, 롯데, CJ그룹이 최종 참여한 것으로 전해졌다. 2008년 대한통운 인수를 추진한 적이 있는 CJ그룹는 치열한 3파전 속에서도 확고한 인수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이번만큼은 장기 레이스에 성공해 끝장을 보겠다는 심산이다.

대한통운은 국내 최대의 종합물류업체다. 인수 성공 후 기존 물류업체인 CJ GLS와의 시너지도 상당할 것이란 기대가 나오는 것도 이 때문이다. 실제 CJ는 대한통운을 인수하게 될 경우 단숨에 업계 1위로 올라서게 될 전망이다. 그러나 CJ의 대한통운 인수 후 시나리오는 이게 전부는 아니다. 그룹은 물류사업을 CJ의 미래 성장성을 담보하는 신성장동력으로 보고 있다. CJ그룹 관계자는 “단순히 계열사 물류량을 소화하는 차원이 아닌 CJ GLS와 대한통운을 국내 1위의 물류전문기업으로 육성하겠다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라고 설명했다.

CJ가 밑그림을 그리고 있는 물류전문기업의 모습은 ‘제3자물류(기업이 물류 전반을 특정 물류전문업체에 위탁하는 것)’를 선도하는 ‘글로벌 물류 혁신 리더’다. CJ GLS의 경우 그룹 내 계열사의 물류 담당 비율이 전체 매출의 30%도 되지 않을 정도로 제3자물류 분야에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대한통운 인수 성공을 통한 물류전문기업 육성은 ‘글로벌 CJ’라는 미래 비전과도 맞닿아 있다. CJ는 각 사업군이 가진 국내 1등의 핵심 역량을 기반으로 적극적으로 해외시장 공략에 나선다는 계획이다.

이재현 회장은 지난해 5월 가진 ‘그룹 제2 도약 선포식’에서 “2013년 Global CJ의 목표는 진정한 글로벌 기업으로 위상을 확보하고 전 세계에 CJ브랜드를 널리 알리는 것”이라며 “2020년에는 그룹 4대 사업군 중 최소 2개 이상 세계 1등을 달성해 ‘Great Global Company’로 거듭날 것”이라고 말한 바 있다.

대한통운 매각 주간사는 5월 13일까지 최종입찰을 받고 같은 달 16일 우선협상대상자를 선정할 계획이다. 항간의 우려나 관측과는 달리 CJ그룹 측은 자체 자금만으로도 충분히 경쟁사에 밀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CJ식 M&A 노하우가 이번에도 어떠한 뒷심을 발휘할 지, 한 달 후를 기대해 볼 만 하다.

이재현 회장의 ‘무한 M&A 본능’

CJ가 그룹 설립 당시부터 변화를 위한 선택의 갈림길에서 핵심적으로 추구해 온 가치관은 바로 ‘온리원(Only One)’ 정신이다. ‘세계 유일의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하고자 하는 이재현 회장의 철학이기도 하다. CJ의 활발한 M&A의 중심엔 바로 이 온리원 정신이 있었다. 주력 사업 분야인 식품과 엔터테인먼트에서 품질과 서비스 최고가 되려면 우선 규모의 경제를 실현해야 하고, 또 최고의 것을 얻어야 했기 때문이다.

이 회장은 삼성 창업자인 고 이병철 회장의 첫째 아들인 이맹희 전 제일비료 회장의 장남이다. 이 회장은 할아버지인 이병철 회장을 외모부터 말투, 행동까지 ‘그대로 닮았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항간에서 그를 ‘리틀 이병철’이라고 부르는 것도 이같은 이유에서다.

태어나면서부터 이병철 회장과 함께 살며 그로부터 각별한 사랑과 엄격한 교육을 받은 것으로 알려진 이 회장은 창조적이고 활동적인 할아버지의 삶의 행보도 그대로 따르고 있는 듯하다. 1990년대 중반 삼성그룹으로부터 독립한 이래 끊임없는 M&A를 통해 공격경영을 가속화하고 있는 것만 봐도 쉽게 알 수 있다.

85년 9월 CJ(당시 제일제당) 사원으로 입사해 98년 대표이사 부회장을 거쳐 2002년 3월 회장이 된 이 회장은 취임 후 복장 자율화, 직급을 파괴한 호칭제도 등 젊은 감각과 관행 파괴의 독특한 조직문화를 구축하며 재계에 신선한 바람을 일으키기도 했다.

이번 대한통운 인수전은 지난 2월 CJ미디어 대표에서 자리를 옮긴 CJ(주) 이관훈 대표가 이재현 회장과 함께 이끌고 나갈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이관훈 대표는 CJ제일제당 경영지원실장, CJ헬로비전 대표, CJ미디어 대표를 거쳤으며 그룹 사업 전반에 대한 전문 지식과 친화력으로 각 사업부문의 성과 달성을 위한 그룹 지원체계를 강화하는 역할을 맡고 있다.

전민정 기자 puri21@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