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6억원 잭팟이 터졌다. 다음카카오가 애플리케이션 ‘김기사’로 이름을 날린 록앤올을 거액에 인수했다. 록앤올 설립 5년 만이다. 38명 소수정예로 운영되던 이 스타트업은 하루아침에 돈방석에 앉았다. 많은 이들이 박종환 대표의 성공스토리에 귀를 기울였다.

스타트업 스타의 탄생이다. 세계를 무대로 활약 중인 IT 스타들의 시작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소 무모하게 창업에 도전해 스타로 거듭났다. 엘론 머스크, 스티브 잡스, 빌 게이츠, 제프 베조스, 래리 페이지, 세르게이 브린까지. 우리가 잘 아는 세계적 스타플레이어다. 이들의 성공담은 전 지구적으로 확대 재생산되고 있다.

 

붐과 버블 사이

극적인 성공담은 한반도 역시 고취시켰다. 이제 ‘회사 다니다 돌연 퇴사해 사업 말아먹어 빚더미에 앉은 아버지 이야기’를 스타트업 성공담이 대체하고 있다. 이에 고취되어 주위의 만류에도 끄떡없이 창업에 가담하는 자들이 늘었다. 정체된 한국 경제에 새 파장을 일으키겠다는 다짐이다.

정부도 이를 지지한다. 박근혜 정부 출범 초기부터 줄기차게 강조하고 있지만 여전히 실체는 묘연한 ‘창조경제’는 창업 친화적이다. 정부는 전국 각지에 창조경제혁신센터라는 거점을 만들어 창업 생태계를 조성하겠다고 나섰다. 실효성은 차치하고 이미 준비 완료인 지원책들도 수두룩하다.

정부 홀로 오버하는 건 아니다. 분위기는 한껏 고조되고 있다. 중소기업청에 따르면 지난해 신설법인은 8만4697개에 이른다. 전년보다 12.1% 증가한 숫자다. 창업 붐과 함께 지원 붐도 시작된다. 곳곳에 스타트업 인큐베이터가 문을 열고, 관련 콘퍼런스·세미나·공모전 등이 활황이다. 벤처캐피털과 크라우드펀딩 플랫폼은 가능성에 투자하겠다고 공언한다.

 

창업가정신, 말할 수 없는 비밀

대학가 분위기도 달라졌다. 배움은 없고 취업사관학교로 전락해버렸다고 비판받던 대학교엔 슬그머니 창업 정신이 깃들었다. 청년실업 문제를 해결할 실마리를 찾지 못하자 그 완화기제로 창업이 강조된다는 느낌마저 든다.

창업은 취업의 ‘가능성 있는’ 대안으로 자리 잡는다. 스타트업 설립자가 되는 일은 기업 인사담당자 눈에 들기 위해 안달하는 것보다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심지어 전복적이며 저항적인 기운마저 감돈다. 세상을 바꾸려던 젊은이가 예전에는 학생운동에 가담했다면 이제는 창업 동아리에 가입해 스타트업 스타가 되려 한다.

꿈틀대는 건 창업가정신(Entrepreneurship)이다. 이 시대를 가르는 핵심철학이다. 도대체 창업가정신이 무얼까. 하버드 경영대학원에서 11년간 창업가정신을 가르친 다니엘 아이젠버그 교수는 이렇게 말한다. “창업가정신은 미술, 시, 음악, 그리고 스토리텔링과 비슷하다.”

참을 수 없는 모호함이다. “내 기사는 미술, 시, 음악, 그리고 스토리텔링”이라고 쓰고 싶은 충동이 든다. 아이젠버그 교수는 덧붙인다. “창업가정신이란 역발상적인 관점으로 비범한 가치를 창조하고 획득하는 것이다.” ‘비범한 가치’가 목적이라면 ‘역발상적인 관점’은 방법이다. 그렇다면 그 각각은 구체적으로 무얼 말하는가. 의문은 꼬리를 문다.

단서는 그 다음 설명에 있다. “창업가는 사람들에게 지금 사용하고 있거나 구입하고 있는 것들이 생각보다 별로라는 점과, 삶을 개선하려면 행동을 바꿔야 하고 뛰어난 자사의 제품을 사야 한다는 점을 널리 알리고자 한다.” 이에 성공하면 창업가는 금전적 이득을 얻는다. 알량한 진보의 표식과 함께 말이다.

성공은 숫자로 환산된다. 투자를 얼마나 받았고, 기업가치 얼마를 달성했는가에 따라 성적이 매겨진다. 결국에 돈으로 판단되는 것이다. 사회에 얼마나 긍정적 영향을 미쳤는지는 잠깐 화두가 될 따름이다. 결국 ‘비범한 가치’란 제품과 서비스를 많이 팔아 이루는 것이다.

‘역발상적인 관점’은 어떤가. 월마트 창업자 샘 윌튼의 말을 통해 비교적 쉽게 파악 가능하다. 그는 “만약 모든 사람들이 하나의 방식으로 무언가를 하고 있다면 그것은 좋은 기회다. 정반대 방향으로 가면 틈새를 발견할 수 있을 테니까”라고 그랬다. 정반대로 가는 행동을 추동하는 것이 역발상적 관점이다. 역발상적 관점으로 비범한 가치를 선취해 수익을 창출하는 것이 창업가의 미션이다.

 

유사 공익 캠페인

창업가가 노골적으로 부의 축적을 목표라 밝히는 일은 없다. 명분은 그럴듯하다. “사회와 인류를 위하여.” 창업가정신으로 똘똘 뭉친 글로벌 기업들은 유사 공익성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구글을 보자. 자율주행 자동차를 보급해 교통사고를 줄이겠다고 한다. 페이스북은 어떤가. 저개발국에 인터넷 연결망을 보급해 정보 불평등을 해소하겠다는 계획을 세웠다. 액면가 그대로 보면 나무랄 데 없는 착한 취지다.

달리 볼 여지는 분명 있다. 구글의 프로젝트가 본격 가동되면 사람들이 운전하는 시간이 줄어들 것이다. 그 시간을 ‘구글링’에 쓰게 된다면? 구글은 높아진 트래픽 데이터를 바탕으로 광고 영업에 박차를 가할 것이다. 페이스북의 의도는 더욱 자명하다. 저개발국에 수익의 빨대를 꽂아 선점하겠다는 것 아닌가.

일종의 역발상이다. 역발상적인 관점이란 타사가 생각 못하는 기발한 이익 창출의 기회를 찾아내는 방법론인 셈이다. 공공의 안녕을 빙자하지만 결국은 수익 극대화를 빼고 설명할 수 없다. 이익 추구 없는 공익성 추구란 기업에게 멍청한 짓으로 여겨진다. 공익성은 가면으로 활용된다. 스타트업은 롤모델의 이러한 전략까지도 흉내 내는 경향이 있다. 아니면 순진하게 수익 없는 공익성을 추구하다가 기업으로서 파산에 이른다.

 

우리도 ‘빚쟁이 아버지’ 될까

아직까지 꿈은 창대하나 현실은 줄폐업이다. 스타트업 10개 중 4개가 1년 내 문을 닫는다. 역설적이게도 그럴수록 강조되는 것은 창업가정신과 성공 신화다. 시장은 척박해도 결국 승자는 존재하고, 실패는 창업가의 무능이 초래한 결과라는 것이다. 결국 눈앞에 신화만 남고 실패는 사라진다. 그래서일까. 대기업 중심의 승자독식 경제체제에서 별 고민 없이 창업을 적극 권유하는 위험천만한 일이 계속되고 있다.

구글의 비밀연구조직인 구글X는 오늘도 스타트업 정신에 입각해 무모한 도전을 하고 있다. 실패에 연연하지 않는다. 실패해도 치명상을 입지 않도록 완충장치가 마련된 탓이다. 그런데 한국 현황은 어떤가. 실패의 충격을 덜어줄 장치는 몹시 부족하다. 따라서 스타트업 붐이 지난날 ‘빚쟁이 아버지’ 서사로 귀결될 가능성은 얼마든 존재한다.

“가끔 불평하거나 불만을 토로하는 것은 괜찮다. 하지만 습관이 되는 순간 당신은 매일 술에 취해있는 셈이다.” 중국 알리바바 마윈 회장의 말이다. 스타트업 성공 신화에 가려진 현실을 바로 보려면 술에 취해있는 게 조금은 유용하지 않을까. 지금은 너무 긍정 일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