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글스의 ‘비디오 킬 더 라디오 스타(video killed the radio star)’라는 곡이 있다. 국내에서는 최근 가수 아이유가 리메이크 해 큰 인기를 끌었으며 이준익 감독과 배우 안성기, 박중훈이 뭉친 2006년 영화 ‘라디오 스타’를 통해서도 상당한 반응을 끌어낸 곡이다. 라디오 시대의 종말과 비디오 시대의 탄생을 알리는 사회적 현상을 나름의 감성으로 담아낸 곡으로 여겨진다.

왜 갑자기 라디오인가? 역사는 시대의 흐름을 조명하고, 이를 바탕으로 미래의 해법을 찾는 일종의 참고서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역사를 공부하며 현재의 고민을 해결하기 위한 단서를 발견하기도 한다. 이러한 연장선상에서 라디오 스타를 죽여버린 비디오 스타의 역사를 더듬으며 새로운 미래, 스마트 생태계의 웨어러블에 대한 우리의 고민도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 출처=버글스

라디오, 그 파란만장한 역사

라디오의 역사를 논하며 천재 발명가 니콜라 테슬라(Nikola Tesla)를 빼먹을 수 없다. 그는 마르코니보다 먼저 최초의 무선통신을 개발했으며 이러한 업적은 1906년 라디오의 아버지라 불리는 미국의 드포리스트(Lee DeForest)가 3극 진공관(audion tube)을 발명한 이후 만개하기 시작했다.

이후 1920년대를 기점으로 각지에서 상업 라디오 방송국이 개국하며 본격적인 라디오 스타의 시대가 열렸다. 사람들은 라디오를 통해 뉴스와 정보, 그리고 즐거움을 찾아내기 시작했으며 곧 라디오는 일상의 필수품으로 자리매김했다. 라디오를 통해 많은 영웅이 등장했으며, 또 포장됐다. 라디오는 혁신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라디오의 운명을 결정적으로 바꾸는 사태가 발생했다. 세계 2차 대전 직후 소위 전쟁특수를 누리기 시작한 미국에서 1950년대를 기점으로 빠르게 TV가 보급됐기 때문이다. 당시 미국은 1945년과 1960년 사이 GNP가 2000억 달러에서 5000억 달러로 폭발적으로 상승하며 대부흥기를 누렸다. 그 연장선상에서 대공황 시절 최대 25%에 달했던 실업률은 5% 내외로 정착됐으며, 사람들의 소비패턴도 빠르게 변화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처음부터 TV가 인기를 끌었던 것은 아니었다. 1940년 당시만 해도 미국인들은 TV보다 라디오에 더 애착을 가지고 있었다. 이유는 간단했다. ‘TV를 보려면 가만히 앉아 있어야 하지만, 라디오는 어디서든 들을 수 있잖아!’였다. 훗날 바보상자에 빠져든 후손들의 눈에는 기이한 상황판단이었지만, 냉정히 말해 당시의 현실은 TV보다 라디오였다.

물론 이러한 고집은 오래가지 않았다. 1950년 TV 상업방송이 우후죽순 생기자 순식간에 판도가 변했기 때문이다. 당장 미국에서만 1950년대 400만대 이상의 TV가 팔렸다. 이후 1960년대에 이르러 미국 가정의 90%가 TV를 보유하게 됐으며, 컬러TV 시대가 열리며 이러한 분위기는 더욱 빠르게 굳어지기 시작했다. TV는 시각적 효과를 충족시키며 라디오 시장을 붕괴시켰고, 사람들은 TV를 통해 생생한 미래에 설득당하며 다양한 제품에 정신이 팔렸다. 이는 폭발적인 소비시장의 발전으로 이어졌다.

▲ 출처=이미지투데이

라디오는 실패했을까?

과연 라디오는 실패했을까? 이제 사라져야 할 매체일까? 다양한 담론이 가능하지만, 대체적으로 라디오의 가능성은 아직 유효하다는 것이 중론이다. 물론 기존의 방식 그대로 라디오가 살아남을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아마 변형되고 발전된 형태로 여전한 가능성을 보여줄 것이라는 것이 정설이다.

흥미로운 설문조사가 있다. 지난달 10일(현지시각) 니먼랩에 따르면 지난 1분기 미국인들의 공영 라디오 청취시간은 지난해 동기 대비 약 6% 감소됐다고 한다. 하지만 온디맨드 형태의 주문형 듣기에 대한 수요는 미비하지만 조금씩 상승하고 있는 것으로 밝혀졌다.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

사람들은 라디오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으나 공유경제의 기본이 되었던 온디맨드 사업의 경쟁력은 여전히 라디오에서 살아 숨쉬고 있다는 뜻이다. 즉 비디오를 통한 시각적 효과를 바탕으로 강렬한 자각의 환각에 익숙한 우리도, 최소한 ‘듣는’ 방식에 있어서는 주문형에 승부를 걸어볼 필요가 있다는 뜻이다.

라디오가 빠르게 디지털 방식으로 재편되는 부분도 이러한 현상에 속도를 더하게 만든다. 국내에서도 추진되고 있으며 이미 해외 여러 나라에서는 디지털 라디오가 일종의 라디오 생존을 위한 산소 호흡기로 여겨지며 각광을 받고 있다. 노르웨이는 오는 2017년부터 아예 디지털 라디오만 실시하겠다고 선언한 상태다.

라디오의 아날로그적 감성을 포기하지 못하는 사람도 많다. 또 라디오가 처음 TV의 도전을 받았을 당시 미국인이 보였던 반응, 즉 “자유롭게 뭔가를 할 수 있다는 점”에 들어 여전히 틈새시장이 있다는 말도 나온다. 예를 들어 운전을 하고 있을 때 교통방송을 듣는 것이 대표적이다. 손은 운전을 하고 있으니 귀로 듣는 라디오야 말로 제격이다.

물론 자율주행차가 등장한다면 또 다른 이야기가 펼쳐지겠지만 오해하지 말아야 한다. 자율주행차가 나오려면 세계의 교통 인프라가 모조리 변해야 하고, 이는 최소한 수십년의 시간이 필요할 전망이다. 구글의 자율주행차가 등장했을 때 쌍수를 들고 환영하며 ‘운전면허 시험이여 안녕!’이라고 외치는 것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 보자. 라디오는 분명 ‘밀리고 있는’ 패러다임이지만 분명히 여러 다양한 가능성이 존재한다. 어쩔 수 없이 실패하는 부분도 있고 다양한 변형을 통한 발전적 비전도 엿보인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등장한 다양한 담론을 묶으면, 상당히 흥미로운 단서를 여럿 발견할 수 있다. 웨어러블적 측면이다. 이제 다른 이야기를 해보자. 우리 이야기.

▲ 출처=이미지투데이

웨어러블의 고민

애플의 스마트워치가 지난 4월 출시됐다. 반응은 폭발적이다. 하지만 초반 미국에서만 하루 20만개 가까이 팔리던 애플워치는 현재 하루 1만개도 팔리지 않고 있다. 미국 캘리포니아에 있는 시장조사기관 슬라이스는 7일(현지시각) 실제 매장에서 팔린 영수증을 바탕으로 조사한 결과 애플워치 판매량이 시간이 지날수록 급격히 떨어지고 있다고 밝혔다. 실제로 스마트워치는 4월 10일 출시 이후 일주일만에 약 150만대, 하루 20만대가 팔리는 기염을 토했으나 이후 점점 판매량이 하락해 6월 중순 이후로는 하루 1만대도 팔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다양한 원인이 있겠지만, 사실 거대한 하나의 근거가 존재한다. 바로 애플워치를 비롯한 스마트워치의 효율성을 납득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쉽게 말해 “내가 왜 애플워치를 비싼 돈 주고 사야하지?”라는 질문에 답을 하지 못했다는 뜻이다.

그런 이유로 현재 웨어러블 시장은 저가의 스마트밴드가 장악하는 상황이다. 한국계 CEO가 이끄는 핏빗이 글로벌 웨어러블 시장 1위를 차지하는 비결 중 하나가 바로 여기에 있다. 핏빗의 기술력이 훌륭한 점도 분명한 사실이지만, 아직 웨어러블 시장이 완전히 열리지 않았으며 관심이 있는 사람들은 저가의 스마트밴드를 찾을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시장이 완전히 열리지 않았다는 주장의 근거는 특허숫자에서 찾을 수 있다. 시장조사기관 룩스 리서치에 따르면 지난 2010년부터 올 3월까지 웨어러블 관련된 특허 중 무려 77%가 개인 소유의 특허로 나타났다. 이는 상용화가 본격화되지 않은 ICT 시장에서 자주 목격되는 모습이다. 기업으로 보면 웨어러블 관련 특허를 가장 많이 확보한 업체는 삼성전자(4%), 그 뒤로 퀄컴(3%)과 애플(2.2%)이 자리했다. 이는 아직 기업들이 웨어러블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다는 뜻과 일맥상통한다.

국내 웨어러블 시장의 추이에도 주목할 필요가 있다. 지난 5월 27일 가격비교 사이트 에누리 닷컴에 따르면 올해 5월 판매량 기준 스마트밴드 및 스마트워치 통합 시장 점유율에서 샤오미가 70%로 전체 1위를 기록했다. 그 뒤를 이어 LG가 8% 점유율로 2위, 삼성이 6% 점유율로 3위를 기록 중이다.

▲ 출처=에누리닷컴

흥미로운 점은 저가형 스마트밴드가 고가의 스마트워치 시장을 잠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일반적으로 손목형 웨어러블 디바이스는 일반 시계를 대체하는 ‘스마트워치’와 손목 밴드를 대체하는 ‘스마트밴드’로 구분된다. 스마트워치는 시계 기능과 함께 전화 통화, 문자 수신, SNS, 이메일 등 다양한 기능을 지원하며 상대적으로 고가로 여겨지지만 스마트밴드는 간단한 진동 및 알람 기능 정도만 있으며, 기본적으로 디스플레이가 없는 경우가 많아 가격이 저렴한 편이다.

여기에서 웨어러블의 고민이 시작된다. 즉 포스트 스마트폰의 미래와 사물인터넷 시대의 촉매제가 필요한 지점에서 과연 웨어러블이 자신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을 것인가? 대상이 스마트워치가 될 수 있으며, 아예 스마트의류도 가능하다. 하지만 이들이, 과연, 포스트 스마트폰이 될 수 있을까? 되려면 어떻게 해야할까?

▲ 출처=핏빗

라디오의 궤적으로 공부해보자

이러한 웨어러블의 고민을 라디오의 역사로 가져와 보자. 먼저 라디오의 대항마인 TV가 등장했을 당시의 미국으로 시간을 돌리자. 당시 미국인들은 폭발적인 상업방송의 시대 전, ‘자유롭게 뭔가 할 수 있는 라디오’에 몰표를 던졌다는 것에 집중한다면, 어디서 많이 들었던 말이 아닌가? 바로 웨어러블에 대하는 우리의 고민이다. 역사의 발전도를 따지면 ‘라디오→TV’와 ‘스마트폰→웨어러블‘로 도식이 가능한데, 당시 미국인의 반응은 ’라디오←TV'의 흐름을 보이며 ‘스마트폰→웨어러블’의 고민을 했다고 볼 수 있다. 역방향이라는 점인데, 사실 이는 중요한 것이 아니다. 당시 TV가 이를 어떻게 극복했는지가 포인트다.

TV는 먼저 재미있는 상업방송으로 ‘자신의 타당성’을 알렸다. 즉 ‘라디오처럼 뭔가 다른 일을 하면서 즐길 수는 없지만, 이를 대체할 정도의 이득을 보장했다’고 이해된다. 웨어러블에 대한 고민과 연결된다.

그렇다면 다음은? TV를 통해 상업방송들이 다양한 문물을 보여주고, 이를 통해 폭발적인 소비시장을 열었다는 점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일단 먼저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광고의 콘텐츠화다. 당시가 딕 맥도널드와 모리스 맥도널드 형제가 캘리포니아에 조그만 햄버거 가게를 열었던 시기와 겹친다는 점을 기억하자. 사람들은 자신들이 지금까지 느끼지 못했던 것들을 TV를 통해 봤으며, 이는 소비시장의 성장과 다양한 부가산업의 성장을 육성했다.

당연한 말이지만 웨어러블도 같은 방향, 즉 새로운 사용자 경험을 제공해야 한다. 다만 그냥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오프라인의 실제경제를 변화시킬 수 있는 모든 것의 콘텐츠화가 필요한 것이 아닐까? 심지어 광고마저도 콘텐츠로 만들어 시각적 효과를 자극했던 TV의 발전은 곧 본격적인 웨어러블 시장의 촉매제가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웨어러블에 3D 및 홀로그램, 가상현실과 증강현실이 해답이 될 수 있다. 이를 통해 ‘자신의 타당성’을 알릴 수 있지 않을까.

초기 라디오에 대한 지지에서도 해답이 숨어있다. 당시 미국인들은 ‘편하게 들을 수 있는’ 라디오에 지지를 보낸 바 있다. 이는 웨어러블 입장에서 장기로 삼을 수 있는 결정적 단서다. 몸에 밀착시키는 기기를 통해 일상의 공기로 웨어러블의 브랜드를 체화시킨다면? 민감한 개인정보 및 기타 다양한 담론에 대한 보안정책을 완비하고 이를 바탕으로 비슷한 속성의 스마트홈과의 연결고리를 강화한다면? 스마트홈의 허브를 스마트폰과 TV에서 찾지 말고 과격하지만 웨어러블에서 찾고자 하는 시도는 이 지점에서 발견된다.

여기에 온디맨드 방식의 경제적 논리가 대두되고 있다는 점도 호기다. 온디맨드는 공유경제의 개염을 확장시키며 나름대로 성공적인 패러다임으로 정착하고 있다. 물론 경제적 불균형을 전제로 한다는 점에서 불안요소는 존재하지만 여기에서 긍정적인 요소를 더한다면 웨어러블의 미래에 힘을 더할 여지가 있다. 주문형 서비스와 개인형 기기의 최종형태인 웨어러블은 유기적인 정보교환과 상황의 피드백을 미리 예견할 수 있고, 빅데이터까지 활용한 예측 주문형 서비스까지 염두에 둘 수 있다. 물론 라디오의 기술적 발전, 즉 디지털 전략을 체화시키는 방식도 힌트다.

마지막 여담

평행이론 이야기를 하는 것은 아니지만, 라디오와 스마트 생태계의 탄생에는 흥미로운 교집합이 존재한다. 라디오 방송 전성기, 처음 음질이 깨끗한 FM을 발명한 암스트롱이라는 사람이 있었다. 그는 FM을 통해 사람들에게 신세계를 보여줬으며, 점점 저변을 늘리기 시작했다. 그러자 음질이 나쁜 AM을 주력으로 삼던 대기업 RCA가 움직였다. 이들은 암스트롱이 FM을 위해 사용하는 주파수 대역이 지구의 전리층을 교란한다는 괴상한 주장을 펴며 로비를 펼쳤고, 결국 수차례 법적공방을 벌인 후 FM 주파수 대역이 변하고 말았다.

이 지점에서 RCA는 중소 방송사를 활용해 FM방송을 하던 암스트롱을 누르고 자신들이 재빨리 FM을 선점해 버렸다. 대역폭을 변경하는 것은 막대한 비용이 들어가는 일이다. RCA는 암스트롱의 방식을 훔치기 위해 암스트롱이 사용하던 주파수 대역을 무용지물로 만들고는, 자신들이 원하는 대역폭을 FM으로 바꿔 선제적 ‘도둑질’을 한 셈이다. 이전에 AT&T에 되먹임 회로(feedback circuit) 특허를 빼앗긴 암스트롱 입장에서는 열불이 터질만한 일이다.

상상은 자유지만, 이를 스티브 잡스와 제록스의 팔로알토 연구소의 관계와 오버랩하면 어떨까? 계획만 세우지 말고 과감하게 실행하는 것이 ‘혁신’이라고 추앙받는 사회에서, 스마트 생태계의 효시와 라디오 시대의 영웅들이 보여주는 서사시는 묘하게 닮았다. 따지고 보면 스트리밍을 주력으로 삼는 ICT 업계의 흐름이 라디오를 살렸던 ‘음원’이라는 것도 재미있다면 재미있다. 물론 이 지점은 단순한 상상이니까 무시해도 그만이다. 사실 이 글 자체가 일종의 제안이기는 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