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차전지란 충·방전이 가능한 에너지 저장장치다. 납축전지, Ni-Cd 전지, MH전지 등을 거쳐서 현재는 리튬이온 전지(Lithium Ion Battery)가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리튬이온 전지는 가볍고 에너지 저장밀도가 높고 충전과 방전 과정에 메모리 현상이 없을 뿐만 아니라 사용 중 방전현상도 없어서 수명이 매우 길다. 특히 이전의 NiCd이나 NiMH전지는 전압이 1.2V로 낮았던 것에 비해 3.7V까지 전압을 올릴 수 있어 웬만한 전자제품에는 배터리를 한 개만 사용해도 된다. 용도는 스마트폰, 노트북 등 IT기기용 전원뿐만 아니라 전기차용 전지 그리고 대용량 발전에너지의 저장장치(ESS)에 이르기까지 용도가 다양하다.

리튬이온 전지는 한·중·일 간 치열한 기술경쟁 대상이다. 1991년 소니가 최초로 원통형 전지를 개발한 이후로 200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는 리튬이온 전지는 일본의 독무대였다. 그러나 2005년부터 전지의 잦은 발화와 폭발사고가 발생하면서 대규모 리콜이 겪은 일본 3대 제조사들의 신뢰도가 크게 추락했다. 사고의 원인은 좁은 공간 내에 에너지를 저장하는 전극재료를 더 많이 충전시키기 위해, 전극판의 두께와 밀도를 증가시키고 분리막의 두께는 얇게 하면서 안전성 문제가 노출된 것이다. 리콜로 인해 대규모 적자가 발생하면서 산요는 파나소닉에 합병되고 소니와 LG화학은 한때 전지사업을 매각하는 것도 검토했었다.

하지만 품질관리에 성공한 국내 LG화학이나 삼성SDI가 두각을 나타낸 시점은 2008년 무렵부터다. 선발 일본 업체들과의 기술격차를 극복하고 후발업체인 중국의 BYD나 Lishen의 추격을 뿌리치면서 시장지배력을 강화했다. 2011년엔 삼성SDI의 출하량이 일본 산요와 파나소닉의 출하량 합산치보다도 많아지면서 세계 1위 업체로 부상했다. 2014년도 소형 이차전지의 시장점유율을 비교하면 삼성SDI가 20.5%로 1위이고 LG화학이 15.9%로 2위를 점하고 있다. 두 회사의 점유율이 전체의 36.4%이다. 일본은 파나소닉이 14.3%, 소니가 7.5%, Maxell 1.9% 등으로 전체 점유율이 23.7%이고, 중국은 ATL이 6.0%, Lishen이 5.5%, BYD가 3.0%, Coslight 2.8%, BAK 1.8% 등으로 개별기업은 점유율이 낮지만 워낙 기업들이 많아서 전체를 합치면 38.2%로 3국 중 가장 높다. 일본은 완제품 경쟁에선 점유율이 낮지만 이차전지의 소재분야에선 높은 기술력으로 독점적인 위치를 구축하고 있고, 중국은 중국 내수시장을 바탕으로 규모를 키우고 있다.

SNE리서치에 따르면 리튬이온 이차전지의 세계시장 전망은 배터리 저장용량으로 보아 2014년 52.9GW, 2015년 64.5GW, 그리고 2020년엔 202GW 규모다. 시장 규모가 매년 25%씩 성장한다는 전망이다. 리튬이온 전지의 시장을 크게 IT, 전기차, ESS(에너지저장장치)로 분리해 보면 2015년 수요전망에서 IT가 차지하는 용량이 53.5GW로 큰 반면, 전기차는 8.7GW, ESS는 2.3GW에 불과할 만큼 미미하다. 현재 리튬이온 전지 시장 수요는 IT 중심이다. 하지만 2020년 전망치에선 IT가 81GW, 전기차가 100GW, 그리고 ESS가 21GW로 전기차나 ESS 용도의 중대형 전지시장이 크게 성장한다. IT 시장의 성장률은 연 19.1%인 반면에 전기차 시장은 연 59.8%이고, ESS 시장은 연 55.2%의 성장률로 전망하고 있다. 앞으로 리튬이온 전지 시장은 전기차 시장으로 급격히 쏠린다고 전망하고 있다.

미국의 테슬라 자동차는 2018년경에 전기차를 50만대 생산한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이 정도 규모로 전기차를 생산하려면 전 세계에서 생산되는 거의 모든 이차전지를 테슬라가 사용해야 한다. 따라서 테슬라 자동차는 전기차에 필요한 이차전지를 직접 생산하기로 했다. 테슬라 에너지를 설립해서 현재 네바다 주에 ‘기가팩토리’라는 배터리 생산공장을 짓고 있다. 2017년부터 상업 생산하게 되는데 생산능력이 35GW다. 이는 테슬라 전기차 대당 70㎾씩 계산해서 50만대가 사용할 수 있는 물량이다. 일본 파나소닉과 합작했는데 공장 건설에 필요한 부지, 건물, 유틸리티는 테슬라가 제공하고 파나소닉은 배터리 제조 설비, 공급 설비, 기타 모든 제조 장비들을 투자하기로 했다. 이름은 테슬라 에너지이지만, 실상은 일본 파나소닉의 미국 전지공장인 셈이다. 파나소닉은 테슬라 자동차와 전략적 동반자 관계를 맺고 전기차용 이차전지 시장을 석권하려는 꿈을 펼치고 있다. 대규모로 제조하면 제조원가를 30% 정도 저렴하게 낮출 수 있고, 전기차 디자인에 최적화한다면 전지 가격을 그보다도 더 낮출 수 있다고 한다. 생산용량도 생산 초년 도엔 35GW이지만 2020까지 50GW 규모로 늘릴 계획이다.

중국도 정부의 강력한 정책 지원으로 전기차 시장이 급속히 성장하는 중이다. 대표적 전기차 기업인 BYD는 중국 내에서 테슬라 에너지가 생산하는 만큼 배터리를 증산한다고 발표했다. 선천에 본사를 둔 BYD는 원래 배터리 생산 전문 업체다. 2015년에 생산량을 6GW 더 올려서 10GW를 생산할 계획이다. 그리고 2020년까지 매년 6GW씩 생산량을 증가시켜 2020년엔 34GW의 생산능력을 갖출 계획이다.

전기차용 배터리 시장은 IT용 소형배터리 시장과 상황이 사뭇 다르다. 전기차는 HEV(하이브리드), PHEV(플러그인 하이브리드), BEV(배터리 전용)용으로 구분되며 차량 특성에 맞게 다양한 설계가 가능하다. 2014년도에 전기차가 2백만대 정도 팔렸는데 HEV가 168만6327대, PHEV가 12만9290대, 그리고 BEV가 21만1586대 순이다. 전기차 배터리 공급자 점유율은 테슬라에 공급한 파나소닉이 30.4%로 가장 높고, 닛산 리프에 공급한 AESC가 17.6%, 도요타에 공급한 PEVE가 15.1%, 그리고 LG화학이 10.8%를 점유하고 있다. AESC는 닛산과 NEC합자하고 PEVE는 도요타와 파나소닉이 합자한 배터리 회사다. 전기차 배터리 전문 일본기업들이다. 전기차 배터리 시장에서 일본이 차지하는 비중은 TDK, 미시비시까지 합치면 73.6%나 된다. 중국이 21.2%, 그리고 반면 한국은 LG화학과 삼성SDI을 합해 13.4%에 불과하다. 전기차용 이차전지는 국내업체들의 실적이 아주 미미하다.

사실 전기차용 이차전지 품질은 국내 LG화학이나 삼성SDI가 최고 수준으로 인정받는다. 그런데도 시장 점유율이 낮은 이유는 전기차 시장을 석권하는 차종(테슬라, 리프, 도요타)에 공급을 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시장에선 LG화학의 리튬이온 배터리가 값싸고 성능이 좋다고 평가되어 전 세계 20개 완성차 업체들 중에 13개사(GM, 포드, 현대, 기아, 르노, 다임러 등)가 LG화학제품을 구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주로 소형 전기차 중심으로 제품을 개발했기 때문에 시장 전망은 밝아 보인다. 전기차의 최대 약점이 1회 충전에 이동 가능한 거리인데 현재는 대부분 120~240㎞ 범위이지만 LG화학은 내년에 312㎞ 주행거리를 보장하는 전지를 공급한다고 공언하고 있다. LG화학은 완성차 업체와 합작하지 않아서 여러 업체에 공급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반면에 삼성SDI는 BMW와 합작하여 BMW 중심으로 공급이 이루어질 것으로 전망된다. 전기차 배터리 시장의 점유율은 차종에 달려있기 때문에 많은 차종에 공급한다고 반드시 공급량이 늘어나는 것은 아니다. 테슬라나 BYD 같이 전기차를 직접 생산하면서 대량으로 시장을 키워가는 업체가 시장을 지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차전지는 규모의 경제가 가격 경쟁력의 기반이고 다음은 소재의 성능이다. 이차전지 제조사별로 채용하는 소재가 다르고 소재 가격이 전체의 60% 정도를 차지한다. 배터리 가격은 지난 24년 동안 1/25로 떨어졌다. 반도체 산업에서는 흔한 일이지만 배터리 시장에서는 이례적인 일이다. 이런 추세가 지속된다면 5~10년 후에는 가격이 1/5이나 1/10이 될 수도 있다. 따라서 이차전지의 경쟁력은 첫째는 소재 가격에 있고 둘째는 소재에 잘 맞는 맞춤형 설계능력에 있다. 국내 기업이 가격 경쟁력을 갖추려면 품질은 물론이고 소재 가격을 낮춰야 한다.

야노(Yano) 연구소에 따르면 이차전지의 4대 핵심 소재는 최근 중국 소재 업체들에 점령당하고 있다고 한다. 국내 배터리 제조업체들도 원가를 낮추기 위해선 중국산 소재를 사용하지 않을 수 없다. 중국내 IT, 전기차 시장이 급속히 성장하면서 중국 소재 업체들의 실력이 급증한 이유다. 2014년 물량 기준으로 양극소재의 55.2%, 음극소재의 70%, 전해액의 67%, 분리막 소재의 37.6%를 중국 소재 업체가 공급했다고 한다. 한국은 분리막 시장의 16.3%, 전해액의 10.6%만을 차지하고 나머지 양극소재와 음극소재는 10% 미만으로 분석됐다.

이차전지 시장이 앞으로 2~3년 내에 급속히 전기차 시장으로 쏠릴 가능성이 높다. 국내 이차전지 제조업체들이 노력에 따라서는 세계 시장을 장악할 가능성도 매우 높다. 하지만 성능 좋은 소재를 국내에서 공급하지 못하면 결국 외국 업체들에 이윤이 거의 넘어가게 된다. 국내 소재 업체들의 기술력이 일본은 물론이고 중국 업체들보다도 뒤진다면 이차전지의 장밋빛 시장 전망은 대부분 남 좋은 일이 될 가능성이 높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