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기옥 통합바이러스연구회 회장.

한약은 특정 성분이 특정 효과를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맛 때문에 그 효과가 달라지는 것으로 본다. 실제로 신맛을 보게 되면 사람의 입은 쪼그라든다. 신맛이 수렴작용을 하기 때문이다. 신맛은 간에 들어가 수렴작용을 하고, 쓴맛은 열을 내리는 작용을 하여 심장의 열을 식히고 정신을 안정시킨다.

단맛은 위를 자극하여 소화기능을 도와준다. 매운맛은 혀의 미각을 자극하고 혈액순환을 촉진하며 폐를 튼튼하게 해준다. 짠맛은 치아나 뼈와 같은 인체 골격 구조를 튼튼하게 하며 신장기능을 촉진한다. 이렇게 미각은 각 해당 장부의 오장육부를 조절하고 기능을 부활시킨다. 그런데 사람마다 체질이 다른데 그중 태음인은 폐 기능이 저하되어 있고, 간 기능이 항진(亢進)되어 있다. 따라서 매운맛은 추진력을 부활하게 하는 효과가 있어 태음인은 매운맛을 즐겨 먹으면 기분이 좋아진다.

실제로 매운맛의 대표적인 조미료가 고춧가루인데 고추의 캡사이신 성분은 신경전달 물질을 감소시켜 통증을 줄여주고 혈액순환을 촉진한다. 특히 겨자나 고추냉이, 마늘, 카레 같은 향신료는 후각을 자극하여 뇌를 각성하는 효과가 있으며, 태음인의 폐 호흡근에 혈액순환을 촉진하여 산소를 많이 흡입하도록 하는 아주 좋은 식품이다. 반면 자율신경이 쉽게 흥분하는 태양인이나 소양인이 이런 식품을 즐기면, 신경이 더 날카로워지고 헛된 기운을 부리게 만들어 결국 쉽게 지치게 될 수 있다.

단맛은 위의 기능이 선천적으로 무기력한 소음인에게는 위의 긴장을 풀어주고 침샘을 자극하여 소화기능을 좋게 하고, 입맛을 자극하여 식사를 좀 더 할 수 있게 도와준다. 뿐만 아니라 뇌의 영양 부족으로 생기기 쉬운 기능성 정신장애인 사고 지연이나 뇌빈혈(腦貧血)을 막아준다. 반면 소양인이 단맛을 즐기면 당뇨병에 걸리기 쉽다. 따라서 소양인은 설탕류뿐 아니라 이뇨작용을 활발하게 하는 수박과 참외, 호박 등을 제외한 단 과일도 멀리하며 당뇨를 예방해야 한다.

 

신맛은 간의 해독 능력이 부족한 태양인에게 도움이 되니 모과나 포도처럼 신 것을 즐겨 먹으면 분노로 인해 간에 울혈이 생기는 것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 그러나 태음인이 신 것을 자주 먹으면 너무 이완되어 무기력이나 만성피로에 빠질 수 있다.

짠맛을 적당히 먹으면 소양인의 위 산도(酸度)가 적절히 조절되어 저산증에 의해 소장과 대장이 불편해지는 것을 막을 수 있지만, 신장 기능을 저하시킨다. 흔히 죽염이 좋다고 하는 이유는 소금에 함유된 불순물을 잘 정제했기 때문인데, 덕분에 소금의 부작용이 적을 수는 있겠지만 그렇다고 소금 성분인 염화나트륨이 변하는 것은 아니다. 따라서 소음인에게는 소금 성분이 좋은 반응을 일으킬 수도 있지만, 신장이 약한 소양인이 소금을 많이 먹으면 신장이 나빠져 혈압이 오르고 신부전을 일으키는 원인이 될 수도 있다.

이처럼 우리가 평소 먹는 식재료에는 고유의 맛이 있기 마련이다. 과거에 식재료가 시들거나 변질되는 것을 우려하면서 다양한 향신료가 발달하게 되었다. 그런데 향신료의 강하고 자극적인 맛은 사람들의 입맛을 자극하여 과식하게 만들었고, 오늘날의 비만과 같은 영양 과잉을 초래해 ‘생활습관병’으로 이어졌다.

필자가 어린 시절에는 윗동네 샘물 맛과 아랫동네 샘물의 맛을 가려내고, 맛이 조금 더 좋은 샘물을 마셨던 기억이 있다. 하지만 요즘 우리는 식탁에 오르는 음식 고유의 맛을 즐기기보다는 과다한 조미료의 맛에 길들여져 진정한 음식의 맛을 잃어버린 채 맛있게 먹고 있다.

너무 강한 맛에 길들여지다 보니 더 많은 알레르기에 걸리고, 잘 먹는데도 불구하고 면역력은 낮아지고 있다. 그래서 비록 거칠고 맛은 없지만 예전의 구황식물들이 이젠 진정한 웰빙식품으로, 건강식품으로 그 진가를 발휘하고 있다. 어려서 지겹게 먹던 소양인의 보리밥·보리개떡, 태음인의 도토리묵, 소음인의 아욱죽, 태양인의 메밀묵 등이 천덕꾸러기 먹거리에서 이제는 체질별 건강식으로 격상(格上)되는 시대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