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달 전 <이코노믹리뷰>에 도착한 책 꾸러미 속에서 정독할 요량으로 한 권을 챙겨놓았다. <인더스트리 4.0>이다. 제목은 뜻 모르지만, 앞표지의 '과격한' 부제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삼성전자도, 현대자동차도 도태될 수 있다’ 라...
‘인더스트리 4.0’이 과연 무엇인가. 한번 검색해봤다. 관련 웹문서와 기사들이 드문드문 있다. 한데, 그것들은 마치 우리는 여전히 석기시대이나 바깥 세상에는 이미 청동기시대가 도래하고 있다는 듯 정색하며 경고하는 목소리 일색이다.
대략 개념은 이러했다. 독일은 제조업 경쟁력이 세계 최고 수준이다. 그런데도, ‘인더스트리 4.0’이란 이름의 '제조업 경쟁력 강화대책'을 국가 차원에서 강력하게 추진하고 있다. ICT(정보통신기술)의 발달로 언제 후발주자들에게 뒷덜미를 잡힐 지 모를 상황이 된 때문이다.
목표는 제조업의 완전한 자동생산체계 구축, 생산 과정의 최적화다. 즉 제조업과 같은 전통 사업에 IT시스템을 결합해 지능형 공장(Smart Factory)으로 진화하자는 것이다. 이는 생산 패러다임의 대전환을 의미한다. 구체적으로는, ICT를 이용해 공장의 기계, 산업 장비, 부품들이 서로 정보와 데이터를 자동으로 주고받을 수 있게 하고, 기계마다 인공지능을 설치해 모든 작업 과정이 통제되고 사람 없이 수리가 가능하도록 한다는 구상이다.
예를 들면, 과거 공장자동화 환경에서는 생산 공정에만 ICT 기술이 활용됐다. 하지만 '인더스트리 4.0'에서는 제품 개발부터 상품 제조, 서비스를 포함한 모든 공정의 최적화가 가능하다. 이는 비용 절감, 생산성 향상 등의 효과로 나타난다. 또한 다품종 대량 생산에서 고품질의 고객 맞춤형 소량 생산 체계로 전환할 수 있다. 고객의 피드백과 최신 트렌드를 반영한 제품을 제조할 수도 있다. 이는 그만큼 시장 변화에 빠르게 대응할 수 있음을 뜻한다.
나아가 의사결정 직후 제품 생산에까지 걸리는 시간이 크게 줄어들고 같은 공장 라인에서 더 다양한 제품을 만들 수 있게 된다. 제품 개발과 공정상 오류를 점검하며 효율성을 높이는 과정이 동시에 진행되기 때문이다.
비즈니스 솔루션기업 SAP은 '인더스트리4.0'을 할리데이비슨 제작과정에 적용해 놀라운 성과를 거뒀다고 한다. 할리데이비슨의 오토바이 제조과정은 워낙 복잡해 고객이 주문해서 수령받기까지 21일이나 기다려야 했다. 하지만 모든 것을 센서와 연결시키고 자동화한 결과 6시간 만에 오토바이를 받아갈 수 있었다는 것이다.
보스턴컨설팅그룹(BCG)는 만약 독일의 '인더스트리 4.0'이 계획대로 진행된다면 5~10년 후 독일 경제전반에서 매년 900억~1500억 유로(약 105조~175조원)의 비용절감 효과가 나타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10년 후에는 추가 고용효과도 39만 명에 달할 것이란 예측도 내놓고 있다.
프로젝트 목표 이상으로 주목할 만한 것은 독일내 추진상황이다. ‘인더스트리 4.0’ 프로젝트는 지난 2013년 독일 정보통신산업협회, 엔지니어링협회 등 산업단체들 중심으로 진행됐다.
그러나 사물인터넷, 사이버물리시스템(CPS), 스마트팩토리 등과 관련한 기술표준을 개발하는 속도가 더뎠다. 제조공정 디지털화의 가장 큰 장애물인 보안 문제도 해결의 실마리를 찾지 못했다. 데이터 소유권과 접근 및 분석 권한 등에 대한 법적 기준이 없었다. 중소기업들은 막대한 투자 규모와 제조 공정 데이터의 유출 가능성 등을 두려워했다.
이를 지켜보던 독일 정부가 입장을 바꿨다. 포스코경영연구원의 보고서 ‘다시 시작하는 인더스트리 4.0’에 따르면, 최근 독일 정부는 정치적·사회적으로 더욱 폭넓게 접근하기로 했다. 이런 발상의 전환은 매우 중요하다. 국가적으로도 중요한 프로젝트라면 ‘관련 단체나 기업들이 알아서 해봐라, 정부가 도와주마’라는 식으로는 성공하기 어렵다.
독일 정부는 더 많은 산업 분야 단체들을 참여시키기로 했다. 노동조합의 참여도 이끌어 근로자 관점에서의 이슈들을 고려하기로 했다. 시장에 적합한 연구를 진행하고, 신속한 상용화를 목적으로 세부 과제들을 재설정하기로 했다. 중소기업들이 뒤처지지 않도록 ICT 보안 안정성을 높이는 연구를 강화하기로 했다. 단계별로 데드라인도 정했다. 마감시간 설정은 결연한 의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독일만 하는 것은 아니었다. 독일에 비견되는 제조업 강국 미국과 일본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었다. 특히 일본의 경우 최근 미쓰비시전기, 파나소닉, 닛산 등 주요 일본 제조사 30곳이 공장 인터넷 연결 표준화를 논의하기 위해 컨소시엄을 결성하기로 했다. 독일에 앞서 국제표준화 규격을 만들어 비즈니스 영향력을 키울 생각인 모양이다. 컨소시엄명은 ‘산업 밸류체인 이니셔티브(IVI)’다. 아베 정부는 “지금 움직이지 않으면 세계 우위에 있는 일본 제조산업이 역전될 수 있다”며 비장한 각오를 피력하고 있다.
더 놀라운 것은 중국 정부다. 중국은 한참을 앞서가고 있다. 중국 수뇌부는 지난 2년새 독일과 네 차례나 상호방문하며 정상간에 ‘혁신 협력’을 도모해왔다. 중국의 추진전략은 단순한 벤치마킹이 아니다. 랴오닝성 선양에서는 지금 ‘중국·독일 중장비 혁신 시험공단’이 건설 중인데, 이곳은 ‘중국제조 2025, 독일 인더스트리 4.0 공단’으로도 불린다고 한다. ‘생산 대국’과 ‘기술 강국’이 손잡은 것이다. 이것이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지 상상만 해도 등줄기가 오싹해진다.
뒤늦게 한국도 비슷한 개념의 ‘제조업 혁신 3.0’을 추진 중이란 사실을 알게 됐다. 스스로 민망한 일이지만, 이 정도로 국민적 관심이 없는 상태에서 과연 잘되어 가고 있는 것일지 걱정이 앞선다. 분명 관계당국과 관련기관과 기업들이 사명감을 갖고 열심히 하고 있겠지만, 명색이 국가적 프로젝트인데 응원하는 목소리가 없으니 힘에 부칠 것도 같다. 안타까운 일이다.
제 4차 산업혁명이 도래하고 있다면, 모두가 비상한 관심을 갖고 있어야 마땅하다. 박근혜 정부는 전면에 나서 '제조업 3.0'을 추동하되 국민의 관심과 지지를 구하는 일에도 적극 나서주길 바란다. 책을 읽어보니, 저자들 말마따나 머뭇대다간 삼성전자도, 현대자동차도 도태될 판이다. <이코노믹리뷰 주필 겸 숙명여대 글로벌서비스학부 객원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