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건설이 새 주인을 맞았다.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 산자락에 펼쳐진 대단지의 현대기술개발원 곳곳마다 하나 둘 피어나는 목련꽃 나무에 봄의 기운이 완연하다.

정몽구 회장이 이끄는 현대자동차 그룹에서 새 출발을 하는 현대건설에도 활력이 감돈다. 국내 재계 서열 2위 그룹의 탄탄한 자본력을 배경으로 현대건설의 기술 투자가 빛을 발할 전망이다.

연구동과 실험동으로 구성된 R&D 센터 내 연구원들의 달뜬 발걸음을 따라 그간 심혈을 기울여온 연구 성과를 들여다봤다. 지난해 인수 협상 과정에서 현대건설에 향후 10조 원을 투자하겠다고 밝힌 현대차그룹의 계획이 현실화되면 산업계에 눈부신 변화를 주도할 ‘꿈의 기술’들이다. <편집자 주>

경기도 용인시 기흥구 마북동에 위치한 현대건설 R&D센터(사진=이코노믹리뷰 안영준 기자).


끝없는 실험 그린 건자재 ‘마이스터’

현대건설이 보유한 기술과 R&D 센터 내 실험장치들에서는 장인정신이 엿보인다. 오랜 시간 고민하고 시행착오를 거듭해 최적의 기술을 찾아내는 노력이 눈에 띄는 까닭에서다. 곳곳에 널려있는 깨지고 부서진 건자재들이 수차례 시행한 실험의 흔적이다.

연구 분야는 단순 건설을 뛰어 넘는다. 건설 기술이 활용되고 응용될 수 있는 모든 영역에 발을 들였다. UAE(아랍에미리트) 원전 시공 지분의 55%를 따내고 남극 ‘장보고 기지(제2 과학기지)’를 건설할 시공사로 선정되는 데에는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실험동에는 해외에서 시공 중이거나 혹은 시공할 예정인 건설 설비들을 규모만 축소해 현실과 똑같은 형태로 구현한 실험 장치들이 가득하다. 실제로 건설할 장치 주변의 빌딩을 비롯해 산, 숲 등 자연 환경까지 그대로 재현해 현장감이 생생하다. 해외에서 건축물이나 플랜트를 시공할 때 한 치의 오차도 없게 하려면 보다 적확한 실험이 필요하다는 것.

대표적인 실험장치 중 하나는 남극의 장보고기지에 시공할 장비를 350분의 1 규모로 구현해 놓은 실험동에 위치해 있다. 바람개비가 돌아가며 실제 상황과 같이 다양한 세기의 바람을 생성해 내 외압을 측정한다.

영하 40도를 오르내리는 남극의 혹한 속에 과학기지를 건설하려면 미리 한국에서 개발한 설비들을 현장에서 조립하는 모듈화 작업이 필요하다. 이를 위해 사전에 남극과 같은 환경 조건에 맞춘 철저한 연구가 요구되는 것.

교량 부문에서도 타 업체에 뒤지지 않는 현대건설은 실제 교량의 형태를 그대로 복원해 다양한 실험 장치로 외부 압력을 주며 안전성을 수시로 점검하기도 한다. 자재와 시공 방법에서 나타날 수 있는 결함을 끊임없이 보완해 내기 위해서다.

최근 일본발 지진 여파로 건축물의 안전성에 관한 우려가 높아지는데 따라 지진이나 강풍 등 외압을 측정하는 실험의 비중도 커지고 있다. 실내 실험동의 ‘쉐이킹 테이블’은 강한 압력에도 지반만 흔들리고 건축물은 움직이지 않는 기술을 구현해 놓은 장치다.

최근 연구소에 방문한 외국인들에게 장치 위에 깨지기 쉬운 청자를 올려놓고 지반을 흔드는 실험을 펼쳐 보여 놀라움을 산 바 있다. 청자가 움직이지 않고 꼿꼿이 제자리를 지키고 있었기 때문이다.

현대건설이 자체적으로 갖춘 기술력만 해도 진도 9의 강진을 견뎌낼 수 있는 구조물 설비는 어렵지 않다. 다만 실제로 국내에 신축되는 건축물 전체에 내진 설계를 하기에는 경제성이 떨어지기에 현실화가 어렵다는 단점이 있다.

연구동 밖 야외 뜰에는 아스팔트 기술을 시험해 놓은 공간이 눈에 띈다. 5년째 장기 연구 중인 이 아스팔트 기술은 현대건설이 라이선스를 취득한 3개 신기술 중 하나다. 기술명은 ‘전기로 슬래그 골재를 활용한 상온 아스팔트 시공기술’이다.

이 기술은 아스팔트를 가열하지 않고 상온에서 시공이 가능하도록 해 가열시 발생하는 CO2의 양을 획기적으로 줄였다. 제강산업에서 발생하는 슬래그로 만든 골재를 도로포장 시공에 사용함으로써 부족한 천연골재를 대체할 수 있는 자연친화적인 공법이기도 하다. 슬래그를 부숴 가루로 만들면 시멘트가 될 수 있다.

구조 실험동에서 실험장치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이석홍 R&D센터 부서장(사진=이코노믹리뷰 안영준 기자)


도로·항만·폐수처리 기술 국내최고

일반적으로 도로를 유지·보수하기 위해서는 도로를 5cm 절삭한 후 그 위에 아스팔트를 덧씌우는 공법이 사용된다. 그러나 이 기술은 도로의 절삭 없이 오직 1cm 두께의 아스팔트를 덧씌우는 기술을 사용하는 것이 특장점이다. 따라서 폐아스팔트 콘크리트의 발생을 대폭 낮춘 점 또한 친환경적이다.

이석홍 R&D센터 부서장은 “이 공법을 서울시 도로포장에 적용할 경우 6만8000t의 CO2 발생을 절감할 수 있다”며 “탄소 거래 가격으로 환산 시 16억여 원에 해당하는 금액이 절약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이러한 친환경 도로포장 개발 기술의 우수성 및 창의성을 인정받아 지난 2009년 현대건설은 국토해양부로부터 건설혁신 창의우수사례로 대상을 기술 개발자인 이석홍 부서장이 대통령표창을 수상했다.

다양한 시멘트 합성 자재가 널린 실내 연구동의 항온항습실에서는 시멘트 배합 실험이 한창이었다. 항온항습실은 온도와 습도를 자유자재로 변경함으로써 시멘트 재료 배합에 최적의 조건을 찾아낸다. 시멘트에 섞이는 재료의 종류와 비율을 정밀하게 조절해야 함은 당연한 요건이다. 이곳에서 현대건설의 야심작인 콘크리트의 원재료가 만들어진다.

대형 항만 건설공사에 사용되는 케이슨(상자 형태의 콘크리트 구조물) 진수공법도 3대 신기술 중 하나다. 그간 케이슨 진수 공법은 케이슨 자체 중량과 해상기중기의 용량 제한으로 인해 공사에 어려움이 많았다.

그러나 현대건설이 창의적인 케이슨 진수 공법을 개발함으로써 기존 공법의 시공상 제약을 해결해 공사비와 공사 기간을 절감할 수 있도록 했다.

이 기술은 케이슨의 자중에 의해 자연적으로 미끄러져 진수되도록 하는 공법이다. 이석홍 부서장은 “이 기술을 적용한 콘크리트 케이슨 제작 원가는 일본의 주요 경쟁사가 보유한 재래공법과 비교해 65% 수준”이라고 밝혔다.

또 콘크리트와 철근 등 재료비를 제외한 순공사비만 비교하면 약 40% 수준까지 공사비를 절감할 수 있는 우수한 기술로 일본, 중국 등 8개국에 국제특허를 등록했다. 국내에서는 지난 2005년 3월에 건설신기술 444호로 지정받았다.

덧붙여 현대건설은 현재 환경부로부터 가축 분뇨, 음식물 폐기물 등 고농도의 폐수를 정화 처리하는 기술을 환경신기술 291호로 지정받아 유지하고 있다. 이 기술은 오염물질을 무조건 정화 처리하는 기존 폐수처리의 개념에서 벗어났다.

폐수 내에서도 유용하게 자원으로 활용할 수 있는 성분을 추출해 환경 오염을 줄이고 자원 이용의 효율성을 높인 것. 고농도 복합액체비료와 바이오가스를 생성해 친환경 에너지 분야로의 진출로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R&D센터는 UAE 원전 콘크리트 및 초고층 콘크리트 관련 기술의 실효성을 높이는데 주력하고 있다. 이를 위해 UAE에서 운반해 온 콘크리트 골재를 국내에서 연구하고 있다. 발열성을 낮추고 염분에 대한 저항성을 높이는 등의 목표를 실현하기 위한 실험이 거듭 진행되는 까닭이다.

남극 ‘장보고 기지’를 재현한 풍동 실험실(사진=이코노믹리뷰 안영준 기자)


배합작업을 벌이고 있는 항온학습실(사진=이코노믹리뷰 안영준 기자)


자동차·철강과의 시너지 역량 집중

지난 1일 현대건설 인수 절차를 마무리한 정몽구 현대차그룹 회장은 건설·철강·자동차 부문을 3대 핵심 사업으로 육성하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현대건설의 기술적 역량이 넓어질 것으로 보인다. 이로써 과거에는 경쟁사였던 계열사들이 이제는 협력업체가 됐다.

현대건설은 국내 건설사 중 원전 기술 면에서 단연 뛰어난 수주 실적을 보유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일본발 방사능 유출 사고 등으로 원전에 대한 일반인들의 반발이 확산되자 장밋빛 미래만을 예측할 수는 없게 됐다. 이 부서장도 “새로운 에너지 생성 기술에 대한 대안적 고민이 필요할 때”라고 조심스럽게 진단했다.

계열사 중 현대중공업은 현재 건설 부문과 같은 기술개발원 부지에 풍력·해양 플랜트 연구소를 짓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공업 부문은 풍력과 해양 플랜트 사업에 건설 부문의 손길이 필요하며, 건설 부문 또한 대체 에너지 개발 기술력이 필요하기에 상생은 필수다.

이 부서장에 따르면 건설 부문 임원진들이 중공업 부문 임원진들과 공동 사업 추진을 위해 MOU를 체결한 상태라는 것.

앞서 소개한 현대건설의 3대 신기술들을 상용화하기 위해서도 또 다른 계열사들과의 합작이 필요하다. 3개 신기술은 3대 핵심 계열사들이 뭉쳤을 때 윈윈 효과를 창출할 수 있다.

슬래그를 건설재료로 활용하는 기술에는 현대제철과의 공동 작업이 필요하다. 국내 철강업계의 슬래그 발생량은 연각 약 1700만t에 이르며 그 양은 매년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현대제철 또한 당진제철소에서 발생하는 슬래그가 그간 골칫덩어리였다. 이에 현대제철은 슬래그를 재처리하여 고부가가치화 하기위한 연구를 진행 중이며, 건설 R&D센터는 활용 기술 개발을 계획하고 있다.

또 바이오가스 차량연료화 기술은 현대차그룹의 친환경차량 보급에도 기여 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바이오가스의 생산, 유통, 충전과 관련된 인프라 구축은 현대건설이 맡고 바이오가스 하이브리드 차량 개발은 현대자동차가 맡음으로써 양사는 새로운 수익원을 창출할 수 있다.

현대차그룹 측에서는 그동안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으로 손꼽히던 자동차 사업의 이미지도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바이오가스는 값싸게 수소를 생산할 수 있는 잠재력이 있어 수소연료전지 차량에 강점을 보이는 현대차그룹에게 이중 효과를 유도한다. 미래에는 자동차와 주거가 결합된 스마트시티, 전기 자동차 충전소 개발 등에도 양사의 기술이 시너지 효과를 낼 전망이다.

백가혜 기자 lita@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