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촌 거리. 출처=이코노믹리뷰 노연주 기자

“조용하던 서촌 동네가 불과 1~2년 만에 이렇게 바뀔지 상상도 못 했죠. 주변 임대료 시세도 크게 올랐다고 하더라고요.”

익명을 요구한 빈티지 공방(工房) 사장이 말했다. 5년 전 조용하고 아늑한 분위기에 이끌려 이곳에 정착한 그는 최근 1년 새 유동인구가 늘어나 상권이 빠르게 확장됐다고 말했다.

기자가 서촌을 찾은 날에도 새로운 상가가 들어설 건물 보수공사가 한창 진행 중이었고, 작고 허름한 세탁소 옆에는 파스텔톤 외관을 갖춘 화려한 커피숍이 나란히 서 있어, 신구(新舊)사이의 묘한 분위기가 느껴지기도 했다. 인근 공인중개사들은 “영세상인이 운영하는 구멍가게들은 임대료가 높아져서 최근 하나둘씩 이곳을 빠져나갔다”며 달라진 상권 분위기를 설명했다.

더욱이 삼청동의 높은 임대료에 못 이겨 서촌으로 넘어온 주민과 문화·예술인들도 꽤 있었다. 그러나 서촌 식당 주인은 “여기도 요즘 집값이 올라서, 코딱지만 한 액세서리 가게도 월 70만원은 내야 한다. 옆집 상가업종이 최근 2~3번 바뀌었다”며 달아오른 서촌 분위기를 우려하기도 했다.

이처럼 상권의 성장에 따라 새로 유입된 자본에 기존 상인과 주민이 밀려나는 것을 ‘젠트리피케이션’이라 부른다. 동네가 뜨니 기존 주민이 떠나야 하는 역설적인 상황은 북촌-삼청동-서촌으로 이어지는 상권 외에도 홍대, 이태원, 신사동 가로수길, 성수동에서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서촌’은 이미 포화상태에 이른 북촌과 삼청동과는 달리 이제 막 떠오르기 시작한 ‘핫플레이스’로 분류된다. 삼청동처럼 젠트리피케이션의 조짐이 곳곳에서 보이지만, 아직 심각한 수준은 아니라는 것이다. 해방촌과 마포구 상수동, 광진구 성수동 지역도 다른 배경이지만 비슷한 양상이다.

한때 서울에서 가장 낙후한 곳 가운데 하나로 인식됐던 해방촌은 미군 등 외국인들이 들어와 한국인과 함께 사는 독특한 주거공간이었다. 이따금씩 구멍가게나 세탁소, 치킨집이 있었는데, 최근 1~2년 사이 이국적인 레스토랑, 카페, 펍 등으로 교체되는 모양새다. 게다가 일반 다세대 주택 건물 1층마저도 형형색색의 카페와 음식점으로 바뀌는 추세.

2달 전 오픈한 커피 전문점 ‘토스트 프랑세’의 구단열 사장은 “이전보다 해방촌의 임대료가 올랐지만, 이태원과 경리단길 수준은 아니어서 이곳을 택했다”고 말했다. 한 달 전에 입점한 커피숍 ‘시에떼’ 사정도 마찬가지다. “다른 커피점에서 일하다가 독립적인 브랜드를 만들어 왔다. 예전보다 임대가 비싸졌지만 더 오르기 전에 들어왔다”고 귀띔했다.

▲ 해방촌 치킨집이 있던 1층에는 이태리 음식점이 들어섰다. 출처=노연주 기자

이태리 음식점 관계자는 “이곳이 원래 치킨집 자리였는데, 그분이 어디로 갔는지는 저도 잘 모른다”고 했다. 해방촌 인근 공인중개사는 “기존 업주들이 임대료 때문에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내후년에는 주한 미군기지 이전 부지에 용산공원이 조성돼, 근방 상권의 임대료가 급상승했다”고 설명했다.

상수동 역시 홍대-상수-합정동으로 이어지는 상권 확장의 중심지다. 거대 상권 홍대 앞에 있던 다수의 디자인 작업실, 카페와 펍 등이 상수동으로 흩어졌다. 빈티지숍 스몰원더 관계자는 “상수동은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조용한 주거지역이었다. 급속도로 상가가 들어서니 도로변이 아닌 20평 미만 상가도 월 380만원 수준”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핫플레이스인 성수동 분위기는 이곳과 다르다. 서울숲역 4번 출구에 위치한 골목에는 마을 공동체, 사회적 기업, 비영리 단체 등 20여 곳이 들어섰다. 제3세계 여성을 위한 공정무역회사 ‘펜투카’을 비롯해 디웰, 일리일리, 아시아공정무역네트워크 등 젊은 창업가와 문화인들이 모여 있다. 인근 공인중개사는 “상가는 보통 전세 3000만원에 월 300만원 선으로 거래되고 있다. 비싸져서 3.3㎡당 10~20만원 수준”이라고 말했다. 이어 “상수동은 3년 전 서울숲역이 개통되면서 강남권과 가까워졌고, 매스컴을 여러 번 타면서 주목받기 시작했다”고 덧붙였다.

 

내몰린 난민, 뜨는 동네마다 옮겨 다녀

▲ 새로운 주인을 맞을 채비를 서두르는 상수역 골목길 풍경.  출처=노연주 기자

골목길에서 작은 상가를 꾸렸던 초창기 주민들은 치솟는 임대료를 감당하지 못하고 결국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들이 새롭게 정착한 곳들이 다시 발전할 조짐을 보이면서 또 다른 곳을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청년디자이너 몇 명이 성수동에 모여 만든 ‘디자인 협동조합’은 10% 가까이 오른 임대료 때문에 6월 말 상수동으로 거처를 옮긴다. 홍대에서 상수역으로 옮긴 막걸리 ‘무명집’도 이와 비슷하다. 가로수길에서 한 사회적 기업 역시 높아진 임대료 때문에 성수동으로 최근 이전했다. 공정무역회사 ‘펜투카’도 인사동에서 성수동으로 사무실을 옮겼다.

성수동에서 공방을 차린 A씨는 예술거리가 된 문래동으로 이전할 생각이다. 거처를 옮겨간 곳마저 예술인과 소상공인이 모여, 또 주목받게 되면 다른 곳을 떠나야 하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지만 당장 다른 대안이 없기 때문이다.

 

‘개성 사라진’ 동네 상권의 최후는

기자가 4구역(상수동, 성수동, 해방촌, 서촌)을 돌아다니며 공인중개사들에게 들은 이야기는 하나다. “골목길 상권이 커지고 있지만, 비싼 임대료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 매출이 높지 않다. 어떤 가게는 시설투자비라도 받으려고 하지만 그것마저 안 되는 경우도 있다.” 뜨는 동네의 화려하고도 단편적인 모습을 경계하는 말이다.

해방촌 ‘토스트 프랑세’ 구 사장도 “이태원에 대기업 프랜차이즈가 들어오고 상업화가 심화되면서 동네가 변질되고 있다”며 개성이 사라지는 동네의 모습을 우려했다. 실제로 이태원 특유의 이국적인 분위기를 내던 크고 작은 음식점들이 점차 사라졌고, 그 자리엔 화려한 프랜차이즈 숍들이 채워졌다.

성수동에 있는 ‘일리일리’ 관계자는 동네가 무차별적으로 개발되기보다 ‘스토리’를 가지고 발전했으면 좋겠다고 했다. 그는 기존 골목의 고유함과 스토리가 사라지고 새로운 환경과 분위기가 마을 전체에 점점 드리워지는 것을 안타까워했다. 성수동 ‘희락공방’ 사장은 동네에 사람이 북적이는 것이 반갑지만, 프랜차이즈점이 들어올까 봐 노심초사하고 있다. “동네 분위기가 바뀌면서 괜히 괴리감이 느껴지고 영업에 타격을 입을까 봐 두렵죠.”라고 말했다.

이렇게 ‘뜨는 동네’는 대형 프랜차이즈점 등이 들어서면서 어딜 가도 비슷한 골목길이 된다. 상인들은 이를 두고 “개성 있는 동네 거리가 ‘영혼’을 잃어가는 시기를 맞이했다”고 말한다.

반면 최근 4구역들에 입점한 커피숍 주인들은 “건물주 입장에서는 임대료가 올라 이득이고, 임차인 입장에서는 상권이 뜨면 눈에 보이지는 않지만 권리금을 받을 수 있다. 쌍방 손해는 없다”는 입장을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