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리쬐는 햇볕에 반팔을 입고 선글라스까지 쓴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는 시기다. 동시에 제과업체가 ‘해결할 수 없는 문제’로 인해 울상을 짓고 있는 때이기도 하다. 이르면 5월부터 라면, 과자 등 식품 내 벌레 혼입 신고가 다수 접수되는데 그 중 과반수를 차지하는 주인공 ‘화랑곡나방 유충’ 때문이다. 식품업계는 매년 화랑곡나방으로 인해 많은 피해를 입어왔지만 뾰족한 해결 방안이 없어 매년 골머리를 앓는 중이다.
여름철 골칫덩어리, 화랑곡나방
곡류나 과일 등을 먹이로 하는 화랑곡나방은 강한 이빨과 턱으로 봉지나 플라스틱을 뚫고 들어가 음식물을 먹는 해충이다. 먹잇감 근처에 무려 200개의 알을 낳는다. 알이 유충으로 부화하는 시간은 단 3일. 멀쩡한 제품이 이물혼입 제품으로 변하는 데는 긴 시간이 필요하지 않다.
화랑곡나방이라는 이름을 처음 듣는 사람들이 많겠지만 사진을 보면 매우 낯익은 벌레임을 알 수 있다. 일명 ‘쌀벌레’라고 불리는 유충이 자라 이 나방이 되기 때문이다. 쌀뿐만 아니라 라면, 과자, 초콜릿 등 식품의 포장재를 자유자재로 뚫으니 식품업계에서 ‘공공의 적’으로 통하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실제로 식품업계에서 화랑곡나방으로 인해 받는 피해는 이만저만이 아니다. 제과업체의 한 브랜드 제품은 2005, 2010, 2011, 2013, 최근인 2015년 초까지 5번이 넘는 화랑곡나방의 공격에 무차별적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 한 종류의 과자만 두고 접수된 소비자들의 불만이 이러하다. 또 다른 업체는 일본 대형마트에 납품하기 위한 라면에서 화랑곡나방과 애벌레가 발견되면서 계약이 파기돼 막대한 손실을 입기도 했다. 올해만 화랑곡나방 유충이 발견돼 언론에 밝혀진 사례만 3번이다.
식품의약안전처(식약처)도 식품에 들어간 이물에 대해 조사한 바 있는데 지난해 접수된 이물의 종류 중 가장 많은 비중이 바로 ‘벌레’다. 약 36.3%에 해당된다. 그 뒤를 잇는 곰팡이(10.4%), 금속(6.7%), 플라스틱(4.9%) 등에 비해 매우 큰 비중이다. 벌레 신고는 대부분 7~11월에 집중적으로 발생한다. 이 시기에는 벌레 접수 신고 중 60.3%가 몰린다.
뾰족한 대안은 없다
화랑곡나방의 피해가 제조사의 잘못이 아니냐고 물을 수 있지만 기업도 답답한 까닭이 있다. 식약처가 해당 벌레의 혼입 원인을 조사했더니 제조단계에서 원인이 발견된 경우는 단 4.1%, 소비·유통 과정(10%)이나 식품 부관 및 취급 과정 중 부주의로 인해 발생하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한 업계 관계자는 “라면, 초콜릿 등 제품은 절단이나 고온 처리·살균 등의 제조 과정을 거치기 때문에 화랑곡나방 유충이 제품에서 산 채로 발견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제조사로서 소비자의 피해를 줄이고 화랑곡나방을 피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꾀하고는 있지만 아직은 뚜렷한 해결책이 없다. 제품에 직접적으로 살충제를 사용할 수도 없고, 강한 번식력과 발달된 후각을 지닌 화랑곡나방의 특성으로 제조부터 소비자에게 닿을 때까지도 틈만 있으면 바로 번식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한 업체 관계자는 “이미 전 세계적으로 화랑곡나방 유충을 ‘저장식품의 페스트’로 이름붙이고 대책 방안을 모색 중이지만 뾰족한 해결 방안을 찾지 못한 상황이다. 제조 과정상의 문제라면 공정으로 해결할 수 있지만, 유통 단계에서 침투하기 때문에 해결이 매우 어렵다”고 하소연했다.
식약처도 뚜렷한 해결책은 없다. 단지 정보공유와 네트워크를 철저히 하며 피해를 최소화하려는 시도를 할 뿐이다. 식약처 식품관리총괄과의 한 관계자는 “식약처에서는 이물 혼입을 방지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매뉴얼을 기업과 소비자에게 각각 배부하고 있으며, ‘이물관리 네트워크’를 통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정보 공유를 하는 등의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2014년 ‘이물관리 네트워크’에 참여한 업체의 경우 제조단계에서 이물 혼입 비율이 비참여업체에 비해 약 8.4% 낮았다는 결과가 나왔다.
하지만 화랑곡나방에 대해서는 근본적인 해결책이 나오지 않는 상황임을 토로했다. 관계자는 “화랑곡나방은 틈이 있으면 언제든지 식품에 들어갈 수 있다”며 “화랑곡나방이 뚫지 못하는 튼튼한 포장재를 사용하면 해결될지도 모르겠으나 포장재의 가격이 제품보다 비싸져 배보다 배꼽이 더 크게 될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또한 “연구는 많이 이루어지고 있지만 현실성이 없어 해결하고 있지 못한 상태”라고 현재 해결책이 없는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식품업계는 무한 연구 중
아직 뚜렷한 해결책은 없지만 식품업계도 가만히 앉아있을 수만은 없었다. 특히 피해를 많이 받는 제과업체들은 무한 연구에 돌입하고 기술을 적용해 피해 비율을 줄이려는 노력 중이다.
오리온은 올해 초 하절기 품질 관리에 본격적으로 나서며 원료-제조-물류 3단계를 잇는 식품안전관리 시스템을 구축했다. 제과업계로는 최초로 지난해 6월부터 전국 47개 영업소 창고에 무선 온습도 모니터링 시스템을 도입했으며 직사광선 차단을 위핸 현장 시설 보완과 적정 온도 유지를 위한 강제 환기 시스템도 도입했다.
이를 통해 제품을 신선하게 보관할 뿐만 아니라 해충 방제 태세를 갖춘 셈이다. 특히 오리온은 유통과정에서 가장 많이 혼입되는 화랑곡나방의 유충 피해를 막기 위해 이를 유인할 수 있는 페로몬 트랩을 설치하며 영업소 위생 관리에 만전을 기하고 있다. 이 페로몬 트랩은 화랑곡나방이 좋아하는 물질을 넣어 해당 트랩으로 유인하는 구조로 이루어져 있다.
롯데제과는 지난 2007년 초부터 3년간 고려대와의 협력을 통해 방충 포장재 개발 연구를 진행했다. 화랑곡나방이 기피하는 향 물질을 찾아 제품 포장재에 도입하는 방법을 찾는 것이다. 결국 롯데제과는 2011년 10월 해당 물질들을 포장재에 적용할 수 있는 방안에 대한 특허를 등록했다. 이 기술은 롯데제과의 아몬드 빼빼로 등 일부 10여종의 초콜릿 제품 패키지 중에서도 겉의 종이 패키지에 사용되고 있으며 내부 실험 결과 화랑곡나방 퇴치에 약 60%의 효과를 보인다. 롯데제과는 해당 기술의 적용을 제품의 케이스에서 박스로 적용 범위를 늘리는 등 점차 확대할 예정이다.
해태제과 또한 화랑곡나방이 기피하는 천연물질을 개발 중에 있다. 일부 물질은 패키지에 적용하기도 하는 등 최선을 노력을 다하고 있다고 설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