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절 논란에 휩싸인 신경숙 작가가 출판사를 통해 문제가 된 일본 작가의 해당 작품을 읽어본 일이 없다고 밝혔다.

16일 온라인매체 '허핑턴포스트'에 '우상이 어둠, 문학의 타락'이란 제목으로 소설가이자 시인인 이응준(45)씨가 제기한 표절 의혹에 대한 대답이다. 이 작가는 기고문에서 "'창작과 비평'이 출간한 신 작가의 '오래전 집을 떠날 때' 가운데 수록된 단편 '전설'의 한 대목(240~241쪽)이 미시마 유키오 작품의 구절을 그대로 따온 표절"이라고 주장했다.

신 작가는 17일 메일로 창비 측에 "오래 전 ‘금각사’ 외엔 읽어본 적 없는 작가로 해당 작품(‘우국’)은 알지 못한다. 이런 소란을 겪게 해 내 독자분들께 미안하고 마음이 아프다. 풍파를 함께 해왔듯이 나를 믿어주시길 바랄 뿐이고,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이런 일은 작가에겐 상처만 남는 일이라 대응하지 않겠다"고 전한 것으로 알려졌다.

같은날 신경숙 작가의 작품집 '감자 먹는 사람들'을 출판한 창비 측은 '논란이 된 부분을 표절로 볼 수 없다'는 공식입장을 내놨다.

미사마 유키오의 '우국'과 신경숙의 '전설'은 내용이 전혀 다를 뿐 아니라 유사한 점이라곤 신혼부부가 등장한다는 점 정도라는 것이다. 또한 "이응준 작가가 문제 삼은 신혼부부가 성애에 눈뜨는 장면묘사는 일상적인 소재인데다 작품 전체를 좌우할 독창적 묘사도 아니다"라며 "작품 전체에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다. 이를 근거로 표절 운운하는 것은 있다"고 밝혔다.

다음은 출판사 창비 문학출판부의 공식 입장 전문이다.

언론과 독자분들께 '전설'과 '우국' 두 작품을 다 읽고 판단해주시기를 당부드린다. 두 작품의 이해를 돕기 위해 짤막하게 정리하면 아래와 같다.

미시마 유키오는 일본 내 극우 성향의 민족주의자고, 1970년 쿠데타를 주장하는 연설을 한 뒤 45세의 나이로 할복자살한 작가이다. 1960년에 발표한 '우국(憂國)'은 작가의 말년의 삶을 예견한 단편이라고 봐도 무관한데, 작품의 주인공은 천황을 절대적으로 신봉하고 남성주의에 빠진 극우민족주의자이다.

시대적 배경은 1936년 천황 직접 통치를 주장하며 쿠데타(2월 26일)를 일으킨 세력이 3일 천하로 실패한 날이다. 쿠데타의 대의에는 동조했으나 신혼인 점을 고려한 친구들이 배제하는 바람에 거사에 참여하지 못한 주인공(신지 중위)이 할복을 결심하고, ‘천황 군대 만세’라는 유서를 남긴 뒤 자살하는 세세한 과정(창자가 쏟아져나온 뒤에도 죽지 않자 스스로 단도로 목을 찔러 죽어가는 과정의 묘사)을 아내(레이코)로 하여금 눈앞에서 지켜보게 한 다음, 레이코 역시 그의 신념이 당연하다는 듯 뒤따라 단도로 목을 찔러 자결한다는 결말로 끝이 난다. 성애묘사가 두드러지는 남성주의적인 판타지로 볼 수도 있는 단편이다.

신경숙 작가의 소설집 '감자 먹는 사람들'에 수록된 단편 '전설'은 한국전쟁을 소재로 한 뛰어난 작품으로, 전쟁을 체험하지 못한 세대의 작가가 쓴 거라곤 믿기지 않을 만큼 직핍한 현장감과 묘사가 뛰어나고 인간의 근원적인 사랑과 전쟁 중에서의 인간 존재의 의미, 인연과 관계의 유전 등을 솜씨있게 다룬다.

사실 두 작품의 유사성을 비교하기가 아주 어렵다. 유사한 점이라곤 신혼부부가 등장한다는 정도이다. 또한 선남선녀의 결혼과 신혼 때 벌어질 수 있는, 성애에 눈뜨는 장면 묘사는 일상적인 소재인데다가 작품 전체를 좌우할 독창적인 묘사도 아니다.(문장 자체나 앞뒤 맥락을 고려해 굳이 따진다면 오히려 신경숙 작가의 음악과 결부된 묘사가 더 비교 우위에 있다고 평가한다.) 또한 인용 장면들은 두 작품 공히 전체에 차지하는 비중이 크지 않다. 따라서 해당 장면의 몇몇 문장에서 유사성이 있더라도 이를 근거로 표절 운운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표절시비에서 다투게 되는 ‘포괄적 비문헌적 유사성’이나 ‘부분적 문헌적 유사성’을 가지고 따지더라고 표절로 판단할 근거가 약하다는 것이다.

또 하나 개정판 제목에 대한 언급이 있어 답을 드린다. 이응준 씨는 개정판 제목을 바꾼 것을 가지고 무슨 문제가 있는 듯한 논조로 이야기하는데 유감스러운 일이다. 구간 개정시에는 작가뿐 아니라 출판사 내외부의 의견을 수렴해 더 어울리거나 그 시기에 맞는 제목으로 바꾸기도 하는데 이를 표절시비와 연관지어 문제 삼는 건 도를 넘어선 억측임을 밝힌다.(2015년 6월 17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