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CC의 삼성물산 자사주 매입 소식이 전해지면서 삼성과 엘리엇의 공방은 또 다른 국면을 맞이했다. 하지만 여전히 삼성 측은 한 장의 카드, 엘리엇은 두 장의 카드를 들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성사되더라도 엘리엇은 '통합삼성물산'의 주요주주로 남게 되기 때문이다.

지난 10일 KCC는 삼성물산 자사주 5.79%(899만557주)를 확보할 계획이라고 공시했다. KCC는 지난 8일 삼성물산 지분 0.2%를 매입했으며 이번 추가 지분 확보할 경우 총 5.99%의 삼성물산 지분을 보유하게 된다. 자사주는 의결권이 없지만 KCC의 삼성물산 자사주 매입은 이를 되살아나게 만든다는 점에서 중요한 사안이다.

삼성물산은 이날 공시를 통해 “회사 성장성 확보를 위한 합병 가결 추진 및 재무구조 개선을 위한 것”이라며 자사주 처분의 목적을 밝혔다. 매각 가격은 이날 종가인 7만5000원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KCC 측이 현재의 삼성물산 가치를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제일모직과 삼성물산의 합병비율은 1대 0.35다. 삼성물산 주식 1주당 제일모직 주식 0.35주를 교부하는 것으로 쉽게 말해 삼성물산 주식 약 3주를 보유하고 있으면 제일모직 주식 1주를 받을 수 있다는 뜻이다. 따라서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이 합병을 함에 있어 KCC가 손해를 보지 않기 위해서는 제일모직의 주가가 7만5000원의 3배인 22만5000원 이상을 형성하고 있어야 한다. 하지만 이날 제일모직의 주가는 17만8500원이다.

더 정확한 표현을 하자면 두 기업의 합병이 계획대로 진행된다는 가정 하에 취해야 하는 투자전략은 ‘제일모직 매수·삼성물산 매도’라는 것이다. 이는 양방향 차익을 노릴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KCC는 달랐다. 특히 KCC가 삼성물산의 2대주주(10.19%)라는 점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다. 삼성물산 자사주 5.79%(899만557주)를 주당 7만5000원에 취득하는데 필요한 자금은 6743억원이다. 한편,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 시 KCC가 취득할 삼성물산 자사주 899만557주는 제일모직 주식 314만6695주로 교부된다. 지난 10일 제일모직의 종가인 17만8500원의 가격으로 KCC가 제일모직의 주식 314만6695주를 직접 산다면 필요한 금액은 5617억원이다. 즉, KCC가 삼성물산의 주식을 매입하는 것은 제일모직의 주식을 사는 것보다 약 1000억원의 자금이 더 소요돼 손해를 보는 셈이다. 그만큼 KCC 또한 삼성물산의 ‘현재가치’에 대해 집중하는 것이 아닌 삼성 측의 말처럼 ‘합병 가결’에 그 목적을 두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두 장의 카드를 든 엘리엇 VS 한 장의 카드를 든 삼성

제일모직과 삼성물산 합병에 관심을 두고 있는 주체들이 가장 궁금해 하는 부분은 엘리엇 매니지먼트(이하 엘리엇)가 예상하는 삼성물산의 가치다. 이에 대해 엘리엇 측은 현재 ‘노코멘트’ 상태다.

금융투자업계는 엘리엇이 지난 3일 장내매수(4일 공시)를 통해 삼성물산 주식 2.17%를 추가 매수하기 전 보유하고 있던 4.95% 지분을 지난 2~3월에 매수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당시는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이 언제, 어떻게 진행될지 알 수 없었던 상황이었다. 게다가 보유 지분이 5%를 넘는 주체는 냉각기간(Cooling-off period)이 적용돼 공시이후 5거래일(6월 11일까지) 동안 추가 지분 매입이 불가능하다. 6월 11일은 합병주주총회를 위한 주주확정 시한일이다.

윤태호 한국투자증권 연구원은 “추가 지분 매입이 불가능함을 알기에 당일 확보 가능한 최대한의 지분을 매입하는 치밀함을 보였다”며 “관련 법의 세부사항을 사전에 파악하지 않고는 불가능했던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렇다면 엘리엇은 어떤 기준으로 어떤 관점에서 삼성물산 지분을 매수하게 된 것일까. 우선 엘리엇 측이 주장하는 ‘불공정한 합병 비율’ 즉, 삼성물산의 저평가에 대해 집중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여기서 또 하나의 기업이 등장한다. 바로 삼성전자다. 삼성물산이 삼성전자의 지분 4.06%를 보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 삼성전자 주주현황 [출처:한국투자증권]

지난 2~3월 삼성물산의 주가는 평균 5만원 후반대를 맴돌고 있었으며 같은 기간 제일모직은 15만원대, 삼성전자는 140만원대를 기록하고 있었다. 이를 시가총액으로 환산하면 삼성물산 9조3000억원, 제일모직 20조2500억원, 삼성전자는 206조2200억원이다. 당시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전자의 지분가치는 8조4000억 규모로 이는 삼성물산 시가총액과 불과 1조원 차이다.

여기서 다른 가정을 해보자. 만약 제일모직이 삼성물산과 합병이 아닌 삼성그룹이 가진 삼성물산의 지분 13.80%(자사주 제외)를 사들인다고 가정할 경우 여기에 소요되는 비용은 경영프리미엄을 포함해 약 2조4000억원(9조3000억원*13.80%+경영프리미엄 평균 80%)이다.

하지만 합병의 통해 제일모직은 삼성물산이 보유한 삼성전자의 지분(8조4000억원)은 그대로 가져오면서 신주발행을 통해 삼성전자 지분가치와 시가총액의 1조원 차액을 지불하는 효과를 낸다. 이는 경영프리미엄을 포함한 가격인 2조4000억원과 비교해 1조4000억원을 절감하는 것이다.

▲ 삼성물산 주주현황 [출처:한국투자증권]

한 증권사 연구원은 “삼성그룹의 지배구조를 감안할 경우 삼성물산의 가치는 시장에 알려진 것보다 더 낮은 것으로 보인다”며 “엘리엇도 이 점을 간파한 것으로 추정된다”고 전했다. 그는 이어 “엘리엇은 분명 다각도로 검토하고 삼성물산을 공략했을 것”으로 추측했다.

삼성 측이 3세 경영체제에 힘을 싣기 위해 합병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는 점 그리고 그 중심에 삼성전자가 있었다는 것은 엘리엇이 삼성물산을 공략할 수 있었던 근간이라는 것이다. 그만큼 엘리엇의 전략은 단순하지 않으며 장단기를 아우르는 전략을 준비했을 것이란 예상이다.

금융투자업계는 현재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불발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있다. 다만, 합병이 불발될 경우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주가는 급락할 가능성이 높을 것으로 예상된다. 엘리엇의 운용자산은 260억 달러(약 29조원)에 달해 추가 자금조달은 어렵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따라서 합병 불발에 이은 양사의 주가급락은 엘리엇의 추가 지분매입 등으로 삼성그룹 측에 또 다른 위협으로 작용할 가능성이 있다. 설령 합병이 성사돼 ‘통합삼성물산’이 승승장구하거나 혹은 가격부담으로 주가가 하락해도 엘리엇은 ‘차익실현’, 주요주주로서의 간섭 등 다양한 전략을 취할 수 있다.

이 연구원은 “주가 방향성을 놓고 볼 때, 한 장의 카드를 든 삼성과 두 장의 카드를 든 엘리엇의 싸움”이라며 “KCC의 삼성물산 자사주 매입이 양사의 사업상 시너지효과에는 긍정적일 수 있지만 엘리엇의 위협을 피하기에는 충분치 않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