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투자 전문가가 말하는 기술적 분석의 오류


“상승장악형 봉이 나왔지만
주가가 하락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흑오병 출현에도 상승하는 사례도 등장합니다.
봉의 모양이나 색깔, 추세선 등을 투자의 신호로 삼는 것은
말 그대로 요행을 바라는 투자행위입니다”
-문성원 헬릭스에셋 대표

“시장에 불균형이 발생하는 ‘찰나의 순간’을 포착해
매매를 하는 프로그램도 만들었습니다.
바로 ‘서모클라인(Thermocline)’이라는 프로그램입니다.”
-김형식 헬릭스에셋 대표

“선친의 땀과 눈물이 배어 있는 회사입니다. 이번 한번만 물러나주시기 바랍니다.” 한신기계공업의 최영민 사장은 작년 하반기 ‘청천벽력’같은 소리를 들었다. 기업사냥꾼들의 세계를 다룬 영화 〈월스트리트〉에나 등장하는 줄 알았던 ‘적대적 인수합병’의 칼끝이 그를 겨냥하고 있었다. 최 사장의 지분율은 7%에 불과했다.

‘바람 앞의 등불’ 격이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탐욕스러운 기업사냥꾼 ‘게코’는 기업인들의 공적이었다. 하지만 약속장소에 나온 20대 후반의 젊은이 두 명은 솜털이 뽀송뽀송했다. 두 사람은 회사 경영의 허점을 예리하게 파고들었다.

투자에 나섰다 실패한 전력도 꿰뚫고 있었다. 유휴자산을 제대로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 비판의 골자였다. 적대적 인수합병 추진의 당사자들이 바로 문성원, 김형식 헬릭스에셋(Helixasset) 대표이사다. “비즈니스 모델이 단순명료하고, 대주주 지분이 적어야 한다는 인수합병의 공식에 딱 맞아떨어지는 회사였어요.”

경기고와 서울대를 졸업한 두 사람의 올해 나이는 불과 30세. 지난 19일 역삼동에 있는 이 회사 사무실에서 만난 두 사람은 세간을 떠들썩하게 했던 ‘적대적 인수합병(M&A)’ 시도의 전말을 담담하게 털어놓았다. 적대적 인수합병 건은 다행히 양사의 ‘해피엔딩’으로 끝났다.

“이번 기회에 알짜 회사를 인수해 젊은 나이에 기업 경영의 일선에 나서보지 그랬냐”는 질문에 ‘비전(vision)’과 다른 길을 걸을 수 없다는 문 대표의 답변이 돌아온다. 적대적 인수합병을 시도했다 상대방의 탄원을 받아들여 ‘상생(相生)’의 길을 찾는 일은 인수합병시장에서 드문 사례이다.

‘적대적 인수합병건’은 두 사람의 투자전략과 지향성을 가늠하게 한다. 잠재력을 충분히 발휘하지 못하는 저평가 기업을 발굴해 그 가치를 높여 수익도 올리고 기업 생태계의 경쟁력도 강화하자는 취지다. ‘임도 보고 뽕도 따는 격이다’. 최 사장은 유휴자산 운용과 관련해 두 사람의 조언을 받기로 했다.

문 대표가 무역업을 하는 아버지에게 빌린 이 회사 자본금은 현재 50억원으로 불어났다. 청운(靑雲)의 꿈을 안고 회사를 창립한 2년 전에 비해 20억원이 늘어난 수치이다.

문 대표는 현금자산 비중을 50% 정도로 유지하면서도 ‘쏠쏠한’ 수익을 냈다고 귀띔한다. 대학 시절 두 사람이 창업한 ‘헬릭스에셋’의 주요 성장엔진은 ‘적대적 인수합병(M&A)’, 주식형 채권, 파생상품 투자이다.

골든크로스 맹신하면 낭패
“대학에 입학한 뒤 주식 관련 투자서를 섭렵하기 시작했습니다. 기술적 투자 방식을 다룬 책들이 당시에도 한창 인기를 끌었는데, 그 논리적인 허점이 금방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문 대표는 차트 관련 서적들을 ‘잡서’라고 불렀다. 차트는 개별기업의 가치를 보여주지 못한다는 것이 그의 지론.

말 그대로 장님 코끼리 다리 만지기 식이다. 무서운 성장세를 보이다 좌초한 한보그룹은 무리한 차입으로 속병이 깊었다.

하지만 차트를 아무리 분석해 봐도 자산가치, 당기순이익, 장래성, 시장의 분위기, 국외 시장의 흐름, 대주주의 품성 등 기업 가치를 좌우하는 주요 변수들을 파악할 수 없다.

논리적 허점도 치명적이다. “상승장악형 봉이 나왔지만 주가가 하락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흑오병 출현에도 상승하는 사례도 등장합니다.” 봉의 모양이나 색깔, 추세선 등을 투자의 신호로 삼는 행위는 말 그대로 요행을 바라는 ‘도박’에 불과하다는 것이 문 대표의 주장이다.

‘골든크로스’가 등장하면 주가가 50% 상승한다는 속설도 허구에 불과하다. 같은 차트를 두고도 해석이 엇갈릴 수 있다. 김형식 대표는 미국의 오메가사가 만든 ‘트레이드 스테이션(TradeStation)’이라는 프로그램을 띄워놓고 지난 10년치의 데이터를 불러내 차트의 문제점을 설명했다.

“‘블랙 스완(black swan)’의 원리는 과거의 데이터에서 추출한 법칙을 현 시장 분석에 적용하기 어렵다는 논리입니다. 하지만 차트는 과거의 데이터에서 추출해 낸 법칙 자체가 틀리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습니다.” 기술적 분석에 등장하는 캔들차트, 이동평균선, 추세선, 갭 등은 말 그대로 참고대상일 뿐이다.

지금은 국회의원이 된 모 변호사가 주창한 파동원리 매매법도 그 한계는 뚜렷하다. 주가의 추세적 상승 혹은 하락 국면을 포착해도 매매 타이밍을 어떻게 잡아야 할지 명쾌한 해법을 제시하지 못한다는 것. 기술적 분석의 허점을 파고드는 이들은 미국 시장에도 적지 않다.

대표적 인물이 바로 ‘데이비드 아론슨(David Aron son)’ 레이든 리서치 그룹 창업자이다. 그는 무려 6400여개에 달하는 ‘기술적 분석(Technical analysis)’방식의 허점을 예리하게 파고들며 투자 전문가들의 높은 호응을 이끌어낸 바 있다.

케인스도 ‘시장 예측’ 피해
“주가 흐름을 내다보고 특정 종목을 매매하는 접근 방식은 그 한계도 뚜렷합니다. 물고기가 물에 몸을 맡기듯이 자연스레 흐름을 타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문 사장은 내로라하는 투자 고수들이 ‘슈퍼메기’나 ‘압구정 미꾸라지’ 등을 별명으로 짓는 배경을 떠올려 보라고 강조한다.

물고기가 물을 유영하듯 시장의 흐름에 몸을 맡기며 생존과 더불어 수익의 기회를 포착해야 한다는 것. 이른바 추세 추종의 원리다. 두 사람은 ‘시장과 경쟁하지 말라’는 대가들의 가르침을 충실히 따르고 있다. 뱅가드 뮤추얼펀드 창업자인 ‘존 보겔’이 늘 강조하는 경구이기도 하다.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한 걸음 더 나아갔다. 이 대가는 ‘투기(speculation)’를 ‘시장을 예측하는 행위(the activity of forecasting the market)’로 규정한 바 있다. 두 사람은 차익거래를 좇는 헤지펀드의 투자 기법을 옵션·선물거래에 적용해 쏠쏠한 재미를 보았다.

시장에 불균형이 발생하는 ‘찰나의 순간’을 포착해 매매를 하는 프로그램도 만들었다. 바로 ‘서모클라인(Thermocline)’이라는 분석 프로그램이다. 대학에서 공학을 전공한 김형식 대표의 작품이다. 서울 법대 출신인 문 사장이 이 분야에 뛰어든 데는 무역회사를 운영하는 아버지의 영향이 적지 않았다.

중국에서 공장을 운영하며 일본에 물건을 주로 수출하는 이 회사는 그의 놀이터이기도 했다. 뛰어난 경영자중에는 법조인 출신들이 적지 않다.

워런 버핏의 장자방인 찰스 멍거도 변호사 출신이며, 전략 컨설팅 회사인 맥킨지의 비즈니스 모델 구축의 주역인 ‘마빈 바워(Marvin Bower)’ 전 회장도 변호사를 지냈다.
요즘 두 사람은 《천재들의 실패(When genius failed)》를 읽고 있다. 노벨경제학상을 수상했으며, 완벽한 수학적 모델로 리스크를 없앴다는 천재들의 실패를 반면교사로 삼기 위해서이다.

두 사람이 투자의 옥석을 가려내는 기준은 무엇일까. 투자 대상 회사를 방문해 분위기를 직접 느껴본다고.

“문제가 있는 회사는 직원들이 내방객들을 지나치게 의식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분위기가 어수선한 편입니다. 일거리도 별로 없고, 그나마 손에도 잘 잡히지 않으니 외부인들에게 관심을 돌리는 겁니다. 잘나가는 회사에서는 좀처럼 찾아볼 수 없는 풍경입니다.”

박영환 기자 blade@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