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스닥 상장회사 중 ㈜메디톡스는 우리나라에서 유일하게 보툴리눔 톡신(Botulinum Toxin)이란 독극물을 상품으로 개발해서 큰 성공을 거둔 기업이다. 보툴리눔 톡신은 인공적으로 합성한 독 중에서 가장 강하다. 신경전달물질인 아세틸콜린이 방출되는 것을 막아 신경전달을 차단하는 작용을 한다. 근육이 움직이지 못하게 하므로 주름이 제거된다. 일반에는 주름제거제로 알려진 보톡스(미국 상품명)의 성분물질이다. 근육을 이완시키므로 비정상적인 근육수축이나 신경자극이 원인인 다양한 질환의 치료제다. 보툴리눔 톡신을 메디톡신이란 상품으로 개발한 작은 벤처기업이 상장한 지 6년 만에 주당 가격이 36배 올랐고 시가총액이 유한양행보다 커졌다. ㈜메디톡스의 주가가 이처럼 상승세를 이어가는 이유는 아직도 실적 개선의 기대가 크기 때문이다.

중국의 무협지를 보면 독극물들을 묻힌 독침들을 사용하는 장면들이 많이 나온다. 독극물의 처방은 무림의 비방으로 전해지고 해독제 역시 독극물을 사용하는 비방과 함께 전해진다. 이런 독극물들은 모두 동물이나 식물에서 채취되는 천연독극물들이다. 동물이나 식물들은 먹이를 잡거나 자신을 보호하기 위해 독극물들을 사용한다. 하지만 이런 독극물들도 미량 사용하면 거의 대부분 약제로 활용할 수 있다. 동양에서는 천연약제를 사용하므로 이런 독극물에 대한 처방이 많지만 화합물 합성시약으로 발달한 서양의약품엔 독극물이 약제로 승인받은 사례가 드물었다.

미국 식약청이 동물의 독성물질을 약으로 승인한 첫 번째 사례는 1981년에 살무사(Mamushi)의 독에서 추출한 캡토프릴(Captopril)이다. 하지만 20여년 동안 제약회사들은 이와 비슷한 약을 생산하지 않았다. 예전에는 독극물을 채취한다 해도 그 양이 매우 적어 대량생산하기에 적합하지 않았다. 그런데 최근 유전자기술이 발달하면서 독극물을 이용한 약물개발이 활발해지고 있다. 독극물은 제약 산업에서 신약개발의 아주 뜨거운 영역이 되고 있다.

독극물이 신약이다.

캡토프릴은 고혈압 치료제다. 살무사 독은 먹잇감의 혈압을 급작스레 바닥까지 떨어뜨려 죽인다. 살무사의 독액은 약물로서뿐만 아니라 인체의 혈압이 유지되는 원리를 발견하는 데도 기여했다. 1960년대 후반까지만 해도 혈압이 유지되는 원리가 밝혀지지 않았다. 영국 왕립외과대학의 약리학자인 존 베인(John Vane)과 그의 연구실에 박사후 과정으로 합류한 브라질 출신 세르지오 페레이라(Sérgio Ferreira) 박사가 돌파구를 찾았다. 살무사 독액에는 혈압을 조절하는 화학물질인 안지오텐신전환효소(Angiotensin-Converting Enzyme, ACE)의 작용을 방해하는 펩타이드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그 후 혈액 중의 ACE가 콩팥에서 물과 소금을 배출하여 혈압을 조절한다는 사실도 알게 됐다. 살무사 독액을 합성해서 만든 캡토프릴은 1975년에 만들어져 6년 후에 임상에 사용되었다. 이 약이 바로 ACE억제제의 원조다. FDA 승인을 받은 대부분의 독극물 약제들은 독사에서 추출한 것이다. 전갈이나 독거미에 비해 독사는 독액을 다량 내뿜어서 분석하기 쉽다. 그리고 독사의 독액은 다른 동물들의 독액에 비해서 배합하기 쉽다. 독거미의 독에는 약 1000종의 펩타이드가 함유되어 있는데 반해 독사의 독액에는 단지 25종의 성분만 들어 있기 때문이다.

 

꿀벌의 독침에 함유된 독 성분은 강력한 소염진통효과가 있어서 한방에서뿐만 아니라 중국, 인도, 이집트, 바빌리온, 그리스에서도 통증 치료에 널리 사용되어 왔다. 봉독(蜂毒)에는 40여종 이상의 성분들이 함유되어 있는데 주 성분인 멜리틴(Melittin)은 혈액 순환을 높이고 면역기능을 강화한다. 그 다음으로 많이 함유된 아파민(Apamine)은 관절염의 부종을 줄이는 호르몬인 코르티손 분비를 촉진하는 작용을 한다. 이 독액을 다량으로 채취하기 위해서는 꿀벌들을 유리판 밑의 불빛으로 유인한 다음, 3~6V의 전류로 짧은 시간 동안 감전시키면 꿀벌들이 유리판 위에 독침을 쏜다. 이 유리판을 말려 독액을 모으면 꿀벌을 죽이지 않고 독액을 모을 수 있다. 최근에는 독액의 성분들을 분리하여 류머티스성 관절염, 신경통, 다발성 경화증, 오십견, 각종 통증 및 디스크, 면역질환 등의 주사치료제로 활용된다. 멜리틴은 보톡스 대용약품으로도 사용된다. 봉독에 민감한 사람이라면 피부 밑에 봉독을 조금씩 반복해서 맞으면 면역기능이 강화되어 봉독에 의한 부작용도 사라진다. 물론 체질적으로 봉독에 아주 민감한 경우엔 가려움증, 불안감, 호흡곤란, 어지러움, 구토, 설사, 졸음, 혼미, 저혈압 등 갖가지 부작용이 발생할 수 있다.

독성분은 암세포에만 골라서 붙는다.

클로로톡신(Chlorotoxin)은 전갈의 독액물이다. 암 방사성 전갈 독액은 마치 악당 이름같이 들리지만 실제로는 임상시험 중인 암 치료용 시약이다. 클로로톡신이란 펩타이드는 독특하게도 염증세포에만 들러붙고 건강한 세포는 무시한다. 이 같은 암세포 지향성은 암 치료에 크게 도움을 준다. 클로로톡신을 방사성 동위원소와 함께 실어서 보내면 방사성원소를 바로 염증세포로 보낼 수 있다. 클로로톡신은 현재 임상 2단계를 통과해 염증세포 착색제의 중요한 성분으로 활용되고 있다. 형광안료를 클로로톡신에 붙이면 염증세포가 형광빛을 낸다. 이렇게 되면 수술장에서 암세포들을 정상세포들로부터 뚜렷하게 구분해서 정확히 도려낼 수 있게 한다. 최근에는 광범위하게 암세포들을 착색하는 용도로 클로로톡신이 활용된다.

바닷속에 사는 원뿔달팽이(Cone Snail)는 겉으로는 평범해 보이는 갑각동물이다. 바다 바닥이나 모래 바닥 속에 있다가 물고기 먹잇감이 다가오면 독침을 쏘아 물고기를 죽인 후 통째로 먹이를 삼킨다. 이때 내뿜는 독소가 코노톡신(Conotoxin)이다. 겉보기에 예쁘다고 모두 괜찮은 것은 아니다. 다이버가 이 독에 쏘이면 위험하다. 과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원뿔달팽이의 독액은 아직 진화단계에 있어서 같은 종족들이라도 서로 다른 화학물질들을 내뿜는다고 한다. 대략 25% 정도의 화학물질들만 겹친다고 한다. 이런 특징은 다양한 의약품으로 만들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준다. 원뿔달팽이의 독소는 먹잇감의 신경계를 마비시킨다. 이는 코노톡신이 몰핀과 같이 신경계통의 통증을 완화하는 효과가 있다는 의미다. 심한 통증으로 고생하는 암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 실험한 결과 한 번의 주사로 여러 날 동안 통증이 가라앉는 것을 관찰했다. 과학자들은 코노톡신을 다양하게 합성해서 더 효과적인 약물로 개발 중이다.

엑스나타이드(Exenatide)는 독 도마뱀에서 추출한 성분을 본뜬 합성 펩타이드다. 미국 남서부 사막에서 발견되는 힐러몬스터(Gila Monster)라는 독 도마뱀은 크기가 크고 느릿느릿 움직여서 사람들이 피하기 쉽다. 하지만 매년 상당수의 사람들이 이 도마뱀에 물려서 실신하거나 메스꺼움과 열병을 앓는다. 도마뱀에 물리면 신진대사에 심한 이상이 온다. 이 독소에는 엑센딘 4(exendin 4)라 불리는 성분이 있는데 인슐린 분비 효과가 있다. 인슐린 분비가 잘 안 되는 2형 당뇨병환자들을 치료하는 데 효과적이다. 엑시나타이드는 미국 식약청에서 당뇨병 약으로 승인을 받았다. 최근에는 이 성분이 소화를 늦추는 작용을 한다는 점에서 비만치료제로도 연구되고 있다. 예전에는 단순히 독극물을 가진 도마뱀으로만 알려졌지만 최근에는 연구자들이 이구아나나 코모도왕도마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도마뱀들이 가진 독극물들을 분석하기 시작했다.

이 밖에도 코브라가 내뿜는 코브라톡신(Cobratoxin)은 오래전부터 천식과 다발성 경화증을 치료하는 약물로 연구되어 왔다. 또 카리브 해안의 얕은 물 속에 사는 융단열말미잘(Stichodactyla Helianthus)이 가진 ShK-186 성분은 자가면역 눈 질환을 치료하는 약물로 연구되고 있다. 1형 당뇨병이나 류머티스성 관절염 그리고 건선 치료제로도 활용 가능성을 연구하고 있다.

최근에는 독극물 성분 분석을 질량분석계나 랩언어칩(Lab-on-a-Chip)으로 고속 분석할 수 있어서 독극물들에 함유된 유익한 성분들을 찾아내기 쉽다. 자연에는 독극물을 내뿜는 동물이나 식물들이 많다. 이런 독극물들이 새로운 신약개발의 원천으로 인식되고 있다. 유전공학 기술이 발달하면서 천연 독성물질들을 인공적으로 합성하는 기술도 발달하고 있다. 21세기 미래 산업은 바이오산업이다. 자연 속에서 찾아낼 수 있는 동물이나 식물들이 내품는 독극물들의 성분에서 인체의 질병을 치료하는 신약을 개발하는 새로운 지평이 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