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세븐일레븐

애플은 디자인 역량, 월마트는 구매력에 기반 한 저가격 역량, 디즈니는 캐릭터와 창의적 스토리텔링 역량 등 고객들에게 각인된 핵심역량(Core competence)을 갖고 있는 기업들이 있다. 반면, 우리 기업들의 경우 고객들에게 각인된 핵심역량이 별로 없다는 지적이다.

우리가 보유한 제조역량과 공정기술역량 정도로는 당분간은 유효할지 모르지만 중국 기업들의 빠른 추격에 미래를 장담할 수 없다.

앞서가는 선진국 기업과 바짝 뒤 쫒아온 중국 기업 사이에 샌드위치 돼 있는 상황을 타개하고 선도 기업으로 성장하기 위해서는 보유한 역량을 파악하고 핵심역량을 육성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장성근 LG경제연구원 연구위원은 3일 ‘고객이 알아주는 핵심역량 기업 미래 이끈다’ 보고서를 통해 앞으로 나아가기 위한, 고객이 알아주는 핵심역량을 키워야 한다고 밝혔다.

장성근 연구위원은 “우리의 핵심역량이 무엇이며 그것을 어떻게 진화‧발전시킬 것인지, 또 우리가 지금부터 준비해야 할 미래의 핵심역량들은 무엇인지 깊이 고민하고 실행할 수 있는 방안들을 모색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핵심역량을 잘 찾기 위해서는 분석 대상(Unit of analysis)을 명확히 설정하는 것과 사업의 본질 및 필요 역량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또한 핵심역량 기반으로 신사업 전략을 수립할 때는 기존 핵심사업의 KFS(Key Factor for Company Success, 회사의 이윤을 극대화하는 주요 성공 요인)와 신사업의 KFS가 얼마나 유사한지, 기존 핵심 사업에서 확보한 핵심역량을 신사업에도 원활하게 활용할 수 있는지 등을 잘 따져봐 한다.

 

 

지난해 아마존(Amazon)이 독자적인 스마트폰을 출시할 때 시장은 고개를 갸우뚱했고 결과도 별로 성공적이지 못했다. 최근 샤오미(Xiaomi)가 세그웨이를 인수했을 때도 왜 저러지 하는 반응들이 있었다.

반면, 얼마 전 GE가 금융부문 매각을 발표했을 때 시장은 박수를 치며 환영했다. 애플(Apple)의 주주들은 팀쿡에게 테슬라를 인수하라고 부추긴다.

테슬라가 기가팩토리를 추진한다고 했을 때 주주들은 규모가 너무 커서 주춤했겠지만 별로 반대하지 않았고 올 4월 값싼 ESS(에너지 저장장치) 상품을 내놓으며 시장의 환영을 받고 있다.

구글(Google)은 보험, 의학, 배터리, 통신 서비스, 인공지능, 로봇 등 사업성이 별로 없어 보이는 곳까지 포함해 온갖 다양한 분야에 투자하고 있지만 시장은 그걸 비난하지 않는다.

대부분의 경우 사업을 너무 벌이면 이해 관계자들은 불안해한다. 하지만 애플과 구글, 테슬라 등은 얼핏 보면 별 관계가 없어 보이는 곳으로 확장하는 경우에도 시장은 박수를 치거나 별로 개의치 않는다.

이 차이가 어디에서 발생할까. GE하면 항공, 의료장비 등 고성능의 기계 제조가 떠오른다. 아마존은 말할 필요도 없이 인터넷 물류의 강자이다. 애플은 혁신의 이미지가 떠오르고, 구글과 테슬라는 분야는 좀 다르지만 시대를 앞서가는 개척자의 이미지가 떠오른다.

기대에 부합해 움직일 때 시장은 별 걱정 없이 지켜보고 이 기대를 더 키워줄 때 박수를 보내지만, 이 기대와 달리 움직일 때 이해관계자들은 불안해진다.

 

▲ 출처= LG경제연구원

애플과 테슬라, 구글, 페이스북, GE 등의 기업들은 컬러가 분명한 기업들이며 사업을 전개하고 있는 대부분의 시장에서 상당한 프리미엄 가치를 인정받는다. 다른 기업들이 흉내 내고 따라가기가 쉽지 않기 때문이다.

이 기업들은 시장의 경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있는 핵심역량을 가지고 있다고 평가 받고 있다.

프라할라드와 하멜(C.K. Prahalad and G. Hamel) 교수는 1990년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Harvard Business Review) 5/6월호에 기고한 ‘The Core Competence of the Corporation’이라는 논문에서 핵심역량이란 개념을 처음으로 제시했다.

핵심역량의 개념은 매력적이었기 때문에 국내외 기업들에게 바이블처럼 인기가 높았고, 그 이후 기업과 경영학 분야의 중요 화두가 됐다.

그 당시 우리 기업의 시장 지위가 현재의 중국 기업처럼 전형적인 Fast follower였기 때문에 축적된 핵심역량이 별로 존재하지 않았다. 잘 나가는 대기업들의 경우에 해외 선도 기업으로 부터 배워 제품개발 등에 응용을 잘하는 흡수역량이나 안정화시켜 대량 생산하는 역량 정도를 핵심역량으로 도출했다.

결국, 핵심역량 활용도는 해가 갈수록 점점 낮아져 갔고 현재는 핵심역량의 중요성을 가끔씩 말로 강조하는 명맥 유지 수준이다. 심지어 핵심역량은 ‘죽었다, 잊어버려라’ 라고 주장하는 이들도 있다.

핵심역량을 지나치게 기능적인 면, 이제까지 잘 해온 역량에 집중한다면 핵심역량을 폐기해야 할지 모른다. 하지만 그 기업을 대표하는 무엇, 고객에게 기대를 갖게 하고 그 기업의 미래를 펼쳐나갈 그 어떤 역량으로 좀 더 폭넓게 본다면 핵심역량은 여전히 유효하다.

 

 

우리는 현재 글로벌 시장에서 First mover로서의 위상을 쟁취하느냐, 아니면 Fast follower로서의 지위마저 빼앗기느냐 하는 중요한 기로에 서 있다.

결국 이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현재의 사업 영역에서 우리만의 차별적 경쟁우위를 만들고, 이를 바탕으로 사업 영역을 확대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만들어 내야 한다.

내부에 존재하는 핵심역량을 정확히 파악해 제대로 활용하고 지속적으로 진화‧발전시키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베인 앤 컴퍼니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신규 사업 확장 시 핵심 사업에서 구축한 차별적 역량과 연관성이 높은 사업으로 확장할수록 성공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

핵심역량을 제대로 찾기 위해서는 분석 대상(Unit of analysis)을 명확히 설정하는 것이 중요하다. 분석대상은 국가, 그룹, 기업, 사업 등 다양한 관점에서 설정할 수 있다.

사업의 본질과 필요역량을 잘 파악하는 것도 중요하다. 여기서 사업의 본질이란 그 사업에서 1등을 하기 위해 가장 중요한 요건, 즉 KFS를 파악하는 것을 말한다.

일례로 LCD 사업의 경우 원가경쟁력 확보가, 화장품 사업의 경우에는 제품차별화와 브랜드 구축이 사업 성공의 중요 KFS가 될 수 있다.

 

▲ 출처= LG경제연구원

아울러 핵심역량은 자신들이 잘하는 것, 자화자찬하는 역량이 아닌 고객이 가치를 느끼고 인정하는 역량이어야 한다. 고객이 핵심역량의 중심에서 있어야 하는 것이다.

핵심역량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한다. 생산과 기술, 마케팅 등 특정 기능역량인 경우가 있으며, 기능역량들을 종합해 활용할 수 있는 조직역량인 경우도 있다.

구성원 마인드, 조직문화, 리더십, 인재육성 등 조직 운영의 기반이 되는 공통역량이 핵심역량이 되기도 한다.

미국 기업에는 차별적인 고객가치 실현을 위해 세상에 없는 New to World 제품이나 서비스, 사업모델을 창출하고자 하는 ‘벤처 마인드’가 있다.

우리 기업에는 구체적이면서도 명확한 고객가치 실현이라는 목표 달성을 위해서는 불굴의 의지와 강한 실행력으로 어떤 난관도 돌파하고 목표를 달성해 내고야 마는 ‘엔지니어 마인드’가 있다.

일본 기업은 고도의 숙련도를 기반으로 최고의 기술력을 철저하게 추구하는 ‘장인 마인드’가, 중국 기업에는 제품을 싸게 만들어 대량으로 판매해 이익을 실현하고자 하는 ‘상인 마인드’가 각각 존재한다.

애플(Apple)의 경우에는 PC사업을 통해 축적한 유저 인터페이스 기술, 디자인 역량, 소프트웨어 역량 등을 기반으로 MP3 플레이어, 스마트폰 사업에 진출해 시장의 판도를 바꿨다. 스마트폰은 휴대전화의 통신기능과 컴퓨터의 애플리케이션 기능이 결합된 제품이기 때문에 애플이 PC 사업에서 축적한 핵심역량을 활용하기에 적합했던 것이다.

 

 

캐논(Canon)은 광학기술‧정밀기계기술‧미세전자기술을 바탕으로 카메라, 사무용기기, 레이저프린터, 웨이퍼가공장비 사업 등에 진출해 성공할 수 있었다. 후지필름(Fujifilm)의 경우에도 컬러필름 사업을 통해 쌓은 재료‧가공 기술을 바탕으로 디스플레이 소재, 화장품, 제약 등으로 빠르게 사업을 확장해 견고한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혼다(Honda)도 엔진 기술과 모터 기술을 바탕으로 자동차, 오토바이, 제트스키, 스키장의 스노모빌, 잔디깎기, 로봇 등 언뜻 보아서는 서로 관련이 없어 보이는 사업 분야에서 지속적으로 성공을 거뒀다.

신사업을 추진할 때 핵심역량에 기반해 진출 분야를 정한다는 개략적인 방향을 공유하고도 실제는 관련성이 떨어지는 분야로 진출해 고전하거나 실패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

소니(Sony)의 핵심 사업이었던 전자 부문에서 축적한 핵심역량은 워크맨과 같은 혁신적인 제품을 만들어 내는 기술 역량과 디자인 역량이었다. 지난 1995년 CEO 이데이 노부유키는 하드웨어를 만드는 기술역량은 이미 뛰어나다고 판단하고, 하드웨어와 컨텐츠 융합 전략 방향을 제시하며 영화, 음악, 게임 등 컨텐츠 제작 중심의 미디어 사업 진출을 결정했다.

하지만 미디어 사업은 기존의 전자 사업을 통해 축적한 핵심역량과의 관련성이 낮아 현재까지 큰 성공을 거두지는 못하고 있다. 여기에 상당수의 유능한 엔지니어들이 소니가 기술 DNA를 포기했다고 생각하고 회사를 떠났다. 결국 핵심역량인 기술역량이 약화되며 핵심 사업이었던 전자 부문의 경쟁력이 크게 약화됐다.

 

장성근 연구위원은 “내게 매력적인 신사업은 남에게도 매력적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신사업 성공의 관건은 시장매력도보다 필요 역량을 얼마나 빨리 제대로 확보하는가에 달렸다”며 “핵심역량 기반의 신사업 전략을 수립할 때는 기존 핵심사업의 KFS와 진출하고자 하는 신사업의 KFS가 얼마나 유사한지, 기존 핵심 사업에서 확보한 핵심역량을 신사업에도 원활하게 활용할 수 있는지 등을 잘 따져봐야 한다”고 말했다.

가정용 에어컨 사업을 하는 기업들은 시장 성장이 정체되면 상업용 에어컨 시장에 진출하는 경우가 있다. 그러나 진출 기업들 대부분은 고전한다. 상업용 에어컨 시장은 B2B 사업으로 KFS가 고객이 원하는 토탈 솔루션 제공이며 핵심역량은 수주영업 능력과 맞춤형 엔지니어링서비스 역량인 반면, 가정용 에어컨 시장은 B2C 사업으로 KFS가 제품경쟁력 확보이며 핵심역량은 개발과 제조 역량으로 두 사업 간의 KFS와 필요역량이 달라 가정용에서 축적한 핵심역량을 쉽게 활용할 수 없기 때문이다.

반면, LCD 사업에서는 LG와 삼성이 후발주자였지만 현재 크게 성공하고 있는 것은 과거 반도체 사업에서 핵심역량으로 축적했던 세계 최고의 공정기술력을 사업의 KFS가 유사한 LCD 사업으로 빠르게 이전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에는 과거대비 기업들 간에 실력 차이가 크지 않고 상향 평준화돼 있기 때문에 핵심역량을 통한 압도적이고 지속적인 진입장벽 구축은 거의 불가능하다. 특히, IT 사업은 시장 및 기술 변화가 매우 빠르기 때문에 혁신의 속도와 복제(Copy)의 속도 간에 간격(Gap)도 크지 않다. 따라서 핵심역량 기반의 신사업을 선점해 일정기간 이익을 향유하고, 한발 빠르게 새로운 분야로 이동해야 지속적인 경쟁우위를 유지할 수 있다.

 

 

예컨대, LG이노텍의 카메라 모듈 사업은 최근 몇 년간 고객 밀착대응력 및 정밀집적모듈화 기술을 기반으로 고화소(예, 1300~1600만), OIS(Optical image stabilization, 손 떨림 보정 기능)등을 새로운 분야로 선점한 후, 생산효율화 역량을 바탕으로 수율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경쟁사 대비 6개월~1년의 격차를 지속 유지하며 탁월한 성과를 달성하고 있다.

아울러 5~10년 앞을 내다보고 꾸준히 묘목을 심어야 한다. 일례로, 니또덴코(Nitto denko)는 핵심역량인 연신과 코팅 등의 소재가공기술을 기반으로 전체 예산의 일정 부분을 신사업 발굴에 꾸준히 투자했다. 여러 신사업 아이템이 실패하기도 했지만 그 중에 스마트폰용 디스플레이 시장이 크게 성장하며 소형 편광판 시장을 독식하게 됐다.

대다수 기업들은 핵심역량이 고정불변의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잘 나가는 기업일수록 성공 체험한 제품과 기술을 중심으로 역량을 구축하기 때문에 역량의 다양성이 시간이 갈수록 좁아진다. 또, 핵심역량을 보유해 조직 내에서 기득권층을 형성한 구성원들은 기존 핵심역량을 고수하며 새로운 역량의 확보에 저항하는 경우가 많다.

휴대폰 분야의 절대 강자였던 노키아(Nokia)는 통화기능 중심의 피처폰에서 애플리케이션 활용과 컴퓨팅 기능 중심의 스마트폰으로 시장 환경이 급격히 바뀌어 사업의 KFS인 디바이스 효율화 전략의 중요성이 크게 감소했음에도 불구하고 플랫폼기술과 저원가제조역량을 고수하다 급속히 몰락했다.

핵심역량이 외부환경변화나 사업의 KFS 실현에 부적합한 것이 된다면 기존 핵심역량을 과감하게 버리거나 진화‧발전시키는 것이 기업이 사는 길이다.

요즘은 아무리 뛰어난 생산역량 혹은 기술역량을 보유한 기업이라도 고객을 이해하는 능력이 없다면 실패할 수밖에 없는 시대다. 때로는 지나치게 생산력이나 기술력을 추구하는 것이 기업의 지속적인 성장에 걸림돌이 될 수도 있다.

소니와 샤프, 파나소닉 등 일본 기업들의 고전 혹은 몰락의 이유를 여기서 보게 된다.

 

▲ 출처= LG경제연구원

장성근 연구위원은 “우리 기업들이 가지고 있는 ‘엔지니어 마인드’만으로는 First mover로 도약하는 것이 어렵다”며 “차별적인 고객가치 실현을 위해 아직 세상에 없는 New to World 제품이나 서비스, 사업모델 개발을 꿈꾸고 도전해 결국 창출해 내는 ‘벤처 마인드’를 겸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즉, 다양한 실험과 시도를 통해 ‘엔지니어 마인드’를 ‘벤지니어(Venture+Engineer) 마인드’로 진화‧발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인텔(Intel)은 반도체 분야의 절대 강자로 1980년대 후반부터 오랜 기간 PC용 마이크로프로세서를 독점 공급하며 최고의 성과를 향유했디. 하지만, 2000년대 중반 이후 PC 시장이 점차 정체‧축소되고 모바일 시장이 급격히 커지자 아톰 프로세서 시리즈 등을 개발하며 ARM 마이크로프로세서에 도전했지만 현재까지 크게 고전 중이다.

PC용 마이크로프로세서 사업의 KFS는 고성능화인데 비해 모바일용 마이크로프로세서 사업의 KFS는 저전력화로 완전히 다르다. 인텔은 모바일 시장을 과소평가하고 적극적으로 진출하지 않았고, PC용에 적합한 고성능화 기술을 고수하며 핵심역량을 진화‧발전시키지 않았기 때문에 모바일 시장에서 주도권을 잡지 못하게 된 것이다.

장성근 연구위원은 “경영환경 하에서 기업이 지속적으로 성장‧발전하기 위해서는 외부 환경변화로 인해 생기는 사업의 본질이나 KFS의 변화 방향을 미리 예측하고 필요 역량을 신속하게 확보할 수 있어야 한다”며 “이를 위해서는 외부 환경과 사업의 KFS 추이를 정기적으로 모니터링 하는 조직 체계와 조직 내부에 보유하고 있는 핵심역량에 대해 보다 유연한 태도를 갖는 것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선도 기업이라고 할지라도 사업의 KFS와 필요역량의 변화에 따라 핵심역량을 끊임없이 진화‧발전시키지 못하면 한순간에 몰락할 수 있으며, 후발 기업이라도 새로운 사업의 변화가 요구하는 자원과 역량을 빠르게 먼저 준비해 핵심역량으로 만든다면 시장의 판도를 뒤흔드는 새로운 강자로 부상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