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일모직의 친환경 케미컬 소재인 내스크래치 수지.이 부문에서 세계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제일모직의 현재 나이는? 지난 1954년에 설립됐으니까 57세일까? 제일모직 직원들은 그렇게 보지 않는다. 기업은 변신을 꾀할수록 젊어진다는 논리에서다. 제일모직은 국내 산업과 궤를 같이했다. 주력 사업의 변천사를 보면 대한민국 산업의 발전상을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제일모직은 과거 직물에서 패션산업을 거쳐서 지금은 합성수지와 전자재료사업에 주력하고 있다. 제일모직은 올해도 젊어지기 위해 변신 중이다. 지난 1954년에 설립된 제일모직은 삼성의 인재 사관학교다. 제일모직 출신의 사장이 다수 배출됐다. 1994년에는 창립 40주년을 기념해 ‘제일모직 타임캡슐’을 매설했다. 2054년에 개봉할 예정이다. 설립 후 100년이 지나도 성장하겠다는 의지가 비쳐진다. 황 백 제일모직 사장은 2009년 1월에 취임한 뒤 같은 해 3월부터 매월 초 임직원 대상으로 ‘공감편지’를 발송했다. 경영현황과 최신 트렌드를 공유하고 소통하기 위해서다. 제일모직이 어디까지 변신할지 관심이 모아진다.<편집자 주>

황 백 사장은 올 초 신년사를 통해 “지난해부터 본격적으로 추진한 멤브레인과 발광다이오드(LED), 유기발광다이오드(OLED), 태양전지 소재를 비롯해 자동차용 소재와 패션의 중국 사업에 이르기까지 제일모직의 성장 원동력을 현실화하겠다”고 밝혔다.

올해도 더 젊어지자는 의미로 비쳐진다. 올해 57주년을 맞고 있는 제일모직이 실제로 57세라고 말하기 어렵다. 환갑을 앞두고 있지만 지속적인 변신을 통해서 젊어졌기 때문이다.

이런 모습은 이건희 회장의 의중과 일맥상통한다. 이건희 회장은 작년 10월에 “어느 시대건 조직은 젊어져야 한다”고 말한 바 있다. 직물사업으로 1954년에 출발한 제일모직은 1977년 패션사업으로 변신했다. 창립 후 23년 만에 패션 브랜드 시대를 열었다. 12년 뒤인 1989년 케미컬 합성수지사업에 뛰어들었다. 5년 뒤인 1994년에는 전자재료사업에 진출했다.

지난해 말 기준으로 직물(57세)은 799억 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전체 매출의 1.6%에 불과하다. 패션(34세)은 전체 매출액의 25.9%인 1조2984억 원을 기록했다. 케미컬(22세)과 전자재료(17세)의 매출액은 각각 2조2305억 원(44.4%), 1조4098억 원(28.1%)이다.

{$_001|제일모직_$} 관계자는 “사업 진출 연도와 매출액을 기준으로 가중치를 넣어 계산해본 결과 제일모직의 평균 나이는 23.5세”라고 설명했다. 사업주력 업종이 바뀌었는데 사명을 제일모직으로 쓰는 이유는 무엇일까. 개명하는 게 실효성이 없다는 판단에서다. 케미컬이나 전자재료산업은 수출 비중이 높다. 평균 70~80% 정도 된다. 해외 수출시 삼성전자 브랜드를 활용한다.

전자재료 필름 소재(왼쪽). 자동차용 엔지니어링 플라스틱 소재.


패션사업도 빈폴, 갤럭시, 로가디스처럼 브랜드 중심으로 전개한다. 그렇기에 사명을 변경할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고 있다. 현재 제일모직의 사업 영역은 4개인데, 시간이 지나 사업 영역을 확대했을 때 사명을 또 바꿔야 한다는 우려감도 작용했다.
제일모직 관계자는 “수백억 원을 들여 사명을 변경하는 것보다 올해 연구·개발(R&D)에 4000억 원 정도를 투자할 계획”이라며 “시장에서는 이미 제일모직이 신규 소재사업에 진출한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세계를 겨냥한 비섬유 시장 개척

제일모직이 패션사업에서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을 생산하는 합성수지 사업으로 변신한 이유는 무엇일까. 1972년에 제일합섬(현 웅진케미컬)을 분사시키면서 화학섬유 사업을 경험해 본 덕분이다.

국내 경기 사이클 상 1980년대 중반에 중화학, 자동차, 전자 등의 첨단산업은 급성장했다. 반면 섬유산업의 성장세는 둔화됐다. 제일모직은 장기적 측면에서 사업 구조조정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방향은 비섬유 부문이다.

삼성그룹은 총 1조원 규모의 석유화학 단지 건설을 계획했다. 1987년 삼성석유화학이 연산 50만 톤의 고순도테레프탈산(PTA) 생산체제를 완성했다. 1988년 삼성종합화학, 1989년 삼성BP화학이 출범을 준비했다.


제일모직도 기능성수지와 엔지니어링 플라스틱을 중심으로 하는 케미컬 사업을 전개키로 했다. 그룹 내 수요가 있는 아이템을 생산해 사업을 안정화한 후 세계시장에 진출한다는 전략을 세웠다.

케미컬 부문은 전남 여천에 부지를 확보한 후 1989년 공장을 준공하면서 본격적으로 진출했다. 2005년 세계 최초로 개발한 ‘내스크리치 수지’의 인기가 높다. 별도의 도장처리를 하지 않고도 고급스런 광택을 내고 흠집이 잘 나지 않는 외장재다. 제일모직의 이 제품은 내스크래치 수지부문에서 세계 시장점유율 1위를 차지했다.

제일모직은 인조대리석도 만들어서 판매한다. 인조대리석은 플라스틱으로 만든다. 처음 인조대리석을 만들 때는 아크릴 합성수지(ABS)를 주원료로 하고 다른 첨가물을 넣어서 단단하게 만들었다.

케미컬 부문의 매출은 10년 만에 211.3%나 늘었다. 2000년 매출이 7165억 원이었는데 2010년에는 2조2305억 원으로 급증했다. 제일모직은 케미컬사업에 이어 반도체 전자제품의 기초 재료를 생산하는 전자재료 사업에 뛰어들었다. 1994년 의왕사업장에 반도체 회로 보호제(EMC) 생산 공장을 준공하면서부터다.

기존 케미컬 사업으로 축적된 기초소재사업의 역량과 R&D 기반으로 전자재료사업에 진출한 것. 전자재료는 전자와 화학의 혼합기술이 필요한 분야다. 화학 분야는 기존 합성수지의 원천기술을 활용했다.

제일모직은 삼성기술원의 EMC 기술을 인수해 1995년부터 생산했다. 이듬해부터 삼성전자 메모리 반도체에 적용돼 전자재료 사업의 씨앗이 됐다. 전자재료 사업은 2002년 구미에 정보기술(IT) 생산단지를 준공하면서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다. 2003년부터 반도체 소재에서 디스플레이 소재까지 사업영역을 확대했다. 제일모직은 2007년 에이스디지텍을 인수하면서 편광필름 사업에도 진출했다.

전자재료 분야의 매출 신장세는 눈부시다. 10년 만에 무려 4198.2%나 늘었다. 이 분야에서 2000년 매출액은 328억 원이었다. 10년이 지난 2010년 매출액은 1조4098억 원을 기록했다. 제일모직 전체 매출의 28.1%를 차지한다.

특화 솔루션 미래사업 새 구상

제일모직은 올해 미래 사업을 조기에 현실화하는 데 주력키로 했다. 황 백 사장은 올 초 신년사에서 “2011년은 창의와 혁신으로 미래 사업을 조기에 현실화하는 한 해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황 사장은 “금융위기 이후 글로벌 기업들의 경쟁이 격화되고 있고 신기술의 수명 주기도 짧아지고 있다”며 “고부가 제품도 시장의 영속성을 보장받을 수 없다는 냉철한 인식으로 다시 시작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케미컬 부문에서 자동차 내외장용 소재사업의 성장전략을 본격화한다. 단순한 제품공급에서 벗어나 고객사에 특화된 소재 솔루션을 제안하는 형태인 고객 선도형으로 사업구조를 전환한다.

전자재료 부문은 디스플레이 필름소재를 집중 확대한다. 공정소재 집중화로 차별적 경쟁역량을 강화한다. 공정소재는 선행개발을 통해 신시장 제품 개발에 주력키로 했다. 특히 생산과 품질 안정화를 최우선 과제로 정했다.

패션부문은 중국사업 및 여성복, 액세서리 사업을 확대한다. 갤럭시 등 남성복 브랜드는 경쟁사와 격차를 확대해 1위 브랜드의 지위를 확고히 할 작정이다. 지난 해 국내 브랜드 최초로 매출 5000억 원을 돌파한 캐주얼 빈폴은 상품기획을 특화할 계획이다.

‘디케이드 프로젝트’ 지속경영 발판

제일모직 의왕R&D센터.

제일모직은 끊임없이 ‘도전’을 앞세웠다. 설립 당시에도 그랬고, 지금은 경제 여건의 변화에 맞춰 도전을 통해 변신을 거듭하고 있다. 황 백 제일모직 사장은 올 초 ‘미래를 부르는 앞선 도전’을 강조했다. 황 사장은 신년사에서 “2011년은 우리에게 변화와 도전의 한 해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제일모직은 고 이병철 회장이 1954년에 설립한 삼성의 모태기업이다. 당시 우리나라는 섬유산업의 불모지였다. 모직사업 자체가 큰 도전이었다. 제일모직은 현재 삼성의 간판급 기업인 삼성전자보다 15년 앞서 설립됐다. 섬유산업은 1980년대 들어 쇠퇴기에 들어갔다.

그런데도 제일모직은 지난해 말 5조186억 원의 매출액을 달성했다. 영업이익과 순이익은 각각 3342억 원, 2587억 원이다. 직물사업에만 안주했다면 달성하기 힘든 성과다. 지난해 제일모직의 매출 실적은 삼성전자, 삼성생명 등에 이어 그룹 내 7위다. 영업이익도 그룹 내 8위에 해당한다.

제일모직은 1963년 싱가포르에 첫 수출을 시작하면서 섬유산업을 본 궤도에 올려놨다. 1979년 구미 직물공장을 준공했고 1980년대에 패션으로 변화를 꾀했다. 1983년 남성복 갤럭시를 출시하고 1999년 삼성물산 의류부문을 인수했다. 2008년 빈폴로 5000억 원의 매출이 발생, 패션 시장에서 자리를 확고히 했다.

케미컬 분야에는 1990년대에 진입했다. 1989년 여주 공장을 세우면서부터다. 새로운 도전이었다. 1993년에는 인조대리석 공장을 세웠고 그 뒤 미국과 독일, 중국 등에 진출했다.

제일모직은 2000년대에 전자재료 분야에서 새로운 도약을 모색하고 있다. 이 분야에는 1994년에 진출한 뒤 2002년 구미 전자재료 양산기지를 준공하면서 탄력을 받았다. 여기에 2007년 편광필름업체 에이스디지텍을 인수하면서 날개를 달았다. 10년 주기로 변신한 셈이다.

더욱이 의왕 연구·개발(R&D)센터를 2007년에 준공하면서 더 큰 꿈을 꿀 수 있게 됐다. 기초 기술을 확보할 수 있어서다. 제일모직의 전체 직원은 4000여 명인데 R&D센터에는 580여 명이 연구에 전념하고 있다. 전체 인원의 14.5%가 연구 인력이다.

제일모직은 그룹 내 전자, 정보통신 관계사들과 긴밀하게 공조하면서 사업을 진행할 수 있다는 게 장점이다. 제일모직은 현재 4개 분야의 사업을 영위하고 있다. 직물은 규모가 작아서 패션분야에 편입돼 있다. 지난해 실적을 보면 케미컬 분야가 44.4%, 전자재료는 28.1%, 패션은 27.5%의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황 백 사장은 신년사를 통해 “지난해 차세대 성장 기반을 마련하는 데 주력해 왔다”며 “이를 통해 사업부문별 미래 사업을 구체화하는 한편, 100년 앞을 내다보는 영속기업 제일모직의 밑그림을 그렸다”고 설명했다.

김경원 기자 kwkim@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