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경제의 심장이 쿵쿵 뛰기 시작했다. 아베노믹스 약효다. 아베 총리가 통화정책 완화와 엔화 약세의 기조를 밀어붙이며 성장전략을 펼친 끝에 마침내 수출 증대-기업실적 호전-고용 증가-임금 상승으로 이어지는 선순환의 고리를 완성해냈다.

이를 반영하여 일본의 1분기 GDP는 전 분기 대비 0.6% 증가로 발표됐고, 일본 증시는 연일 최고치를 경신하며 27년 만의 최장 랠리를 연출하기도 했다. 스탠다드차타드 은행은 일본 증시를 낙관하면서 “앞으로 12개월간 우리가 선택한 최고의 시장은 일본”이라고 단언할 정도다.

세계가 ‘잃어버린 20년’에서 벗어난 일본에 열광하는 가운데 한국은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다시 한 번 낮춰야 하는 수모를 겪었다. KDI는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종전 3.5%에서 3.0%로 떨어뜨렸다. 언론은 ‘구조개혁 등에 실패할 경우 2%대로 하락할 가능성도 높다’는 KDI 말에 아예 ‘2%대 후반’이라고 더 낮췄다.

한일 간 명암은 여러 요인에서 갈린다. 일각에서는 일본 탓을 한다. 하지만 엔화가치 하락정책이 한국기업의 수익성을 악화시키는 ‘이웃나라 거지 만들기 정책(Beggar-thy-neighbor policy)’이란 것은 처음부터 모르는 이가 없었다.

문제는 구조개혁이다. 최경환 경제부총리의 ‘뛰는 일본, 기는 한국’ 발언은 이를 두고 나왔다. 아베노믹스는 첫 번째 화살(통화정책)과 두 번째 화살(재정정책)에 무게중심을 둬왔지만, 세 번째 화살(구조개혁)도 속도감 있게 추진해왔다. 통화와 재정정책을 확장적으로 추진하여 단기적 개선은 가능하겠지만, 지속가능한 성장발전을 달성하려면 구조개혁으로 성장잠재력을 키워야 하기 때문이다.

아베 내각과 의회는 구조개혁과 규제철폐 법안을 신속히 처리하면서 경제활성화를 앞당겼다. 2013년 말 일본 임시국회에서 아베 정부는 국가전략특구법과 산업경쟁력강화법 등 굵직한 규제 개혁 법안을 거침없이 통과시켰다.

한국도 노동시장, 공공, 금융, 교육 등 4대 부문 구조개혁을 추진 중이기는 하다. 성과는 극히 부진하다. 박근혜 대통령까지 직접 나섰지만 별 소용이 없다. 국회와 이해당사자들이 꿈쩍도 하지 않는다.

노동시장 개혁은 제자리걸음이다. 그나마 공공 부문 개혁의 핵심인 공무원연금 개혁은 여야간 협상에서 혼선을 거듭하다 5월 임시국회 마지막 날인 29일 본회의를 통과했다. 내용은 미흡하다. 정부는 클라우드펀딩법, 서비스산업 발전 기본법, 관광진흥법 등 6개 경제활성화법을 조속히 처리해달라고 국회에 수차례 요청해왔다. 이들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면 약 66만개의 일자리를 만들 수 있다는 게 정부와 업계의 전망이다. 그런데도 국회는 이날 57개 민생법안을 일괄 통과시키면서도 일자리 창출 효과가 이들 경제활성화 법안들은 제외했다.

벤처업계는 크라우드펀딩법이 시행되면 5년 뒤 연간 최대 1조원의 민간자금이 2000~3000개 스타트업으로 흘러갈 것으로 기대한다.

서비스발전기본법이 시행되면 2020년까지 35만개의 신규 일자리가 만들어질 것으로 추산되고 있다. 관광진흥법은 학교 인근 위생정화구역(50~200m)에 관광호텔을 건립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급증하고 있는 외국인 관광객의 수요를 충당하기 위한 것이다. 하지만 야당이 대기업을 위한 특혜입법이며, 학업환경을 해칠 수 있다며 발목잡고 있다. 때문에 숙박시설이 수도권에서만 내년까지 7400실이 모자라 가장 큰 고객인 중국인 관광객들이 일본 등으로 발길을 돌리고 있다. 이 법이 통과되면, 외국인 관광객 유치를 촉진해 1만7000개의 일자리를 창출하고 2조원 이상의 경제적 효과를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 정부와 업계의 주장이다.

의사와 환자 간 원격진료를 허용하는 의료법 개정안은 일자리 3만9000개, 보험사의 해외 환자 유치 활동 및 공항 등 외국인 관광객이 이용하는 장소에서의 외국어 의료광고 허용 등을 담은 국제의료사업지원법은 일자리 6만개를 창출할 것으로 정부는 전망하고 있다.

한국 경제는 빈사상태에 빠져 들고 있다. 나름의 대책을 세워놓고도 제때 써보지도 못하고 있다. 물론 내각책임제인 일본처럼 한국 의회가 정부의 경제대책들을 일사분란하게 통과시켜줄 것으로 기대하긴 힘들다. 게다가 다수결이 제약받는 국회선진화법이 존재하는 상황이고, 5월 임시국회를 지켜보니 정부나 국민들이 애타게 원하는 주요 법안들은 언제든 여야의 정치거래용으로 변질될 우려마저 있어 보인다.

하지만 정치권이 '경제는 정부 책임'이라며 방관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늦었지만, 정치권이 경제살리기의 최일선에 나서야 한다. 여당은 다수결로 밀어붙이지 못한다는 사실만을 내세워 對야 협상능력 부족을 호도하지 말고, 야당은 무리한 '끼워넣기'로 국회선진화법을 수단화한다는 우려를 불식시켜야 한다. 뛰는 일본과 기는 한국을 가르는 것은 정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