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시모 보투라. 출처=이코노믹리뷰 노연주 기자

인천공항의 입국 게이트가 일순간 소란해졌다. 여러 개의 여행 가방을 카트에 넣어 밀며 들어오는 남자를 향해 대기하던 카메라들이 돌진했던 까닭이다. ‘2015 서울 고메’에 참석하기 위해 ‘요리의 신’이라 불리는 마시모 보투라가 입국했다. 22일 본지 단독으로 서울의 한 호텔에서 마시모 보투라(Massimo Bottura) 셰프를 만났다.

‘요섹남(요리 잘하는 섹시한 남자)'들의 시대를 맞은 한국에 ‘세계에서 가장 위대한 요리사’ 마시모 보투라의 등장은 그 어느 때보다 큰 관심을 모았다. 보투라는 미술랭 3스타 레스토랑이자 ‘월드 베스트 50대 레스토랑(World’s 50 Best Restaurants)’에서 매년 최상위권을 지키는 ‘오스테리아 프란체스카나(Osteria Francescana)’의 오너 셰프다. 그는 정통 이탈리안 요리를 재발견해 새로운 지평을 열었고 이탈리아 요리를 현재의 수준까지 끌어 올렸다고 여겨진다. 현지에서는 그의 식당이 있는 모데나의 마시모 보투라는 ‘로마의 콜로세움’과 같은 상징적인 이름이 됐다. 보투라가 식당을 이사한다는 루머가 돌았을 때는 모데나시의 시장까지 안절부절했다고 할 정도다.

보투라는 이탈리아 북부의 모데나에서 자랐다. 자신을 예술가라고 칭하는 보투라 셰프는 석유 사업을 하는 부친 아래서 다양한 예술적·문화적 수혜를 받으며 성장했다. 대학 교수였던 어머니는 대가족을 위해 매일 끼니마다 정성이 깃든 다채로운 요리를 내놨다. 그는 어린 시절 부엌에서 할머니와 파스타 반죽을 가지고 놀던 것을 기억해내기도 했다.

모든 예술적 영감은 가족으로부터 받았다. “형은 음악을 했고 가족들은 모두 예술을 사랑했습니다. 저도 미술이나 음악, 문학에 대한 관심이 많았죠” 더 자라서는 회계학을 전공하고 변호사가 되기 위해 공부를 하다가 요리사가 됐다. 요리학교도 나오지 않은 보투라는 1986년 모데나 외곽에 작은 트라토리아(소규모 식당)을 인수했다. 그가 처음 문을 연 레스토랑 ‘트라토리아 델 캄파쪼(Trattoria del Campazzo)’다.

이후 보투라는 셰프 조르주 코그니를 사사하며 이탈리아 지역 요리와 정통 프랑스 요리의 기반을 닦았다. 스페인의 전설적인 레스토랑 엘 불리(El Bulli)에서 훈련 받았고 프랑스 요리의 거장 알랭 뒤카스와 함께 모나코 몬테카를로(Monte-Carlo)의 ‘르 루이스 XV’에서 함께 일하기도 했다.

어느 날인가 식초 공급업자에게 전화가 왔다. “내일 식당 문을 여나요? 알랭 뒤카스를 데려오기로 했는데”라는 말에 그는 빈 식당에서 혼자 환호성을 질렀단다. 그의 음식을 먹은 후 뒤카스는 당장 그를 고용하기로 했다. 델 캄파쪼를 닫고 뉴욕으로 건너가면서부터는 현대 미술과 전위적인 아방가르드(avant-garde) 예술에 눈을 뜨게 됐다.

 

한국 소개팅 장소가 파스타집인 이유

6년 전 처음 한국에 왔고 여러 한국 음식을 맛봤다. 무척 흥미로웠다. 광범위한 식재료의 수준도 놀라웠고 식문화의 모든 것이 가족 중심적이라는 점도 이탈리아와 흡사했다. 그는 청담동에 있는 강민구 셰프의 ‘밍글스’를 방문해 한국 음식을 맛본 적이 있다. 전통적이라기보다 새로운 한국 음식이었는데 굉장히 좋은 음식들이었다고 기억한다.

▲ 마시모 보투라. 출처=이코노믹리뷰 노연주 기자

이 이탈리아 요리 거장은 한국에서 이탈리아 음식이 유독 인기 있는 이유를 무엇이라고 볼까. 그는 “2000년 전 그리스 철학자들이 살기 위해 먹는다고 로마 철학자들은 먹기 위해 산다고 할 정도로 음식에 대한 접근 자체가 달랐다”고 했다. “이탈리아 음식은 트렌드가 아니다. 그것은 문화이고 역사다”고 설명했다.

셰프마다 각자 특별히 천착(穿鑿)하는 재료가 있기 마련이다. 보투라 셰프가 가장 좋아하는 재료는 모데나 지역에서 수확한 포도를 전통적 방식으로 빚어낸 발사믹 식초, ‘치즈의 왕’ 파르미지아노 레자노 치즈와 같이 값진 것들이다. 하지만 그의 요리를 완성하는 진짜 재료는 따로 있다고 한다.

“나만의 재료를 물으신다면 사실 그건 나의 ‘문화’라고 답하고 싶습니다. 나의 재료는 나의 정신에서 나오는 것이지요. 세계를 여행하며 요리를 하는데 만약 나만의 문화가 내 재료가 아니라면 요리하기 어렵지 않겠나요? 여기는 내 재료가 거의 없으니까요.”

그의 모든 영감은 열정에서 나온다. 미술, 음악, 요리에 대한 열정, 삶의 대한 열정이다. 졸업 후에 아버지 회사에서 일하면서 편하게 살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자신의 삶이 아니라고 느꼈다. 요리를 통해 자신을 표현하고 싶었다.

 

‘요리의 신’ 보투라가 가장 존경하는 셰프

그가 최근 <날씬한 이탈리아 셰프를 믿지 마라(Never trust a Skinny Italian Chef)>라는 책을 발간했다. 이전에 공개된 적 없던 50개에 달하는 보투라의 레서피가 실려 있는 것만으로도 화제가 됐지만 실제로 기자가 홍콩에서 날아온 이 책을 처음 봤을 때는 전혀 요리책이라는 인상을 받지 못했다. 사실 다양한 오브제와 기발한 스토리로 가득한 아트북에 가까웠다.

<파이낸셜타임스>와 <뉴욕타임스> 등의 유력 언론은 이 책이 요리가 어떻게 고급문화의 일부분이 되었는지 설명한다고 극찬했다. 보투라의 책은 현재 뉴욕 현대미술관 MoMa에서도 판매되고 있다.

그는 모든 셰프를 존경한단다. 매일 예술 작품을 만드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의 생애 최고의 요리는 어린 시절 어머니가 해주던 음식이다. “어머니는 여전히 내게 최고의 요리사입니다. 어머니는 모데나 지역에서 재배된 다양한 재료들을 가지고 저의 주린 배를 위해서가 아니라 마음을 위한 요리를 해줬죠.”

보투라는 접시에 요리를 섬세하고도 창의적인 방식으로 디스플레이하는 플레이팅 작업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이 작업에서도 그 영감은 어린 시절에서 온 것이 많다고 답했다. 그는 피카소를 인용했다. “피카소는 13살에 이미 라파엘로처럼 그릴 수 있었지만 아이들처럼 그리는 법을 배우기까지는 평생이 걸렸다고 했어요. 아이들은 완전히 다른 시각을 가지고 있죠.”

그의 식당에는 ‘오, 레몬 타르트를 떨어뜨렸어(Oops, I Dropped the Lemon Tart)’라는 유명 디저트가 있다. 이 디저트는 마치 다 부서진 타르트처럼 보이지만 그는 이것이 사실 “아주 완벽한 방법으로 만들어낸 불완전한 모습의 요리이며 파괴를 통한 창조를 나타냈다”고 설명했다. 다른 메뉴인 ‘카푸치노’라는 요리만 하더라도 실제로는 커피가 아니라 미식의 도시로 이름 높은 에밀리아로마냐 지방의 감자, 양파, 돼지고기를 베이스로 한 스프다.

▲ 디저트 '오, 레몬 타르트를 떨어뜨렸어'. 출처=파이돈 출판사

한때 그는 ‘요리의 파괴자’로 불렸다. 독특한 재료들과 독보적인 조리법을 과감하게 시도했다. 그가 유명해지기 시작할 무렵 정통 이탈리안 요리사들은 그를 혹독하게 몰아붙였다. 그는 후에 <뉴욕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불과 10년 전만 하더라도 ‘마녀’로 몰아 광장에서 화형시킬 기세였던 이들이 이제 ‘거장’이라고 추켜세우더라”고 말하기도 했다.

‘제2의 마시모 보투라’를 꿈꾸는 한국의 셰프들을 위한 조언을 구했다. 요리나 트레이닝과는 상관이 없는 답이 돌아온다. “공부하세요. 열심히 책을 읽으세요. 그리고 예술을 항상 곁에 두길 권합니다.”

화가 요셉 보이스에게 영감을 받아 개발한 디저트에 대해서 설명하고 어린 시절 할머니와의 추억을 모토로 한 음식과 윤리와 미학, 삶과 파괴에 대해서 말하는 마시모 보투라는 분명 자신의 일을 예술의 영역으로 끌어올린 거장이었다. 그는 우리 독자들에게도 다음의 메시지를 남겼다. “변호사건 은행원이건 자신의 삶에서 예술을 위한 공간을 열어 놓지 않으면 일을 창의적으로 이끌어가긴 어려울 것입니다.” 예술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라 당신의 고단하고 범속한 일상과 업무의 영역에서도 찾을 수 있다는 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