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형석 한국사회적경영연구원 원장.

인터넷 검색창에서 ‘초저가’를 치면 연관검색어로 의류, 항공권은 기본이고, 가전제품, 자동차, 스마트폰과 함께 최근에는 맛집도 등장했다. 물론 과거에도 이런 저가 음식점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대부분 장터국수, 자장면 등 일부 품목에 제한적으로 등장했다. 하지만 2015년 5월 29일 현재, ‘초저가+맛집’으로 구글링하면 34만개나 산출되고, 여기에는 피자·돈까스·떡갈비는 물론이고, 심지어는 쇠고기 무한리필까지 거의 모든 업종을 망라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저가(低價)’ 하면 비슷한 말로 염가, 싼값, 헐값 등이 있다. 예전에는 이런 단어만으로도 싸다는 느낌을 받은 때가 있었는데, 요즘은 ‘초(Ultra)’라는 접두어가 붙지 않으면 저가는 당연한 가격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과거에 일본 파트너 회사와 공동으로 우리나라와 일본에서 ‘불경기 때 가장 먼저 저가를 선택하는 품목’을 조사한 적이 있었는데 의류(60%)와 내구재(30%)가 대부분을 차지했다. 두 나라 소비자들은 경기가 안 좋으면 불요불급한 의류나 가구 등에서 가장 먼저 소비를 줄이기 때문에 대상 업종들은 소비자들을 불러들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초저가 전략’을 쓸 수밖에 없다.

하지만 2004년 조사 당시에는 사정이 어려워도 먹는 것에는 초저가 음식을 찾지 않았는데, 요즘에는 서비스업은 물론이고 음식업까지 저가를 찾는 사람들이 늘고 있다.

서울 노량진의 한 한식 뷔페는 1인 단가가 4500원인데 낮 12시가 되면 30여분씩 기다려야 할 정도로 사람이 몰린다. 통상 그 정도 맛이라면 최소한 8000원은 받아도 되는 수준이다. 성공비결을 묻자 젊은 주인은 1인당 접시를 하나만 쓰게 해서 버려지는 음식을 최소화했고, 인건비도 줄였다고 했다. 초저가로 값을 내린 대신 다른 방법으로 이를 극복하고 있었다.

서울 강서구의 한 곱창집은 국산곱창임에도 1인분(200g)에 9000원에 팔고 있는데 평일에도 2시간은 기다려야 겨우 자리를 잡을 수 있을 만큼 손님이 많다. “다른 가게에서는 1만 6000원에 팔아도 원가 비중이 높다고들 하는데, 이렇게 싸게 팔면 많이 팔아도 남는 게 없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래도 못 파는 것보다는 낫지 않느냐”는 대답이 돌아왔다.

초저가 시장의 흐름은 크게 두 가지로 나타나고 있다. 개점할 때부터 초저가 매장으로 창업하는 경우도 있고, 기존 자영업자들이 ‘가격 파괴’를 하는 경우가 그것이다. 평균 1만7000원 하는 치킨을 7000원으로 파는 프랜차이즈도 있고, 한두 부위만 컵에 담아 1000~2000원에 파는 테이크아웃 치킨집까지 생겨났다. 5000원대의 커피전문점을 900원대의 테이크아웃점이 공격하고 있고, 해장국이 3500원, 서비스업인 피부관리실은 9000원, 미용실 커트는 7000원으로 내린 가게들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초저가 흐름은 다른 나라도 별반 다르지 않다. 특히 일본은 가히 ‘초저가 천국’이라 할 정도로 초저가 업종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익히 알려진 균일가 ‘100엔숍’은 여전히 인기를 누리고 있고, 우리나라에서는 자리 잡지 못하고 철수했지만 초저가 커피점 ‘도토루’도 일본에서 가맹점이 1400개(2015년 2월 현재)에 이를 만큼 안정적인 성장을 누리고 있다.

가격을 정상가 대비 30% 이상 낮춰 파는 ‘서서 먹는 식당’은 이제 흔해졌고, 인건비를 줄여 가격을 낮추기 위해 자동차회사의 폐(廢) 로봇을 들여와 라면을 끓여주는 ‘로봇라면’ 전문점도 생긴 지 오래 됐다. 미국의 불황기에 초저가의 상징처럼 여겨지던 ‘그램숍(무게를 달아 파는 가게)’도 일본으로 건너와 빠르게 자리 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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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저가 업종의 성장 배경으로는 소득 양극화(Polarization)가 가장 큰 원인이다. 중산층 비중이 줄어들고 상류층과 빈곤층으로 이분화되는 현상인 양극화의 개념이 말해주듯 빈곤층의 증가는 자연스럽게 소비 절제를 불러오기에 이들을 끌어들이기 위한 초저가와 같은 극단적 전략이 필요한 것이다.

그렇다면 이 시점에 일본에서 초저가 업종이 두드러지게 성장하고 있는 배경을 조금 더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우리나라도 일본의 ‘잃어버린 20년’을 닮아가고 있다는 일부 전문가들의 의견이 있기 때문에 외형상 성공한 정책으로 평가되고 있는 ‘아베노믹스’가 남의 나라 정책으로만 치부하기 어려워서다.

일본 아베노믹스의 핵심전략 중 하나는 경기 회복과 디플레이션을 탈피하기 위한 대담한 양적완화 조치다. 그 결과 일본 수출기업은 호조를 띄고 있고, 닛케이 주가는 최근 2년 간 2배로 올랐지만 급격한 엔화 약세는 수입 비용 증가를 가져와서 중소기업들에게는 피해의 직격탄이 되고 있다. 더욱이 엔화 약세로 노동자의 실질 임금은 24개월 연속 마이너스로 이어지고 있다. 주가가 올라서 수익을 보는 계층 역시 저소득층이 아니라 주식투자를 할 여력이 있는 중산층 이상에게만 그 혜택이 돌아간다. 현재 1달러에 120엔인 환율은 지난 2007년과 같지만, 실질적으로는 당시보다 30% 가량 엔화 약세인 것으로 일본 전문가들은 평가하고 있다. 그만큼 일본 소비자들은 더욱 가난해지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바로 이 점이다. 디플레이션을 염려해서 일본의 정책을 답습할 가능성이 없지 않은데 이 경우, 양극화는 더욱 심해져서 자영업에서의 ‘피치 마켓(Peach Market)’은 몰락하고, 결국 초저가 업종의 ‘레몬 시장(Lemon Market)’이 자영업시장을 지배하게 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사실 초저가 전략에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소비자들이 지갑을 열지 않기 때문에 손해만 보지 않으면 팔겠다는 강한 메시지다. 이렇듯 초저가 전략은 업종을 불문하고 다양하게 나타날 것으로 예상되는데, 많이만 팔면 잘 되는 것일까. 대답은 ‘그렇지 않다’이다.

오래 전에 경기도 부천에서 다른 가게보다 30%가 싼 정육식당을 창업한 사람이 있었는데 130㎡(40여평) 면적에 하루 매출 200만원을 올렸는데도 폐업하고 말았다. 이 정도면 상식적으로 큰돈을 벌수 있을 것 같은데, 막상 결산을 해보니 원가 비율이 판매가 대비 40%대로 높아지고, 거기에 인건비가 2배로 더 들었던 탓이다. 음식점 성공조건 중에서 중요한 것 하나가 원가 비율인데 성공한 일본의 한 외식체인은 마지노선을 36%로 보고 있다.

해외사례로 든 100엔숍이나 디스카운트스토어 같은 경우는 우리처럼 자영업 수준이 아니라 대기업이 운영하기에 사입가가 현저히 낮고, 위탁판매를 하거나 자가브랜드(PB)상품 개발 등의 방법이 가능해 초저가 전략도 먹히지만, 이런 배경이 없는 자영업에서 무턱대고 초저가를 통해 많이 판다고 해서 승리하기는 어렵다는 의미다.

그래서 다소 편법을 쓰는 업종들도 더러 있다. 일부 품목에만 가격을 싸게 붙여서 고객유인 효과를 얻으려는 속셈이다. 잘 알려진 한 세탁편의점은 와이셔츠 한 번 세탁에 900원으로 붙여놨지만, 실제로 가면 ‘고급세탁’을 유도해 2000원을 받고 있고, 평균 객단가 1만원이라는 화장품가게도 실제로 가 보면 2만~3만원대 화장품이 대부분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은 어느 정도 싸게 팔아야 ‘초저가’라고 인식할까. 필자도 궁금했던 터라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에 의견을 물었다. 그 결과, 맨 먼저 올라온 답이 ‘공짜’였다. 물론 웃자고 한 얘기지만 이제 웬만큼 싸게 팔아서는 초저가라는 느낌이 안 들 정도로 소비자들의 감각이 무뎌졌다는 얘기다.

어쨌든 정의된 바는 없지만 전체적인 의견을 종합해 보면 의류는 70% 이상, 음식은 40% 이상 싸게 파는 가격을 초저가라고 할 수 있다. 남는 게 별로 없는 초저가 전략을 도입하는 등의 필사적인 노력에도 40대 자영업자의 연 평균소득은 도시근로자의 52%에 불과한 2725만원에 그치고 있는데, 이 비율은 2001년의 68%보다 무려 16%나 떨어진 수치여서(한국경제연구원) 우려되는 바가 크다.

요즘 소상공인들은 물론, 창업자들도 이런 현상이 얼마나 계속될 것인지 궁금해 한다. 결론부터 말하면, 피부에 와닿을 만큼 좋아지는 일은 이제 없을 것이다. 단순히 일본경제를 닮아간다는 우려나 작금의 경기 때문만은 아니다. 소비자 행동 측면에서 보더라도 절약해야 하는 상황이 3~4년 이어지면 그게 습관이 돼서 안 쓰게 되는데 1997년 IMF(국제통화기금) 구제금융과 2003년 카드대란, 2008년 미국발 서브프라임모기지 사태가 잇달아 강타함으로써 국내 소비자들이 주머니를 꽁꽁 잠가 버린 탓이다.

게다가 돈을 써야 하는 중장년층은 고령화까지 겹쳐 가뜩이나 미래가 불안하던 참인데 최근 불거진 연금논쟁이 각성제 역할까지 하는 바람에 소비심리를 더욱 어렵게 만들어 버린 것도 또 다른 이유로 작용한다.

어쨌든 여러 업종들의 초저가 전략은 거스를 수 없는 흐름이다. 그렇다고 무작정 초저가만을 추구하다 보면 ‘많이 팔고도 실패하는’ 우를 범할 수 있다. 따라서 초저가에 따른 높은 원가 비중을 인건비나 임대료 등 다른 지출을 줄이는 방법으로 극복해 나가는 지혜가 필요하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경기가 회복되어 이러한 극단적인 전략을 쓰지 않더라도 다 같이 잘 되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