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수리 5형제, 프레시맨에 열광하던 세대. 똘똘 뭉치기만 하면 어떤 악당도 무찔렀던 시대. 불과 10여 년 전만 해도 단결은 힘의 상징이었다. 그런데 지금은? 배트맨, 스파이더맨의 특별한 능력에 주목한다. 자신만이 사용할 수 있는 기술은 힘이요, 생존 경쟁력이 됐다. 뭔가 차별화된 1%. 디테일의 힘은 새로운 영웅의 캐릭터를 만들었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과거 규모의 경제가 성장 원동력이 됐다면 현재는 차별화된 기술과 서비스가 경쟁력이다. 저마다 신성장 동력을 찾고 핵심 사업 육성에 발 벗고 나서는 이유다. 사업 분할 움직임은 특별한 1%를 만들기 위한 첫걸음이다. 작지만 강한 움직임. <이코노믹리뷰>는 사업 분할을 통해 승수 효과를 쌓고 있는 기업 사례를 통해 앞으로 한국 경제가 나가야 할 길을 모색해 봤다. <편집자 주>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아라. 그리고 바구니를 잘 감시하라.” 철강왕 앤드류 카네기는 자녀들에게 항상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투자에 있어 선택과 집중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미국의 소설가 마크 트웨인도 현명한 사람의 조건으로 <바보 윌슨>이란 책에 케네디 문구를 인용했다. “평범한 사람이 성공을 하기 위해선 집중력이 필요하다”고 했다. 19∼20세기를 살았던 CEO의 철학이다. 그런데 지금은? “계란을 한 바구니에 담지 말라.” 21세기를 대표하는 CEO인 워렌 버핏의 철학이 새로운 투자 패러다임으로 변했다. 분산 투자를 통해 위험 요소를 최소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철강왕 카네기와 워렌 버핏은 막대한 부를 쌓은 CEO인 동시에 성공한 투자가란 공통점을 갖고 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해 냈고, 역사에 기록을 남기고 있는 점도 흡사하다. 비슷하지만 두 사람의 투자 패턴에는 차이가 있다.

집중 투자와 분산 투자다. 물론 워렌 버핏도 처음부터 분산 투자를 한 것은 아니다. 카네기처럼 집중 투자를 했다. 워렌 버핏은 1985년 가족과 친척, 지인 등의 돈을 모아 집중 투자를 통해 짭짤한 수익을 올렸다.

또 초콜릿을 판매하는 시즈 캔디 숍스에 자산의 3배가 넘는 금액을 투자, 지금의 버크셔헤서웨이를 만드는 발판을 다졌다. 카네기와 같이 집중을 통해 성장을 이룬 셈. 그런 그가 변하기 시작한 것은 막대한 부를 쌓고 난 직후다.

집중 투자에서 분산 투자로 투자 패턴을 바꿨다. 급변하는 글로벌 경제 환경에서 리스크 관리를 수월하게 할 필요가 있다는 판단에서다. 시대를 읽는 혜안과 대처방법은 워렌 버핏을 세계 최고의 투자가로 만들었다.

LG그룹은 2003년 LS그룹, 2005년 GS그룹으로 기업분할을 한 뒤 2~3배 가량의 매출 상승 효과를 거뒀다. 왼쪽부터 구본무 LG그룹 회장, 허창수 GS그룹 회장, 구자홍 LS그룹 회장.


汎 LG家 삼각분할 ‘황금비율’

경제 변화의 속도는 갈수록 빨라지고 있다. 세계 경제 석학들은 “시간을 거듭할수록 변화의 속도는 더욱 빨라질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경제학자로 월스트리트에서 진출했던 고 피터 번스타인은 “현재와 과거의 경제를 구별하는 기준은 리스크의 지배”라고 밝힌 바 있다.

경제에서 리스크는 일상적이다. 성공과 실패의 중심엔 항상 리스크 관리가 있다. 현재와 같이 급변하는 경제 환경에서 기업이 생존하기 위해선 리스크 관리가 필수란 얘기다.

한국 경제에도 이 같은 상황이 적용된다. 1950년대부터 규모의 경제, 집중 투자로 기업이 성장을 꾀했다면 앞으로는 리스크 관리가 글로벌 기업의 성장 여부에 중요한 잣대가 될 전망이다. 기업들은 저마다 글로벌 금융 위기를 겪으면서 리스크 관리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실감했을 게다.

리스크 관리 중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사업 분할이 꼽힌다. 재무건전성을 확보하고, 핵심 사업의 경쟁력 향상을 이끌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경쟁력 향상은 자연스레 매출 증대로 이어진다.

사례는 있다. 범LG가를 보자. 2003년 LG그룹에서 LS그룹, 2005년 GS그룹으로 사업 분할을 했고, 그룹별 매출의 성장세는 괄목할 만하다. 사업 분할의 승수 효과를 톡톡히 누리고 있다. 각각 전자와 석유, 기계부품제조업을 주력분야로 삼고, 핵심 역량을 키운 결과로 풀이된다. 특히 분할된 사업 군에 따른 리스크를 최소화 한 것도 한몫 거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수치로 보면 확연히 드러난다. LG그룹의 2003년 매출액은 66조 원. 2005년 매출은 78조 원으로 늘었고 2007년엔 94조 원, 2009년 125조 원을 기록했다. 지난해엔 141조 원(추정치)에 이를 전망이다.

LS그룹과 GS그룹의 매출 성장세도 놀랍다. LS그룹의 2003년 7조의 매출액이 2007년엔 13조2230억 원을 기록했다. 2009년엔 21조 원, 지난해 매출액은 50조 원(추정치)으로 증가할 것으로 보인다.

GS그룹은 분리 첫해인 2005년 매출 23조1000억 원을 시작으로 꾸준히 증가하고 있다. 2007년 34조 5000억 원, 2009년 43조9000억 원으로 늘었고, 지난해엔 52조 원(추정치)을 기록했다.

세 그룹 모두 매출 총액을 기준으로 했을 때 2∼3배 이상의 성장을 이뤄낸 것이다. 증권가 한 관계자는 “구씨와 허씨 가문의 기업 분할이란 측면이 있지만 리스크 관리와 핵심 사업 강화 차원의 사업 분할로 매출 성장과 글로벌 경쟁력 확보가 긍정적 결과를 가져왔다”고 분석했다.

LG그룹 계열사인 LG화학도 사업 분할을 통해 매출 확대를 이뤘다. LG하우시스는 2009년 LG화학에서 분할, 국내 최대 건축장식자재 업체로 성장했다. 그린 홈 정책, 스마트 그리드에 맞춘 기술 개발과 투자가 성과로 이어졌다.

미국과 중국 등 해외 시장 진출이 확대는 기본. 한명호 대표는 “훌륭한 제품과 서비스를 제공해서 먼 곳의 고객도 스스로 찾아오게 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그는 또 “올해 신제품 조기 출시를 통해 글로벌 시장에서 점유율을 확대해 나갈 것”이라고 강조했다.

LG하우시스는 분할 이후 2010년 매출 1조9391억 원, 영업이익 601억 원을 기록했다. LG화학은 10년 전인 2001년 LG생활건강과 LG생명과학의 사업 분야를 분할, 매출 상승이란 승수 효과를 거둔 바 있다.


종합 에너지화학 기업의 대명사인 SK이노베이션은 2020년까지 매출 120조원, 영업이익 11조원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올해 4개의 사업군으로 분할, 독자법인을 출범시켰다.

성장 날개 단 SK의 분할도 주목

SK이노베이션은 올해를 사업 분할을 통해 매출 극대화를 꾀할 방침이다. 2009년 10월 윤활유 사업이 분할로 만들어진 SK루브리컨츠는 놀라운 성장세를 보였기 때문이다. SK루브리컨츠의 2010년 매출액은 2조55억 원, 영업이익 2986억 원의 역대 최고 실적을 거뒀다.

특히 윤활유 사업분야의 분할을 통해 경쟁력 확보에 나선 뒤 스페인 정유회사 랩솔을 비롯해 글로벌 석유업체로부터 사업파트너 제의가 들어오고 있다. 종합회사의 일개 사업부가 아닌 사업체로서 윤활유 부분의 기술경쟁력이 높게 평가됐기 때문이다.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사업 분할 이후 경쟁력 강화가 이뤄졌고 전문사업 영역 구축을 바탕으로 해외 기업들로부터 문의전화가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SK이노베이션은 SK루브리컨츠를 시작으로, SK에너지, SK종합화학 등 사업분야에 따른 분할을 통해 4개사 체제를 운영할 계획이다.

불확실한 경영환경 변화에 신속한 대응과 빠른 의사결정을 통해 리스크 부담을 줄여 성장 가속화를 추구하겠다는 것이다.

큰그림은 그려졌다. SK이노베이션은 기술력을 바탕으로 정보전자소재, 배터리, 석유개발, 기술기반의 신규사업 개발을 담당하게 된다. SK에너지는 국내 1위 석유 사업자인 동시에 세계적 트레이딩 업체, SK종합화학은 중국 시장 공략을 통한 아시아 최고 화학회사로의 성장을 목표로 하고 있다.

구자영 SK이노베이션 사장은 “40조 원의 매출을 거두는 회사가 2020년 매출 120조 원, 영업이익 11조 원이라는 비전을 달성하기 위해서는 석유, 화학, 윤활유, 자원개발과 첨단 에너지 기술에 이르기까지 각 사업 영역에 최적화된 경영시스템을 갖추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해 사업 분할을 택했다”고 했다.

정보전자소재·배터리(2차 전지)·석유개발·윤활유 사업군의 경쟁력 강화를 통해 매출 확대를 꾀하기 위한 결정이라는 얘기다.

SK이노베이션은 사업분할을 결정 한 뒤 각 분야에서 활발한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박스기사 참조)

SK이노베이션 관계자는 “각사 특성에 맞는 최적화된 경영과 시너지 발휘를 통해 2011년 매출 59조 원, 영업이익 2조 원의 목표를 세웠다”고 말했다.

김세형 기자 fax123@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