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대한항공

대한항공의 경복궁 옆 호텔 건립 계획이 풍문여고의 이전 확정에 따라 새롭게 조명 받고 있다.

이번 풍문여고 이전 확정으로 ‘200m 이내 관광호텔 건립 금지’ 조항에 묶여 10년 넘게 빈 공터로 놀리던 자리에 호텔이 들어설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기 때문이다.

아울러 그동안 논란이 됐던 정치권과 시민단체, 교육기관들의 주장과는 다른, 새로운 속사정이 드러남에 따라 대한한공의 ‘경복궁 옆 호텔’이 재부각되고 있다.

경복궁 옆 호텔, 진행과정

대한항공은 지난 2008년 6월 삼성생명으로부터 옛 미국대사관 직원숙소 부지인 송현동 일대의 3만 7000여㎡를 2900억원에 매입해 7성급 한옥 호텔 신축을 추진해 왔다. 삼성생명은 2002년 6월 국방부로부터 매입을 했으니 빈 공터로는 10년넘게 유지되고 있는 것.

하지만 이 부지는 풍문여고와 덕성여중, 덕성여고 등 3개 학교와 인접해 있어 현행 학교보건법 ‘200m 이내 관광호텔 건립 금지’ 조항에 막혀 진전되지 못했다.

지난 2010년 대한항공은 서울시 중부교육청이 학습권 침해를 이유로 호텔 신축 계획을 불허하자 행정소송을 제기했지만, 3심까지 간 끝에 패소로 끝났다.

대한항공의 호텔 신축 계획이 무산되는 듯해 보였으나, 지난해 8월 청와대 간담회에서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이 특급 관광호텔의 건립규제 완화를 건의하며 새로운 국면을 맞았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시 조 회장의 건의에 화답한 후 경복궁 옆 호텔 건립에 대한 새로운 물꼬가 트이는 듯 했다. 하지만, 지난해 말 호텔 건립 추진을 주도하던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땅콩회항’ 사건이 발생하며 모든 논의가 다시 원점으로 돌아갔다.

임시국회, 관광진흥법 개정안

그동안 수차례 논의와 논란을 거듭하던 대한항공의 경복궁 옆 호텔이 다시 수면위로 부각된 건 지난 4월 임시국회에서 관광진흥법 개정안이 논의될 예정이었기 때문이다.

새누리당과 문화체육관광부 등 정부는 지난 2012년 제출돼 2년 넘게 표류하던 관광진흥법 개정안을 4월 임시국회에서 처리하기로 합의한 것으로 알려졌다.

관광진흥법 일부 개정안은 ‘유해시설이 없는 100명 이상 수용할 수 있는 관광호텔을 학교 50~200m 이내(학교정화구역)에 신축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하지만, 지난 11일 막을 내린 4월 임시국회는 공무원연금 개혁을 둘러싼 대립과 개정안을 두고 야당과 시민단체의 반발이 거세지며 결국 처리가 무산됐다.

말 많고 탈 많았던 관광진흥법 개정안 처리가 무산됨에 따라 대한항공이 8년을 기다려온 경복궁 옆 호텔 건립도 또 한번 고배를 마셨다. 하지만 지난 17일 전격적으로 서울시가 풍문여고를 매입한다는 보도가 전해지며 또 다시 새로운 국면에 들어서게 됐다.

서울시, 매입 풍문여고 2017년 자곡동 이전

서울시는 학교법인 풍문학원으로부터 서울 종로구 안국동 175-2 풍문여고 부지 1만 3839㎡를 감정평가 결과인 1030억원에 매입하기로 했다. 시는 매매계약을 이달 내 체결하되 땅값은 3년에 걸쳐 나눠서 지불한다.

시는 오는 2017년 3월 풍문여고가 강남구 자곡동 내곡지구로 이전하면 건물을 그대로 리모델링해 2018년 하반기까지 서울공예문화박물관으로 만든다는 계획이다.

풍문여고 자리가 경복궁과 국립현대미술관 서울관과 가까워 문화벨트를 형성할 수 있고 공방들의 전통적 터전인 북촌과 인사동의 경계에 있어 공예문화박물관 입지로 최적이라는 판단이다. 현재 북촌 인근에는 110여개, 인사동 인근에는 50여개 공방이 있다.

공예문화박물관에는 현대공예작품을 주로 전시할 예정이며, 시는 전시공간 외에 연구공간이나 작업공간을 설치해 이 공간이 공예문화와 산업의 허브가 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다.

서울시 관계자는 “풍문여고 인수를 놓고 대한항공의 ‘경복궁 옆 호텔’과 연관한 질문을 많이 한다”며 “이번 시의 결정은 대한항공 건과는 무관하며, 덕성여중과 덕성여고가 남아 있기 때문에 대한항공의 호텔 건립을 도운 것 아니냐는 의혹은 터무니없는 이야기”라고 밝혔다.

그는 또 “아울러 이번 인수 건은 당초 시가 계획했던 일이 아니다”라며 “시 교육청의 인수 요청이 들어와 검토한 후 문화재 보존과 육성 차원에서 결정한 일”이라고 덧붙였다.

▲ 출처= 네이버

서울시교육청, 학교 이전 입장

대한민국의 인구가 감소하고 노령인구보다 청소년 및 유아인구가 더 적어지고 있다는 통계는 이미 알려진 사실이다. 아울러 매년 입학하는 학생이 줄거나, 아예 입학생이 없어 유지 조차 힘든 학교가 속출하고 있다. 최근에는 지방의 산골마을만이 아닌 서울시내 학교들의 통폐합이나 폐교 움직임도 가시화 되고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초등교육기관으로 1894년에 설립돼 지난해 120주년을 맞은 종로구 교동초등학교도 2011년 이후 통폐합 논란이 일고 있다. 지난해에는 감사원이 이례적으로 교동초등학교 등 소규모 학교의 실사에 나섰다.

올 초에는 금천구 신흥초등학교와 흥일초등학교가 통합 개교됐다. 이들 학교의 학생 수는(389명·431명) 교동초등학교 보다 많다.

교동초등학교처럼 전교생이 200명 이하인 소규모 학교는 서울 지역 9곳을 비롯해 전국에 2000여곳에 달한다.

서울시교육청의 업무 가운데 하나가 이처럼 학생이 부족한 학교들을 학교가 부족한 지역으로 이전시키는 것이다. 최근 서울시가 매입하겠다고 밝힌 풍문여고 역시 이 같은 속사정으로 오는 2018년까지 강남구 소재 내곡지구로 이전한다.

강북지역에서 다른 지역, 시민이 많이 거주할 뉴타운 등으로 이전하는 여자 고등학교는 풍문여고 외에 계성여고도 있다.

계성여고는 서울 명동성당 내에 있는 학교로 지난해 길음뉴타운으로의 이전이 승인됐다. 계성여고는 명동성당측이 매입했으며 명동성당의 역사적 가치와 유지를 위해 구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계성여고나 풍문여고 등 강북 소재의 많은 학교들이 학생 부족으로 운영상황이 좋지 못하다”라며 “이들 학교가 위치한 지역은 역사적 가치와 문화관광 등으로 유동인구는 많지만 거주자는 많지 않은 지역들”이라고 밝혔다.

이어 “사실 강북지역 여고의 이전은 몇 년 전부터 추진돼 온 사안이며 지난 2011년 덕성여고에 먼저 제안한 바 있다”며 “당시 대한항공 측과 인수 논의가 있었지만 잘 되지 않아 계성여고와 풍문여고가 먼저 승인 받게 됐다”고 덧붙였다.

▲ 출처= 덕성여고

덕성여중‧고 및 덕성학원의 입장

서울시교육청 차원에서 학교와 학생수의 균형을 위한 수급정책이 오래전부터 진행돼 왔으며, 그 첫 번째 대상이 풍문이나 계성이 아닌 덕성여고였다는 것이다.

서울시 중부교육청이 학습권 침해를 이유로 대한항공의 호텔 신축 계획을 불허한 시점과 비슷한 시기로 보인다.

이에 대해 덕성여고 관계자는 “당시 교육청에서 여고에 이전 제안을 해 왔지만 여중과 별개로 진행할 수 있는 건도 아니었다”며 “관련 내용은 중학교 쪽에서 통합 관리하고 있다”고 밝혔다.

덕성여고는 1920년대 근화여학교로 시작해 1945년 지금의 덕성여고로 개명했다. 학교법인도 근화에서 덕성학원으로 이름을 바꿨고 현재 덕성여중과 덕성여고, 덕성여자대학교 등을 운영 중이다.

덕성여중 측은 학교 이전과 관련한 사항은 학교법인 측에서 관리하고 있다며 “단순히 중학교나 고등학교만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 법인 이사회에서 결정할 사안”이라고 밝혔다.

덕성학원 관계자는 “지난 2011년 교육청의 제안도 있었고 대한항공 축에서도 매입의사를 밝히며 논의가 있었던 건 맞다”며 “구체적인 내용을 밝힐 수는 없지만 당시에는 잘 진행되지 않았다”고 전했다.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덕성학원과 대한항공 간의 조율은 현재진행형인 것으로 알려졌다. 다만, 대한항공과 덕성학원 모두 논의 여부에 대해 함구 중이다.

▲ 출처= 서울시

대한항공 Vs 덕성학원, 인내심 싸움

경복궁 옆 호텔을 건설하기 위한 방법은 국회에서 관광진흥법 개정안을 통과시키는 것과 학교법인 덕성학원과의 조율을 통한 부지 매입 2가지 방법이 있다.

국회를 통한 법 개정은 여야가 공무원연금 등을 놓고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어 사실상 언제 본회의에서 논의될지 알 수 없는 상황이다. 아울러 이 법을 놓고 시민단체 등이 ‘대한항공에 대한 특혜’를 지적하고 있어 법안이 통과된다 하더라도 비난을 피해가기 쉽지 않아 보인다.

덕성학원을 통한 부지 매입이 사실상 가장 확실한 방법이지만 이미 한번 조율에 실패한 만큼 이 역시 쉽진 않다. 하지만 덕성학원 역시 과거와는 다른 상황을 맞고 있어 국회를 통한 개정안 통과보다는 가능성이 높아 보인다.

우선 대한항공의 입장에서는 시간이 갈수록 유리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법안의 경우 일부 시민단체 등에서 교육권과 문화재 보호를 이유로 법안 통과를 반대하고 있지만 호텔 등 관련 업계에서는 대한항공만이 아닌 업계를 위해 필요한 개정임을 주장하고 있다.

올 초 한국관광협회중앙회와 한국여행업협회 등 국내 관광업계 단체들은 인사동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현행 학교보건법은 관광호텔을 유흥주점, 단란주점, 사행행위장과 같은 탈선·유해 영업시설로 규정해 국내 관광산업 발전을 저해하고 있다”며 법 개정을 촉구하는 공동성명서를 발표했다.

관광업계는 “개정안으로 인해 직접적으로 수혜를 받는 것은 23개 중소호텔”이라며 “대한항공의 경복궁 옆 호텔과 개정안의 직접적인 연관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한류를 통해 입국하는 관광객들을 위한 숙박시설이 부족하다는 주장과 관광산업 활성화를 위한 전재조건이란 점, 규제 완화를 통한 경제부흥을 추진 중인 정부 입장과도 맞물린다.

따라서 시간은 더 걸리고 일부 단체들의 비난은 받을 수 있지만 결국 허용하는 쪽으로 흐를 공산이 크다.

반대로 덕성학원 입장에서는 버티며 몸(?)값을 올리기에는 과거와 달리 상황이 결코 유리하지만은 않다. 국회를 통해 개정안이 통과될 경우 대한항공이 굳이 매입에 나설 이유가 없게 된다. 또, 학생 수가 줄고 있다는 점도 장기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다.

덕성여고의 경우 한때 학생이 많을 때는 오전반과 오후반으로 나눠 2부제 수업을 진행했다. 이후로도 1000여명이 넘는 학생 수를 유지해 왔지만 2010년 이후 입학생 감소하며 지난해 기준으로 898명이다. 덕성여중은 지난해 기준 273명으로 파악되고 있다. 정부의 지원 없이 독립적으로 운영하는 사립학교 입장에서는 입학생 감소가 무엇보다 큰 문제다. 여기에 관광단지 조성사업을 추진함에 따라 자금이 조달을 위한 해법이 필요한 상황이다.

학교법인 덕성학원은 지난달 29일 포항시에 ‘영일만관광단지 지정 및 조성계획’ 을 신청했다. 이에 포항시는 사업시행사인 경상북도에 승인신청을 요청하기로 했으며, 도시계획위원회 심의 및 사업계획이 승인되면 내년 초 착공에 들어간다.

영일만관광단지는 포항시 남구 동해면 발산리와 구룡포읍, 호미곶면 일원 약 352만㎡ 면적에 오는 2021년까지 민자 약 5639억원을 투자해 호텔·콘도와 골프장, 워터파크 등 다양한 문화시설을 조성하는 사업이다.

▲ 서귀포 칼 호텔. 출처= 대한항공

대한항공Vs덕성, 달라진 상황 유불리는?

상황이 꼭 대한항공에게만 유리한 건 아니다. 강북 지역의 학생 수 감소로 시 교육청이 계성여고와 풍문여고의 이전을 승임함에 따라 이들 학교로 나눠질 학생이 덕성여고로 몰려 오히려 학생 수가 증가할 수도 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강북 지역에서 학생 수와 학교 수를 고려해 이전을 학교 수는 여고의 경우 2곳이었기 때문에 현재로서는 여고의 승인을 고려하고 있지 않다”며 “따라서 대한항공과 덕성학원이 매각에 합의한다고 해도 이전 승인을 받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밝혔다.

아울러 국회에서 잠자고 있는 관광진흥법 개정안이 통과된다고 해도 또 다른 걸림돌이 생긴다. 개정안은 ‘유해시설이 없는 100명 이상 수용할 수 있는 관광호텔을 학교 50~200m 이내(학교정화구역)에 신축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 출처= 서울시

여기서 문제는 50m라는 부분이다. 덕성여중 및 덕성여고와는 50m 이내의 거리에 대한항공의 부지가 위치한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해당 호텔 추진 건은 이미 3심까지 가서 재판에서 교육청이 승소했다”며 “대한항공의 송현동 부지는 학교 경계선 50미터 이내에 있기 때문에 개정안의 효력이 미치지 않는다”고 설명했다.

3심에서 패소할 때 법원이 내건 사유는 ‘학교’ 옆이라는 이유다. 따라서 대한항공으로서는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해도 호텔 건립을 위해서는 덕성학원을 통한 부지 매입이 필요한 상황이다.

대한항공이 송현동을 포기하지 못하는 이유는 ‘경복궁 옆 문화 랜드마크 건설’이라는 목표 때문이다. 이를 통해 경복궁과 북촌, 인사동을 잇는 문화벨트를 완성한다는 청사진을 수립한 상태다.

대한항공 관계자는 “단순히 숙박을 통해 이익을 내는 호텔이 아닌 공연장과 갤러리, 쇼핑센터 등을 함께 건설해 복합문화시설을 운영할 계획”이라며 “국가 경제와 한류문화 발전이라는 큰 틀에서 긍정적으로 지켜봐 주길 바란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