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청계천 상가를 뒤지며 소위 빨간 테이프를 구하기 위해 혈안이 됐던 소년이, 어느날 우여곡절끝에 진귀한 일본 AV(성인 비디오)를 비싼 값을 치르고 구입했다고 한다. 이후 소년은 부모님이 집을 비우는 순간만을 하이에나처럼 노리다가 기적적으로 기회를 포착,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비디오를 재생했다. 하지만 기대했던 반라의 여인이 등장하기는 커녕 머리 벗겨진 중년남자가 칠판에 분필을 슥슥 문지르는 장면이 나왔다고. 결국 빨간 테이프는 일본 AV가 아니라 '일본어 산책'이라는 제목의 교육방송이었다는 전설. 모두 자신의 경험담은 아니더라도 한 번 정도 '들어는 봤을 것'이다.

최근 소위 딸통법으로 통하던 '정보통신사업법 시행령' 개정안이 한바탕 후폭풍을 일으키며 SNS를 뒤덮은 광경은 무엇을 시사하는가. 그 실체를 냉정하게 따지면 일반인에게 큰 무리가 없는 법이라는 것을 알 수 있지만 '딸통법'의 공포가 SNS를 휘감았던 장면은 그 자체로 묘한 시사점을 던진다. 바로 성인 콘텐츠, 즉 포르노가 SNS를 포함한 IT산업의 핵심이자 선두라는 다소 적절한 결론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확인되지 않은 딸통법의 공포가 SNS를 휘감은 지점이 이해가 되는 순간이다.

최근 페이스북이 인수한 가상현실 회사 오큘러스의 수장이 공식석상에서 "포르노 등 성인 콘텐츠는 규제 대상이 아니다"라고 단언해 눈길을 끈다. 실제로 실리콘밸리 가상현실 컨퍼런스(Silicon Valley Virtual Reality Conference)에 참석한 팔머 럭키 오큘러스 창업자가 한 말이다.

향후 소비자용 가상현실 기기를 출시할 것으로 보이는 팔머 럭키 오큘러스 창업자는 무슨 생각으로 이런 말을 한 것일까? 소위 아청법의 공포가 세상을 휘어잡고 있는 우리의 인식과는 상당한 괴리감이다. 하지만 곰곰히 생각하면 이는 '당연한 말'이다.

포르노가 IT산업, 특히 시각 미디어 산업을 열정적으로 발전시켰다는 점은 부정하기 어렵다. 1980년대 베타 방식으로 가정용 비디오 시장을 노렸던 소니가 VHS 방식의 마쓰시타에 패하고, 2000년대 디지털 비디오 디스크(DVD) 표준규격 정국에서 소니가 블루레이를 내세워 도시바의 HD DVD를 이겼던 역사를 보자. 이들의 승부를 가른 결정적인 배경이 무엇인가? 물론 다양하지만, 업계에서는 포르노 업계의 선택이 주효했다고 본다. 포르노 업계의 간택을 받는 방식이 곧 시장의 선택을 받았다는 뜻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잠시 부흥했던 3D시대를 넘어 UHD 시대를 맞아 더욱 고조되고 있다. 자극적인 시각물을 제공하는 포르노 업계가 곧 업계의 역사로 자리매김하고 있기 때문이다. 3D 열풍이 불던 2010년대, 많은 사람들은 영화 아바타의 아름다움에 매혹되면서도 새로운 가능성을 찾기도 했다. 국내의 경우 이견의 여지는 있으나, 최초의 3D 상업 영화를 '나탈리'로 보기도 한다. 나탈리는 예술성 있는 성인영화다. 물론 2000년 아이돌 HOT가 출연한 영화 평화의 시대, 심지어 1960년대 임권택 감독의 영화 천하장사 임꺽정을 3D의 시초로 보는 시각도 있다.

이러한 분위기가 가상현실 정국에서도 재연되고 있다. 흥미로운 것은 '시각기술'의 견인을 주도했던 포르노가 가상현실에 이르러 총체적 IT의 발전을 자극하는 방향으로 가닥을 잡는 대목이다. 모든 ICT 사업자가 플랫폼을 구축해 생태계를 완성하는 일에 집중하면서 킬러 콘텐츠의 등장을 고대하게 됐으며, 이러한 분위기에 포르노가 역할을 담당하는 분위기다.

일단 가상현실이다. 지난 4월  20일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에 따르면 중국의 스타트업인 UC글래스가 무선 시스템을 이용해 육체적인 접촉이 없어도 섹스가 가능한 가상현실 기기를 개발해 최종실험단계에 있다고 보도했다. 시각이 아닌 촉각에 방점을 찍었다는 뜻이다.

보도에 따르면 UC글래스는 헤드셋을 착용한다는 점에서 기어VR과 같지만, 자체 제작한 센서칩을 통해 촉감의 영역까지 아우른다. 벌써부터 성인용 제품을 다루는 기업들의 관심이 뜨거운 상황이다. 다만 UC글래스가 클라우드 펀딩을 통해 자금을 모집한다는 점에서 실제 기기가 출시되기까지는 시간이 걸릴 것으로 보인다. 일각에서는 현실적인 장비 수준을 고려하면 아직 시기상조라는 주장도 나오고 있다. 일단 UC글래스는 섹스를 지원하는 가상현실 기기를 1대에 200달러로 책정한 상태다.

최근에는 가상현실 기기로 포르노를 즐기는 영상이 공개되어 상당한 관심을 받기도 했다. 이미 업계에는 "가상현실 포르노는 대박날 것"이라는 말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다.

결국 확실한 것은, 가상현실이 국방과 교육, 의료, 심지어 저널리즘의 영역으로 파고들며 ICT 업계에 등장하는 모든 기술력을 총망라하는 상황에서 시각기술의 자극제였던 포르노가 킬러 콘텐츠로 부상하고 있다는 점이다. 결국 두 영역은 연결되고 있으며, 그 자체로 포르노 산업의 추이를 ICT 업계에서 냉정하게 분석해야 한다는 다소 씁쓸한 논리에 접근할 수 있다. 그 과정에서 파생되는 부작용은 온전히 책임져야 한다는 전제로. 더욱 씁쓸해지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