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부회장, 우리는 무엇을 보았나

한국전쟁 이후 60년이 넘게 흘렀다. 그동안 국내 경제개발을 책임지던 창업세대와 2세대는 땀 냄새 물씬 풍기는 영웅시대를 마감하고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있다. 그리고 필연적으로, 젊고 패기 넘치는 3세대와 4세대가 전면에 나서며 새로운 세상을 꿈꾸고 있다.

창업세대와 2세대가 전쟁의 폐허를 딛고 말 그대로 황무지의 기적을 이뤘다면, 이를 승계하는 3세대와 4세대는 철저한 경영수업과 국제적 마인드를 바탕으로 패기 넘치는 경쟁력을 가감 없이 펼치고 있다는 평가다. 하지만 여기에는 ‘온실 속 화초’와 ‘세련된 경영 능력’이라는 극단의 시선이 첨예하게 갈린다. 이는 삼성도 마찬가지다.

삼성은 1938년 故 이병철 회장이 자본금 3만원으로 대구에서 상회를 일으키며 풍운의 일보를 내딛었다. 이후 극적인 변곡점을 오가며 부침을 거듭하다 현재의 이건희 회장에 이르러 글로벌 기업으로 자리매김하기 이르렀다. 그리고 현재,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경영 전면에 나서며 또 한 번의 도약을 준비하고 있다. 이재용 체제의 삼성. 어디로, 어떻게 갈 것인가?

지난 15일 의미심장한 뉴스가 세상을 놀라게 만들었다. 삼성서울병원 등을 보유하고 있는 삼성생명공익재단과 삼성미술관 등을 가진 삼성문화재단이 임시 이사회를 열어 이재용 부회장을 이사장에 임명한다는 소식이었다.

이재용 부회장이 삼성생명공익재단과 삼성문화재단의 이사장직을 수행하는 것은 그 자체로 의미가 있다. 양 재단은 창업주인 故 이병철 회장과 2대인 이건희 회장의 비전과 의지를 고스란히 투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이러한 행보는 이재용 부회장 체제의 본격적인 시작을 알린다는 점에서 선언적인 의미가 있다. 물론 경영승계의 실리적 측면에도 의미가 있다. 삼성문화재단은 삼성생명 지분 4.68%(936만주), 삼성생명공익재단은 지분 2.18%(436만주)를 보유하고 있다. 이재용 부회장의 삼성의 지배력 강화에 든든한 우군이 될 전망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 능력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견의 여지가 있으나 e-삼성의 실패로 실제적인 경영 능력에 의문부호도 달리기 때문이다.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이재용 부회장이 반드시 넘어야 할 산이기도 하다. 결국 이건희 회장 와병 1년을 맞아 지금까지 보여준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 감각을 분석해야 한다. 조직 내외부에서 ‘JY스타일’이라 불리는 그의 경영 방식은 어떤 방향성을 가지고 있을까?

 

글로벌과 현장 경영

먼저 글로벌이다. 이재용 부회장은 지난 1년 동안 현장 경영의 기치로 글로벌 무대를 누볐다. 아버지 이건희 회장이 사업을 관통하는 화두를 제시하면 ‘지시’를 받은 조직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는 방식을 선호했다면, 이재용 부회장은 자신이 직접 전반에 나서 현장을 챙기는 스타일로 여겨진다. 여기에 글로벌 감각이 더해지며 전략적 유연성이 돋보인다. 이재용 부회장은 애플의 팀 쿡 CEO와 마이크로소프트 사티아 나델라 CEO를 연이어 만나 특허 문제를 해결하는 단초를 마련했으며,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CEO와 연이어 회동하며 새로운 성장동력을 모색하기도 했다. 오라클과의 협력도 비슷한 연장선상이다.

이러한 분위기는 올해를 기점으로 더욱 두드러진다. 지난 1월과 2월 삼성의 중국 및 일본법인을 연달아 방문했던 이재용 부회장은 곧장 삼성전자 DS 부문 임직원들과 미국으로 날아가 주요 고객사를 연이어 만났다. 3월에는 중국판 다보스 포럼으로 불리는 보아오 포럼에 참석해 시진핑 국가주석과 CITIC(중신)그룹 창쩐밍 동사장(董事長)도 만났다. 베트남 응우옌 푸 쫑 베트남 당서기를 만나 삼성그룹의 베트남 추가 투자를 약속하기도 했으며 최근에는 이탈리아의 자동차 제조 기업인 피아트-크라이슬러그룹의 지주회사인 엑소르 사외이사 자격으로 유럽으로 갔다.

조직 내부에 글로벌 DNA를 심기 위한 노력도 치밀하다. 삼성전자가 전자계열 CEO들을 대상으로 해외 사업장에서 정기적인 순환 근무하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이 단적인 사례다. 자신이이 글로벌 무대를 뛰며 조직 전체의 체질을 바꾸고자 하는 노력으로 풀이된다.

여기서 이재용 부회장의 영역 넓히기도 포착된다. 금융으로 활동 영역을 확장시키는 행보가 다수 보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10월 그룹 영빈관인 ‘승지원’에서 중국과 일본의 손해보험업계 관계자들과 회동하고 중국인민재산보험공사(PICC), 도쿄해상화재보험 대표 등과 만찬을 주도했으며 지난 2월 미국에서 열린 ‘비즈니스 카운슬’에서는 마스터와 비씨 등 글로벌 카드사 대표들과 만나 자사의 모바일 간편결제 솔루션인 ‘삼성페이’에 대한 협력 방안을 논의했다. 보아오 포럼에서 CITIC(중신)그룹 창쩐밍 동사장과 만난 부분과 같은 맥락으로 풀이된다.

이재용 부회장의 금융 분야 관심 롤모델은 미국의 GE일 가능성이 높다. 부침은 있으나 금융업과 제조업에서 동시에 강력한 가능성을 자랑하기 때문이다. 이를 위해 이재용 부회장은 글로벌 무대를 종횡무진하며 금융의 글로벌화를 위해 노력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성공 가능성을 두고 회의적인 시각을 거두지 않는 이들도 많지만, 최소한 이재용 부회장의 글로벌 전략이 전자를 넘어 금융으로 확산되는 대목은 다양한 가능성의 측면에서 긍정적이라는 분석이다. 이는 자연스럽게 현장 경영과 맞물리며 좋은 반응을 끌어내고 있다.

 

선택과 집중, 그리고 승부수

삼성이 방산 계열 4개사를 한화그룹에 매각하기로 결정한 배경에는 이재용 부회장의 의중이 짙게 배어있다는 것이 중론이다. 선택과 집중을 통해 자신의 강점을 제고하는 것은 성공하는 조직이 보여주는 동서고금의 진리다. 전격적으로 단행된 메가빅딜에 업계가 놀라는 이유다.

인수합병을 통해 과감한 승부수를 던지는 대목도 중요한 지점이다. 60조원이 넘는 현금을 보유하고 있는 것으로 추정되는 곳간도 풍족한 편이며, 무엇보다 의지가 높다. 지난 3월 삼성 수요사장단 회의 직후 김현석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사장이 “좋은 기업이 있으면 언제든 인수합병 검토가 가능하다고 본다”고 말한 대목은 이러한 삼성전자의 자신감을 여실히 보여줬다는 평가다.

실제로 본격적인 이재용 체제의 시작으로 여겨지는 지난해 5월부터 삼성전자는 비디오 앱 서비스를 제공하는 미국의 셀비를 인수했으며(2014년 5월) 사물인터넷 플랫폼 기업인 스마트싱스(2014년 8월), 시스템 에어컨 유통인 콰이어트사이드(2014년 8월), 모바일 프린팅 솔루션 기업인 캐나다의 프린터온(2014년 9월), 서버용 솔리드 스테이드 드라이브 기업인 프록시멀데이터(2014년 10월)을 연달아 사들였다. 올해에도 B2B를 염두에 둔 브라질의 심프레스(2015년 1월), 모바일 결제 스타트업인 루프페이(2015년 2월), 상업용 디스플레이 기업인 예스코(2015년 3월)를 빠르게 흡수하며 외연을 확장하고 있다.

하지만 이러한 행보가 단순한 몸집 불리기가 아닌, 실리적 이윤추구에 따라 이행되는 철저한 계획이라는 점은 재평가 받아야 한다. 업계에 따르면 최근 벌어진 삼성전자의 인수합병은 콘트롤 타워가 타깃을 설정하고 사업부가 실무를 맡는 일반적인 방식이 아닌, 역으로 사업부가 ‘더듬이’를 통해 적절한 기업을 물색하고 이에 필요한 동력을 콘트롤 타워가 맡는 방식으로 이뤄진다. “우리 기업을 인수해달라”는 요청이 쇄도하는 상황이지만 실질적인 인수합병은 사업부에서 내부적으로 먼저 점지하는 일이 많다는 뜻이다. 각 사업부가 인수합병 대상을 고르면 삼성전자 기획팀 내부 조직인 CD(Corporate Development)그룹이 전면에 나서 실무를 맡고, 중소형 인수합병은 권오현-윤부근-신종균 각 부문별 사장과 이상훈 경영지원실장이 참여한 경영협의회가 나서는 경우도 있다.

<월스트리트저널>은 현재의 삼성을 평가하며 “이재용 부회장은 이건희 회장과 다르다”고 전제한 뒤 “기업 규모의 성장에 집중했던 이 회장과 달리 실질적인 수익성에 방점을 찍을 것이다”라는 분석을 내놨다. 이는 선택과 집중의 연장선상에서 이해되는 부분이다.

경기도 평택에 세계 최대 반도체 라인 기공에 나선 대목도 마찬가지다. 이재용 부회장이 전면에 나서 삼성을 대표하는 공식적인 자리가 추가됐다는 의미 외에도, 핵심 성장 동력을 반도체로 삼아 의미 있는 행보를 시작했다는 점이 중요하다. 삼성전자는 현재 경기도 평택에 15조6000억원을 들여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생산라인 건설에 착수했으며 이는 단일 반도체 생산라인으로 사상 최대다. 삼성전자에 따르면 생산유발 효과는 41조원, 고용유발 효과는 15만 명에 달한다.

현재 삼성전자는 국내 화성 단지에서 메모리 반도체, 기흥 단지에서 시스템 반도체를 생산하고 있으며 미국 오스틴 공장에서는 시스템 반도체, 중국 시안 공장에서는 낸드플래시 메모리를 생산하고 있다.

젊은 리더십

이재용 부회장은 삼성이라는 이름이 주는 대중적인 관념과 달리 격식이 없고 소탈한 이미지를 가진 거의 유일한 인물이다. 전용기를 거의 사용하지 않고 손가방 하나 들고 출장에 나서는 모습은 이제 익숙해질 정도다. 동선마다 경영진들이 나섰던 이건희 회장과 분명한 차별점을 보인다.

B2B와 사물인터넷, 모바일 헬스케어 시장에 집중하는 대목과 변화에 능동적이고 빠르게 변하는 정세를 읽어내는 눈은 젊은 리더십을 갖췄다는 평가다. 보아오 포럼에 참석해 관광, 의료 및 모바일 헬스의 가능성에 집중한 지점은 결국 새로운 성장동력을 잡아내겠다는 의지와 긴밀하게 연결된다. 실제적인 이익을 노리는 이재용 부회장의 경영 ‘후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