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는 필리핀의 헌법학자였고 형은 미국에서 의사가 됐다. 명문 법률가 출신이지만 비교적 평범한 학창시절을 보내고 대학을 졸업했다. 졸업한 후에도 때마침 불어 닥친 아시아의 금융 위기로 금방 자리를 잡지 못했다. 회사들에 이력서를 냈지만 번번이 낙방했고 마닐라의 쇼핑몰과 KFC 매장에서 일을 했다. 엘리트 형은 평범한 동생의 미래를 걱정했다.

‘비글로벌 서울 2015’를 찾은 닉스 놀레도(Nix Nolledo) 대표를 지난 주 서울에서 만났다. 닉스 놀레도는 필리핀의 모바일 컨텐츠 기업인 서파스(Xurpas)의 창업주이자 필리핀에서 가장 성공한 스타트업 기업가다.

▲ 출처=닉스 놀레도

“언젠가 제 사업을 하고 싶었습니다. 창업하기에 음식 장사만한 게 있나 싶었어요. 그래서 식당에서 일을 배우고 있었습니다.”

KFC 매니저로 일을 하고 있을 때였다. 미국에 살던 형이 계속해서 인터넷 사업을 해보라고 성화였다. 1990년대 후반이던 당시 미국에서 인터넷은 이미 보편화돼 있었다. 주변을 가만히 보니 PC보다 휴대폰 보유율이 높았다. 당시 필리핀에서는 PC 사용자가 200만인데 반해 휴대폰 사용자는 600만이었고 모바일 기기가 더 저렴했다. 모바일 사업에 대한 확신이 생겼다.

IT업계로 뛰어들기로 한 놀레도 대표는 엔지니어도 아니었고 심지어 프로그램 하나 제 손으로 쓸 줄 모르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벤처 캐피탈로부터 거금을 투자받고 미국 유명대학 출신 기업가가 이끄는 경쟁사들도 두렵지 않았단다. 진짜 자산은 상상과 용기, 의지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서파스는 무서운 속도로 성장했다. 온라인 게임, 문자 서비스, e-커머스, 모바일 앱 등을 제공하는 종합 모바일 컨텐츠 기업으로 자리잡았고 방글라데시,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등으로 해외진출을 타진하고 있다.

서파스는 필리핀 주식거래 역사상 가장 성공적인 IPO로 꼽히며 지난해 필리핀 주식시장에서 IPO에 성공해 공개 첫날 상한가에 도달했다. 서파스의 시가총액은 지난해 말 기준 68억 페소, 우리 돈으로 1661억에 달한다. 하지만 서파스는 IPO 이전 단 한 번도 벤처 캐피탈의 투자를 받지 않았다. “왜 벤처 캐피탈 투자를 받지 않았냐고요? 방법을 몰랐으니까요.”

그는 “저는 KFC 매장의 매니저였습니다. 벤처 투자 유치 방법을 어떻게 알았겠어요?”하고 진솔하게 답하더니 이내 껄껄 웃었다. 그는 동업자 둘과 함께 자력으로 마련한 1500 달러를 가지고 서파스를 설립했다.

필리핀 IT업계 최초로 소비자 기술 분야를 개척한 인물로 평가 받는 그가 꼽는 성공비결의 첫번째는 공감력이다. 그는 “정말 고객을 잘 이해하고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가를 파악해 그들이 원하는 방식으로 제품을 파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말한다. 두번째는 창의력이다. 그리고 마지막은 장기 전략의 필요성을 강조한다. “경쟁자를 두려워 하거나 일희일비 하지 않게 된다”고 조언했다.

대표는 이번 한국 방문이 처음인데 처음엔 한국 인터넷의 속도에 놀랐다고  한다. 그는 한국을 필리핀과 비교하며 인터넷 인프라, 신용카드 보급률, 국민 경제 규모 등 여러 면에서 이미 발전한 시장이면서 동시에 많은 가능성을 가진 시장이라고 평가했다.

인터뷰 내내 놀레도 대표의 유머러스하고 친절한 성격이 전해졌다. 그는 평범한 자신의 성공비결을 묻거나 비(非)엔지니어 출신의 취약점과 같이 다른 불편한 질문에 답을 하는 중에도 종종 “어떤 경우에도 행복할 것(Be happy)”이라고 말했다.

언제나 긍정적인 태도로 자신의 일과 성공을 즐기는 듯 보이는 그에게 마지막 질문을 던졌다. 대표를 걱정하던 형은 요즘 뭐라고 하는가? “분명 자랑스러워 하는 것 같다”하고 놀레도 대표는 특유의 사람좋은 미소를 지어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