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4년 청나라와 일본은 조선의 주도권을 두고 자신들끼리 전쟁을 벌였다. 오래된 대륙세력을 대표하는 청나라와 신진 해양세력을 대표하는 일본이 사이에 낀 조선을 누가 차지하느냐를 두고 총칼을 겨눈 셈이다. 물론 전장은 조선. 피해도 조선이 입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2015년 ICT 시대. 오래된 대륙세력이던 청나라는 중화인민공화국이 되어 세상을 향해 날카롭게 뻗어나가기 시작했으며, 일본을 누르고 태평양을 중심으로 신진 해양세력이자 세계의 주인이 된 미국은 스스로의 강점을 강렬하게 자각하며 매서운 칼을 뽑아 들었다. 양측의 격돌은 피할 길이 없다. 아이러니한 지점은, 이번에도 무대는 조선에서 이름이 바뀐 대한민국이라는 점이다.

마윈 회장. 출처=플레시먼힐러드

중국의 마윈 회장이 이끄는 알리바바 그룹은 18일 제3자 브랜드 판매자를 위한 B2C 플랫폼인 티몰 ‘한국관’ 입점을 발표했다. 티몰 한국관은 중국 내 소비자들에게 정품 한국 제품과 여행 정보, 한국 문화 커뮤니티를 원스톱으로 제공하는 티몰 내 제1호 공식 온라인 국가관이다. 마윈 회장의 알리바바가 얼마나 국내에 공을 들이는지 확인할 수 있는 대목이다.

이에 마윈 알리바바 그룹 창립자 겸 회장과 최경환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18일 서울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센터에서 티몰 한국관 오픈 기념식을 가졌다. 앞으로 티몰 한국관은 aT 및 한국무역협회(KITA)와의 파트너십을 통해 한국 기업들에 중국 시장 진입의 플랫폼을 제공할 전망이다.

티몰 한국관 오픈은 올해 초부터 알리바바 그룹과 한국 정부 사이에 진행된 협업 논의의 산물이며 티몰 한국관 오픈과 함께 양측이 협의 중인 유통 협력, 청년 인턴십 프로그램 등도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다는 후문이다.

마윈 알리바바 그룹 회장은 티몰 한국관 오픈 기념식에서 “한국 산 전자제품, 피부 미용, 식음료 제품 등이 그 동안 중국 소비자들 사이에서 인기가 높았다. 중국 소비자들이 티몰을 통해 정품의 한국 제품들을 한 곳에서 쇼핑할 수 있게 돼 정말 기쁘고 만족스럽다”고 밝혔다.

더불어 알리바바는 이를 계기로 한국무역협회와 협업해 청년 인턴십 프로그램을 출범시킬 계획이다. 이 프로그램을 통해 100명의 한국 대학 졸업생들이 항저우에 위치한 알리바바 그룹 본사에서 인턴으로 활동하게 된다. 또 중국 소비자 사이에서 한국 제품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는 상황에서 알리바바 그룹의 물류기업인 ‘차이냐오(Cainiao)’는 중국 소비자에게 최적화된 ‘크로스 보더’ 물류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도록 한국 기업들과의 파트너십을 확대할 계획이다.

출처=플레시먼힐러드

하지만 전자상거래 업계에서는 마윈 회장의 등장에 노심초사하고 있다. 인천에 거대한 물류창고를 건설한다는 소식만으로 엄청난 파장을 일으켰던 마윈 회장이 단순히 모 신문사 컨퍼런스와 한국관 개설을 이유로 방한했을 가능성은 낮기 때문이다. 일단 티몰 한국관 오픈을 통해 국내 브랜드와 중국 소비자를 연결해주는 반대급부로 국내 오픈마켓 시장 진출을 타진하고 있다는 설이 파다하다. 이미 한국법인을 설립하고 가시적인 행보에 돌입한 대목도 이런 분석에 설득력을 더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알리바바가 막강한 경쟁력을 바탕으로 국내에 진출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국내 브랜드가 티몰 한국관을 통해 중국 소비자와 만난다며 좋아하는 사이 사실상 전자상거래 업계는 파탄날 가능성이 높다. 국내 전자상거래 경쟁력도 상당한 편이지만, 일단 규모의 경제 차원에서 승부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알리바바의 연매출은 170조 원이다.

시작은 소셜커머스일 확률이 높다. 쿠팡을 중심으로 나름의 경쟁력을 제고하고 있으나 알리바바가 박리다매와 무지막지한 마케팅으로 국내시장을 공략한다면 비슷한 전략을 구사하지만 체급이 다른 소셜커머스 업체가 일차적으로 위기에 처할 전망이다. 심지어 국내 소셜커머스 3인방은 진정한 의미의 소셜커머스라기보다 말 그대로 기습적 할인형 오픈마켓으로 변질된 상태다.

재미있는 것은 다음이다. 알리바바의 목표는 당연히 전자상거래 시장이며, 11번가나 G마켓 같은 오픈마켓이 그 대상이지만 해당 시장은 현재 미국기업 이베이가 점령했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 옥션을 인수하며 국내시장에 진출한 이베이는 2009년 당시 업계 1위인 G마켓도 손에 넣었다. 현재 옥션이 최대 30%의 점유율, G마켓이 최대 38%의 점유율을 가져가고 있다는 점을 고려하면 국내 오픈마켓 시장은 사실상 미국의 이베이가 주도하는 셈이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알리바바와 이베이의 재대결이다. 알리바바의 마윈 회장은 타오바오를 통해 속칭 ‘노르망디 상륙작전’을 바탕으로 2000년대 초반 중국 전자상거래를 휘어잡던 이베이를 물리친 바 있다.

당시 마윈 회장은 타오바오의 경쟁자는 이베이라는 공식을 충실하게 만들었으며 마케팅 루트로 대형 포털사이트를 포기하고 BBS, 개인 홈페이지를 집중 공략했다. 여기에 당시 이베이가 이취와 협력해 중국과 세계를 연결한다는 9.17발표를 무리하게 추진하자 여기에 착안, “중국과, 국민과 함께 하는 타오바오”라는 인식을 퍼트려 승기를 잡았다. 박리다매에 국수주의, 적절한 정부의 도움까지 겹쳤다. 결국 승리는 알리바바였다.

현재 이베이는 페이팔과의 결별이 초읽기에 들어간 상황이다. 페이팔이 떨어져 나가면 이베이의 경쟁력도 크게 낮아질 가능성이 높으며, 구글은 물론 알리바바가 이베이를 인수한병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실제로 지난 4월 미국의 포춘은 알리바바가 이베이를 인수할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하기도 했다. 결국 티몰의 한국관 개설은 다양한 가능성을 가진 셈이다.

그러나 이베이만 있는 것이 아니다. 클라우드 시장 진출이 먼저라는 말이 있지만 미국의 전자상거래 강자인 아마존도 있다. 만약 이베이가 알리바바에 인수되는 충격적인 사건이 발생한다고 해도 국내 전자상거래 시장을 겨냥한 중국과 일본의 전쟁이 계속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여기에 알리바바 외 JD닷컴과 같은 후속타자와 이베이, 알리바바 등을 위시한 미국의 전자상거래 업체들이 동시다발적으로 쏟아져 나올 경우 상황은 시계제로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결국 국내 전자상거래 시장은 업계의 경쟁력과 별개로 규모의 경제와 마케팅, 박리다매, 편의성 등 다양한 무기에 눌려 압사될 확률이 커지고 있다. 게다가 알리바바가 최근 번지고 있는 알리페이같은 핀테크 역량으로 다양한 가능성을 모색하면?

물론 전자상거래 시장 뿐 아니라 다양한 분야에서도 비슷한 분위기를 포착할 수 있다. 전자상거래 시장 외 다양한 영역에서 벌어지는 공통분모다. 넷플릭스가 상륙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비슷한 고민이 이어질 전망이다. 지금도 청일전쟁은 반복되고 있다. 결국은 지나친 배타주의를 경계한다는 전제로 경쟁력을 키워 대승적인 기회를 마련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