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만 예쁘다고 여자냐, 마음이 예뻐야지 여자지!’

가수 남진의 노래 ‘마음이 고와야지’의 노랫말이다. 1972년의 노래라 순진한(?) 맛이 있다. 요즘이라면 ‘얼굴만 예쁘면 여자고, 마음까지 예쁘다면 더 좋지!’ 또는 ‘마음만 예쁘다고 여자냐, 얼굴이 일단 예뻐야 여자지’라고 하지 않을까? 필자만의 생각이 아니다. 요즘 젊은이들 생각을 들여다보면 마찬가지다. 남녀를 소개해주고 상대방이 마음에 드느냐 물어봤을 때, ‘착해!’라고만 하면 싫다는 뜻이란다. 여자만의 문제가 아니다. 요즘은 남자들도 외모가 한몫한다. 식스팩을 위한 지방흡입이나, 눈썹 문신도 거부감 없이 한다. 과장하면 외모가 전부인 시절이다. ‘성형을 해서라도 예뻐지기만 하면 행복하겠어요!’라는 젊은 친구들이 적지 않다. 예전에는 마음만 예쁘면, 착하면 대만족이었다. 그렇다면 그 시절에는 나쁜 사람이 많아서일까? 아니면 요즘은 못생긴 사람들이 많아서일까? 그리고 외모가 출중하면 행복해질까?

외모와 행복의 관계

외모 또는 성형에 관련된 여러 연구를 살펴보면 외모 집착이 그리 문제가 되는 것도 아니다. 자신의 외모에 만족하는 사람이 직급, 급여, 회사 만족도 등에서 자신의 외모에 만족하지 못하는 사람보다 높은 점수를 보였다. 삶의 질에 대한 생각도 긍정적이고, 행복감도 훨씬 높았다. 또 성형 전후의 행복에 관한 연구도 마찬가지다. 성형 전보다 성형 후 행복도가 증가했다. 특히 유방확대술이 가장 많은 차이를 보였다고 한다. 이런 결과들만 보면 외모에 자신이 없는 사람들은 마음이 곱든 밉든, 우울해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연구를 자세히 들여다보면 생각이 바뀔 것이다.

우선 어떤 사람들이 자신의 외모에 만족할까? 남들이 보기에 객관적으로 평가해서 정말 아름답다면, 객관적으로 못생겼다고 판단되는 사람보다 만족하기 쉽다. 여기에 또 다른 함정이 있는데, 바로 외모는 객관적으로 평가하기 힘들다는 것이다. 필자가 학교에 다닐 때 동급생 중 정말 아름다운 여학생이 있었다. 주변 남자들이 늘 그녀를 아름답다고 추앙했지만, 그녀와 짝을 이룬 남자는 놀랍게도 반에서 제일 작고 뚱뚱한 아이였다. ‘그럴 줄 알았다면, 나도 대시해볼 걸!’하고 꿈을 꾸어봤지만 어림없는 일이었다. 그녀에게는 그 녀석이 제일 매력적이란다. 녀석이 제 외모에 만족하는지 못하는지 모르겠지만, 그녀는 녀석의 외모에 만족을 넘어서 완전히 반했다고 했다. 결코 외모는 객관적으로 판단이 되지 않는다. 그런대도 코가 몇 센티고 각도가 얼마고 턱 선이 어쩌고 해야 미인의 조건이라고 하니, 코웃음만 나온다(아름다움에 명확한 기준이라는 것이 생기면 돈 벌기에는 좋겠다).

미모란 객관적으로 판단하기 어렵다는 점 이외에 또 다른 변수가 있다. 과연 어떤 사람들이 자기 외모에 만족할까? 부정적인 생각에 사로잡히면 세상이 다 부정적으로 보이듯, 스스로에게 만족하지 않은 사람이 자신의 외모만 똑 떨어트려서 만족하기는 쉽지 않다. 거꾸로 스스로에게 만족하는 사람이라면, 누가 뭐라든 외모 때문에 기죽지는 않을 것이다. 그렇다면 외모 때문에 행복하다기보다는, 원래 행복하기 때문에 자신의 외모를 긍정적으로 인식하는 것은 아닐까! 흔한 경험으로도 알 수 있다. 기분이 좋은 날은 왠지 뭘 입어도 어울리는 것 같고, 조금만 신경을 써도 남들이 ‘좋아 보인다!’고 칭찬하지 않던가! 거꾸로 우울한 날에는 뭘 해도 티가 안 나고 보는 사람마다 ‘뭔 일 있냐?’고 묻는다. 결국 외모가 뛰어나서 행복한 것이 아니고, 행복하니까 외모에 만족한다는 것이 더 타당하다.

성형과 행복은?

성형과 행복에 관한 연구도 실은 허점투성이다. 이 허점은 국내 대학에서 진행한 실험으로도 밝혀졌다. 성형을 한 후 행복도가 높아진 것은 사실이다. 그렇지만 이 행복은 고작 6개월도 가지 않았다. 안타까운 사실은 성형을 하는 사람들 중에는 외적 자신감에 집착하는 것과는 상반되게 내적 자신감은 형편없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 나를 돋보이게 하려면 무조건 외모부터 바꾸어야 하고, 외모의 변화만이 스스로를 행복하게 해줄 것이라 믿는다. 서글픈 이야기지만, 성형의 시작은 형편없는 자존감이라는 것이다.

물론 자존감이 떨어진 상태에서 외모의 변화는 일시적인 내면의 변화를 유도해 행복을 느낄 수 있다. 하지만 예상할 수 있듯이 그 변화는 그리 길지 않다. 고작 6개월이 지나면 다시 불행한 감정이 시작된다. 문제는 그 다음에 있다. 인간은 경험에 의해 학습된다. 6개월 전 행복하게 만들어주었던 성형을 다시 떠올리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행복해지기 위한 적절한 대안이 없다면, 모든 불행의 해결책은 성형일 수밖에 없다. 성형중독의 유혹이 시작된다.

물론 개인만의 문제가 절대 아니다. 사회자체가 글러먹었다. 면접을 하기 위해, 선을 보기 위해, 성형하는 사람들을 욕할 수 없다. 얼마나 그런 외모의 집착이 현실적으로 이득이 되기에, 모두 성형에 목을 매었을까? 오죽하면 초등학교 학생들도 성형을 해달라고 조를까! 아이들은 친구에게서 가장 많이 배우고, 친구를 흉내 내며 사회성을 키운다. 같은 반 친구 누군가가 성형을 했으니, 우리 아이도 생일선물로 쌍꺼풀 수술을 해달라고 조르게 되는 것이다. 모두의 책임이라는 뜻이다.

보톡스 공화국

얼마 전 뉴스를 보니, 보톡스를 포함한 미용 수술을 전 세계에서 제일 많이 하는 나라가 우리나라라고 한다. 보톡스 공화국이라는 오명이 남게 되었다. 이미 성형 공화국으로 알려졌는데, 미용 분야에서는 2관왕 전 세계 챔피언국가가 된 셈이다.

외모에 대한 집착만이 속상한 세계 1등은 아니다. 자살률과 행복지수를 보면 분통이 터지다 못해 절망적이다. 자살률은 벌써 10년 넘게 OECD 국가 중 세계 1위이다. 그것도 평균의 2배이며, 전 연령층에 걸쳐 골고루 1등이다. 행복지수 역시 OECD 국가 중 꼴찌에서 한 단계 위에 있다.

외모가 그렇게 중요하다면, 어떻게든 예뻐지려는 노력이 세계 1등인 우리나라가 지구상에서 제일 행복한 국가가 되어야 하지 않은가? 뒤집어 보자면 혹시 세상에서 제일 불행하니 외모에만 집착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반드시 옳다고 할 수는 없지만 두 가지 분석 모두 씁쓸하기는 하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있다. 예쁘다고 다 행복한 것은 아니지만, 행복하면 반드시 예뻐진다는 사실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