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중공업은 지난해 중반 이미 창사 이래 최악의 실적을 예감했다. 한때 글로벌 업계 1위로 세계 바다를 호령하던 한국의 대표기업이었지만 영업 손실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감당하기 힘들 지경이었다. 

 

현대중공업은 난국 타개를 위해 비장의 카드를 꺼내 들었다. 5년 전 회사를 떠난 ‘레전드(Legend)’를 다시 불러들이는 것이었다. 작년 8월 이재성 회장은 자신의 3년 선배이자 직속상관이던 최길선 전 현대중공업 사장을 재영입했다.

최 전 사장은 이미 2001년부터 2차례, 햇수로 7년간 현대중공업 사장을 맡았던 인물이다. 서울대 조선공학과를 졸업하고 1972년 회사 설립 추진 당시부터 입사한 원년 창립멤버다. 입사 12년 만인 1984년 임원으로 승진했고 현대중공업과 현대미포조선, 현대삼호중공업 사장을 두루 거치며 맡았던 회사마다 세계 최고의 조선업체로 키워낸 최고의 조선 분야 전문 경영인이다.

그는 최초로 LNG선을 건조하고 육상건조 방식을 도입하는가 하면 세계 최대 컨테이너선 등 조선기술 발전에도 큰 역할을 했다. 특히 2000년대 조선업 호황 시절 생산성 향상을 위해 ‘T자형 도크’ 도입 아이디어를 내는 등 조선업계 대표적인 기술통이었다.

기업의 특성상 조선업 분야 경영자에게는 강인한 체력도 요구되는데, 바쁜 일과에도 수영 등 각종 스포츠를 즐기고 젊은 직원들 못지않은 체력을 유지하는 등 늘 파이팅이 넘친다는 평을 듣기도 했다. 조선협회장과 한국플랜트산업협회장을 역임했으며 한국을 일으킨 엔지니어 60인과 한국 CEO 그랑프리, 인촌상 산업기술부문상 수상 등 다양한 수상경력을 갖고 있다.

이처럼 현대중공업의 전성기를 이끌던 그가 2009년 “회사가 조금 더 젊어지고 역동적으로 변해야 한다. 후배들에게 힘을 실어주기 위해 나부터 솔선수범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회사를 떠났었다.
그 ‘레전드’가 위기를 맞은 친정에 복귀했다. 조선·해양·플랜트 부문 총괄회장을 맡은 최 회장은 권오갑 신임 사장과 함께 자사주 4억원어치를 매입하며 책임경영 실천과 주가 회복에 대한 의지를 표현하는 솔선수범의 모습부터 보였다.

최 회장의 결의는 지난 3월 주총 발언에서도 일부 드러난다. 그는 당시 “지난 40여년간 수많은 어려움을 극복해온 저력을 바탕으로 모든 임직원이 하나가 돼 경쟁력을 회복하고 재도약하는 한 해를 만들겠다”고 강한 의지를 피력했다.

최 회장은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통한 체질 개선에 나서고 있다. 전체 임원에게 사직서를 받아 31%를 정리하고 조직 구조조정을 실시해 생산과 영업 중심으로 조직을 개편했다. 과장급 이상 직원을 호봉제에서 연봉제로 전환하고, 희망퇴직을 실시해 효율적인 인력 구성에 나섰으며 경쟁력이 떨어지는 사업 부문도 통합하여 적자폭 줄이기에 매진하고 있다.

이 같은 노력으로 현대중공업은 악조건 속에서도 실적 개선이 기대된다는 전망이 나오기 시작했다. 증권가 전문가들은 현대중공업이 지난해부터 이어진 대내외적인 악재 여파로 올 1분기 실적이 전년 대비 소폭 감소했지만, 상선 건조비중의 증가와 구조조정으로 인한 간접비 감소 등으로 이익성장폭이 커지면서 하반기 흑자전환으로 이어질 것으로 예측하고 있다.

현재 현대중공업은 140척, 현대삼호중공업은 80척 등 수주잔량을 가지고 있으며 상선 수주량은 195척에 달한다. 또한 컨테이너선 35척과 탱커 64척, LNG선 52척, 벌크선 15척 등 하반기로 갈수록 건조비중을 늘여 영업실적은 점차 개선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과거 현대그룹 신화의 중심에 우뚝 서 있던 현대중공업이 위기를 극복하고 다시 한 번 신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돌아온 ‘레전드’ 최길선 회장의 강력한 개혁 드라이브에 국내외 업계가 비상한 관심 속에 지켜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