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카도 필카처럼 추억 속으로?

필름카메라(필카)는 디지털카메라(디카)에 밀려났다. 시대가 흐르자 디카도 밀려날 위기다. 스마트폰 카메라 기능이 급속도로 성장하면서 벌어진 일이다. 카메라 업체는 ‘우린 지지 않아’라면서도 변신 노력 중이다. 쫓고 쫓기는 긴박한 추격전이 눈앞에서 벌어지고 있다.

디카가 탄생한 지 벌써 40년이 흘렀다. 최초의 디카는 ‘필름 명가’ 코닥이 만들었다. 그런데 디카 사업을 곧장 키우지는 않았다. 독점하던 필름사업이 타격을 입을 것으로 예상한 까닭이다. 코닥에게 디카 사업은 돈 안 되는 ‘열등한 비즈니스’일 뿐이었다.

 

디카가 대중의 선택을 받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부터다. 2000년대 초중반엔 전성기를 맞이했다. 여러 업체가 경쟁하면서 가격은 싸졌고, 라인업은 다양해졌다. 소비자들은 디카를 생활필수품으로 여기기 시작했다. 당시 휴대전화에 카메라 기능이 없던 것은 아니었지만 결과물은 판이했다.

디카는 거듭 얇아지고, 작아지고, 가벼워졌다. 성능은 계속 향상됐다. 화소 수는 해가 지날수록 높아졌고, 연속 촬영 속도는 빨라졌으며, 부가 기능은 계속 추가됐다. DSLR 카메라는 필카를 애용하던 전문 사진가의 마음도 훔쳤다. 아날로그만 고집하던 사진가들도 대부분 디지털로 옮겨갔다.

그러던 디카가 위기를 만났다. 지난 2007년 스마트폰이 등장하면서부터다. 당시 세상에 모습을 드러낸 애플 아이폰은 200만 화소의 후면 카메라를 탑재했다. 디카와 비교하면 결코 좋은 스펙이 아니다. 그런데 손쉬운 공유 기능 때문에 판도가 달라졌다. 사람들은 사진을 찍어 바로바로 공유하는 문화를 만들었다. 이후 스마트폰 카메라 기능은 빠른 속도로 한계를 넘어서면서 디카의 영역을 잠식해갔다.

 

DSLR 부럽지 않은 스마트폰

2015년 가장 최신 스마트폰은 DSLR 멱살 잡는 수준까지 성장했다. 애플은 ‘아이폰 6로 찍다’라는 카피와 함께 대형 광고판에 사진을 걸었다. 원래 화소 수가 부족한 카메라로 찍은 이미지는 대형 출력에 적합하지 않다. 따라서 이 광고는 아이폰 6 시리즈 카메라 기능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다. 경쟁사가 2000만 화소에 육박하는 카메라를 탑재하는 것에 비하면 애플의 800만 화소라는 스펙은 초라하다. 하지만 사용자들은 한 목소리로 결과물이 만족스럽다고 말한다.

LG전자의 차기 플래그십 G4도 카메라 기능이 마케팅 포인트다. G 시리즈는 전통적으로 카메라 경쟁력이 강했다. 우선 단렌즈 수준인 F/1.8 조리개가 시선을 끈다. 스마트폰 카메라 중 가장 낮은 조리개 값이다. 그만큼 어두운 환경에서 또렷한 이미지를 얻을 수 있으며, 배경을 날리는 아웃포커싱 기법에 유리하다. 또 압축하지 않아 이미지 품질에 손상이 없는 RAW(DNG) 파일로 촬영 가능하다.

삼성전자 갤럭시 S6 시리즈도 뛰어난 카메라를 탑재했다. 카메라 분석 전문업체 프랑스 DxO마크는 갤럭시 S6 엣지가 종합 86점으로 시중 스마트폰 중 가장 뛰어난 카메라 성능을 자랑한다고 호평했다. 삼성전자는 광학식 손 떨림 보정(OIS) 기능을 탑재하고 홈 버튼을 2번 누르면 바로 카메라가 실행되는 등 이용자 편의성을 강화했다.

 

화웨이 플래그십 P8은 빛이 부족할 때 빛을 발하는 카메라를 탑재했다. 라이트페인팅, 조도 점검, 미리보기 모드 등 4가지 저조도 촬영모드가 특징이다. 사용자는 이 기능들을 이용해 어두운 환경에서 사진이 어떻게 찍힐지 손쉽게 예측할 수 있으며 장시간 노출로 빛의 번짐까지 사진에 담을 수 있다.

스마트폰의 셀프카메라(셀카) 기능도 계속 발전하고 있다. 현재 800만 화소 전면 카메라를 탑재한 제품까지 나왔다. 중국 오포(OPPO)는 카메라를 앞뒤로 회전할 수 있는 제품을 선보였다. 고성능 후면 카메라를 셀카에도 이용 가능한 것이다. 셀카봉과 셀카렌즈 같은 액세서리는 물론 수많은 애플리케이션도 스마트폰 카메라의 든든한 지원군이다.

 

카메라 업계 ‘강제 변신’

카메라 업계는 걱정이다. 원래 스마트폰은 디카를 모방해 카메라 기능을 구현했다. 이제는 오히려 디카가 스마트폰을 따라 한다. 상황이 역전된 것이다.

셀카 디카의 경우가 대표 사례다. 카시오의 TR 시리즈는 360도 회전이 가능한 접이식 프레임과 270도 회전하는 LCD를 탑재했다. LCD를 렌즈가 바라보는 방향으로 돌려 셀카 촬영이 가능하다. 메이크업 모드로 피부톤을 화사하게 만드는 것은 물론 초광각 렌즈로 단체 셀카 촬영도 무리 없다.

TR 시리즈가 스마트폰을 따라 변신한 디카라면 스마트폰의 액세서리를 자처하는 카메라도 존재한다. 소니 렌즈 스타일 카메라 QX 시리즈가 대표적이다. 스마트폰에 부착해 사용하는 이 카메라는 NFC와 와이파이 기능을 이용해 찍은 사진을 바로바로 스마트폰에 보내준다. 스마트폰과 분리한 채로 사용할 수 있어 다양한 연출이 가능하다.

심지어 카메라 업체가 스마트폰을 선보이는 경우도 생겨났다. 코닥과 폴라로이드는 국제전자제품박람회 CES 2015에서 스마트폰을 공개했다. 시대 흐름에 따라 카메라 사업만을 고집하지 않는 모습이다. 전문가들은 이들 업체가 카메라 기술력을 통해 차별화된 스마트폰을 선보일 수도 있다고 분석했다.

물론 스마트폰 카메라가 아직은 고급 카메라 기종을 위협할 만큼 발전하지 않았다는 지적도 있다. ‘추월’을 말하기에 기술력이 여러모로 부족한 것은 사실이다. DSLR과 스마트폰을 비교하면 차이는 극명하다. DSLR을 이용하면 넓은 렌즈 구경의 이점을 십분 활용할 수 있으며 이미지센서 크기가 스마트폰에 탑재되는 것과 달라 화소 수는 같더라도 훨씬 고품질의 결과물을 얻을 수 있다. 권투로 치면 키는 같아도 몸무게가 다른 상대가 맞붙는 셈이다.

DSLR을 비롯한 미러리스 제품은 다양한 렌즈를 선택할 수 있다는 이점도 있다. 단일 렌즈인 스마트폰보다 세상을 훨씬 넓고도 가깝게 보는 것이 가능한 것이다. 카메라 업계 관계자들은 “스마트폰 카메라가 기존 카메라를 보조할 수는 있어도 대체하기는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한다.

문제는 잠재성이다. 스마트폰 카메라 기술은 날로 발전을 거듭하고 있다. 결국 기술이 대등해진다면 타격을 입는 쪽은 디카 진영일 가능성이 크다. 소비자들은 간편한 쪽으로 기울기 때문이다. 디카가 필카의 운명을 답습해 소수 마니아의 전유물로 전락할지 아직은 알 수 없다. 분명한 것은 스마트폰의 도전이 더욱 거세졌다는 점이다. 엎치락뒤치락 승부가 시작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