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신데렐라법’ 보류… 업계선 ‘윈-윈 제3의 길’ 모색

심야 시간에 청소년들의 게임 접속을 제한하는 ‘셧다운제’에 대한 논란이 좀처럼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게임 업계는 물론 관련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와 여성가족부도 각기 다른 입장을 내놓으며 팽팽히 맞서고 있다.

지난 9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는 만 16세 미만 청소년들이 자정부터 오전 6시까지 인터넷 게임에 접속할 수 없도록 하는 ‘셧다운제’를 보류하고 4월 임시국회에서 다시 논의하기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청소년들의 심야 사용을 제한한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이른바 ‘신데렐라법’은 논란을 이어가게 됐다. 여러 쟁점들에 대한 합의가 되지 않으면 표결로 처리될 가능성이 높다.

무엇보다도 ‘셧다운제’가 게임 과몰입을 막을 대안이라는 주장과 성장하는 수출 산업인 게임 산업 발전을 저해하는 규제라는 주장이 강하게 대립하고 있다. 게임 과몰입을 근절하기 위해 ‘셧다운제’라는 칼을 빼들었지만 게임 산업 자체를 베는 ‘양날의 검’이 될 수 있다는 얘기다.

당장 게임 업계는 ‘셧다운제’ 적용 연령이 게임법의 14세에서 16세로 올라가 대상 범위가 확대됐고 규제를 위한 법률도 청소년보호법이 되는 등 여가부의 주장만 일방적으로 수용된 결과라고 비판하고 나섰다. 16세라는 기준에 대해서도 문제가 제기됐다.

16세 미만이 심야에 온라인게임을 하면 게임중독 등 부작용이 생길 수 있다는 근거가 없다는 것이다. 게임 업계 관계자는 “문화부와 여가부의 법안에서 각각 기준으로 삼고 있던 14세와 18세의 중간인 16세로 결정한 셈”이라며 “게임 산업 진흥에 대한 아무런 고민 없는 주먹구구식 합의”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적용 나이 외에도 쟁점은 또 있다. 청소년보호법은 ‘셧다운제’의 대상을 ‘정보통신망을 통해 실시간으로 제공되는 게임물을 제공하는 자’로 규정하고 있다. 여기에는 온라인게임뿐만 아니라 모바일 게임, 스마트폰 게임, 소셜 네트워크 게임 등이 모두 포함된다.

게임물등급위원회에서 ‘전체이용가’ 등급을 받은 게임도 ‘셧다운제’의 대상이 될 수 있다. 여가부는 당연히 스마트폰 게임 등도 셧다운제를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하지만 문화부와 게임업계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고 맞서고 있다.

앱 스토어 등 해외 오픈마켓이나 페이스북 등 글로벌 소셜 네트워크 서비스(SNS)를 통해 서비스되는 게임의 경우 국내 시장만을 위해 ‘셧다운제’ 시스템이 도입될 가능성이 없다.

애플이나 구글이 국내에서는 사전 심의를 이유로 오픈마켓의 게임 카테고리를 아예 제외하고 서비스한 점은 이 같은 예측을 뒷받침한다. 스마트폰 게임까지 ‘셧다운제’가 적용된다면 오픈마켓 게임의 사전심의를 완화하는 내용이 골자인 게임법 개정안이 통과되더라도 오픈마켓의 국내 게임 카테고리는 열리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이처럼 국내 업체에만 ‘셧다운제’가 적용되고 해외 업체는 규제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면 ‘역차별’이라는 지적도 제기되고 있다. 미국 엔터테인먼트 소프트웨어협회(ESA)도 최근 국회 법사위에 ‘셧다운제’는 불필요한 개인정보를 수집하고 검색해 게임뿐만 아니라 SNS 등 관련 산업에도 피해를 줄 것이라는 의견서를 제출했다.

■게임 업계의 과몰입 자율 규제
결국 게임 산업을 육성하는 동시에 게임 과몰입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정 내의 지도와 게임 업체의 자율 규제가 필요하다는 것이 관련 전문가들의 일관된 목소리다. 김성곤 한국게임산업협회 사무국장은 “게임 과몰입을 해결하기 위한 효과적인 방법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며 “셧다운제 실효성에 대한 우려가 많은 만큼 새로운 시도가 필요하다”고 밝혔다.

게임업계에서도 아직은 미흡하지만 자체적으로 다양한 과몰입 방지 대책을 내놓고 있다. 우선 한게임을 서비스하는 NHN은 이용자 보호 프로그램, 자녀관리 서비스, 피로도 시스템 등을 실시하고 있다.

우선 대부분의 역할수행게임(RPG)은 자체적으로 ‘피로도 시스템’이 적용돼 있다. 이는 사용자가 일정 시간 이상 게임을 할 경우 캐릭터가 느려지거나 아이템 습득 확률이 급감해 게임에 대한 보상 자체가 적어지는 시스템으로 장시간 게임을 계속 할 경우 게임에 대한 흥미를 떨어뜨리는 효과가 있다.

한게임의 ‘이용자 보호 프로그램’은 본인의 게임 이용 습관을 점검할 수 있는 ‘게임 부적응 척도 검사’를 제공하고 ‘시간 알리미’ ‘나가기 예약’ 등 게임 과몰입을 예방할 수 있는 서비스도 안내한다.

특히 ‘게임 부적응 척도’는 한국게임산업진흥원과 성균대학교 심리학과에서 공동 개발한 검사로, 게임을 중단하면 불쾌하거나, 게임으로 인해 사회적 활동을 포기하는 등 게임 이용 부작용을 분석해 현재 게임 이용 습관의 문제점을 파악할 수 있다.

검사 결과에 대한 전화 상담도 가능하며 보다 전문적인 상담 및 치료를 요하는 사용자에게는 한게임이 지정 대학병원 신경정신과 전문의로부터 무료 상담 및 치료를 받을 수 있도록 지원하고 있다.

또한 NHN은 이용 시간, 접속 횟수 등 이용 기록을 분석해 권장 수준 이상 게임을 이용할 경우 과몰입 징후를 알리는 팝업을 지속적으로 노출하고 있다. 2008년부터 실시하고 있는 ‘자녀 관리 서비스’는 부모가 자녀들의 건전한 게임 이용 습관을 길러줄 수 있도록 한다. 이 서비스를 이용하면 부모가 만 18세 이하 자녀의 게임 이용 내역을 확인하고 지도할 수 있다.

네오위즈게임즈도 이용 가능한 게임, 이용 시간, 결제 내역 등 자녀의 게임 이용 지도에 필요한 정보들을 부모에게 제공하고 있다.

네오위즈게임즈의 게임포털인 ‘피망’에서 관리할 자녀의 아이디를 등록하고 간단한 동의 절차를 진행하면 게임 플레이에 대한 데이터 열람 및 관리를 진행 할 수 있다. 보호자가 게임을 지정해 플레이 시간도 제한할 수 있다.

셧다운제 쟁점은?

여성가족부는 당초 인터넷 게임 과몰입 예방과 청소년 수면권 보장을 위해 18세 미만의 청소년들에게 ‘셧다운제’를 적용해야 한다는 입장이었고 이를 청소년보호법 일부 개정안에 반영시켰다.

하지만 게임 산업 관련 주무 부처인 문화체육관광부는 게임 과몰입 예방에는 동의하면서도 ‘셧다운제’의 적용 범위는 만 14세 미만 이용자들로 하면 충분하다는 입장을 밝혀왔다.

이 같은 양 부처의 대립으로 오픈마켓에 등록된 게임은 사전심의에서 제외하는 내용을 담고 있는 게임산업진흥에 관한 법률(게임법) 개정안 처리가 지연되는 등 발전하는 산업에 꼭 필요한 제도조차 마련되지 않는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높았다. 하지만 이 두 부처는 지난해 12월, 자정부터 새벽 6시까지 만 16세 미만의 청소년이 인터넷 게임에 접속할 수 없도록 하는 ‘셧다운제’에 합의했다.

셧다운제 실효성 논란

합의가 이뤄져 ‘셧다운제’가 국회를 통과한다고 해도 게임 중독을 예방하는 효과를 거둘지는 미지수다. 16세 미만은 심야에 온라인게임에 접속하지 못하게 해도 부모의 주민등록번호를 이용해 집에서 온라인게임을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16세 미만의 청소년이 ‘셧다운제’가 적용되는 시간에 온라인게임을 이용하는 비율은 미미한 것으로 알려졌다. 청소년들이 외국 게임이나 인터넷 서비스를 이용하면 막을 방법도 없다.

한국입법학회가 최근 발표한 ‘셧다운제 규제 영향 평가 보고서’에 따르면 셧다운제가 적용되면 해당 시간에 부모의 주민번호로 게임을 즐기겠다는 청소년이 46%, 인터넷의 다른 콘텐츠를 이용하겠다는 이들이 48.4%로 집계됐다. 논란 끝에 셧다운제를 시행한다고 해도 당초 취지였던 게임 과몰입 예방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얘기다.
김철현 아시아경제 기자 kch@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