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준비된 리더지만, 동시에 그 능력을 검증받아야 하는 시험대에 선 인물이다. 그런 의미에서 곧장 서유럽의 샤를마뉴와 비교되기도 한다. 샤를마뉴의 할아버지 샤를 마르텔은 732년 그 유명한 투르-푸아티 전쟁에서 이슬람 세력을 물리쳐 유럽을 지켰으며, 아버지인 피핀은 프랑크의 왕이 되어 현대 프랑스의 기조를 닦았다. 샤를마뉴는 눈부신 공적을 세운 할아버지와 아버지를 의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이재용 부회장과 비슷하다.

 

현재 이재용 부회장은 아버지 이건희 회장의 와병 이후 실질적으로 삼성을 책임지고 있다. 갑작스럽게 글로벌 조직을 책임지게 된 상황에서 그는 어떤 행보를 보이고 있을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일단 성공적’이다. 키워드는 실사구시(實事求是), 글로벌, 실질적 성과로 요약할 수 있다.

먼저 실사구시다. 이 부회장은 핵심적인 키워드를 제시하는 선대의 경영 스타일과 달리 자신이 스스로 현장에 파고들어 상황을 진두지휘하고 있다. 지난해 7월 미국 아이다호주 선밸리에서 열린 ‘앨런앤코 미디어 콘퍼런스’에 참석해 팀 쿡 애플 CEO를 만나고 9월 방한한 사티아 나델라 마이크로소프트 CEO와 회동했으며 지난해에만 무려 세 번이나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CEO를 연이어 만났다. 지난 2월 미국에서 열린 ‘비즈니스 카운슬’에서 비씨·마스터 등의 카드회사 대표들과, 3월에는 중국으로 날아가 보아오 포럼에 참석해 다양한 현지 금융계 인사들과 접점을 만들었으며 이 과정에서 시진핑 국가주석과 오랜 인연을 이어가기도 했다.

더 놀라운 점은, 이러한 행보가 실질적인 성과를 거뒀다는 점이다. 애플과 마이크로소프트와의 특허 분쟁을 해결하고 중국과의 관계를 한층 강화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이 부회장의 의지가 주효했다는 것이 중론이다.

후계구도 및 조직의 빠른 의사결정구조를 위해 전방위 사업재편에 돌입한 대목과 더불어 ‘필요한 기술’이라고 판단되면 과감한 인수합병에 나서는 모습도 포착된다. 루프페이를 비롯해 1년 동안 8개의 기업이 해외기업이 삼성의 깃발로 통합됐다.

이 지점에서 사물인터넷과 모바일 헬스, B2B 및 클라우드 컴퓨팅에 집중하며 미래 먹거리에 방점을 찍는 치밀함도 보여줬다. 특히 화룡정점은 지난 7일 경기도 평택 고덕산업단지에 세계 최대 규모의 반도체 생산라인 건설에 착수한 지점이다. 이 부회장의 경영 ‘그림’이 일반의 상상을 초월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단적인 사례다.

최근에는 실사구시와 현장성을 중시하는 경영 노하우를 조직에 전파하기 위해 전자계열사 CEO들을 대상으로 모두 일주일씩 해외 사업장에서 의무적으로 근무하게 하는 방안도 고려하고 있다. 현장에서 직접 보고 듣는 모든 정보를 생생하게 가공해 조직의 DNA에 심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이 부회장은 지난 2월 권오현 삼성전자 디바이스솔루션(DS) 부문장을 비롯한 주요 경영진과 함께 미국 실리콘밸리의 전략혁신센터(SSIC)와 삼성리서치아메리카(SRA) 등을 방문학 직후 “삼성의 미래가 이곳에 있다”고 강조한 바 있다.

결론적으로 이 부회장은 현장을 중시하는 실사구시 경영, 여기에 글로벌 감각을 접목하고 필요하다면 다양한 가능성을 모두 품어내는 강력한 ‘먹성’을 자랑한다는 뜻이다. 삼성디스플레이가 최근 중국 쑤저우에서 진행 중인 LCD(액정표시장치) 사업장 증설 과정에 돌입하며 DMS와 탑엔지니어링 등 LG디스플레이 협력사 모임인 ‘베스트클럽’ 소속 업체들의 장비를 연이어 구매하는 것도 이러한 현상과 일맥상통한다.

자연스럽게 관심은 이 부회장이 그리는 ‘삼성의 미래’로 옮겨간다. 현재 삼성전자는 갤럭시 S6를 론칭하며 스마트 생태계 주도권 탈환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삼성전자의 실적이 반등하며 이 부회장의 발걸음을 가볍게 만드는 점은 고무적이다.

이에 힘입어 이 부회장은 사물인터넷 분야에 삼성 비즈니스로 대표되는 B2B 역량을 집중시켜 글로벌과 현장경영으로 새로운 화두를 제시할 전망이다. 이 부회장을 설명하며 하나의 제품이나 패러다임을 제시할 수 없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샤를마뉴의 할아버지인 샤를 마르텔은 투르-푸아티 전투에서 승리해 유럽을 지켰다. 이어 아버지 피핀은 프랑크 왕국의 왕이 되어 서유럽 통합의 기초를 닦았다. 일본 일색의 제품이 몰려오던 상황에서 국산의 자존심을 지킨 고 이병철 삼성 창업주와 삼성을 세계에 알린 이건희 회장의 그림자가 어른거리는 상황이다.

여기서 화두가 집중된다. 이 부회장이 샤를마뉴처럼 카롤링거 르네상스를 이끌어 교황의 황제관을 쓰는 대제(大帝)가 될 것인가. 업계의 우호적인 평가가 지배적인 상황에서 일말의 불안감도 있다. 이런 상황에서 분명 차별화된 경영전략을 보여주는 이 부회장의 JY 스타일에 관심이 집중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