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니 픽쳐스가 해킹을 당했다. 직원 정보, 미공개 영화 각본, 회사 관계자 간의 전자 메일 등의 사내 정보가 낱낱이 공개됐다. 언론은 새어 나온 정보들을 실시간으로 전달했고 이를 둘러싼 소송이 연일 이어졌다. 이때 유출된 소니 엔터테인먼트의 CEO이자 스냅챗의 사외이사인 마이클 린튼의 이메일에서 흥미로운 사실 하나가 세상에 드러났다.

세계 최대 SNS업체 페이스북이 ‘스냅챗’을 인수하기 위해 천문학적 액수를 제시했고 스냅챗 측이 이를 거절했다는 루머가 사실이라는 것이다. 유명 기자인 말콤 글래드웰이 친구인 린튼에게 보낸 이메일에는 “30억 달러(약 3조2000억원)를 거절하다니 미쳤다”는 언급이 있고 린튼은 “실제 액수를 알면 벨뷰 정신병원에 우리를 다 입원시키겠는데”라고 답장했다. 페이스북이 매각 조건으로 제시했다는 금액은 세간에 알려졌던 30억달러를 훨씬 웃돌 가능성이 있어 보였다.

 

뿐만 아니다. 같은 시기 실리콘밸리에는 구글도 스냅챗 인수에 40억달러를 제시했다가 거절당했다는 소문이 돌았다. 한 푼도 벌지 못했으면서 거액의 제안들을 사정없이 걷어찬 당돌한 청년, 바로 스냅챗의 CEO 에반 스피겔(Evan Spiegel)이다.

스냅챗은 미국 10대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사진 채팅 애플리케이션(앱)이다. ‘사진을 공유한 뒤 수신자가 내용을 확인하면 사라지는 메신저’라는 콘셉트로 이미지 소통에 익숙하고 사생활을 중시하는 젊은 세대를 먼저 사로잡았다.

스냅챗을 이끄는 에반 스피겔은 1990년생, 올해 한국 나이로 26살이 됐다. 부모가 모두 변호사인 백인 엘리트 가정 출신으로 캘리포니아의 부촌에서 성장하면서 10대에 이미 최고급 세단인 캐딜락을 타고 다녔고 명문 스탠포드대를 중퇴했다. 포브스가 테크 회사 직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인기투표 결과 마크 주커버그와 래리 페이지를 누르고 1위를 차지할 만큼 매력 넘치는 미남자이기도 하다. 두뇌는 비상하지만 촌스럽고 사회성 없던 1세대 IT 거물들의 ‘찐따’스러움을 그에게서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스피겔은 스탠포드에서 산업디자인을 공부하던 중 수학 전공인 친구 바비 머피와 함께 수업의 과제로 스냅챗을 처음 만들었다. 그들은 친구들에게 10초 내외로 사라지는 사진 메시지를 보내는 스냅챗의 초기 모델을 만들고 ‘피카부’라고 불렀다. 스피겔은 이를 사업화하기 위해 대학을 중퇴하고 고향으로 돌아간다. 머피와 스피겔은 2011년 가을 스냅챗으로 개명을 하고 서비스를 출시했다. 그야말로 대박이 터졌다.

4년 만에 스냅챗은 업계의 선두에 자리 잡았다. 퓨 리서치 센터는 미국 휴대폰 사용자의 9%가 스냅챗을 쓰고 있다고 했고 다른 여론조사 기관이 10대를 대상으로 한 SNS 앱 인지도 평가에서 스냅챗의 인지도는 페이스북, 인스타그램에 이어 3위를 차지했다. 모바일 메신저기업을 평가하는 주요 기준인 월간 이용자(MAU)도 1억명이 넘는다.

2015년 현재 스피겔의 보유 자산은 약 15억달러, 스냅챗의 기업 가치는 무려 190억달러(약 21조2000억원)에 달한다. 지난 해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 업체 알리바바가 스냅챗에 2억달러를 투자하기로 했고 야후도 수천만 달러를 이 모바일 앱에 투자하겠다고 나섰다.

어리지만 강단 있게 사업을 이어가는 그는 <포브스>와의 인터뷰에서 “이와 같은 회사를 창업할 수 있는 사람은 적다”며 “단기간의 이익을 위해 회사를 파는 것에는 관심 없다”고 잘라 말했다.

스피겔은 자신의 분신인 스냅챗 사업에 대해서도 소신을 갖고 있다. 데이터 소실 문제에 대해 “디지털 데이터 중 대부분의 것을 초기 상태로 지우고 중요한 것만을 저장하면 더 낫지 않나”라고 반문하고 “친구가 네트워크를 위한 도구는 아니다. ‘알 수도 있는 친구’ 말고 진짜 친구와 재미있게 대화하라”고 다른 SNS 앱들을 꼬집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