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뜰폰(MVNO)라는 것이 있다. 많이 들어봤을 것이다. 하지만 알뜰폰을 안다고 그 세부적인 내용과 상대적 이득, 비전까지 알고 있는 사람은 의외로 별로 없다. 휴대폰이 일상이 되어버린 시대에서 나에게 맞는 단말기와 요금제를 선택하려는 사람들은 기계적으로 통신 3사만 찾는 경우가 있는데, 아니다. 알뜰폰에 주목해라. 알뜰폰은 아류 아니냐고? 그래도 통신 3사가 제공하는 서비스가 좋은것 아니냐고? 이런 질문에는 미묘한 선택지가 존재하지만, 역시 한 마디만 하겠다. "아직도 알뜰폰을 몰라? 돈 많구나!"

미래창조과학부는 24일, 지난 3월 기준 국내 27개 알뜰폰 가입자 숫자가 496만명을 돌파했다고 밝혔다. 2011년 7월 처음 제도가 도입되었을 당시 가입자가 47만명을 살짝 상회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폭발적인 증가세다. 조만간 1000만 알뜰폰 가입자 시대를 맞이할 기세다.

우정사업본부가 지난 6일 30대 이하 알뜰폰 가입자를 집계한 결과 지난해 12월 17.9%에서 올해 1월 18.3%, 2월 19%, 3월 19.5%로 지속적인 상승세를 보였다고 밝히기도 했다. 미래 성장동력까지 있다는 뜻이다.

▲ 출처=우정사업본부

정체가 뭐야?
먼저 알뜰폰 사업자의 정의부터 살피자면, 문자 그대로 가상이동통신망 사업자를 말한다. 그렇다면 가상이동통신망은 뭘까? 쉽게 생각하자. 가상으로 이동통신망 서비스를 제공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주파수의 개념을 설명해야 한다. 주파수는 국민의 재산이며, 자원으로 분류된다. TV부터 DMB, 무전기, 라디오 등등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다양한 디바이스에 생명력을 불어넣는 '영혼'으로 이해하자.

약간 다른 이야기지만, 최근 중국의 화웨이가 도전장을 내민 국가재난망 사업을 아는가? 대구 지하철 참사와 지난해 벌어졌던 세월호 참사같은 국가 위급상황이 발생할 경우 완벽한 통신 콘트롤 타워 시스템을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국가재난망이다. 최근 국가재난망은 700MHz 대역 '주파수'의 일부에서 활용하도록 결정됐으며, 현재 화웨이를 비롯해 국내 통신사 등 다양한 사업자들이 노리고 있다.

그런데 문제가 있다. 700MHz 대역 주파수는 지상파 방송이 UHD 방송을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하지만, 통신사들은 모바일 트래픽 해소를 이유로 자신들이 700MHz 대역 주파수를 써야 한다고 맞서고 있다. 현재는 108MHz 폭 중 국가재난망에 20MHz 폭을 할당하고 남은 대역을 지상파와 통신이 반반 사용하는 쪽으로 가닥이 잡히고 있다.

여기서 장황하게 주파수 이야기를 한 이유는, 이 주파수라는 것이 아주 미묘하고 중요한 재원이라는 점을 강조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리고 정부는 국민의 재산인 주파수를 올바르게 활용해야 한다는 전제로 각 사업분야에 할당하고 있다. 공익적 활용일 경우 무료로 할당하지만 대부분 유료로 할당한다.

기억할 것이다. 통신 3사들이 가끔 주파수 할당을 위해 경매전에 돌입하며 조 단위의 돈을 배팅하는 것을. 결론적으로 통신의 영역만 보자면, 정부는 통신3사를 불러모아 때 되면 특정기간을 정하고 '이 주파수 매물로 나왔는데 얼마에 살래?'고 제안하며, 통신3사는 서로 눈치를 보며 자신에게 유리한 주파수를 할당받기 위해 눈치게임에 돌입한다.

그런데 이렇게 할당되는 통신 주파수는 진입장벽이 상당히 엄격하다. 통신은 국가 기간 인프라며 상당히 중요하게 다뤄져야 하는 핵심이기 때문이다. 그런 이유로 선택받은 자들만 경매에 참여할 수 있다. 국내에서는 통신3사만 주파수를 할당받을 수 있다. 통신 서비스를 할 수 있는 통신3사만 대상인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정부는 고민에 빠진다. 중요한 국가 기간 인프라인 통신망을 위해 소중한 주파수를 통신3사만 나눠줬는데, 이들이 가끔 독과점에 담합을 불사하며 소비자에 피해를 주었기 때문이다. 그러자 정부는 2011년 7월 알뜰폰 사업을 정식으로 추진한다. 주파수를 가진 통신3사 외 다양한 사업자들이 같은 서비스에 뛰어들 여지를 남겨 전반적인 경쟁체제를 도입, 궁극적으로 더 훌륭한 통신시장을 만들자는 취지다.

여기서 이상한 점을 발견해야 한다. '주파수가 없는데 어떻게 통신 서비스를 한단 말인가?' 정부는 이 문제를 기가 막히게 풀었다. 기존 통신3사가 의무적으로 알뜰폰 사업자에게 망을 제공해야 한다는 단서를 달았기 때문이다. 알뜰폰 사업자가 MVNO, 가상이동통신망 사업자로 불리는 이유다. 이들은 통신3사의 망을 빌려 자신만의 브랜드로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 기회를 잡았다.

이 외에도 정부는 알뜰폰 사업자가 살아남을 수 있도록 다양한 장치를 마련했다. 일단 진입장벽을 낮췄다. 주파수를 할당받아야만 서비스를 추진할 수 있는 통신3사와 다르게 알뜰폰 사업자들은 망을 기존의 3인방에게 빌리는 한편, 알뜰폰 사업자는 현행법상 별정2호 또는 별정4호로 등록만 하면 된다. 허가제가 아닌 등록제라는 뜻이다.

게다가 정부는 통신3사가 알뜰폰 사업자에게 의무적으로 망을 제공해야 한다는 단서를 달아 '갑의 횡포'를 미연에 방지했다. SK텔레콤의 경우 시장 1위 사업자라는 이유로 알뜰폰 사업자가 원할 경우, 무조건 망을 제공해야 한다.

이 지점에서 미묘한 대목이 포착된다. 일단 알뜰폰 1위 사업자인 CJ헬로비전을 보자. CJ헬로비전은 케이블 사업자면서 알뜰폰 시장의 최강자로 우뚝 섰다. 미디어와 통신의 조합인데, 익숙하지 않은가? 통신3사는 모두 IPTV라는 미디어 플랫폼을 가지고 결합상품의 형태로 인터넷 및 통신 서비스를 패키지로 제공해 가입자를 늘리고 있다. 그리고 CJ헬로비전도 결론은 다소 다르지만, 일단 자사의 케이블 플랫폼과 알뜰폰 경쟁력인 통신 인프라를 모두 가지게 됐다.

대기업의 알뜰폰 시장 진입으로 '통신+미디어+인터넷'의 판이 바뀔 계기가 생겼다는 점은 특이하다.

여기에 CJ와 같은 대기업은 물론, 각 통신사들도 알뜰폰 회사를 가지고 있다. '알뜰폰 사업으로 시작된 가입자 유출을 반드시 막겠다'는 통신3사의 굳은 의지가 느껴진다.

▲ 출처=KT텔레시스

서비스의 명암
알뜰폰의 서비스는 어떨까? 대부분의 사람들이 알뜰폰을 '아류'로 인식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는 사실과 다르다. 통신3사의 기존망을 그대로 사용하기 때문에 통신 서비스의 질은 동일하기 때문이다. 물론 프리미엄 스마트폰이 거의 없고 멤버십 할인 등도 없지만, 좋은 스마트폰 대신 낮은 요금제를 사용하고 별도의 통신사 멤버십 혜택을 사용하지 않는 사람에게 알뜰폰은 말 그대로 선택 1순위다.

물론 알뜰폰 사업자에게 장밋빛 미래만 있는 것은 아니다. 당장 올해 9월로 예정된 전파사용료 면제 여부 결정이 급하다. 만약 이 지점에서 통신3사의 반발, 혹은 기타 돌발상황이 발생하면 알뜰폰 사업자는 뿌리부터 무너질 확률도 있다.

게다가 최근 수익성이 좋아지고는 있지만 여전히 대부분의 알뜰폰 사업자들이 적자의 늪에서 허덕이는 부분도 불안요소다. 알뜰폰 사업자는 LTE의 경우 5만5000원 이하 요금제에서는 통신사와 55대45, 5만5000원 초과 요금제에서는 45대55의 비율로 수익을 나눈다. 이 지점에서 알뜰폰 사업자의 불만이 고조되는 만큼, 추후 귀추가 주목된다.

구글을 주목하자
여기서 구글 소식을 더해보자.

최근 구글은 미국에서 이동통신 서비스 ‘프로젝트 파이’를 공개했다. 당장 파격적인 조건으로 시장에 엄청난 충격파를 던지는 분위기다. C(콘텐츠)-P(플랫폼)-N(네트워크)-D(디바이스)를 모두 휘어잡기 위한 구글의 네트워크(N) 전쟁이 시작됐다. 이번에 공개된 프로젝트 파이는 지극히 구글스러운 형식의 파괴를 추구한다. 월 20달러면 무제한 음성 및 문자 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데이터는 1GB에 10달러면 충분하다. 게다가 특별한 약정 조건도 없으며 사용하지 않은 데이터는 달러 단위로 환급도 해준다.

다만 조건은 있다. 프로젝트 파이의 서비스를 받으려면 구글의 레퍼런스 스마트폰인 넥서스6가 있어야 한다. 아직 초기 시범 서비스라 구글에 초대장을 신청해 받아야 하는 번거러움도 감수해야 한다. 구글이 이동통신망을 직접 구축하는 것은 아니며 스프린트와 T-모바일 유에스에이와 제휴하는 형태로 서비스가 진행된다.

▲ 출처=구글

구글은 프로젝트 파이를 통해 가입자에게 셀룰러망과 와이파이망 중 가장 빠른 통신망과 연결해준다. 이 서비스를 위해 100만 개이상의 핫스팟을 선정했으며 접속과 동시에 신호들을 암호화 시키는 기술도 확보한 상태다.

느껴지는가? 파격적인 조건을 내건 통신 서비스가 탄생한 것이다. 낮은 가격에 합리적인 서비스, 여기에 치밀한 환불정책은 프로젝트 파이라는 알뜰폰(MVNO) 사업에(알뜰폰이라는 단어 자체가 미묘하지만, 일단 쓴다) 뛰어든 구글의 무서움을 단적으로 설명한다.

만약 구글이 프로젝트 파이를 국내에서 시작한다고 상상해보자. 넥서스6 외 다양한 단말기와 협력해 같은 조건으로 서비스를 시작한다면? 아예 DIY 스마트폰인 아라폰에 프로젝트 파이가 붙는다면? 또 다른 자사 프리미엄 스마트폰에 탑재된다면? 알뜰폰 사업자의 약점인 프리미엄 스마트폰 부재가 간단히 해결되며 시장은 근본부터 바뀔 것이다.

결론적으로 알뜰폰은 주류 통신 서비스를 위협하는 다크호스, 아니 핵폰탄이 될 전망이다. 프리미엄 스마트폰이 필요하지 않은 상태에서 낮은 요금제를 선택하고 싶다면 보조금 포함의 대가로 얻는 20% 요금할인의 이해득실을 따지기 전에 알뜰폰 사업자를 알아보는 편이 현명하다.(물론 자세히 알아봐야 한다. 알뜰폰이 비싼 경우도 분명히 있다) 그리고 추이를 살펴야 한다. 구글이 판을 벌인 알뜰폰 사업은 조만간 판을 바꿀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