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임경지 민달팽이유니온 대표 [사진: 이코노믹리뷰 노연주 기자]

비가 오는 날이면 어디선가 등장하는 달팽이. 등 위에 무거운 껍질(달팽이집)을 진 채 스멀스멀 기어가는 모습이 다소 애처로워 보이지만 그들은 행복한 존재다. 그 껍질은 그들에게 따스한 보금자리이자 휴식처이기 때문이다. 반면 등껍질이 없는 민달팽이는 사람들 발에 밟혀도 ‘바스락’ 소리조차 내지 못한 채 생을 마감한다. 이러한 민달팽이는 우리에게 깊은 연민의 정을 느끼게 한다. 우리 사회의 민달팽이들이라면 대학생, 취업 준비생, 사회 초년생 등이 있다. 이들에게 보금자리 마련은 넘을 수 없는 장벽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가운데 집 없는 청년 ‘민달팽이’들이 자신들의 주거문제를 스스로 해결하기 위해 뭉친 단체 ‘민달팽이 유니온’이 설립된 지 올해 5년째를 맞았다. 특히 지난해에는 주거 빈곤자들을 대상으로 조합원들의 출자금을 통해 주택을 짓거나 임차해 최소한의 운영비만 임대료로 내면 살 수 있는 비영리 공공주택을 만들겠다는 취지로 주택협동조합도 창립했다. 올해부터 새롭게 민달팽이 유니온을 이끌고 있는 임경지 대표를 만났다.

‘인(in) 서울’ 대학교 진학을 목표로 밤낮없이 공부에 열중했던 수험생들. 인고의 노력 끝에 서울권 대학에 입학했지만 그들에게는 예상치 못한 ‘주거의 벽’이 존재했다. 특히 지방에서 상경한 대학생들은 비싼 등록금을 내면서 연일 치솟는 주거비까지 부담하려다 보니 상경(上京)을 후회하는 이들도 있다.

실제 서울시에 거주하는 청년 5명 중 1명은 ‘주거 빈곤층’이다. 최근 서울시의 ‘청년정책의 재구성 기획연구’에 따르면 서울의 주거 빈곤 청년(만 19∼34세)은 청년 전체 인구 229만4494명의 22.9%인 52만3869명이었다. 서울 전체 가구의 주거 빈곤율 20%보다 높은 수치다. 주거 빈곤층은 주택법에 규정된 최저 주거기준에 미달하는 주택뿐 아니라 지하 및 옥탑, 비닐하우스·고시원 같은 주택 이외의 거처에 사는 가구를 뜻한다.

임경지 민달팽이 유니온 대표는 “대학 입학 후 처음 서울에 와서 신촌 지역에 보증금 500만원, 월 임대료 40만원을 넘지 않는 방을 구하려 인근 부동산을 모두 돌아다녀봤지만 공인중개업소 사장들은 하나같이 ‘그 가격의 방은 없다’고 잘라 말했다”며, “방을 구하지 못한 내 자신이 마치 사회에서 자격이 부족한 사람임을 선고받는 것처럼 들렸다”고 회상했다.

임 대표는 “일단 서울의 주택 가격이 지나치게 높게 형성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청년실업률과 저임금으로 인해 청년들의 월 소득이 낮고 목돈 만들기는 더더욱 힘들어졌다. 결국 보증금이 낮은, 환경이 매우 열악한 곳에 살 수 밖에 없는 것”이라며 “특히 대학가의 경우 열악한 주거공간에도 수요가 있다 보니 공급도 지속되고 있는 실정”이라고 전했다.

민달팽이 유니온의 시작은 지난 2011년 지방에서 올라온 연세대학교 학생들의 ‘현 주거정책을 지속해서 견제하고 감시하고 계속 의견을 제시하는 지속 가능한 단체가 있었으면 좋겠다’라는 생각에서 비롯했다.

1년 정도는 연세대학교 안에서만 활동하다가 2012년에 연세대학교를 중심으로 서대문구, 마포구에 있는 홍익대, 서강대, 이화여대와 연합해 ‘대학생 주거권 네트워크’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2013년부터는 서울지역 전체로 활동 범위를 넓혔다.

이 중에서도 지난해 3월 창립한 민달팽이 협동조합은 지난 2010년부터 청년 주거문제에 주력해왔던 민달팽이 유니온의 값진 결과물이다.

임경지 대표는 “그동안 집주인이 달라는 월세를 다 주며 살았지만, 이제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모아 주택 수요자 중심의 대안적인 주거공간을 만들어보겠다는 의지로 민달팽이 주택협동조합을 출범하게 됐다”고 조합의 설립 취지를 밝혔다.

▲ 출처=민달팽이유니온

민달팽이 주택협동조합의 비전은 집 없는 청년들의 주거문제 해결을 위해 같은 처지에 있는 세입자를 모으는 것이다. 조합원들이 모여 수요가 충분한 원룸 건물을 통째로 빌린 후, 장기 계약을 해서 임대료를 시세의 75% 정도로 낮추겠다는 계산이다.

임 대표는 “집이 없는 청년들이 주체가 돼 지난 2013년 9월부터 본격적인 준비 작업에 들어가 5개월 만에 출자금 355만원, 조합원 43명의 협동조합을 만들어냈다”며, “처음 하다 보니 협동조합 설립신고 과정에서도 서류 미비 등으로 두 차례 반려되는 등 우여곡절을 겪기도 했다”고 전했다.

이후 조합은 조합원들이 자발적으로 출자한 8200만원의 출자금을 시작으로 남가좌동에 12평(40.39㎡)짜리 빌라 두 채를 장기 임대했다. 빌라 한 채마다 2명이 사용하는 큰방(14.16㎡)과 한 명이 쓸 수 있는 작은방(9.14㎡)이 각각 하나씩 마련됐다.

임대료도 주변 시세 대비 60% 정도로 낮췄다. 이 주택은 집 없는 ‘민달팽이’들의 단단한 울타리가 되어준다는 의미로 ‘달팽이집’이라고 이름지었다. 달팽이집은 현재 2호까지 완료된 상태며, ‘달팽이집 3호’도 곧 공급할 예정이다.

임경지 대표는 “달팽이집의 형태는 쉐어하우징에 알맞은 형태로 설계해 입주자 간의 공동체성을 높이고 쾌적한 공동생활이 가능하도록 하고 있다”며 “특히 세입자 간 전체회의를 통해 입주자들의 관계를 돈독히 하고 재능 나눔, 가계부 워크숍 및 재무 상담, 주거 상담 등 다양한 서비스가 이뤄지고 있다”고 설명했다.

▲  임경지 대표 [사진: 이코노믹리뷰 노연주 기자]

한편 임경지 대표는 대학생 등 주거약자를 위한 현 정부의 주거정책이 ‘수박 겉 핥기’식이 아닌 현실을 반영한 정책으로 변화돼야 한다고 강조한다.

임 대표는 “LH공사(한국토지주택공사)와 서울시가 대학생을 대상으로 임대주택을 제공하고 있지만 그 비율이 매우 적어 혜택을 받는 청년비율은 턱없이 낮은 편”이라며 “최근 급증하는 민자 기숙사의 경우 직영보다 더 비싼 기숙사비를 책정해 주거약자로 분류되는 대학생들의 주거비 부담을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최근 청년들이 살기 힘들다고 외치니 현 정부는 학자금 대출, 월세 대출 정책 등 대출을 확대하는 월세 대책을 발표했는데, 이는 ‘언 발에 오줌 누기’식 대책으로 빚지고 대학을 다니는 게 당연한 일인 듯 정부에서는 대출만 장려하고 있다”고 밝혔다.

임경지 대표는 공급자보다 수요자 중심의 주택 가격 안정화 정책이 절실하다고 힘주어 말한다. 임 대표는 “주거 빈곤계층을 위한 차등적인 부동산 정책이 필요하다. 특히 공공임대주택의 경우 가구원 수나 서울 주거기간, 제조업 종사여부 등 가산점 제도를 통해 입주가 결정되는데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온 청년들의 경우 소외될 수밖에 없다. 이런 부분에서 정책 배려가 필요하며, 결국 공공 임대주택의 절대적인 양을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