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는 삶의 축소판이다. 사랑과 미움이, 삶과 죽음이, 행복과 불행이 있다. 덕분에 우리는 웃기도 하고 울기도 하고 분노하기도 하며, 행복에 젖어 며칠을 즐거워하기도 한다.

영화와 관련된 글을 보면 영화에 평점을 매기기도 한다. 그 평점에 의해 좋은 영화와 나쁜 영화를 구별하기도 하는데, 필자 개인적인 입장으로는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한다. 영화는 감독이 생각하는 바를 표현하는 것이다. 200자 원고지 한 칸 한 칸을 글자로 채우듯, 하얀 캔버스에 선과 점으로 그림을 그리듯 말이다. 생각을 표현하는 데 좋은 생각과 나쁜 생각이 존재할까? 행동에는 비교적 윤리적 잣대가 명확하다. 하지만 생각과 감정은 불분명하지 않은가!

좋은 영화와 나쁜 영화는 없다. 다만 관객이 공감을 많이 하는 영화와 그렇지 못한 영화는 있다. 스크린에서 펼쳐지는 감독 또는 작가의 이야기가 내 이야기 같으면, 다시 말해서 공감이 잘 된다면 더 재미있게 느껴지게 마련이다. 당연히 공감의 정도에 따라 재미있는 영화와 재미없는 영화는 존재한다.

뻔한 로맨스 영화?

보고 나면 행복해지는 영화가 있고, 반대로 기분이 언짢은 영화가 있다. 얼마 전 개봉한 강제규 감독의 <장수상회>는 행복해지는 영화에 속한다. 특히나 이 영화가 주는 ‘행복의 메시지’가 너무 현실적이고 강렬하여 주변 사람들에게 추천하고 싶을 정도다. 하지만 필자가 처음부터 이 영화에 환호했던 것은 아니었다.

영화의 예고편을 본 소감은 솔직히 그저 그랬다. 달달하고 코믹한 ‘그레이 로맨스’로 소개되었기 때문이다. 인간이 가장 행복할 때가 사랑에 빠졌을 때라고 한다. 하지만 그 사랑이 깨지거나 또는 시간이 흘러 콩깍지가 떨어지고 나면, 행복은 언제 그랬냐는 듯 사라지고 만다. 하물며 요즘처럼 이별과 이혼이 흔하디흔한 세상에, 사랑은 ‘행복의 징표’라고 할 수 있을까? 사랑 앞에 ‘영원한’을 붙이기도 어려운 때인데 말이다. 더구나 필자 개인적인 생각으로, 로맨스 영화는 <러브 액추얼리> 이전에도 없었고 이후에도 없다!

하지만 일만의 기대가 있었다. 바로 이 영화의 감독이 강제규 아닌가! ‘우리도 블록버스터 영화를 만들 수 있구나!’ 하며 봤던 <쉬리>, ‘전쟁 영화라면 이 정도는 되어야지!’ 했던 <태극기 휘날리며>의 감독 아닌가? 물론 뛰어난 시나리오 작가이기도 하니, 달달한 로맨스도 나쁘지 않으리라.

<식스 센스>급? 그 이상!

과거를 회상하는 장면에서 시작되는 영화는 꽉 막힌 성격의 주인공 ‘성칠’과 아들 뻘 되는 슈퍼 사장 ‘장수’ 사이에 갈등이 고조되는 클라이맥스까지, 말 그대로 달달하고 재미있었다. 스토리의 중심은 성칠과 금임의 로맨스였다. 코믹 멜로물에는 늘 보아왔던 감정의 굴곡이 심한(주로 살짝 들떠 있지만) 등장인물, 자잘한 신변잡기적인 이야기, 그리고 가끔 가슴을 찡하게 하는 노인들의 사랑이 전부였다. 솔직히 말해서, 그저 그랬다. 마음이 편치 않았다. 내심 ‘이 영화 끝나면 감독이 힘들겠구나!’ 하는 걱정까지 했다. 평소 강 감독의 팬으로서 많이 속상했다.

하지만 클라이맥스를 넘어서자, 아니 클라이맥스라고 믿었던 장면이 지나자 영화는 완전히 달라졌다. 말 그대로 반전이었다. 브루스 윌리스가 필자와 비슷한 직업을 가진 주인공으로 열연한 <식스 센스(1999)>라는 영화가 있다. 영화를 다 보고 나면 충격적인 반전으로 한동안 멍하다. 감독의 상상력과 치밀함에 놀라다 못해 괜히 미워지기까지 했다. 이 영화가 어찌나 극적인지, 흔히 반전이 잘 그려진 영화를 <식스 센스>급 영화라고 한다.

바로 <장수상회>가 <식스 센스>급이다! 마지막 부분에 도달하자 극장은 온통 눈물바다가 되었다. 상상이나 했겠는가? 달달한 로맨스 영화를 보다 갑자기 엉엉 우는 소리가 객석 이곳저곳에서 터져 나왔다. 같이 영화를 보던 아내는 친정 부모님 생각에 오열을 했다. 오랜만에 부모를 따라 영화관에 온 큰 아들도 눈물을 참느라 연신 눈을 깜빡였다.

필자는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는 직업을 갖고 있다. 늘 여러 사람들의 인생역전이나 굴곡 있는 삶과 자주 마주하게 된다. 그래서 웬만한 반전에 놀라지 않는다. 하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식스센스보다도 더 큰 반전이 일어났다. <장수상회>는 우리 주변에서 목격할 수 있는 사건이다. 어쩌면 누구도 영화와 유사한 상황에서 완벽히 벗어났다고 결코 장담할 수 없다. 다시 말하면 <식스 센스>는 일반적으로 겪기 어려운 일이지만, <장수상회>는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상황이란 것이다. 영화가 주는 공감과 감동이 더 큰 이유다. 물론 필자도 실컷 울었다. ‘역시 강제규!’라는 감탄이 절로 나왔다.

지금이 가장 행복하다

영화는 첫 장면으로 돌아와, 두 어린 소년과 소녀가 무엇 때문에 그렇게 애틋하게 바라보았는지, 그리고 그들이 주고받았던 이야기가 어떤 의미인지 알려주고 막을 내린다. 스토리만으로도 훌륭하지만 이 영화가 감동적인 이유는 단순히 비극적이어서가 아니다. 오히려 너무 행복해 보여서다. 끝으로 갈수록 정말 감동적인 대사와 장면이 많았지만 필자가 꽂힌 대사는 특히 영화 중반을 넘어서 사랑에 빠진 성칠과 금임의 데이트 장면에 등장한다. 현재의 사랑이 너무 좋기도 하지만 불안하기도 했던 성칠의 조바심에 금임이 한 마디 던진다.

“그냥 지금처럼 지내면 안 돼요? 지금이 제일 좋고 행복하잖아요!”

정확한 대사인지 자신할 수 없지만, 두 사람의 미래를 걱정하는 성칠에게 마음 놓고 현재를 즐기자는 금임의 한 마디는 여운이 길었다.

노인들에게 삶은 몇 페이지 남지 않은 잡지와도 같다. 한 글자 한 글자 소중히 아끼며 읽어가야 한다. 젊은이라고 다를 것이 없다. 젊은이들의 삶이라고 인생이 두 번 복제될 리 없을 뿐더러, 우리 삶의 가장 소중한 시점은 바로 지금이니 말이다. 지금, 그리고 여기(Here & Now)가 행복의 시제인 것은 이미 이야기한 바 있다. 노인이 아니더라도, 현재를 행복하게 보내지 못하면 결코 미래의 행복은 없다.

행복학자들의 연구에 의하면, 행복하게 사는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의 차이는 의외의 것에 의해 갈린다고 한다. 과연 무엇일까? 연구 결과는 지금 행복하다고 느낀 사람들이 미래에도 행복하다는 것이다. 미래에 행복해지기 위해 현재를 저당 잡히거나 포기한 사람들은 결코 미래에도 행복해질 수 없다.

행복한 영화, <장수상회>는 이렇게 말한다.

“사랑한다고요? 그럼 용기 내어 당장 시작하세요! 행복한 삶을 살고 싶다고요? 그렇다면 지금부터 당장 행복해져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