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칠레 라포스톨 와이너리 풍경. 출처=레뱅드매일

최고 중의 최고라는 프랑스 보르도의 값비싼 ‘샤또’ 와인 형제들이 한국 시장에 대해 오판했다고 인정했다. 아니, 이대로 한국 시장을 영영 잃을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대표들의 내한이 이어지는 모습을 보자면 체면을 차릴 여유도 없이 좌불안석인 것 같다. 유명 브랜드 파워를 앞세우고 국내에 들어와 고급 와인 시장을 선점했던 이들이 뜻밖의 복병을 맞았던 것이다.

바로 한-칠레 FTA다. FTA 체결 이후 칠레의 한국 와인 수출량은 1500배 이상 폭발적으로 늘었다. 그러더니 몇 년 후에는 프랑스 와인을 밀어내고 수입 와인 시장 점유율 1위를 차지해 버렸다. 2014년 통계청 자료 기준으로도 칠레 와인은 국내에 가장 많이 수입된 와인이었다. 심지어 이 불황에도 수입량은 늘었다.

방한 중인 칠레 와인 브랜드 ‘라포스톨(Lapostolle)’의 샤를 앙리 드 부르네 라포스톨 대표를 서울 강남의 와인 교육장인 아카데미 듀뱅에서 만났다. 그는 세계적인 프랑스 주류 기업인 그랑 마르니에(Grand Marnier) 가문의 7대손이자 라포스톨의 창업자인 알렉산드라 마르니에 라포스톨의 아들이다.

▲ 칠레 와인 라포스톨의 샤를 앙리 드 부르네 라포스톨 대표. 출처=이코노믹리뷰 노연주 기자

사실 칠레 와인은 손쉽게 마트에서 사서 집에서 부담 없이 마시는 저렴한 와인이었다. 어쩌면 그 ‘만만함’이 한국 시장에서 칠레 와인을 선전하게 한 원동력이었을 것이다. 그에 비해 라포스톨은 좀 특이한 데가 있는 와인이다. 와인업계에 물으니 칠레가 산지이지만 ‘저렴하다’는 설명 대신 ‘친환경’, ‘프리미엄’이라는 고급 수식어로 설명한다. 정통 프랑스 와이너리 집안 출신인 대표를 만나자 그 의문이 풀렸다.

와인 사업에 투신하게 된 계기를 물었다. 그는 학부에서 나노공학을 전공하고 MBA 학위를 취득했다.

“알다시피 라포스톨 와이너리는 가족 사업입니다. 어머니가 오랫동안 정성을 다해 키워온 사업이었기 때문에 누군가는 물려받아야 하는 가업이었죠.”

친환경 농법으로 포도 재배를 고집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가족 사업이기 때문에 최소한 3~4세대는 물려 줘야 하는데 그러려면 현재와 같은 토양의 질을 계속해서 유지해야 한다. 와인의 맛을 결정하는 주 요인이 이 ‘떼루아’라는 토양이다.

칠레의 토양과 기후는 와인 생산에 최적화되어 있다. 칠레는 일교차가 크고 비가 적어서 포도의 즙이 많고 수확에 용이하다. 라포스톨 대표는 북쪽의 사막, 동쪽의 안데스 산맥, 남극의 파타고니아 빙하, 서쪽의 태평양으로 인해 외부와 단절돼 병충해가 없다는 점을 강조했다. 19세기 ‘필록세라’라는 병충해의 유행으로 유럽의 포도밭이 거의 대부분 망가졌다. 프랑스 역시 포도원의 80%가 유실됐다. 이때 프랑스에서 품종을 들여온 칠레의 포도나무는 무사했다는 설명이다.

▲ 칠레 와인 라포스톨의 샤를 앙리 드 부르네 라포스톨 대표. 출처=이코노믹리뷰 노연주 기자

1990년대 초 프랑스 밖에서 사업을 이어가려던 알렉산드라 회장은 칠레가 가진 천혜의 자연환경과 프랑스의 양조기술을 더하기로 했다. 그의 곁에는 유명 와인 메이커인 미셸 롤랑이 있었다.

설립 시기부터 포도 재배와 와인 양조에 친환경 기법을 사용했고 2006년부터 바이오다이나믹 농법을 함께 시행하고 있다. 현재 이들의 와인은 유기농 인증기관의 인증을 받은 상태다. 그러나 라벨에 표기조차 하지 않는다. 친환경적이고 지속적인 경영은 자랑하기 위한 것이 아니고 그들의 철학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농법이 와인의 맛이나 풍미에 당장 영향을 주지는 않겠지만, 무엇보다 포도가 건강하고 토양에 해롭지 않기 때문에 장기적으로 분명 맛이 좋을 것이라고 자신했다.

“수출 시장으로만 치면 현재 미국이 40% 정도를 차지해 1등 시장입니다. 남미가 20%이고 유럽과 아시아도 각각 20% 수준입니다.” 라포스톨에게 아시아, 특히 한국은 ‘주요 시장’(Key Market)이다. 라포스톨 대표는 이미 한국이 와인 소비에서 성숙한 시장이라고 보고 있다. 일본과 한국 시장의 차이를 묻자 “일본은 하이엔드나 고가 와인 시장은 훨씬 크게 형성돼 있다. 하지만 중산층 마켓은 한국이 크다”고 구분 지었다.

중국 부호들이 바이주 대신 와인을 찾으면서 중국이 거대한 와인 시장이 됐다. 라포스톨 대표도 중국을 진지한 시장으로 보고 있다. 그는 실제로 중국인들은 상당히 높은 수준의 와인을 마시기도 하고, 중국으로 들어가는 와인의 물량도 많았지만 중국에 만연한 뇌물 문화 때문에 실제로 마시는지 아니면 뇌물로 쓰이는지 그동안 알 수 없었다고 했다.

부패 척결과 호화 사치 풍조 배격을 내세운 시진핑 체제 출범 이후 선물용 와인의 판매는 감소했지만 라포스톨 대표는 “이제서야 중국 내 ‘진짜 시장’을 볼 수 있다”고 말한다. 특히 중국은 대표 와인 수출국들 중 칠레, 호주와만 FTA를 체결한 상태라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와인 생산을 가족 사업으로 이어받은 대표가 생각하는 좋은 와인의 조건은 ‘밸런스’다. “어머니는 여자가 섹시하면서 동시에 우아해야 하듯이 프루티한 단 맛과 우아한 여배우와 같은 엘레강스함이 조화를 이룬 와인이 최고라고 가르쳤어요. 너무 우아하기만 한 여자는 지루하고 섹시하기만 한 여자는 부담스럽잖아요?”

그에게 큰 영향을 준 어머니는 품질에 있어서는 타협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라포스톨의 대표 프리미엄 와인인 끌로 아팔타(Clos Apalta)는 1997년 등장과 동시에 세계적인 와인 전문지 <와인 스펙테이터(Wine Spectator)>에서 큰 호평을 받았다. ‘스타의 탄생’이었다. 하지만 바로 이듬해인 1998년에 알렉산드라는 날씨가 좋지 않다는 이유로 와인을 생산조차 하지 않았다.

그는 “라포스톨의 끌로 아팔타는 <와인 스펙테이터>가 뽑는 100대 와인에 2005년 1위, 2006년 2위로 이름을 올렸으며 기복 없이 꾸준히 상위에 오르고 있다”고 자랑했다. 브랜드보다 맛으로 승부하기 위해 모든 포도를 포도 맛이 가장 좋은 밤 시간에 100% 수작업으로 수확하고 있다고 한다. 일교차가 크기 때문에 더운 낮에 포도를 수확하면 포도송이가 뭉쳐 즙이 많이 소실되기도 하고, ‘쿨링’ 등에 전력을 덜 사용하는 친환경 농법을 위해서 한밤중에 작업을 한다. 이들은 수확되어 버킷에 담기는 포도에서 잃게 되는 과즙까지도 신경을 쓴다.

▲ 칠레 라포스톨 와이너미 와인 저장고. 출처=레뱅드매일

마지막으로 라포스톨과 맞는 한국 음식을 추천해 달라고 했다. 그는 한국 바베큐도 라포스톨 와인과 궁합이 좋지만 칠레 와인은 어떤 음식에도 잘 스며든다고 답했다. 특별하게 어떤 맛이 튀면 ‘좋은 와인’이 아니라고 한다.

그가 한국 와인 애호가들에게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있다. 아보트 샹떼(À votre santé)! 프랑스어로 ‘건배’다. 긴 말 필요 없이 칠레산 프리미엄 와인은 꼭 한번 마셔보라는 말로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