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인의 생활에서 빠지면 허전하고 서운한 것이 있다. 텔레비전(TV)이다. 자동차 없이 살 수는 있어도 TV 없는 삶은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사람이 있을 정도로 TV는 단순한 가전제품을 넘어 현대 생활 문화의 한 부류로 자리 잡았다.

TV는 컴퓨터와 스마트폰의 보급 이전에 인류의 생활을 가장 먼저 윤택하고 편리하게 한 고마운 전자 제품으로 나름의 소임을 다해왔다. ‘바보상자’라는 달갑지 않은 별명도 있지만, TV가 있었기에 오늘의 경제 성장과 정보 생활이 가능했다는 점에 있어서는 부정하는 이가 없을 것이다.

세계 TV 시장에서 아시아에 연고를 둔 업체들이 분전하고 있다. 대한민국의 삼성전자와 LG전자, 일본의 소니와 샤프 등의 업체가 아시아는 물론 세계 곳곳에서도 호평을 얻고 있는 TV 브랜드라고 할 수 있다.

특히 한국의 TV 기술은 오랫동안 치열하게 전개됐던 삼성-LG 양강 경쟁 구도 덕분에 눈부신 성장을 이뤄냈고, 세계 평판 TV 시장에서 사이좋게 1, 2위를 점유하고 있다.

<이코노믹리뷰>는 아시아 TV 시장의 쌍끌이 역할을 해 온 한국과 일본의 TV 개발 시장의 어제와 오늘, 그리고 미래를 알아보고, 무서운 속도로 추격하고 있는 중국의 TV 산업에 대해서도 알아봤다.

한국 평판TV 시장 독보적 경쟁력

국내 TV 시장 1위를 석권하기 위한 삼성전자와 LG전자의 끝없는 경쟁은 어느덧 40년 세월을 훌쩍 넘겼다. 두 업체는 서로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치열한 선두 경쟁을 벌였다. 대우전자와 아남전자 등 다른 TV 생산 업체들도 내수 시장에서 분전했지만, 결국 삼성과 LG의 벽을 넘지는 못했다.

국내 TV 개발 시장을 시작한 것은 LG가 먼저였다. LG전자의 전신(前身)인 금성사는 1966년 8월 단군 이래 최초의 국산 TV인 ‘VD-191’을 생산해 국산 TV 시대를 열었다.

당시 금성이 출시한 이 흑백TV의 가격은 6만8350원. 당시 금성사 신입사원 월급이 1만2000원이었고, 쌀 한 가마니가 2500원이라는 것을 감안하면 상상을 초월하는 고가의 물건이었다. 하지만 첫 국산 TV에 대한 인기는 너무나 높았다.

공급이 수요를 따르지 못했기 때문이다. 전해지는 일화에 의하면 당시 국내 유일의 TV 방송국이었던 서울중앙방송국 TV(현재 KBS 1TV)의 공개 추첨 프로그램을 통해 TV의 주인공을 가릴 정도였다.

1969년 전자업계의 후발주자로 출발한 삼성전자는 LG보다 4년이 늦은 1970년에 흑백TV 생산에 돌입했다. 내수용 TV를 양산하기 시작한 것은 1972년 11월부터였다.

1970년대 중반 컬러TV 기술이 개발되고, 지상파 TV의 컬러 방송 시작과 함께 TV 시장의 비중도 흑백에서 컬러로 옮겨가면서 두 회사 간의 TV 기술 경쟁은 더욱 치열해지기 시작했다.

‘하이테크(금성)’와 ‘이코노(삼성)’로 대표되던 양대 TV 브랜드의 마케팅 경쟁도 TV 대중화의 바람을 타고 뜨거워졌다. 초반 마케팅 경쟁에서 주도권을 잡은 것은 LG였지만 삼성의 추격세도 매우 거셌다.

1990년대 들어서 TV의 종류가 초대형TV, 와이드TV, 평면TV로 세분화되면서 삼성과 LG의 경쟁은 점입가경에 이르렀다. 오차를 잡기 힘든 선두 경쟁 속에 한국의 TV 산업은 날로 발전해갔다. 물론 두 회사 간의 과열 마케팅 경쟁 때문에 다른 TV 개발 업체들이 큰 빛을 보지 못하고 TV 시장에서 철수한 점은 옥의 티로 꼽힌다.


3D TV 생산방식 또 한번의 승부

한국 TV 산업 흥행의 쌍끌이 역할을 하고 있는 삼성전자와 LG전자의 TV 기술 경쟁은 스마트 TV와 3D TV 등 차세대 TV 제품군에서 정점을 찍고 있다. 다만 평판 TV 경쟁 시대와 달라진 점이 있다면, LG가 그동안 한 발 뒤처졌다는 것이다.

LG전자는 그동안의 부진을 만회하기 위한 전략으로 연내 셔터글라스(SG) 방식의 3D TV 생산을 전면 중단하고 향후 3D TV 생산 방식을 필름 패턴 편광안경방식(FPR)으로 전환할 방침이어서 앞으로의 3D TV 판매 경쟁이 더욱 치열해질 전망이다.

2010년 3D TV시장에서 삼성에 크게 뒤졌던 LG전자는 FPR 방식의 시네마 3D TV를 최근 국내에 본격 출시했다. 이 TV는 종전과 같이 편광방식이지만 3D필름을 부착해 원가를 내렸고 영상투과율을 높여 더 밝고 선명한 3D영상을 구현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그동안 걸림돌로 지적됐던 3D TV 전용 안경에 대해서도 기술 개선을 이뤄냈다. 비싸고 무거웠던 안경 대신 배터리가 필요 없는 가벼운 안경으로 개발한 것이다. 가격도 1만 원대로 싸다.

권희원 LG전자 홈엔터테인먼트(HE)사업본부장은 “FPR 방식은 TV가 좌·우측 영상을 동시에 표현해 풀HD급 3D 영상을 양쪽 눈으로 보는 기술”이라며 “번갈아 가며 한쪽 눈을 가리고 봐야하는 SG 방식 3D TV의 화면 및 안경 깜빡거림과 화면 겹침이 없다는 것이 강점”이라고 말했다.

어지럼증의 원인 자체가 없으니 3D 영화 등을 장시간 시청해도 셔터안경 방식 3D TV와는 달리 눈이 편안하고 고통을 유발하지 않는다는 설명이다.

이에 질세라 삼성전자도 차세대 TV 제품군을 내놨다. 윤부근 삼성전자 영상디스플레이사업부 사장은 “경쟁사의 FPR 방식이야말로 구식”이라면서 “해상도가 떨어져 풀HD구현이 힘들다는 단점이 있다”고 지적했다. 삼성은 LG와 다르게 SG 방식을 고수한다는 입장이다.

삼성이 최근 선보인 D7000, D8000 3D 스마트 TV 시리즈는 화면과 TV 끝단 사이의 테두리(베젤) 간격을 지난해 28㎜에서 5㎜로 줄였다는 것이 돋보인다. 3D 영상을 시청할 때 화면과 하나 되는 효과가 배가된다는 것이 삼성 측의 설명이다. 또 무선주파수를 이용한 블루투스 방식을 안경에 적용해 깜빡거림의 원인을 없앴고, 파워를 올려 화면 겹침을 해소했다.

결과적으로 눈의 피로감과 3D TV의 최대 문제점이었던 어지럼증과 메스꺼움을 줄였다는 점에 있어서는 LG전자와 같다. 어떤 방식이 승자가 될지는 소비자가 판단할 몫이다.

삼성과 LG가 아시아를 넘어 세계의 평판 시장을 장악했다면, 3D TV 시장 장악을 노리고 있는 존재는 단연 일본의 소니와 파나소닉이다. 한국의 삼성·LG처럼 일본 TV 산업의 대표 주자로 손꼽히는 두 업체는 세계 차세대 TV 시장에서 놀랄 만큼 무서운 성장 속도를 보이고 있다.

일본 소니 시장점유율 회복 주목

패널 구분을 두지 않은 3D TV 시장 전체로는 삼성전자가 36.2%로 1위를 차지했고 소니(33.5%)가 바짝 뒤쫓았다. 하지만 패널을 구분하자면 소니의 성적은 달라진다. 소니는 LCD 패널을 사용한 3D TV 시장에서 작년 4분기 43.3% 점유율(판매량 기준)로 1위에 올라서 그간 1위를 독주해오던 삼성전자(36.1%)를 앞질렀다. PDP TV 강자인 파나소닉도 3D PDP TV 시장에서 작년 4분기 50.5% 점유율로 1위를 차지했다.

TV 부품에서도 소니의 파워가 갈수록 커지고 있다. TV 패널을 공급하는 삼성전자와 LG전자에게 소니는 역시 절대 놓칠 수 없는 큰 손이다. 그동안 소니는 삼성전자와 손을 잡고 LCD 합작사인 ‘S-LCD’를 통해 LCD 패널을 받아 왔다.

하지만 올해부터는 사업 파트너를 LG디스플레이로도 넓혀 7년 만에 다시 패널을 공급받기로 했다. 거래처 다양화를 통해 아시아 TV 시장에서 세력을 넓혀가겠다는 소니의 의중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

TV업계에서 소니의 영향력이 커지고 있는 것은 삼성과 LG 등 한국 업체들에게 밀려났던 시장 점유율이 점차 회복 기미를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LCD TV만을 판매하는 소니는 지난해 4분기 LCD TV 분야 점유율(매출액 기준) 12.4%를 기록해, LG전자를 제치고 1년 반 만에 2위 자리를 되찾는 등 기력을 회복하고 있다. 전자업계 관계자는 “소니의 기력 회복이 세계 TV 시장에도 적잖은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말했다.

소니의 영향력 상승은 곧 일본 TV 산업의 부활을 뜻한다. 한국 TV 업체와의 경쟁, 아시아·세계 TV 시장 1위 탈환을 향한 정면 공략에 다시 나서고 있다는 것과도 맥이 통한다. 하지만 전문가들은 일본 TV 업계의 역전 가능성을 낮게 점치고 있다. 한국의 삼성·LG를 뒤집기에는 차세대 TV 시장의 파이가 너무 작기 때문이다.

아시아 TV 산업 지도에 한국과 일본만 있는 것은 아니다. 중국도 TV 산업에 공을 쏟고 있다. 특히 중국 최대의 가전업체인 하이얼(Haier)이 한국 시장을 발전의 무대로 삼고 있어 눈길을 끌고 있다.

중국 하이얼 소형 중심 저가 공세

하이얼의 전략은 삼성·LG·소니와는 확연히 다르다. 다른 3개 경쟁 업체들의 TV 크기가 갈수록 커지고, 기술이 복잡해지고 있는데 반해, 하이얼 TV는 소형 TV를 무기로 택했다. 틈새시장을 공략하겠다는 계산이다.

하이얼은 홈플러스와 이마트 등 국내 주요 대형마트를 통해 22인치 미니 LCD TV를 공급하고 있다. 하이마트 등 전자제품 전문 매장에도 하이얼 제품이 속속 입성하고 있는 상황이다.

하이얼의 강점은 삼성·LG 등 국산 대형업체의 제품에 비해 가격 경쟁력이 뛰어나다는 점이다. 홈플러스에서 판매되고 있는 LCD TV 22인치 가격은 30만 원대에 불과하다. 비슷한 크기에 생산된 삼성·LG LCD TV 가격은 하이얼에 비해 두 배 정도 비싸다.

디스플레이 기술이나 품질에 있어서는 한국 업체들에 비해 한 수 아래라는 평을 듣고 있지만, 일단 가격 면에 있어서는 훨씬 우월한 경쟁력을 지니고 있다. 하이얼은 향후에도 한국 소형 TV시장에 주력해 존재감을 더 높인다는 방침이다. 하이얼 관계자는 “하이얼은 일본에서도 소형가전을 주로 공급하면서 브랜드 이미지가 높아졌다”면서 “일본에서 거둔 성공 사례를 바탕으로 한국에서도 같은 전략을 쓸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정백현 기자 jjeom2@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