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치소에 수감돼 항소심을 진행 중인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1차 공판이 지난 1일 진행됐다. 이날 재판장이 재판 말미에 ‘할 얘기가 있으면 하라’고 하자 “이 자리를 빌어 피해자들에게 용서를 빕니다. 제 잘못을 깊이 반성하고 뉘우치고 있습니다. 선처를 구합니다”라고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일각에서는 조현아 전 부사장이 불면증으로 잠을 이루지 못하며, 돌을 넘긴 쌍둥이 아들을 그리워한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이 기내 승무원의 서비스를 지적하며 발생한 그녀의 꾸짖음(怒)이 일파만파 커지며 지금의 사태를 만들었다. 그녀는 왜 그렇게 분노한 것일까. 무엇이 그녀로 하여금 사무장을 하차시키고 항공기를 되돌리게 했을까.

이 일로 인해 그녀는 보직에서 사퇴하고, 대국민적 비난을 받으며 수감자가 됐다. 어느덧 그녀가 파란색 수의를 입은 지 100일이 넘었다. 사건 발생 후 그녀의 아버지인 조양호 한진그룹 회장도 기자회견을 자청해 국민들에게 90도로 허리를 접으며 딸의 잘못을 용서해달라고 하소연했다.

그녀의 잘못은 분명하다. 아무리 회사에서 기내 서비스를 맡고 있는 상관이지만 기내의 다른 고객들에게 불편을 끼친 건 명백히 서비스 마인드가 부족한 행위였다. 하지만 여기서 짚어봐야 할 또 다른 ‘분노’는 그녀의 행위에 대한 국민들의 집단 반응이다.

이전에도 말실수를 하거나 거만한 행동을 한 연예인 혹은 ○○녀 등이 인터넷에서 거론되면 여론 몰이를 통한 소위 ‘마녀사냥’이 진행됐다. 처음에는 잘못된 행동이나 말에 대한 지적에서 시작되지만 점점 그 수위가 높아지며 나중에는 차마 입에 담기 거북한 욕설과 비방이 물밀듯 쏟아진다.

정반대의 상황도 있다. 지난해 하반기 대한민국을 뜨겁게 달궜던 드라마 <미생>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이끌어내며 사회적 이슈가 되기도 했다.

열한 살에 한국기원 연구생으로 들어가 프로 기사만을 목표로 살아가던 청년 장그래가 입단에 실패하고 ‘회사’라는 전혀 새로운 세계에 들어가 겪는 다양한 인간관계가 우리의 마음을 움직였다.

검정고시 출신으로 고졸에 취미도 특기도 없지만 신중함과 통찰력, 따뜻함을 지닌 장그래는 합리적이고 배려심 깊은 상사들을 만나 일을 배우며 세상과 소통하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미생>을 시청하며 자신의 이야기를 보는 듯했다고 회고한다. 미생을 주제로 동료들과 이야기를 나누며 하루의 업무를 시작하고, 나만 힘든 게 아니구나 하는 위로를 받았다.

‘미생(未生)’은 바둑 용어다. 집이나 대마 등이 살아있지 않은 상태 혹은 그 돌을 이르는 말이다. 완전히 죽은 돌을 뜻하는 사석(死石)과는 달리 미생은 완생할 여지를 지니고 있는 돌을 의미한다.

바둑에서는 완전한 집이 두 집 이상 있어야 살았다고 표현한다. ‘미생’인 각각의 한 집이 서로 연결돼 두 집이 됐을 때 비로소 살게 되는데, 이것이 ‘완생’이다.

‘미생’인 장그래가 주위 구성원들과 소통하며 하나의 공동체로 거듭나며 ‘완생’을 이뤄가는 모습에 ‘나’를 대입시키고 완생에의 희망을 보는 것이다.

그럼 사람들은 왜 인터넷상에서 ‘마녀사냥’에 열을 올리고 <미생>에 나를 대입하는 것일까. 현재 우리가 살아가고 있는 세상에 ‘화(怒)’가 많기 때문이다.

뛰어놀아야 할 어린아이들은 선행학습 때문에 짜증이 가득하고, 청소년들은 학교 폭력과 왕따에 주눅이 들고 무관심한 사회에 대한 적개심만 쌓인다.

청년들은 스펙을 아무리 쌓아봤자 일자리가 없어 먹고살 걱정에 분노가 치민다. 중년들은 백수인 아들과 노후 대책 없는 부모님 봉양에 허리가 끊어진다. 노인들은 오늘도 차가운 골방에서 다섯 명에 한 명꼴로 고독사(孤獨死)를 맞을 운명에 처해 있다.

이처럼 사방팔방이 분노로 가득하다 보니 은연 중에 인터넷이라는 가상의 공간에서 자신이 받고 있는 ‘화’를 표출하는 일들이 늘고 있다.

한 정신과 전문의는 “화가 나면 코르티솔(Cortisol)이나 아드레날린(Adrenalin)과 같은 분노 호르몬이 분비되며 몸은 ‘싸우거나 도망칠’ 준비를 한다”며 “반복적인 화나 급격한 분노가 생기면 문제가 생기기 쉽다. 그래서 화가 많은 사람일수록 심혈관계 질환이 훨씬 많이 발생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화를 많이, 자주 내는 사람은 기억력과 판단력 같은 뇌의 기능도 떨어진다. 우울증이나 화병이 발병할 가능성도 많아진다. 화를 감당하지 못할 경우 행동이 거칠어지고 공격적으로 변해 대인관계가 나빠질 수밖에 없다.

때문에 ‘화가 많은 사회’는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구성원 간의 반목과 폭력적인 행동, 타인에 대한 배려나 희생이 없어지며 분위기는 점점 각박하고 무서워진다.

상술했던 전문가는 “화가 나는 이유는 다양하지만, 개인적인 애티튜드(Attitude)나 가치관의 영향을 많이 받는다”며 “평소 적대적이거나 피해의식이 많은 사람, 사고가 부정적인 사람도 화가 많다”고 말했다. 이어 “정의가 구현되지 않거나, 안전 문제로 생존에 위협을 받거나, 배려가 없고 무관심한 사회에 분노가 폭등하기도 한다”고 덧붙였다.

우리는 지금 ‘분노’로 가득한 힘든 사회를 살고 있다. 하지만 이 ‘분노’와 ‘화’를 다스리지 못하면 사회는 물론 개개인의 삶도 불행해질 수밖에 없다.

화는 ‘내 몸에 슨 녹’과 같다고 한다. 화가 커지면 커질수록 우리 몸은 녹슬고 결국 바스러진다. 좀 더 건강하고 행복한 삶, 행복한 사회를 위한 첫걸음은 SNS상에서의 비난과 비방을 멈추는 것에서 시작되지 않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