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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덕’의 꿈 ’씨서론’을 아십니까한국에서도 맥주 전문가 공인 자격증 과정 생겨나
이윤희 기자  |  stels.lee@econovill.com  |  승인 2015.04.15  14:06:08

오랫동안 맥주는 한국에서 대접 못 받는 술이었다. 폭음을 즐기는 한국인에게 맥주는 ‘소맥’이나 ‘양폭’을 위한 재료였고, 단독으로는 가볍게 갈증을 해소하는 싱거운 술에 불과했다.

   
▲ 출처=이코노믹리뷰 박재성 기자

그렇다보니 국산 맥주의 맛도 영국 경제지 <이코노미스트>의 ‘한국 맥주는 북한 대동강 맥주보다 못한 수준’이라는 보도에 반박하기 어려울 정도로 밋밋했다. 술이라면 어느 나라에도 지지 않는 한국이 ‘맥주 후진국’이라니. 달갑지 않은 오명이지만 떼어내기도 쉽지 않았다.

그러나 최근 2년 사이 한국의 맥주 시장이 조용히, 그러나 완전히 달라져 버렸다. 탄산이 강한 ‘카스’나 ‘하이트’가 장악했던 시장에 전 세계에서 온 다양한 향과 색의 수입맥주들이 등장했다. 마트에만 가도 수십 종의 맥주가 선반에 들어앉아 우리를 어지럽게 만들었다.

거기다 소규모 양조장에서 만드는 수제 맥주(Craft Beer)까지 가세했다. 폭탄주를 즐기는 주당 대신 맥주 본연의 맛을 추구하는 ‘맥덕’(맥주 덕후의 줄임말)이라는 신(新)인류도 생겨났다. 날씨가 더워지면서 지금 한반도에서 벌어지는 맥주 전쟁도 더욱 본격화될 조짐이다.

맥주가 와인보다 다양하다는 걸 아는 사람이라면 와인 소믈리에나 커피 바리스타와 같이 맥주만을 감평하는 맥주 전문가가 있지 않을까 궁금하기 마련이다. 실제로 그런 직업이 있다. ‘씨서론(Cicerone)’이다. 지난 2007년 미국에서 생겨난 이 새로운 직종은 2015년 현재 전 세계 1500여명이 활동하고 있다.

씨서론은 본래 ‘관광 안내원’을 부르는 오래된 표현으로 그 지역의 역사나 문화, 유적지 등에 대한 해박한 지식을 가진 사람을 뜻했다. 2000년 초반에 이미 수제 맥주가 대중화된 미국 전역의 양조장과 브루펍, 레스토랑 등에서는 고객들에게 자신들이 양조한 맥주를 소개하고 맥주에 대한 명확한 지식과 정확한 정보를 전달할 수 있는 인력이 필요해졌다.

아마도 자신들의 맥주와 어울리는 음식을 매칭하는 능력도 매출과 직결된 중요한 사항이었을 것이다. 또한 잘못된 맥주 관리로 인해 생기는 손실을 최소화하고 업소에서 맥주와 관련해 이루어지는 모든 기물을 컨트롤하는 법, 심지어 사소한 청결관리 또한 얼마나 중요한지도 느꼈을 것이고 말이다. 이러한 수제 맥주 산업의 성장에 발맞춰 미국에서 처음으로 전문적인 맥주 전문가를 양성하고 이를 공인할 수 있는 자격증이 생겨났다.

씨서론은 총 세 단계로 구분할 수 있다. 첫 번째 단계는 공인 맥주서버(Certified Beer Server), 두 번째는 공인 씨서론(Certified Cicerone), 마지막으로 가장 높은 수준의 전문가는 마스터 씨서론(Master Cicerone)이라고 한다.

초급인 공인 맥주서버는 온라인으로도 쉽게 응시 가능해 브루(brew)펍의 직원들 중에서도 많이 찾아볼 수 있고, 두 번째 단계인 공인 씨서론은 조금 더 복잡하고 심화된 내용을 다룬다. 국내에 이 공인 씨서론은 아직 극소수로 대부분 미국과 캐나다에서 왔다.

씨서론 중 최고 지위를 나타내는 마스터 씨서론 자격증은 전 세계에 단 9명만이 소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브루독(Brew dog)의 설립자 제임스 와트(James Watt), 더 브루어리(The Bruery)의 패트릭 루(Patrick Rue) 같은 양조업계의 유명인사들이 이 자격을 가지고 있다.

이제는 어엿한 전문 직업군이 된 소믈리에와 바리스타라는 직종이 처음 도입됐을 때의 인기만큼이나 씨서론이라는 낯선 직종에 대한 국내의 관심은 날로 커지는 중이다. 현재 이태원이나 홍대의 브루펍 직원들을 시작으로 공인 맥주서버 자격증 소지자는 한국에서도 하나 둘 늘어 가고 있는 추세다.

지난해 OB맥주는 우리나라 최초의 맥주 교육 프로그램인 ‘OB골든라거 씨서론 아카데미’를 진행했다. 최근에는 전문 자격증 과정도 생겼다. 전통주 전문교육기관인 수수보리 아카데미는 지난 7일 첫 수업을 시작으로 전문 씨서론 자격증 교육과정을 개설했다. 교육은 총 8주 과정이며 40종 이상의 맥주를 시음하고 업장에서의 맥주 관리 및 맥주 서브 방법도 배운다. 이 프로그램의 강사는 국내에서 단 두 명뿐인 공인 씨서론 자격증 소지자 트로이 지첼스버거다.

수수보리 아카데미의 이지아 실장은 “단지 맥주를 즐기고 맛보는 게 아니라 마시는 ‘방법’을 배우고, 어울리는 음식을 찾아 매칭하고 맥주 스타일마다 갖고 있는 역사적인 배경을 배우는 것”이라고 씨서론 교육 과정에 대해 설명했다.

펍이나 양조장의 경영자라면 알아야 할 필수 덕목들을 모두 다루고 있기 때문에 업계 종사자들의 문의와 지원이 많지만 맥주에 관심이 많은 일반인도 수업에 참가하고 있다. 공인 씨서론 시험에 응시하기 위해서는 직접 미국을 찾아야 하지만 수수보리 아카데미에서 10인 이상이 응시할 경우 미국공인인증기관에서 감독관이 방한해 국내에서 시험에 응시할 수 있다.

 

국내 '최초' 씨서론 1호 트로이 지첼스버거 인터뷰

“한국 맥주 맛없다고요? 옛날 얘기죠”

   
▲ 트로이 지첼스버거. 출처=이코노믹리뷰 노연주 기자

공인 씨서론(Certified Cicerone)으로 최초로 한국에 들어온 사람은 둘다 외국인이었다. 그중 한 사람은 캐나다인으로 부산에서 소규모 맥주 양조업체 ‘갈매기 브루잉 컴퍼니’를 운영하고 있다. 그보다 앞서 한국에 들어온 최초의 씨서론 트로이 지첼스버거(Troy zizelsberger)를 이태원의 브루펍에서 만났다.

인터뷰 초반에 “한국 사람들이 좋아하는 맥주는 라거 종류뿐이죠?”라고 물었더니 지첼스버거는 “아니에요. 예전에는 그랬죠”하고 반박한다. 처음 한국에 왔을 때와 비교하면 한국인의 맥주 기호에 엄청난 변화가 있었다는 설명이다.

“라거의 가벼움과 청량감을 즐기던 한국인들은 지금 쌉싸름한 홉의 향과 몰트가 밸런스를 이루는 IPA(Indian Pale Ale) 맥주에 빠져있어요.”

이를 반영하듯 현재 한국은 수제 맥주의 본고장 미국 맥주의 5대 수입국이다.

미시간 주 출신인 지첼스버거는 유독 맥주를 좋아해 자연스럽게 맥주 맛을 탐구하기 시작했고 미국 본토에서 다양한 맥주를 섭렵할 수 있었다. 직접 브루잉(양조)을 시작하면서부터는 대회에도 출전하고 공인 씨서론 자격증도 땄다. 그러다 6년 전 친구의 추천으로 한국에 들어왔다.

한국의 대형 맥주업체에서도 러브콜이 왔지만 그는 좋아하는 현지의 맥주를 수입하고 직접 브루잉한 맥주를 한국 맥주 소비자들에게 소개도 하고 한국에서 맥주에 대한 자신의 지식을 전하는 편이 더 좋았다.

지첼스버거는 이달부터 씨서론 공인자격증 과정의 강의를 맡았다. 첫 강의에 온 학생들은 갓 스물을 넘겨 보이는 사람부터 나이 지긋한 사람까지 연령대도 다양했다.

“좋은 씨서론이 되기 위해서는 후각과 미각이 뛰어나야 하지만 트렌드를 읽는 능력이 아주 중요하다”고 지첼스버거는 강조했다.

인터뷰 중 제주 감귤을 넣어 직접 개발한 제주 IPA를 내왔다. 그의 조언에 따라 먼저 맥주잔을 코에 대고 향을 맡은 후 한 모금 들이키니 감귤과 홉이 내는 향과 혀에 닿는 맛이 씁쓸하면서도 달콤하다. 마치 고급 증류주처럼 깊은 풍부한 맛이 무척 매력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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