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글의, 미국정부의 민낯
구글도 난관은 마찬가지다. 일단 미국정부와의 공조를 끊을 수 없는 상황에서 유럽을 상실하기도 어렵다. 그런 이유로 대책을 세우기는 했다. 지난달 25일 구글은 유럽 법인을 통합시키는 초강수를 뒀다. 유럽의 동서남북을 아우르는 2개의 법인을 합쳐 총괄본부를 둔다는 계획이다. 이에 매트 브리틴 총괄은 "단일 법인으로 통합하면 여러 사업 기회에 대응하기 쉬워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이 말을 곧이 곧대로 믿는 사람은 없다. 구글은 유럽을 중심으로 번지는 공포에 대응하기 위해 콘트롤 타워를 조직하고 기타 세금 및 투명성 부분에서 성의를 보인 것이다. 반(反)구글의 선봉인 영국 런던에 총괄본부를 설치하는 부분이 극적이다.

사실 구글의 입장에서 최악의 시나리오는 데이터 국지화다. 만약 데이터가 국지적으로 교류되며 전체 네트워크가 막히면 정보패권을 쥘 여지가 사라지기 때문이다. 이러한 구글 나름의 공포는 지난해 중순 발표한 보고서에서 여실히 드러난다.

유럽국제정치경제연구소(ECIPE)가 펴낸 본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유럽연합, 중국, 인도, 브라질, 인도네시아, 베트남 등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데이터 국지화 현상이 국내총생산(GDP) 증가율을 둔화시킨다는 것을 골자로 한다.

하지만 여기서 유심히 봐야하는 대목은 보고서 대상국가의 면면이다. 한국, 유럽연합, 중국, 인도, 브라질, 인도네시아, 베트남은 비록 온도 차이는 있으나 대부분 구글이 ‘제대로 진출하지 못한 나라이거나, 혹은 진출해도 미비한 나라’들 뿐이다.

게다가 학계에서는 데이터 국지화와 GDP의 뚜렷한 상관관계를 찾아내지 못한 상태며, 심지어 ECIPE는 구글의 후원을 받고 있는 곳이다. 결국 구글이 말하고 싶은 것은 간단하다. "데이터는 퍼져야 해. 우리를 통해서 말이야"

이런 상황에서 미국정부는 어떨까.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실리콘밸리의 절대적인 지지를 바탕으로 승승장구했다는 것은 익히 알려진 사실이다. 여기서 실리콘밸리의 큰손인 구글이 위협에 처했으니, 당연히 반발하고 나설 수 밖에 없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달 16일(현지시간) 미국 IT 업체에 대한 EU의 견제가 심해지자 이례적으로 이를 비판하기도 했다. "유럽의 제재가 지극히 상업적 목적으로만 행해지고 있다"는 불만이다. 비벡 고살 조지아공과대학 경제학 교수가 구글을 비롯한 실리콘밸리 기업에 가해지는 유럽의 견제를 두고“왜 우월한 형태의 서비스 제공을 차별하는가?”라고 반문한 것과 일맥상통한다.

이에 유럽위원회 대변인은 "규제가 오직 우리 기업만 보호한다는 지적은 잘못된 것"이라고 반박하며 "이런 규제는 다른기업이 우리 시장에 진입하는 것을 더 쉽게 해 준다"고 말하기도 했다. 각자의 말에 숨겨진 행간을 읽는 재미가 쏠쏠하다.

결국 이 지점에서 흥미로운 것은, 유럽과의 관계설정이다.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힌 국제정치를 단순하게 읽어낼 수는 없지만 최소한 정보패권 분야에서 미국정부는 유럽과 각을 세웠다는 것을 인지해야 한다.

결국 판이 변하고 있다는 뜻이다. 유럽은 국가와 국가, 정부와 정부의 문제라면 정보패권의 기울어진 운동장을 어느정도 용인해왔다. 하지만 구글은 인정하지 못한다. 이런 상황에서 미국이 구글의 보호를 위해 발끈하고 나섰다. 이는 추후 벌어질 거대한 전쟁의 '변화'를 의미한다. EU는 오는 5월 디지털 단일시장이라는 거대한 계획을 마무리할 계획이다.

▲ 에릭 슈미트 구글 CEO. 박재성 기자

EU와 실리콘밸리의 전쟁
지금까지 구글과 EU, 미국의 관계설정을 통해 치열한 전투의 현장과, 각자의 고민과, 변화의 시그널을 살폈다. 이제는 EU와 실리콘밸리로 촛점을 이동시켜 넓혀보자.

EU는 지극히 당연하지만, 구글에게만 유감이 있는 것이 아니다. 사실상 실리콘밸리 전체와 전쟁을 치르고 있다. 먼저 애플, 현재 EC는 애플에 대해 반독점 위반 혐의를 잡고 조사하고 있다. 현지에서 실시하는 애플의 스트리밍 음악 서비스가 독점적 횡포를 벌이고 있다는 판단이다. 애플의 전자책 반독점 논란이 오버랩되는 순간이다.

하지만 화룡정점은 역시 페이스북이다. EU의 DPAs가 아예 페이스북을 타겟으로 삼은 것은 물론, EU 최고법원인 유럽사법재판소(ECJ)는 개인정보의 교환과 교류에 대해앞으로 EU와 미국의 15년 협정을 폐기하거나 제한하라는 요구를 두고 청문회를 열기도 했다. 다분히 페이스북을 의식한 행보다.

물론 페이스북은 이 지점에서 할 말이 없어 보인다. 지난해 6월 70만명의 이용자 뉴스피드를 통해 감정조작 실험을 벌여 논란을 자초했던 페이스북이다. 이런 상황에서 이용자와 비이용자, 심지어 웹 경로추적을 거부한 이용자의 일거수 일투족을 수집한 대목은 '페이스북의 프라이버시정책은 EU법 위반이다'라는 보고서가 나와도 무리가 아니다.

게다가 페이스북은 비록 '로그인'을 전제로 하긴 했으나 자신들이 이를 기반으로 빅데이터 마케팅에 나서고 있다는 점을 숨기지도 않는다. 더 나아가 논란의 쿠키를 페이스북 사용자 데이터로 대체한다는 뜻도 숨기지 않고 있다.

▲ 페이스북 개발자 회의. 마크 저커버그 페이스북

정리하자면, 페이스북은 로그인을 한 이용자는 자신들이 추적해도 대상이라는 점이라고 명시했고, 이 지점은 유럽에서 불법으로 여겨질 가능성이 높아졌다. 그런데 페이스북이 이용자와 비이용자, 심지어 웹 경로추적을 거부한 이용자까지 '추적'했다는 것이 밝혀진 셈이다. 물론 이러한 비즈니스 모델이 페이스북의 전유물은 아니다. 국내의 네이버와 다음카카오도 마찬가지고, 일각에서는 위치기반서비스 모두 이러한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이런 상황에서 전쟁은 EU와 미국정부를 등에 업은 실리콘밸리의 전쟁으로 치닫고 있다.그런데 여기서 흥미있는 부분은, 공유경제 논란에서 확인할 수 있는 기존 사업과 새로운 산업의 충돌이 미국에서 벌어지면서 자연스럽게 EU와 실리콘밸리의 전쟁에도 영향을 미치는 점이다. 전쟁의 주체가 복잡해지고 있다는 뜻이다.

단적인 사례로 우버를 보자. 우버는 미국에서도 논란이고 유럽에서도 논란이다. 그리고 실리콘밸리 내부사정도 복잡하다. 마이크로소프트는 유럽에서 벌어지는 구글에 대한 공포를 적절히 '육성'하고, 또 지원하고 있다는 의혹을 받고 있다. 같은 실리콘밸리 기업이지만 내부에서의 다툼이 치열하게 번지며 전쟁의 주체를 수시로 바꾼다는 뜻이며 결국 EU와 실리콘밸리라는 구도도 불안해지는 현상이 반복되고 있다.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구글과 미국의 정보패권에 따른 공유가 긴밀해질수록 EU의 견제는 더욱 심해질 전망이다. 하지만 EU도 나름의 문제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전격적인 판단을 내리기는 곤란하다는 것에 중론이 쏠린다. 결국 경제전쟁의 관점에서 이 문제를 풀어야 하는데, 복잡한 국제정치의 특성상 변수가 너무 많다. 에너지도 변수고, 이데올로기 및 체제의 진영논리도 변수다.

다만 구글은 물론 페이스북에 다가오는 유럽의 공격은 그 자체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유럽은 지금까지 보여주지 않았던 체계적이고 대대적인 공세를 벌일 전망이다. 상대가 질 수 밖에 없는 무기를 들었지만 이는 자신에게도 치명상인 상황에서, 유럽은 어떤 판단을 내릴 것인가.

일각에서는 구글과 오라클이 벌이는 세기의 특허전쟁의 결말이 어느정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입장을 보이기도 한다. 세기의 특허전쟁이 구글의 승리로 굳어질 확률이 높은 상태에서 추상적인 '모델'이 특허로 인정받기 어려워진다면, 유럽을 대하는 구글의 전략에도 다양한 선택지가 생기지 않을까? 물론 결말은 신만 알고있을 것이다. 다만 확실한 것은, "문제는 훨씬 복잡하며, 최소한 흘러온 방향이라도 정확히 알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