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디언을 비롯한 외신은 지난달 31일(현지시각) 벨기에 연구진이 공개한 보고서를 인용해 페이스북이 무차별적으로 웹 이용 경로를 추적했다고 밝혔다. '페이스북의 프라이버시정책은 EU법 위반이다'는 다소 도발적인 제목의 해당 보고서는 페이스북이 로그인하지 않았거나 계정이 없는 비회원은 물론, 경로추적을 거부한 이용자들의 웹 경로까지 추적했다고 폭로했다. 당장 EU(유럽연합)가 움직일 것이라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하지만 결론적으로 말하면, 사실 이는 충격적인 사건이 아니다. 업계에 관심이 있다면 우리 모두가 알고있는 사실들이다.

EU는 잊혀질 권리에 대한 논쟁이라는 그럴싸한 포장을 통해 구글과의 '전쟁'을 시작하며 지난 2월 3일 페이스북을 타겟으로 삼는 전담팀까지 꾸렸다. 중심은 EU의 개인정보보호당국(DPAs·Data Protection Authorities). DPAs는 페이스북의 과도한 개인정보수집을 모니터링하며 이를 조사하는 일종의 TF다.

물론 당초 DPAs의 타겟은 페이스북 이용자들의 개인정보유출 여부였던만큼, 비회원의 정보까지 수집했다고 폭로한 벨기에 연구진의 보고서는 일정정도의 휘발성을 가지지만, 사실 우리 모두는 알고 있다. 페이스북은 꽤 오래전부터 개인정보를 수집하는 방식으로 비즈니스 모델을 꾸려왔고, EU는 페이스북을 공격하기 위해 TF를 꾸렸다는 점을 말이다.

게다가 미국 월스트리트저널(WSJ)과 영국 파이낸셜타임스(FT) 등 주요 외신이 최근 EU집행위원회(EC)가 늦어도 2주에서 3주안에 구글을 정식 제소할 것이라고 보도한 점을 생각하자. 시기가 미묘하다. 이건 페이스북만의 문제가 아니다.

이런 관점에서 벨기에 연구진의 보고서는 다른 의미로 다가온다. "EU가 페이스북을 때리다니!"가 아니다. "드디어 EU가 예정된 페이스북 때리기에 나서는 구나"가 맞다. 더 나아가 "EU가 미국 실리콘밸리와 드디어 본격적인 전쟁을 치르기 시작했구나!"가 더 정확한 반응이다. 착각하지 말자. 이건 예정된 수순이다.

자세히 보면 답이 나온다
보고서와 페이스북, EU와 '때리기'에 집중하기 전에, 프레임을 넘어 큰 그림을 먼저 보자.

현재 EU는 미국의 실리콘밸리 기업들과 전쟁을 벌이고 있다. 꽤 장기전이다. 반독점법 위반 혐의로 구글을 무려 5년 동안 조사했으며 서두에서 밝힌것처럼 EC는 조만간 공식제소에 나설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페이스북에는 개인정보보호법 위반 혐의로 사정의 칼날을 겨누고 있으며 현재 해당 조사는 프랑스와 스페인, 이탈리아의 합류로 조사 참여국이 6개 나라로 늘어난 상황이다. 그렇다면 애플은? 현재 애플은 EU로부터 출시 준비 중인 음악 스트리밍 서비스에 대해 사전조사를 받고 있다.

자세히 보자. 먼저 구글이다. 창조경제를 전면에 내세운 대한민국 정부는 유난히 구글을 사랑하지만(물론 국내에도 의미있는 마찰은 있었다) 사실 세계는, 아니 유럽은 현재 구글과 전쟁중이다.

그런데 전황이 조금 복잡하다. 일단 구글은 정보를 다루는 기업의 입장에서 미국정부와 사실상의 밀월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미국정부는 당연한 말이지만 유럽의 각국과 표면적으로 정치적 관점에서 우호적인 분위기를 이어가고 있는 상태다.

여기까지는 문제가 없다. 유럽도 딱히 거부감이 없다. 물론 독일의 경우 미국의 무차별 정보수집에 반발하며 신경전을 벌이기는 했으나, 최소한 유럽이 정보의 문제로 미국정부와 심각하게 각을 세우지는 않는다.

정리하자면, 구글은 미국의 정보 파트너며 미국과 유럽은 다른 국가들보다 정보공유 및 통제에 있어 심각한 마찰음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 단적인 사례가 에드워드 스노든과 줄리언 어산지 사태다. 이들은 초강대국 미국이 세계의 정보를 무차별적으로 수집한다고 폭로하고 자신의 파트너로 영국을 선택했다. 그들의 입장에서 미국의 정보패권이 강해질수록 영국을 중심으로 하는 유럽은 위기를 느낄 것이라고 판단했기 때문으로 추측된다.

하지만 이는 장고 끝 악수였다. 한때 대영제국의 패러다임을 통해 세계를 운용해 본 경험이 있는 영국은 21세기 정보를 쥐고 있는 미국이 가장 훌륭한 파트너라는 점을 강렬하게 자각하고 있었으며, 이러한 영국에 기댔던 줄리언 어산지와 에드워드 스노든은 제대로 뒤통수를 맞았다.(물론 우려가 아주 없었던 것은 아니다) 줄리언 어산지는 영국에 들어갔다 부랴부랴 에콰도르 대사관으로 피신했으며, 에드워드 스노든을 취재했던 영국의 일간지 가디언은 당국으로부터 보복성 조사를 받았다. 결론적으로, 국가와 국가의 관점에서 미국과 유럽(영국)은 어느정도의 여지가 있다.

그러나 이는 어디까지나 국가와 국가, 정부와 정부의 문제다. 아무리 미국의 정보패권을 인정하는 유럽이라고 해도 일개 기업이 '판'에 끼어드는 것은 용납하기 어렵다. 여기서 영국은, EU는 왜 구글을 증오하는가?라는 문제에 재차 답을 할 차례다.

상술했듯이 이는 기업이 정보패권 각축전에 끼어드는 것을 인정할 수 없는 EU의 정서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정서는 결국 미국과의 힘겨루기와 관련된 정치적 셈법도 포함되어 있다. 여기에는 국가와 국가의 문제는 인정해도, 구글은 인정할 수 없는 '이유'가 있다.

구글은 2009년 이후 투명성 보고서(transparency report)를 발표하며 2014 년 3월 그 동안 각국 정부가 구글에게 알려 달라고 요구한 정보가 120% 증가했다고 밝혔다. 대부분 미국정부다. 그런데 유럽 입장에서 이는 아주 위험한 시그널이다. 정부와 정부의 공조로 정부를 공유하고, 이에 대한 일정정도의 독과점은 힘의 논리로 차치한다고 해도, '유럽에 강력한 인프라를 보유한' 구글이 미국정부와 손을 잡은 상황은 역시 위험하기 때문이다.

구글은 미국 기업이었지만 유럽에서 시장 점유율 90%를 가져가고 있다. 미국 시장 66% 보다 높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영국을 비롯한 유럽의 입장에서 미국과의 정보 불균형은 협상의 단계에서 인정할 수 있지만 자신을 너무 잘 알고있는 긴장적 동맹관계의 비공식 파트너는 인정할 수 없다는 뜻이다.

이렇게 이해하면 편하다. A라는 조직이 B와 친하다. B가 힘이 강력한 관계로 A는 B와 적절하게 관계를 유지하며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다. 그런데 어느날, B-1이라는 녀석이 나타나 A를 세세하게 관찰하고 이를 B에게 전달한다. A가 B-1을 견제하기 시작하는 것은 당연한 수순이다.

그런 이유로 영국은 구글이 엮이는 순간만큼은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인다. 2010년 유럽에서 구글의 반독점 조사가 벌어질 수 있었던 배경에는 프랑스와 독일을 바탕으로 영국의 주도가 있었기에 가능했으며, 영국은 아예 오프콤(Ofcom)을 중심으로 개인정보와 관련된 구글의 행보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고 있다.

필요하다면 세금을, 혹은 EU를 활용하며 구글에 타격을 입히고 있다는 뜻이다. '잊혀질 권리에 대한 논란'이 영국에서 가장 활발하게 벌어졌다는 점을 고려하면, 현실은 더욱 뚜렷해진다.

이런 상황에서 유럽을 중심으로 EU는 구글에 대대적인 공세를 감행한다. 지난해 11월 27일(현지시각) 일명 '구글 쪼개기'라는 평가를 받는 결의안을 통과시켰기 때문이다. 그것도 EU 유럽회의 양대 정파인 유럽국민당그룹(EPP)과 사회당그룹(PES) 모두 결의안에 찬성하며 압도적인 표로 통과시켰다.

상황이 이렇게 돌아가자 미국정부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먼저 의회가 움직였다. 지난해 11월 26일(현지시각) 미국 공화당과 민주당의 상원 재무위원회와 하원 의원들은 공동성명을 통해 “미국의 IT기업에 대한 (유럽의회의) 결의안은 자유로운 시장경쟁에 대한 EU의 생각에 의심을 일으키게 한다”며 "구글 문제를 정치쟁점화하지 마라”고 경고했다. 사실상 미국 정부 차원의 압박에 돌입한 셈이다.

▲ 출처=미 의회DB

유럽의 민낯
더 큰 문제는, 여기에서 서로의 민낯이 드러난다는 점이다. 먼저 유럽이다. EU는 구글 쪼개기 결의안을 통과시키고 EU집행위원회(EC)가 늦어도 2주에서 3주안에 구글을 정식 제소할 가능성이 높지만, 실효성 여부에는 의문부호가 달린다. 물론 이러한 행보들이 탄력을 받으면 구글은 엄청난 타격을 입을 것이다. 지난해 통과된 결의안은 법적 효력이 없으나 향후 EU의 구글 제재에 있어 일종의 가이드라인 역할을 수행할 확률이 높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속속 실질적 위기도 닥치고 있다. 네덜란드는 구글 이용자의 사전 동의 없이 개인정보를 사용하는 행위를 바꾸지 않을 경우 벌금 1500만 유로(183억원)를 부과한다고 밝혔으며 영국은 구글이 법인세율이 낮은 국가에 이익을 이전해 세금 규모를 줄이는 행위를 규재하기 위해 지난해 말 다분히 구글을 노린 '다국적 기업의 수익 이전액 25% 수준의 세금 부과' 정책을 발표했다. 이러한 제재가 현실이 되면 구글은 연간 매출의 10%를 벌금으로 날릴 처지다.

그러나 이후가 문제다. 구글이 타격을 입는다고 전제하면, 대안은 있는가? 유럽에서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는 구글을 몰아내면, 유럽의 ICT 인프라도 상당한 혼란에 빠질 가능성이 높다. 지난해 11월 독일의  미디어 그룹 악셀 스프링어가 구글에 백기투항한 대목을 살펴보자.

유럽 최대 일간지 빌트를 비롯해 다양한 언론사를 소유한 악셀 스프링어는 구글의 지나친 영향력을 견제하기 위해 구글 검색 결과에서 자사의 뉴스를 노출시키지 않는다고 선언했다. 유럽을 휘몰아치고 있는 반(反) 구글의 바람을 타고 유통 플랫폼과의 결별을 선언한 것이다.

하지만 대가는 컸다. 악셀 스프링어에 따르면 구글과의 결별 이후 검색 클릭을 통해 들어오는 트래픽이 40% 감소했으며 구글 뉴스를 타고 들어오는 트래픽도 무려 80%나 폭락했다. 이에 악셀 스프링어는 “홈페이지 트래픽이 폭락한 것은 구글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행정당국이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후 악셀 스프링어는 다시 구글에 자사의 뉴스 콘텐츠를 제공하기 시작했고, 구글은 “환영한다”는 논평을 남겼다. 결국 구글의 막강한 영향력이 세부적으로 굳어버렸다는 뜻이다. 필요악과 비슷한 개념이다.

게다가 유럽 일각에서는 '과연 이 모든 문제가 구글 때문인가?'라는 반론도 나오고 있다. 여기에는 유럽에 제대로 된 '구글의 대체자'가 없다는 지적이 숨어있다. 유럽은 기업 입장에서 세금과 고용 규정이 지나치게 까다롭고, 유럽 금융 시스템은 은행 대출에 방점을 찍어 위험을 감수하고 모험에 나서는 자본이 없다는 반론이다.

게다가 유럽은 유럽연합 결성 당시부터 불거진 거대 단일 경제권 내부의 격차, 언어적 이질성, 여전히 존재하는 각자의 규제 등으로 구글에 대항할 수 있는 거대 IT기업을 잉태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구글같은 기업이 없는데 구글을 없애면 어떻게 하느냐'라는 주장이다. EU의 한숨소리가 여기까지 들리는 이유다.(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