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2일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2월 임시 국회에서 한나라당은 종교갈등으로 확산되고 있는 이슬람 채권(조세특례 제한법 개정안) 도입에 관한 법안 상정을 유보시켰다.


2월국회 처리 또 무산…이슬람권 ‘투자쇄국’ 눈총
수쿠크 고집말고 출자·보험상품에도 눈돌려야

이슬람채권(수쿠크)법의 국회 통과를 둘러싸고 종교계와 정치권의 첨예한 공방이 계속되며 법안 통과가 사회적 이슈로 떠올랐다. 특히, 기독교계는 “법안 찬성 의원의 낙선운동을 불사하겠다”는 단호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결국 한나라당은 올 2월 임시국회에서도 이슬람채권법을 다루지 않기로 결정했다. 이로서 이슬람채권법은 3년에 걸쳐 모두 6번 국회 통과(임시국회 포함) 좌절의 쓴 잔을 삼키는 비운을 겪었다.
이번 사태를 계기로 이슬람채권은 과연 우리에게 어떤 존재인지, 그만한 가치가 있는 것인지 되짚어보지 않을 수 없다. 이슬람금융 시리즈를 마감하는 이번 최종호에서는 우리나라의 이슬람자금 활용 방안과 관련 상품, 이슬람금융이 극복해야 할 과제 등을 다뤄본다. <편집자 주>

바레인에 본사를 둔 이슬람금융 전문투자회사인 A사. 이슬람금융회사라고 해서 터번을 둘러쓴 이슬람교도들이나 히잡을 두른 중동 여성들만이 일하고 있을 것이라는 판단은 오산이다. 지난 2007년 문을 연 A사 싱가포르지점 전체 직원 8명 가운데 5명은 월스트리트 출신이다. 이들은 모건스탠리, 골드만삭스 등 미국계 투자은행에서 잔뼈가 굵은 전형적인 IB(Investment Bank)들이다.

또한 그들은 대부분 미국인이거나 유럽계인이다. 자금 집행 시 이슬람율법에 따라야 한다는 것 외에는 서구식 투자은행들과 다를 게 없다. 이슬람율법상 도박, 술, 매춘, 무기 등 비도덕적인 부문에 투자하지 못한다는 가이드라인만 잘 지키면 된다. 여기에다 부채 비율이 과도하게 높은 기업에는 투자하지 못하도록 하는 등 율법상의 재무 비율 규정이 있기는 하지만 실제 기업투자 활동에 영향을 줄 만큼 심각한 사안은 아니다.

또한 편법(?)이 통용되기도 한다. 이 회사는 수년 전부터 풍력발전단지 건설과 풍력발전 터빈 제조업체의 지분투자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 2005년 세계 3위 풍력발전기 터빈 제조회사인 ‘슈즐론(Suzlon)’사의 대주주인 탄티그룹(Tanti Group)과 공동으로 풍력발전단지 투자회사인 호니톤에너지 홀딩스(Honiton Energy Holdings)를 설립한 뒤 2억3000만 달러를 들여 중국 내몽고 사막에 초대형 풍력발전단지를 건설했다.

벤처투자도 활발하다. 현재까지 약 10여 개 벤처에 1억 달러의 투자를 실시했다. 비 이슬람권의 벤처캐피탈 회사들과 마찬가지로 창업 초기단계의 기업에 출자해 자본 이득을 추구한다. 투자 대상을 보면 에너지, 하이테크산업, 헬스케어, 정보기술(IT) 등으로 다양하다. A사는 벤처투자 외에 기업투자에도 적극적이다.

기업투자는 IB들의 전통적인 투자 패턴인 바이아웃(Buy out) 형식을 띤다. 바이아웃이란 기업 경영권을 획득해 구조조정 및 사업 재편 등을 거쳐 기업 가치를 올린 뒤 매각해 차익을 실현하는 방식이다. 이 회사의 수익구조는 어떨까? 총 운영자산 300억 달러, 연간 순이익은 3억∼4억 달러, 우리나라 돈으로 약 3500억∼4600억 원에 달한다. 이는 국내 중견그룹사의 실적과 맞먹는 규모다. 지점은 바레인 외에 미국 아틀란타, 영국 런던, 싱가포르 등 모두 4개이며 직원 수는 300여 명에 달한다.


한국 IT·차세대 에너지 분야 관심

흥미로운 것은 A사의 싱가포르지점은 아시아 시장 개척을 위한 전초부대라는 점이다. 그동안 유럽과 미국, 인도 중심의 투자를 실시해 왔으나 중국을 비롯해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등 동남아 국가는 물론 한국까지도 진출을 검토하고 있다. 이 회사 관계자는 “IT와 차세대 에너지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있는 한국에 관심이 있다”고 말했다.

국내산업 육성을 위해 시드머니(Seed money·종자돈)로 이슬람금융을 활용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엿보게 하는 대목이다. 그동안 우리 정부와 증권사들의 노력은 채권 형태의 이슬람자금을 도입하는데 초점이 맞춰져 왔다. 수쿠크 발행을 통해 기업들의 자금 공급원을 보다 다변화하자는 취지다. 그러나, 상대적으로 이슬람자금의 출자(Equity)상품은 도외시 한 측면이 있다. 이슬람금융을 새로운 수익원으로 개발하려는 국내 증권사들은 대부분 국내 기업의 수쿠크 발행 주관을 통한 수수료 수입 확보에 매달려 왔다.

A사의 사례에서 보듯이 출자 형태의 이슬람자금은 국내 벤처기업 육성, 차세대 에너지 개발, 사회 간접자본 시설 구축 등에 활용될 수 있는 매력적인 돈이다. 선도적인 기업은 이미 이슬람자금을 들여와 국내 벤처투자와 신성장동력 부문에 투자해 그 가능성을 확인시켜 주고 있다.

사모펀드 운용회사인 S사가 바로 그 회사로, 사우디아라비아 건설청 성격의 SEDCO (Saudi Economic Development Company)로부터 출자를 받아 2009년 지식경제부 주도의 1000억 원 규모 신성장 동력펀드 운용사로 선정됐다.

출자 형태의 이슬람자금 도입은 최근 논란이 되고 있는 수쿠크 법안과 달리 현행법상 문제될 소지가 없다. 다만, 이슬람금융이 한국시장에 생소해 투자를 꺼린다는 점이 아쉽다. 수쿠크 법안 마련 과정에서 드러났듯이 그들로서는 한국이 문화적, 종교적 이질감이 큰 이해하기 어려운 나라다.

중동 SOC 수주업체 자금 숨통 기대감

정부와 민간 금융회사들이 이슬람금융권을 상대로 한 한국 IR(Investor Relation)을 적극 시행해야 한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중동지역에서 진행되고 있는 현행 국가 IR은 다소 이벤트성에 가깝고 사후 관리가 안 돼 실효를 거두기 어렵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출자 형태의 투자는 이슬람 율법이 규정하는 사업 리스크 공동 부담 평등주의에도 부합한다.

사실 수쿠크 발행을 통한 자금 차입은 이자 수수를 금지하는 율법과 정면으로 배치돼 다소 기형적인 발행 구조를 갖고 있다. 결국 이로 인한 추가비용(법인세 취등록세 등)이 발생하게 돼 세법상 특례를 적용하지 않는다면 기존의 일반채권에 비해 조달 코스트가 높을 수밖에 없다. 이슬람금융권 내부에서도 자조 섞인 이야기가 들린다.
“발행 구조도 복잡하고 가격(조달비용)이 싼 것도 아닌데 누가 선뜻 (수쿠크를) 발행하겠느냐”는 것이다.

그러나 수쿠크 발행을 통한 자금 차입은 중동과 동남아시아 등 이슬람문화권 국가에 진출한 한국기업들의 펀딩 소스(Funding source)로 적극 활용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수쿠크 발행을 통해 현지 금융기관과 유대관계를 구축하는 한편 그 지역 투자자들에게 익숙한 금융상품을 활용해야 자금 운용이 용이하고 코스트 면에서도 경쟁력이 있다는 설명이다.

따라서 이슬람금융권 역내에서 이뤄지는 국내기업 주도의 프로젝트파이낸싱에 수쿠크 활용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중동 석유화학 콤플렉스 건설, 도로 항만 등 사회 간접자본 시설 공사를 수주한 업체들의 경우 이슬람금융을 통한 차입이 효과적일 수 있기 때문이다.

이미 선진국들은 수 년 전부터 그런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일본 도요타자동차그룹의 여신회사인 도요타 파이낸스는 말레이시아에 법인을 설립하면서 수쿠크를 발행해 자금을 조달했다.

이밖에 이슬람 보험상품인 다카풀(Takaful), 예금상품인 와디아(Wadiah), 이슬람부동산펀드, 이슬람사모펀드 등의 상품도 눈여겨볼만 하다. 이슬람금융이 진정한 금융의 새 강자로 등극하기 위해 극복해야 할 과제는 무엇인가 살펴보자.

우선 국가별로 상이하고 정형화되지 않은 샤리아 율법의 정비가 시급하다. 말레이시아와 중동에서 적용하는 샤리아율법의 기준이 달라 수쿠크 발행자들은 혼돈스럽다. 실제로 무라바하 수쿠쿠를 말레이시아에서 발행할 경우 사실상 중동 투자자들에게는 판매가 불가능하다. 중동에서는 무라바하 수쿠크의 유통을 금지하고 있어 투자자 찾기가 쉽지 않은 현실이다.

출자상품의 경우에 적용되는 샤리아 재무 비율 규정도 각 지수기관별, 국가별로 달라 통일된 규정 마련이 필요하다. 더욱이 샤리아위원의 개인 성향에 따라 허용 여부가 좌우되는 문제는 이슬람금융의 국제화에 큰 걸림돌이 아닐 수 없다.

수쿠크 발행이 필요한 계약서와 각종 문서 양식이 국가별로 제 각각인 점도 개선 과제다. 일반채권(달러표시)의 경우 어느 나라에서 발행을 하든 공통된 양식이 적용되는데 반해 수쿠크는 그렇지 못해 각종 계약서에 대한 법률 검토 시간이 길어지고 비용 증가를 야기한다.

의미가 불분명한 금융 용어도 바로잡아야 한다. 각종 이슬람금융 용어들은 종교적 의미를 지니고 있어 기존 금융시장에서 사용하는 용어들과 괴리가 있다. 금융업 종사자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용어 정리가 필요하다.

부동산 투자에 과도하게 집중돼 있는 이슬람금융의 투자 포트폴리오도 보다 다양화돼야 한다는 지적이다. 이슬람사모펀드와 각종 투자펀드의 경우 전체 운용자산의 50% 이상을 부동산에 투자하는 포트폴리오 쏠림 현상이 심하다.

최근 들어 대형 이슬람금융 투자회사들은 서서히 부동산 투자 비중을 낮추고 차세대 에너지, 바이오, 첨단기술 등에 대한 비중을 늘리는 추세다. 하지만 비 이슬람금융권의 사모펀드들과 비교할 때 이슬람금융의 부동산 투자 비중은 아직도 매우 높은 편이다. 특히 두바이 신용 위기 사태 이후 이슬람금융권 내부에서 과도한 부동산 투자에 대한 자성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반세기만에 자본시장의 다크호스로

이슬람금융이 과연 세계 금융시장에 새로운 바람을 일으킬 것인지 자못 궁금해진다. 이슬람금융은 의외로 짧은 역사적 배경을 갖고 있다. 1963년 최초의 이슬람은행이 설립됐고 1970년대 각종 관련 국제기구들이 생겨나면서 자리를 잡아간 점을 감안할 때 반세기의 역사에 불과하다.

1970년대 이후 경제 발전의 가속화로 전 세계적으로 자동차 보유량과 에너지 사용이 급증하면서 유가는 가파른 상승세를 이어왔다. 이렇게 중동에 쌓여간 ‘오일머니’는 부동산, 기업, 사회 간접자본 시설, 금융회사 지분, 선박 등 다양한 분야에 걸쳐 세계 곳곳에 투자됐다. 그 주체는 국부펀드였다.

중동의 국부펀드는 오일머니를 종자돈 삼아 덩치를 급속히 키웠다. 자산 1조 달러에 육박하는 세계 최대 국부펀드인 아부다비투자청이 대표적이다. 정확한 통계치는 보고된 것이 없으나 전체 중동 오일머니의 약 30% 가량이 이슬람교의 원칙을 준수하는 ‘샤리아머니’(Shariah Money)인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중동 국부펀드들이 이슬람금융을 도입하게 된 배경에는 미국과의 석유 패권경쟁이 한몫을 했다. 오일머니의 팽창을 원치 않는 미국의 제재를 피하기 위해 종교적 색채를 씌운 금융상품을 개발하면 세계 여론을 의식해 미국이 특정종교에 반기를 들 수 없을 것이라는 판단이었다.

2000년 중반 이후 중동계 국부펀드들이 세계 기업사냥에 본격 나서면서 ‘페트로 달러’(petro dollar)는 본격적으로 스포트라이트를 받기 시작했다. 풍부한 유동성을 발판으로 한 이들 국부펀드들은 구미 선진국 사모펀드들의 고유 영역이었던 바이아웃(Buy out), 인수합병(M&A) 시장에 본격 진출했다.

이슬람채권은 모호한 율법 체계와 복잡한 구조의 단점에도 불구하고 매년 발행 금액이 꾸준한 증가세를 타고 있다. 기존 달러화 채권시장을 벗어나 조달원을 다양화하기 위한 기업들이 수쿠크 시장의 문을 두드리기 시작한 덕분이다.

국제금융 연구기관인 마리스 스트리티지(Maris strategy) 조사에 따르면 이슬람금융의 자산 규모는 서브 프라임 사태로 인한 침체에도 불구하고 2009년 말 기준 8220억 달러로 전년 대비 29% 증가했다. 이 같은 성장세는 앞으로 더 가파른 속도로 지속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슬람금융의 성공 여부는 국가 간 정치적 역학관계보다는 시장논리에 달렸다고 분석된다.

시장친화적인 다양한 금융상품을 개발하고 비 이슬람권 금융회사들과의 파트너십을 확대해 나간다면 이슬람금융은 무슬림만을 위한 지역상품이 아닌 글로벌 금융 시스템으로 거듭날 잠재성을 갖고 있다. 우리 기업들은 변동성이 커지는 글로벌 금융시장에서 살아남기 위해 이슬람금융을 활용해 자금원 다변화를 추구하는 한편 역내 진출 시에는 현지자금 조달원으로 적극 이용할 필요가 있다.

홍순재 라이트하우스 브러스 이사
<이슬람금융의 이해와 실무>(금융연수원 2010년 7월 발간) 공동저자. 파이낸셜뉴스 금융·산업기자, 싱가포르국립대 MBA 산업은행 싱가포르지점 IB 담당 . 現 홍콩계 투자회사 라이트하우스 브러스 이사.

박영환 기자 yunghp@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