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약도 처음엔 그냥 먹어보니 효과가 있다고 시작해서 만들어진 체계다.

한약의 이론체계를 만든 중국 약학서 <본초강목>의 저자 이시진은 약초를 채집해 모양을 보고, 자라는 생태환경을 살피고, 직접 먹어보며 경험을 토대로 약물학의 이론적 바탕을 만들어 갔다.

한약은 이처럼 맛으로 효능을 추정해 설립된 학문이다. 이를 통해 신맛은 간에 작용하며 긴장을 완화시키고, 쓴맛은 심장에 작용해 진정작용을, 단맛은 소화기능을 촉진하고 해독 작용을, 매운 맛은 폐에 작용해 신체 기능을 촉진하며, 짠맛은 신장에 작용해 과다한 항진을 수렴한다는 한방 처방의 기초이론이 정립됐다.

한약을 먹었을 때 열을 조장하는 것은 저하된 교감신경을 부활시켜 인체를 활성화하고, 찬 것은 항진된 부교감신경을 안정화시키는 것을 말한다.

이처럼 맛을 기초로 한 효능의 차이가 한약의 효능을 좌우하는 것이 맞을까?

필자는 과거 일본에서 ‘맛 센서’를 구입해 연구를 지시한 바 있다. 한국한의학연구원에서 연구한 결과 똑같은 생약도 오래 키우면 맛이 풍부해지는데, 식물은 오래 살기 위해 다양한 효소를 만들고 이것이 더 풍부한 효과를 낼 수 있다는 결론을 얻었다.

1900년대까지만 해도 한국을 대표하는 상품은 ‘인삼’이었다. <본초강목>에도 가장 좋은 인삼은 ‘고려인삼(高麗人蔘)’이라고 추천돼 있다. 그런데 인삼을 쪄서 발효시키면 사포닌 성분이 강화되어 더 좋다는 연구가 발표되면서 홍콩의 한약재 시장에서 홍삼이 인삼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사실 인삼에는 사포닌이 많지만 인삼의 사포닌 성분 때문에 모든 효과가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단지 대표 성분일 뿐이다. 실제로 사포닌 함량을 기준으로 본다면 4년 인삼의 사포닌 성분이 가장 많고, 더 오래 키우면 사포닌의 함량이 떨어진다.

사포닌이 염증에 대항하는 효과로만 평가해 사포닌 함량을 높인 홍삼을 높이 평가하기 시작했고 인삼보다 더 높은 등급으로 인정한 것이다.

지금까지 알려진 인삼의 효소는 대략 35가지 정도다. 그런데 홍삼으로 만들면서 5가지 정도의 효소는 파괴되고 대신 사포닌은 강화된 셈이다. 맛도 덜 쓰고 매운 맛이 약간 상승하는 것으로 본다. 아울러 5가지 효소가 없어지면서 사상체질에 관계없이 누구나 먹을 수 있다고 마케팅하기 시작했다.

인삼의 부작용은 열이 많은 소양인이 먹으면 머리가 아프고 어지러우면서 혈압이 올라가는 ‘승열작용(升熱作用)’이라고 알려져 있다. 그러나 실제로 체온을 재보면 열은 올라가지 않는다. 열감만 느끼는 ‘승화작용(升火作用)’인 것이다. ‘열’은 생리적인 열이고, ‘화’는 비생리적인 열이기 때문이다.

이러다 보니 홍콩 시장에서는 효소가 15가지밖에 없어 부작용이 훨씬 적다는 서양삼(화기삼)이 등장해 홍삼마저 밀어내는 해프닝이 벌어졌다.

심지어 스위스 같은 나라에서는 인삼이 한 뿌리도 나지 않는데도 값싼 화기삼에서 사포닌을 추출하는 방법을 개발해, ‘파마톤’이라는 영양제로 우리나라보다 200배 이상의 고부가가치를 벌어들이며 우리나라에도 역수출되고 있다.

한약은 어떤 성분 하나로만 연구해서는 안 된다. 한약이 최종적으로 어떤 장기에 어떤 영향을 미쳐 신체의 불균형 해소에 기여하는가를 연구해야 정확한 맞춤 의학을 위한 약물역동학이라고 본다.

단지 화학식이나 단순구조(Single-Compound)가 세포에 미치는 영향에 따라 인체에 적용하는 것은 무모한 세월이 지나야 전체를 알게 될 것이다.

한의약 연구는 체질이라는 밑그림을 알고 퍼즐을 맞추는, 보다 합리적인 작업이다. 현대 의약에서 신약 개발을 하는 것은 조각 하나 하나를 만들고 각기 다른 조각의 조합은 못 찾아서 이를 찾아가는 어렵고 힘든 작업과 같다.

중요한 것은 자연에서 나온 식자재는 생긴 그대로 효용에 맞는 정확한 체질에 쓰여야 정확한 효과를 얻을 수 있다. 양약처럼 가공하면 모든 체질에 관계없이 효과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은 과욕이라고 생각된다. 또 그 결과는 오히려 부작용을 초래할 수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