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가 20세기에 접어들자 전쟁이 계속됐다. 총탄과 폭탄이 서로의 살을 찢어놓았다. 기술 발전이 더욱 파괴적이고 참혹한 결과로 귀결된 셈이다. 이에 신물이 난 과학자들은 밤을 지새우며 대안을 생각했다. 그렇게 탄생한 것 중 하나가 게임기다. 게임기는 ‘컴퓨터를 놀이에 사용한다면 전쟁이 아닌 평화에 기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바탕으로 탄생했다.

시간이 흘러 21세기가 됐다. 게임기가 정말로 평화에 기여했는지는 모르겠다. 지금껏 무수히 많은 게임기가 등장했다. 플레이스테이션, 닌텐도 DS, X박스 등은 ‘메가히트’에 성공했다. 반면 대부분 게임기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성공의 역사 뒤편엔 실패의 역사가 존재하는 법이다. 누군가는 이름조차 들어보지 못했을 제품들이다.

3DO 인터랙티브 멀티플레이어

지난 1991년 ‘게임 명가’ 일렉트로닉 아츠(EA)는 연합군을 모아 3DO라는 기업을 만들었다. 2년 뒤 32비트 게임기 ‘3DO 인터랙티브 멀티플레이어’를 출시했다. 당시 게임기 시장은 일본 닌텐도의 독주 체제였다. 3DO는 이를 무너트릴 비밀병기로 주목받았다.

3DO는 하드웨어‧소프트웨어 생태계 구축에 방점을 찍었다. 전자기기 제조사들이 라이선스만 취득하면 디바이스를 자체 생산이 가능하게 했다. 덕분에 많은 제조사가 이 제품을 자국 시장에 내놓을 수 있었다. 한국에서도 럭키금성과 삼성전자 등이 3DO를 자체 생산했다. 개방적인 디바이스 운용 정책으로 3DO는 저렴하게 시장에 유통될 수 있었다.

서드 파티는 삽시간에 3000개 업체를 돌파했다. 남코, 세가, 코나미, 캡콤 등 유명 업체들도 3DO를 지원 사격했다. 그런데 3DO는 서드 파티 관리에 소홀했다는 평가다. 플랫폼 홀더 역할을 하지 못한 것이다. 지원책이 별로 없었기 때문에 등록된 서드 파티는 많았지만 게임 개발이 이뤄지지 않는 상황이 발생했다. 콘텐츠가 없으면 플랫폼은 죽게 된다.

가장 큰 문제는 3DO가 시대를 읽지 못한 제품이라는 것이다. 이 게임기는 2D를 염두에 두고 설계됐지만 게임 패러다임은 3D로 바뀌고 있었다. 3DO는 서둘러 차기작인 M2를 출시하겠다고 호언장담하며 위기를 무마하려 했다. 그런데 지속된 부진으로 발매를 포기하고 말았다. 3DO는 게임 소프트웨어 업체로 명맥을 유지하다가 결국 기업 청산에 이르렀다.

닌텐도 버추얼 보이

지난 1995년 ‘게임보이’로 승승장구하던 닌텐도가 특이한 게임기를 선보였다. ‘버추얼 보이’라는 게임기다. 게임을 하려면 2개의 스코프에 눈을 가까이 대야 한다. 게이머는 각각의 스코프를 통해서 게임 화면을 볼 수 있다. 이를 통해 닌텐도는 ‘입체감’을 선사하려 했다. 그 시절 누구보다도 먼저 기초적인 가상현실을 선보인 셈이다.

미묘했다. 스코프를 통해 볼 수 있었던 것은 입체적인 2D화면이다. 당시 3D게임이 태동하는 시점이었다는 점을 고려하면 버추얼 보이가 시대를 앞선 것 같다가도 구시대적으로 보였다. 그런데도 게임시장에서 독주하던 닌텐도의 차기 게임기였기 때문에 흥행을 기대하는 사람들이 많았다. 닌텐도가 실패를 경험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드물었다.

결과적으로 판매량은 예상에 크게 못 미쳤다. 나름 획기적이었지만 뚜렷하게 드러난 단점이 발목을 잡았다. 우선 입체 2D 그래픽에 게이머는 만족하지 않았다. 버추얼 보이의 그래픽은 2D인 것도 모자라 빨간색 단색이었다. 닌텐도는 기존 게임보이가 흑백 그래픽으로도 성공했기 때문에 자신 있었다. 게이머는 최신 3D 그래픽에 더 눈이 갔다.

또한 게이머들은 입체 영상에 익숙하지 않았다. 일부는 초점이 잘 안 맞아 두통과 어지러움을 호소했다. 아이들이 버추얼 보이를 즐길 경우 눈에 치명적이라는 루머가 돌기도 했다. 불편한 자세로 게임을 해야 한다는 것도 흥행에 걸림돌이 됐다. ‘허리 디스크‧목 디스크를 유발할 것 같다’는 생각에 게이머는 게임에 몰두하지 못했다.

승자의 저주일까. 승승장구했던 닌텐도의 패기가 너무 과했다는 평가다. 아니면 너무 안일했거나. 그래도 중요한 건 버추얼 보이의 실패가 닌텐도 DS와 위(Wii)라는 빅 히트를 위한 밑거름이 됐다는 사실이다.

세가 드림캐스트

드림캐스트를 ‘실패한 게임기’로 규정하긴 어렵다. 지난 1998년 출시된 이 제품은 세계에서 1000만대가 넘는 판매고를 올렸기 때문이다. 이 게임기의 라이벌은 분명했다. 세가는 소니 플레이스테이션(플스)을 겨냥해 드림캐스트를 만들었다. 기존 제품인 세턴을 통해 얻은 모든 노하우를 드림캐스트에 담으려고 노력했다.

그런 만큼 장점을 두루 갖춘 게임기가 탄생했다. 가격도 저렴했으며 게임 타이틀도 많이 출시됐다. 소프트웨어 개발이 쉬웠기 때문에 서드 파티를 많이 유치할 수 있었다. 게임기 사상 처음으로 네트워크 장비를 탑재했다는 것도 큰 강점이었다. 향후 온라인 비중이 커질 것을 예상한 세가의 승부수였다.

그런데 플스2는 거대한 산이었다. 플스2와 비교하면 드림캐스트는 특별한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소니가 DVD 플레이어 기능을 탑재하면서 플스2를 홈엔터테인먼트 기기로 내세워 호응을 얻은 반면 드림캐스트는 게임 분야에 머물렀다. 드림캐스트는 마니아층을 형성하는 데 성공했지만 플스2에 매력을 느끼는 게이머가 더 많았다.

킬러 콘텐츠가 부족했다는 점도 문제로 꼽힌다. 세가도 이에 문제의식이 있었다. 출혈을 감수하고서라도 킬러 콘텐츠를 개발하려고 했다. 7000만달러라는 어마어마한 개발비를 들인 쉔무 시리즈는 세가의 ‘비장의 무기’였다. 그런데 세가는 쉔무 시리즈로 별 재미를 보지 못했다. 히트는 고사하고 손해만 남았다. 결국 세가는 지난 2001년 드림캐스트를 판매 중단했다. 그렇게 드림캐스트는 비운의 게임기로 남았다.

‘게임기’ 멸종 위기?

현재 왕좌는 어떤 게임기가 차지하고 있을까. 어떤 게임기가 판매 중단 위기에 몰려 있을까. 이런 질문은 어쩌면 한가한 이야기일지 모른다. ‘게임기’라는 디바이스 자체가 멸종 위기에 빠졌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게이머가 사라진 것은 아니다. 다양한 플랫폼으로 게임을 즐기는 시대가 왔기 때문이다. PC에 이어 모바일이 콘솔의 입지를 뒤흔들었다. 콘솔의 게임시장 점유율은 계속 떨어졌다. 일부 게임기 업체는 ‘이대로는 안 되겠다’며 결단을 내렸다.

닌텐도는 최근 모바일 게임 사업을 시작했다. 자존심을 버린 것이다. 소니는 ‘플스 나우’와 같은 게임 스트리밍 서비스를 강화하는 쪽을 택했다. ‘인스톨’이나 게임 타이틀 CD를 삽입하는 과정 없이 클라우드 기반 게임 서비스를 제공하겠다는 것이다. 여기에 가상현실(VR) 기기를 접목시켜 시너지를 창출하겠다는 계산이다.

그럴듯한 변신이다. 최근 출시한 스마트 TV는 게임 기능을 탑재하고 있다. 이는 더 이상 게임기가 필요 없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이 상황에서 게임 스트리밍 서비스는 게임기 업체가 선택할 수 있는 대응책 중 하나다. 생존을 위해 대립각은 접어두고 공생의 방식을 택한 셈이다.

TV 제조사는 스마트 TV가 콘텐츠 부족에 시달릴까봐 걱정한다. 이런 상황에서 게임 스트리밍 서비스는 스마트 TV의 킬러 콘텐츠가 될 수 있다. 향후 콘솔게임‧VR기기‧스마트TV가 어떤 파급효과를 보여줄지 기대되는 대목이다. 누군가는 플스4가 마지막 게임기가 될지도 모른다고 아쉬워한다. 그런데 게임기가 사라져도 게임은 끝나지 않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