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국내 ICT 업계에서 단말기 유통구조 개선법(단통법)만큼 논란을 일으킨 법이 없다. 유료방송 분야에서 사실상 KT를 '저격'하는 유료방송 합산규제 법안의 경우 시행시간 및 세부적 조항에 따라 KT와 반(反)KT 진영의 속내는 엇갈리기에 일정정도 감안의 여지가 있다. 한동안 업계의 애간장을 태웠던 클라우드 발전법도 국회에서 통과되어 세부 시행령을 가다듬고 있으니 시끄러울 이유는 없다.

하지만 단통법은 다르다. 시행 초기부터 보조금 합산공개 불가 방침이 반영되어 '반쪽법안'으로 출발하더니 이제는 단통법의 부모인 국회에서도 "이건 아니다"라는 기류가 번지고 있다. 단말기 유통 자급제가 고개를 들고 보조금을 차등적으로 지급하자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심지어 도서정가제에 '제2의 단통법'이라는 수식어가 붙고 4월 16일부터 음란물 유통을 기술적으로 막는 것을 골자로 하는 전기통신사업법 시행령 일부개정안이 소위 '딸통법'으로 불리는 것을 보면, 단통법의 '인기'는 식을 줄 모른다.

여기서 재미있는 발표가 나왔다. 미래창조과학부는 27일 단통법 시행 6개월만에 휴대전화 평균 가입요금 수준이 약 8400원 인하됐다는 고무적인 소식을 전했다. 단통법 시행 전인 2014년 7월부터 9월까지 평균 가입요금이 4만5155원이었으나 단통법이 시행된 10월에는 3만9956원으로 내려갔고 법 시행 6개월을 맞는 3월 1일부터 22일까지는 3만6702원까지 내려갔다는 것이다.

이를 산술적으로 계산하면 단통법 시행 6개월만에 8453원의 휴대전화 가입요금 절감효과가 발생했다. 시장과 국민의 분노와는 별개로 "단통법이 시장에 안착하고 있다"는 결론을 강조했던 정부의 성공작으로 보인다. 단통법 시행 배경이 "투명한 보조금 지원 및 가계 통신비 인하"였다는 점을 감안하면 훌륭한 성과다.

게다가 이번에 미래부가 발표한 데이터는 소비자가 통신사에 가입하면서 선택한 요금제의 '평균'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신규 및 번호이동, 기기변동 요금제의 평균이며 기기간 통신(M2M)이나 알뜰폰, 선불요금제, 부가서비스는 제외됐다. 쉽게 말해 가장 범용적인 의미의 가입요금을 산출했고, 그 요금이 8400원 인하됐다는 뜻이다.

미래부는 이러한 고무적 현상의 구체적인 이유도 공개했다. 일단 단통법 시행 이후 3만원대 이하인 저가요금제가 지난해 7월과 9월 평균 49%에서 올해 3월 1일부터 22일까지 59.5%로 팽창해 10%이상 증가한 대목이다. 동시에 고가요금제는 같은 기간 33.9%에서 10.1%로 무려 20% 이상 하락했다. 이는 많은 가입자들이 고가 요금제보다 중저가 요금제로 이동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러한 분위기가 '평균 8400원'이라는 수치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분석이 가능하다.

가계 통신비가 내려갔는가?
미래부의 발표 직후 대다수의 언론은 단통법 이후 통신비 부담이 크게 인하됐다는 기사를 쏟아내고 있다. 공통적으로 8400원의 요금인하 효과를 봤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여기에는 고려해야할 변수가 있다. 궁극적으로, 이러한 데이터가 '단통법의 성공을 의미하는가?'다.

현재 국내 소비자들은 휴대폰을 구입할 때 통신사와 제조사에 따로 돈을 지불하지 않는다. 단말기 자급제가 통과되면 모르지만 아직은 통신사를 통해 요금제에 가입하고 단말기를 받는 구조다. 즉, 단말기와 요금제는 패키지라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자연스럽게 소비자들은 단말기 가격과 가입제 요금을 합산해서 전체 통신비로 인식한다. 단말기 요금을 분할하고 가입제 요금도 분할해 한 달에 7만원을 납부한다면, 최소한 해당 가입자에게 통신비는 7만원으로 여겨진다는 뜻이다.

이런 상황에서 단통법이 시행됐다. 당장 보조금 상한제가 실시되며 단말기 체감가격이 높아졌다. 여기서 소비자는 어떤 선택을 할까? 단말기를 구입하며 자신이 느끼는 체감 통신비를 줄이기 위해 저가요금제를 선택할 수 밖에 없다. 이렇게 되면 요금제 평균은 내려가게 된다. 8400원 '인하'라는 결론이 일반 소비자들에게 실질적인 가계 통신비 인하로 체화되기 어려운 이유다.

미래부의 데이터에서도 간접적으로 확인할 수 있다. 미래부는 27일 발표에서 단통법 시행전 신규가입 비중이 34.8%, 단통법 시행 이후는 36% 늘어났다고 밝혔다. 지원금 차별이 사라지며 번호이동이 줄고 기기변동은 늘어나며 비슷한 증감을 기록한 상태에서 신규가입은 별 차이가 없는 셈이다.

이런 상황에서 고가요금제는 20% 이상 떨어지고 저가요금제는 약 10% 증가, 중저가 요금제도 약 25% 증가했다. 가입자 증감이 수평선인 상태에서 휴대폰 단말기 출고가 상한제 적용, 중저가 요금제가 증가한 대목은 결국 체감 통신비는 내려가지 않았다는 결론을 가능하게 만든다. 물론, 주로 국내 제조사 휴대폰에 국한된 내용이다.

통신사 거품은 여전하다
단통법 이후 통신사의 분위기는 어떨까? 단통법 시행으로 통신사는 수익이 줄었다며 정중동의 행보를 보이지만 상황이 나쁜 것은 아니다. 오히려 반등의 기회를 잡은 분위기다. 지난해 통신3사 실적은 2013년과 비교해 전반적으로 나빠졌지만 단통법 이후 서서히 반등하는 흐름을 보여주고 있다.

실제로 지난해 영업이익이 6.3% 늘어난 LG유플러스를 제외하고 SK텔레콤은 9.2%, KT는 아예 적자로 전환됐다. LG유플러스의 지난해 영업이익은 5763억원을 기록했으며 SK텔레콤은 1조8251억원, KT는 -2918억원이었다. 매출도 17조1637억원을 기록하며 3.4% 소폭 상승한 SK텔레콤을 제외하면 KT와 LG유플러스 모두 줄어들었다. 결합상품 판매가 대세로 부각되며 매출은 증가했으나 이로 인한 할인 등의 영향으로 실질적인 이득은 얻지 못했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하지만 단통법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았던 지난해 4분기 통신3사는 뚜렷한 상승세를 보여주고 있다. 단통법의 직접적인 여파로 매출은 떨어졌으나 2013년과 비교해 가장 중요한 영업이익과 순이익이 차례로 올라갔다.

물론 지난해 3분기와 4분기를 기계적으로 비교하면 통신3사 모두 매출과 영업이익, 순이익이 모두 감소했으나 마케팅 및 계절적 요인을 고려하면 3분기와 4분기를 전적으로 비교하면 곤란하다. 그런 이유로 2013년 4분기와 지난해 4분기를 비교하면, SK텔레콤의 순이익은 71.4%나 증가했고 KT와 SK텔레콤도 뚜렷한 상승세를 나타내고 있다.

이 지점에서 미래부의 발표와 대비시키면 미묘한 지점이 엿보인다. 단통법 시행 이후 평균요금이 인하됐다면 통신사의 지난해 4분기 실적은 2013년과 비교해 오르지 말았어야 했다. 3월 요금제가 아니라 지난해 단통법 시행기간을 대비해봐도 마찬가지다. 통신사가 단통법의 시행으로 곤경에 처하며, 그 반사이익을 가입자가 누렸다면 당연히 지난해 4분기 통신사 실적은 나빠야 하지만, 결과는 정반대인 셈이다.

이는 통신요금에 아직 거품이 많다는 것을 의미한다는 것이 업계의 중론이다. 통신사가 지급하는 보조금의 상한이 묶여있는 상태에서 대대적인 마케팅 비용까지 절감됐다. 그러자 저가요금제가 확산되고 있음에도 통신사는 꾸준히 이득을 보고 있다는 뜻이다. 단통법의 긍정적인 부분과 부정적인 부분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례다. 동시에 통신평균요금이 8400원이나 내려갔다는 사실과 실적상승의 공신인 마케팅 절감을 비교하면, 지금까지 통신사가 얼마나 소모적 마케팅을 추진했는지도 쉽게 알아낼 수 있다.

앞으로 어떨까?
최근 SK텔레콤은 알뜰폰 가입자를 포함시켜도 마지노선으로 불리던 가입자 50%를 사수하지 못했다. 5:3:2의 구도는 당분간 이어지겠지만 SK텔레콤이 50%를 수성하지 못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심리적 저지선인 50% 붕괴는 이제 시장에 '절대강자는 없다'라는 점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가입자를 잡아내지 못한 SK텔레콤 입장에서는 다소 억울한 부분도 있다. 시장 지배자적 위치에서 보조금을 크게 풀어 가입자를 유치하려고 해도 단통법이 이를 막기 때문이다. 단통법 시행 이후 SK텔레콤의 50%가 무너졌다는 점은 지금까지 SK텔레콤이 보여주던 시장 주도적 리더십이 무너질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다.

"단통법이 없었다면 SK텔레콤은 어떻게 움직였을까? 보조금을 풀었을까? 아니, 보조금을 풀어야지만 50%를 지킬수 있었나? 다른 통신사는 가만히 있었을까?" 다양한 시나리오가 제기되는 상황이다. 다만 확실한 것은, 최근 방송통신위원회로부터 과징금과 영업정지 처분까지 받은 SK텔레콤 입장에서는 설상가상이라는 점이다.

이제 시행 100일을 맞는 단통법은 수술대에 오를 전망이다. 다양한 보충법안들이 발의를 예고하며 급변을 예고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체감이 가능한 통신비 인하는 가능할 것인지, 국내 휴대폰 발전을 가로막는다는 비판이 사라질 것인지, 통신과 제조의 영역이 분리될 것인지 등에 엄청난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제 공은 단통법을 발의하고 통과시킨 국회로 넘어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