햄은 예전이나 지금이나 반가운 존재 중 하나다. 어렸을 적 도시락에 담겨진 줄줄이 소시지나 분홍 햄에 계란을 입혔던 햄이 지금은 배고플 때 한 입씩 먹는 간식을 넘어서 프리미엄 안주, 브런치 재료 등으로 변모하고 있다. 우리의 문화에 따라 햄도 그 모습과 쓰임새를 바꿔왔기 때문이다.

 

80~90년 : 햄의 대중화, 00~10년 : 웰빙 햄 등장

▲ 옛 CF속 햄 광고. 출처=광고정보센터

햄과 소시지 등 고기로 만든 가공 식품은 ‘육가공식품’이라고 불린다. 햄이 국내 들어온 1960~1970년대에는 경제적 여유가 있는 부유층만이 육가공식품을 즐길 수 있었다. 옛날 영화나 드라마 속 학생들의 점심 도시락에 햄이 있으면 모두가 달려들어 군침을 흘리던 그 때가 바로 이 시대라고 할 수 있다. 서민들은 전분이 40%, 연육은 35%인 분홍소시지를 즐겼다.

본격적으로 육가공식품의 대중화가 일어난 것은 바로 1980~1990년대다. CJ제일제당을 비롯한 다양한 대기업들이 육가공 시장에 뛰어들며 이 시장이 점차 커지게 됐다. 한국육가공협회에 따르면 1980년 초반 육가공품 판매량은 4587억 원 수준에서 1990년 약 10년 만에 1000억 원을 돌파하며 20배의 수익을 거뒀다. 이때를 육가공 1.0시대라고 부른다.

그러나 2000~2010년 대, 건강이 새로운 키워드로 급부상하기 시작하면서 육가공 시장은 위기를 맞게 된다. 미국 로하스(lifestyles of health and sustainability)가 한국의 웰빙트렌드로 전파되었으며 돼지고기 가격의 상승으로 저급 햄까지 등장할 정도로 시장 경쟁이 치열한 상태였다. 무엇보다 소비자단체에 의해 2004년 햄과 소시지에 붉은색 빛깔을 더하는 ‘합성아질산나트륨’의 위해성이 드러나며 두 자릿수로 성장하던 시장은 2005년 역신장을 기록하게 된다. 2004년 국내 육가공품 판매량은 15t에서 다음해 14.6t으로 줄어들었다.

이에 CJ제일제당은 합성아질산나트륨을 샐러리추출물로 대체하며 합성보존료, 합성착향료, 전분, 합성산화방지제 등 총 5가지 첨가물을 빼 ‘더 건강한 햄’ 시리즈를 출시했다. 2013년 당시 시장에서는 CJ제일제당과 롯데햄이 1위를 노리며 치열한 경쟁 중이었으나 CJ제일제당은 건강을 내세운 햄을 중심으로 내세우며 햄 시장의 1위를 탈환하게 된다.

 

즐기는 햄 문화 3.0 시대

▲ 그릴 소시지. 출처=flickr

국내 햄과 소시지 등 육가공 시장이 발전에 발전을 거듭했다고 해도 아직은 그 소비량이 해외에 비해 적은 것이 사실이다. 2012년 기준 국내 1인당 육가공품 소비량은 3.8kg로 일본(6.5kg)의 절반가량, 독일(40kg)이나 미국(42kg)의 10%에 지나지 않는다. 우리나라에서는 육가공품 대신 삼겹살, 목살 등의 소비 비중이 절대적으로 높은 까닭이다.

하지만 이 말은 반대로 육가공식품의 성장 가능성이 그만큼 높다는 것을 의미한다. 각 업체들은 이를 기회로 새로운 햄 문화를 창출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최근 식문화는 소비자의 라이프스타일에 맞춰 새롭게 변화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2009년 캠핑의 인기로 그릴에 굽기 좋게 기존 제품보다 2배 정도 큰 크기의 제품들이 출시된 것으로 시초였다. CJ제일제당, 롯데햄, 동원, 청정원, 진주 나아가 이마트까지 그릴 제품을 내놓으며 캠핑 문화에 이바지했다. 최근에는 수제 맥주나 수입맥주의 인기로 프리미엄 안주인 천연장후랑크 소시지가 인기를 끌고 있다. 일부 업계에서는 치킨과 맥주의 트렌드가 수입맥주와 햄으로 대체될 것으로 보고 있기도 하며 실제로 트렌드의 적용이 빠른 대형마트에서는 수이맥주 옆에 수제햄을 같이 진열해놓고 있기도 하다.

동시에 같이 떠오르고 있는 트렌드는 브런치 문화다. 샌드위치, 파니니, 에그베네딕트 등 브런치 메뉴를 집에서도 쉽게 해먹을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적이다. 최근 CJ제일제당이 선보인 ‘더 건강한 햄' 시리즈의 '브런치 슬라이스’도 이런 문화를 창출하기 위한 대표적인 시도라고 볼 수 있다.

신제품은 0.8mm의 얇은 햄으로 마치 셰프가 그 자리에서 썰어준 것 마냥 물결무늬를 그리며 플라스틱 패키지에 들어 있다. 냉식햄이기에 익혀먹는 햄에 익숙한 국내 소비자에게는 낯설 수도 있는 제품이다. 업계 관계자는 “슬라이스 햄이 아직 메인 문화로 정착하지 않아 한계는 있겠지만 이 제품을 통해 냉식햄 문화의 창출하기 위한 새로운 시도”라며 “브런치를 즐겨 먹는 30~40대를 타깃으로 냉식햄의 편리성을 알리겠다”고 설명했다.

 

[CJ제일제당 진천공장, 직접 다녀왔다]

▲ CJ제일제당 진천공장에서 '더 건강한 햄 브런치 슬라이스'를 생산하고 있다. 출처=CJ제일제당

지난 20일 기자는 왕복 4시간에 걸쳐 충청북도 진천에 위치한 CJ제일제당의 육가공식품 공장에 방문했다. 그 곳에서 CJ제일제당의 신제품 ‘더 건강한 햄 브런치 슬라이스’ 제품의 일부 공정 과정을 볼 수 있었다. 실제로 본 햄이 만들어지는 과정은 이렇다. 우선 원료가 되는 고기를 손질해야 하는데 기계가 처음 손질하고 그 뒤는 직원들이 직접 뼛조각이나 불순물이 없는지를 확인한다. 그 뒤 고기 육질에 양념이 골고루 배이도록 기계가 마사지(텀블링 과정)를 한다. 이후 모양을 잡을 수 있도록 케이스에 내용물을 충전하는데 한 직원이 양 또는 소의 창자처럼 식용이 가능한 케이스가 있고 먹지 못하는 케이스, 두 종류가 있다고 설명했다. 케이스에 들어간 햄은 본연의 색과 향이 나도록 열처리 과정을 거친다. 우리가 알고 있는 훈연 과정이다. 이후 슬라이스 및 포장을 하면 시중에서 구매할 수 있는 햄이 된다.

주로 스팸과 더 건강한 햄 시리즈를 만들던 공장 측은 이번 신제품을 위해 새로운 설비를 갖췄다. 바로 초박 슬라이스가 가능한 슬라이스 기계와 플라스틱 패키지에 제품을 담는 포장 기계다. 실제 전문가가 써는 것처럼 자연스러운 물결무늬로 써는 이 과정을 위해 들인 자금만 약 12억이 들었다고 한다.

실제로 놀랄만한 것은 햄을 만드는 과정보다 공장 내부에 들어가기까지의 위생 관리였다. 기자는 머리망, 머리를 뒤덮는 마스크, 그 위에 모자, 마스크, 전신 방제복을 입고 먼지를 제거한 뒤에도 손을 소독하고 전신을 바람으로 깨끗이 한 후에나 공장에 들어갈 수 있었다. 하루에 공장 청소에만 들어가는 시간이 6시간 이상이라고 하며 공장의 모든 화장실에서는 손을 닦은 뒤 손 소독을 하지 않으면 문이 열리지 않을 정도였다.

 

미래의 햄은 ‘없애고, 줄인다’?

향후 햄의 미래에 대해 생각해 봤는지. 식품에 대해 ‘있는 대로 먹으면 되지’라고만 생각하면 큰 오산이다. 미국에서는 미래 의료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식품을 이용하는 방법 또한 고안되고 있을 정도로 식품이 우리 생활에 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에 따르면 국내 육가공식품의 미래는 ‘염분은 낮추고 불필요 첨가물은 없애는’ 방향으로 나아가게 될 예정이다. 짠맛을 의미하는 염분의 경우 현재 국내 육가공은 같은 분야 선진국인 서구에 비해서 굉장히 낮은 편이다. 시중 유통제품을 기준으로 미국은 1.5~2.5%, 유럽은 2.0~2.5%, 일본은 1.2~2.0% 가량의 염도를 함유하고 있으나 국내 평균은 1.0~1.5%에 해당된다. 일부 제품의 경우 이보다 더 낮은 저염 제품을 출시하고 있기도 하며 이러한 추세가 계속 될 경우 국내 제품에는 최소한의 소금만이 들어갈 것으로 추측된다. 그러나 소금을 줄이기만 하면 될 것 같은 이 문제가 실제로 현실화되기엔 쉽지 않다. 소금은 짠 맛을 내는 역할만 하는 것이 아니라 고기 단백질을 이끌어내 결착력을 만들고, 미생물에 안정성을 부여하는 역할까지 짊어지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소금을 빼면 이 3가지를 다른 기술을 통해 새롭게 만들어내야 한다. 한 육가공식품 업체 관련자는 “저염 제품에 대해 소비자들이 그 의미를 조금만 더 알아주시고 좋은 반응을 해주셨으면 만드는 입장에서 더욱 보람찰 것 같다”는 말을 할 정도로 기술력이 필요한 일이기도 하다.

‘줄이고 없애는 것’은 염분뿐이 아니라 지방 함유량과 기타 첨가물들도 포함된다. 결국 가까운 미래에는 원재료와 가장 가까운 맛과 향을 그대로 간직한 제품들이 출시될 것으로 추측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