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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남아 시장 적극적… 日 위원회 설치 적극 공략
국내선 관련법안 3년째 표류 기회 상실 우려감

전 세계 금융시장은 ‘다크호스’로 급부상하고 있는 이슬람금융의 행보에 정중동 자세다. ‘오일머니’를 앞세운 풍부한 유동성이 역내시장을 벗어나 서서히 세계 무대를 겨냥하자 비 이슬람금융 기업들로서는 이슬람자금의 유동성을 활용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감과 함께 시장 잠식에 대한 우려도 나타내고 있다.

일부 진보 경제학자들은 수백 년 동안 세계 금융시장을 주물러 온 유태인 자금이 쇠락하고 대신 그 자리를 이슬람금융이 대체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전 세계 인구의 20%인 약 16억 명이 이슬람교도라는 점, 급속히 확대되고 있는 막대한 자금(1조 달러 추산)과 그 증가 속도를 감안할 때 결코 허황된 가설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지난 주에 이어 이번 호(중편)에서는 각국의 이슬람금융 활용 노력과 우리나라의 수쿠크 발행 허용 조치 내용 등을 알아본다. <편집자 주>

이슬람 경제권은 지정학적 범위를 초월해 이슬람국가들을 연결하는 ‘종교적 경제권’이라고 할 수 있다. 발 빠른 나라들은 이슬람금융 도입에 열을 올리고 있다. 가장 적극적인 나라는 말레이시아다. 이슬람교도가 국민의 절대다수를 차지하고 있기도 하지만, ‘이슬람금융의 허브’로 육성해 국부 창출의 원동력으로 삼겠다는 정부의 의지가 강력하다. 말레이시아에서는 기존 은행과 이슬람은행이 공존한다.

한 은행 내부에 이자를 받는 여신사업부와 그렇지 않은 이슬람금융 사업부가 나뉘어 있는 경우도 있다. 물론 아예 이슬람금융만 취급하는 전문은행 즉, 이슬람 전업은행은 17개에 달한다.

사실 말레이시아는 이미 이슬람금융의 중심이다. 다른 나라에 앞서 지난 1983년 이슬람은행법을 제정한 이후 관련 제도 마련과 시장 조성을 위해 전력투구하고 있다. 말레이시아의 이슬람금융 도입은 시기별로 3단계로 나뉜다. 이슬람은행 설립을 위한 이슬람은행법 제정이 이뤄지고 현지 최초의 이슬람은행인 말레이시아 이슬람은행(Bank Islam Malaysia Berhad)이 설립된 제1기(1983∼1993년), 전통은행에서 이슬람은행 업무를 취급하기 시작한 제2기(1993∼2001), 이슬람금융의 국제화가 본격화된 제3기(2001년 이후)로 구분된다.

도요타를 비롯해 미국 쉘(Shell)사 등 다국적 기업들이 말레이시아에서 수쿠크(Sukuk·이슬람채권)를 잇따라 발행하고 있다. 이처럼 수쿠크 발행이 활성화된 이유는 ▲링기트 이외 통화로 발행되는 수쿠크에 대한 기관투자자 이윤 면제 ▲수쿠크 발행 목적의 SPV(특수목적법인)에 대한 소득세 면제 ▲비거주자가 발행하는 링기트 표시 수쿠크 이윤에 대한 소득세 면제 등과 같은 다양한 세제 혜택이 있기 때문이다.

바레인은 중동 이슬람금융의 중심지로 이슬람금융기관 회계감독기구(AAOIFI) 국제이슬람금융시장(IIFM)의 근거지다. 바레인 최초의 이슬람은행인 바레인이슬람은행(Bahrain Islamic Bank)은 1979년 설립됐다. 이후 이슬람은행이 증가해 현재 약 30개의 이슬람 전업은행이 영업 중이다.

이슬람금융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이슬람금융센터도 운영하고 있다. 영국은 ‘이슬람금융센터’를 표방하는 비 이슬람 국가 가운데 가장 활발한 활동을 보이는 나라다. 영국 정부가 이슬람금융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시기는 1990년대 후반이다. 기존 은행에 이슬람창구가 마련돼 있으나, 별도의 이슬람은행법이 마련돼 있지는 않다.

이슬람 전업은행의 숫자는 모두 5개, 이중 소매금융은행은 IBB(The Islamic bank of Britain), 나머지는 도매금융업을 영위한다. 전통 금융회사 가운데 이슬람창구를 운영하고 있는 곳은 HSBC, 스탠다드차터드은행, 바클레이 등이 있다. 이슬람은행의 감독은 전통은행과 마찬가지로 금융서비스위원회가 담당한다. 1996년에는 영국 중앙은행 총재가 중앙은행, 금융서비스위원회, 무슬림단체인 영국 무슬림 평의회 등으로 구성된 연구회 성격의 이슬람금융워킹파티(IFWP)를 설치했다.

싱가포르 또한 ‘이슬람금융의 허브가 되겠다’는 비전을 갖고 2000년대 중반부터 제도 손질에 매달리고 있다. 싱가포르 인구의 15%가량이 이슬람 교도로 구성돼 있고 지정학적으로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등 이슬람 국가들에 둘러싸여 있는데다 금융 서비스가 국가의 주요 산업이어서 이슬람금융이 활동하기에 최적지로 손꼽히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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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이슬람법학자 동원하기도

2006년에는 싱가포르 증시에 이슬람율법 가이드라인에 만족하는 기업들에만 투자하는 ‘FTSE-SGX 아시아 샤리아 인덱스 100’지수상품을 선보였다. 이 상품은 한국, 일본, 싱가포르, 타이완, 홍콩 등 태평양 시장주식을 대상으로 하고 있는데 우리나라 기업은 삼성전자, KT 등이 포함돼 있다.

2007년에는 싱가포르 최대 은행인 DBS가 사우디아라비아, 바레인 등 걸프협력기구(GCC) 국가들로 구성된 펀드와 각각 51대 49의 비율로 출자해 이슬람 전업은행인 IBA(Islamic Bank of Asia)를 설립했다. 극동아시아권에서는 일본이 이슬람금융 도입에 가장 앞서간다. 일본 정부계 은행인 국제협력은행(JBIC)은 2006년 5월 이슬람법학자를 기용해 투자의 적법 여부 등을 가리는 ‘샤리아 위원회’를 설치했다. 이어 2008년에는 일본금융청과 이슬람금융감독기구(IFSB)가 공동으로 이슬람금융 국제 세미나를 개최했다.

2008년 12월에는 은행법 시행 규칙을 개정해 은행의 자회사나 형제회사가 상품 또는 부동산을 보유할 수 있도록 해 실물이 게재되는 이슬람금융을 허용했다. 민간금융기관도 적극적이다. 노무라증권은 2008년 5월 일본기업 최초로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이슬람금융업 면허를 취득했다. 또한 도쿄해상니치도화재보험은 2001년 사우디아라비아에서 이슬람 보험상품인 ‘타카풀(Takaful)’사업에 참여했으며 2006년 중국계 금융그룹인 홍릉그룹과 공동으로 말레이시아 타카풀 시장에 진출했다.

우리 정부는 금융 위기에 이어 서브프라임 모기지 사태를 겪으며 유사시 ‘외화 유동성 확보’라는 명제에 또 한 번 가슴을 쓸어 내렸다. 이에 비상사태에 대비한 외화 차입선 다변화가 시급한 과제로 떠올랐다. 이슬람금융은 국내에 도입되지 않은 미개척 펀딩마켓(Funding Market) 가운데 유동성이 풍부한 노른자위 시장으로 파악되면서 정부는 2009년 초 구체적인 시장 개척 작업에 착수했다.

기획재정부를 중심으로 민관합동 이슬람금융 태스크포스팀이 조직돼 그해 9월 ‘이슬람금융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마련했다. 이는 국내 기업이 수쿠크 발행을 통해 이슬람자금이 유입되도록 하기 위한 방안이다. 이자라(Ijarah)와 무라바하(Murabaha) 두 방식의 수쿠크 발행을 유도하기 위한 이 법안은 수쿠크 발행법인인 해외 특수목적회사(SPV)의 법인세 원천징수를 면제하고, 자산 이전에 따른 부가세 및 취·등록세를 면제하는 조세 지원을 담고 있다.

만약, 이 법안이 발효되지 못하면 수쿠크는 일반채권에 비해 조달 비용이 너무 비싸 사실상 발행이 불가능하다. 당시 이 법안이 3년 이상 장기 표류하며 관련업계를 허탈하게 만들 것이라고는 아무도 예상치 못했다. 기획재정부는 외평채 용도로 정부가 직접 수쿠크를 발행해 보겠다고 자신감을 드러내기도 했다. 그러나, 법안은 3년에 걸쳐 무려 5번이나 국회 문턱에서 미끄러지면서 정책 마련 본래의 의미가 크게 퇴색되고 말았다.

수쿠크 발행 주관을 통해 새로운 수수료 수익원을 개척하겠다던 일부 증권회사들은 해외 파트너들로부터 ‘양치기 소년’으로 낙인찍히기도 했다. 문제의 발단은 업계가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이슈였다. 일부 기획재정위 국회의원들은 수쿠크 발행이 가능하게 될 경우 테러리스트들의 배를 불려줄 수 있다고 지적했다. 또한 기독교와의 종교적 갈등을 초래할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면서 법안은 조세소위에 상정조차 되지 못했다. 그러다 지난해 12월 전격적으로 여야 합의에 의해 조세소위를 통과했으나, 전체회의에서 또다시 좌절됐다.

테러자금 유입 황당한 억지 논리

이슬람금융을 허용하는 것이 과연 테러리스트를 돕는 일일까? 우선 수쿠크 매입자 분포도를 보자. 수쿠크라고 해서 이슬람자금이 100%를 차지하는 것은 아니다. 보통 수쿠크 발행 금액을 100이라고 하면 일반채권에 투자하는 일반 투자자가 40∼80 가량이고 나머지가 순수 이슬람금융 투자자로 구성된다.

일부에서는 “이슬람자금이 테러리스트의 자금이라고 등식화한다면 우리 기업들이 달러 표시 해외채권 발행을 조달한 자금에 북한의 검은 돈이 유입됐을 가능성도 지적해야 하는 것 아닌가”하는 의문을 제기한다. 이슬람자금이 테러와 연계돼 있다면 미국은 수쿠크를 발행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지난 2009년 9월 미국의 GE캐피탈은 항공기를 기초자산으로 활용한 5년 만기 5억 달러 이자라 수쿠크를 발행했다.

특정 종교의 색채를 띠고 있다고 해서 법안을 배척하는 것도 논란이다. 수쿠크 발행 구조에 대해서 이미 살펴봤듯이 종교적 율법은 구실일 뿐이고 사실상 이자를 받는 일반채권과 다를 것이 없다. 특정 종교에 대한 특혜가 아니라 우리 기업들의 필요에 의해서 예외적인 법률조항을 마련한 것인데 종교적 구분의 잣대를 들이대는 데는 논리적 설명이 설득력을 갖기 어려워 보인다.

이에, 기획재정부는 당초 법안의 조항 가운데 종교적 갈등을 부추길 수 있는 일부 내용을 삭제하고 채권 발행을 위한 최소한의 사항만 규정하고 나머지는 상법이나 자본시장통합법 관련 법안의 시행령에 위임해 올 2월 임시국회에 다시 상정한다는 복안이다. 그러나 이번에도 쉽지 않아 보인다. 정부가 UAE 원전 수주에 따른 장기자금 조달을 위해 수쿠크 발행을 추진하는 것 아니냐는 야당의 의혹이 제기돼 정치 쟁점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관련업계는 다시 한 번 기대를 걸어보지만 ‘김 빠진 맥주’처럼 시큰둥한 반응이 주를 이룬다. 정부도 “외평채 (수쿠크) 발행은 고려하지 않고 있다”고 한발 물러선다. 수쿠크 법안 마련 당시에는 달러가 급했지만 지금은 달러 보유고가 넘쳐나 더 이상 외평채 발행이 필요치 않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실상은 하고 싶어도 못하는 속사정이 있다.

이자라 수쿠크의 경우 정부 소유 행정자산의 해외 매각이 금지돼 있어 수쿠크 정부채 발행 자체가 불가능한 상황이다. 정부가 수쿠크를 발행하려면 정부 소유 땅, 건물 등의 부동산을 해외 특수목적법인에 매각해야 하는데 국유재산관리법상 행정자산의 해외 매각은 금지돼 있는 것이다.

이번 법안 수정작업을 통해 이런 문제점이 해결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이에 대해 이슬람금융의 한 외국인 전문가는 “국가마다 수쿠크 도입 초기에는 정부채 발행을 통해 벤치마크를 만들어주고 나중에 기업들이 뒤따라 올 수 있게 하고 있다”며 “한국의 경우 정부채 발행이 어렵다면 공기업이라도 먼저 나서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조언했다.

홍순재 라이트하우스 브러스 이사
<이슬람금융의 이해와 실무>(금융연수원 2010년 7월 발간) 공동저자. 파이낸셜뉴스 금융·산업기자, 싱가포르국립대 MBA 산업은행 싱가포르지점 IB 담당 . 現 홍콩계 투자회사 라이트하우스 브러스 이사.

박영환 기자 yunghp@asiae.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