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독일 베를린에서 열렸던 IFA 2014에서 재미있는 논쟁이 벌어진 적이 있다.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스마트워치의 성격을 두고 “IT기기다”와 “시계다”라고 주장하며 대립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재, 4월 출시예정인 애플워치가 시장 진입 초읽기에 돌입한 상황에서 업계에서는 스마트워치를 IT기기보다 시계로 보는 경향이 강해졌다.

물론 삼성전자의 기어S가 관세적인 부분에서 시계가 아닌, IT기기로 분류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 벌어지기는 했다. 기획재정부와 관세청은 16일(현지시각) 벨기에에서 열린 제55차 WCO 품목분류위원회에서 삼성전자의 갤럭시 기어가 무선통신기기로 결정됐다고 밝혔다. 한국과 일본, 미국 등 스마트워치 산업이 발전하고 있는 국가들이 인도, 터키, 태국 등의 반발을 이겨내고 갤럭시 기어를 무선통신기기 분류로 관철시킨 셈이다. 흥미로운 대목이다.

하지만 현 상황에서 스마트워치는 ‘시계’에 방점이 찍혀 시장에서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왜 스마트워치가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답하기 위한 영악한 선택이다. “왜 필요하냐고? 시계에 스마트폰 기능을 더한 새로운 시너지 효과를 구현할 수 있다!” 스마트 생태계는 휴대폰으로 대표되는 하나의 기기에 다양한 기술이 더해지며 진화를 거듭해 왔다. 포스트 스마트폰의 미래이자 사물인터넷이 그리는 스마트홈의 최전선에서 스마트워치는 그 존재감을 피력하기 시작했다.

IT를 바탕으로 시계를 창조하다

분류를 IT로 했지만, 사실 IT기업이 만드는 스마트워치는 IT적 측면에서 논의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해 아이폰6와 동시에 공개된 후 올해 별도의 미디어 행사를 통해 재차 베일을 벗은 애플의 애플워치다. 애플답게 적절한 공개의 공백을 두어 생태계를 구축하고자 하는 전략을 그대로 투영했다는 평가다.

하지만 시장의 평가는 냉정하다. 9일(현지시각) 애플이 열었던 미디어 행사는 매년 봄에 공개되던 아이패드 이벤트가 가을로 자리를 옮긴 후, 정말 오랜만에 느껴보는 ‘애플의 봄’이라는 측면에서 모두의 마음을 들뜨게 했지만 혁신적 변화를 보여주지는 못했다는 평가가 지배적이다.

9일 이벤트에서는 구체적인 가격과 배터리 지속시간을 빼면(그나마 18시간) 새로운 사실이 거의 없었다. 간편결제인 애플페이가 탑재될 것이라는 전망은 아이폰6에 애플페이가 장착되는 순간 기정사실이었고, SNS 기능 지원 및 음성통화, 메시지 송수신, 건강관리 등은 대부분의 스마트워치가 탑재한 기술이거나, 지난해 밝혀진 내용이다.

물론 차별성을 둔 지점도 엿보인다. 대표적으로 ‘디지털 터치’ 기능과 ‘스케치’ 기능, ‘탭 전달’ 기술인데, 이러한 기능은 이용자들의 감성을 전송할 수 있게 만든다는 점에서 신기하기는 하지만 혁신과는 거리가 멀다는 것이 중론이다. 다만 강화된 이용자 인터페이스 구축과 메디컬 리서치 기능은 호평이다. 특히 메디컬 리서치 기능은 이용자의 선택에 따라 자신의 상태를 빅데이터로 저장해 궁극적인 질병의 치료에 쓰인다고 하니, 새로운 실험으로 인정받을만 하다.

애플은 애플워치로 어떤 전략을 짜고 있을까? 애플워치 스포츠는 크기별로 349달러와 399달러로 책정됐으며 기본형 애플워치는 549달러에서 1049달러, 애플워치 에디션은 1만 달러 이상으로 가격이 정해졌으며 전반적인 모양은 모서리가 둥근 정사각형에 가깝다. 오른쪽 옆면 상단에는 디지털 용두가 박혀있고 하단에는 버튼이 있으며 당연히 아이폰과 연동된다. 즉 고가전략을 펼치며 프리미엄 브랜드 효과를 강조하는 한편, 사각형에도 디자인적 심미성이 묻어난다는 점을 강조하는 셈이다.

이를 바탕으로 애플은 애플워치는 철저하게 시계로 포지셔닝 하고 있다. 당장 애플이 애플워치를 위해 단독매장을 준비하는 정황도 포착됐다. 외신은 애플이 일본 도쿄 번화가 신주쿠에 위치한 이세탄 백화점에 애플워치 스토어 개점을 준비 중이라고 16일(현지시각) 보도했다. 상설매장 형태로 운영될 확률이 높으며, 영국 런던의 셀프릿지와 프랑스 파리 갤러리 라파예트 백화점에도 상설매장이 열릴 가능성이 있다. 애플워치 단독매장은 결국 해당 디바이스를 IT기기가 아닌 패션 아이템으로 만들겠다는 애플의 전략이 배어있는 부분이다.

삼성전자는 MWC 2015에서 갤럭시S6에 쏟아지는 대중의 관심을 분산시키지 않도록 오르비스 프로젝트를 공개하지 않은 상태다. 현재까지 알려진 내용은 오르비스가 원형으로 만들어졌으며 14나노 공정의 엑시노스7420칩셋이 탑재될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애플워치를 비롯한 다수의 스마트워치가 배터리 용량 문제로 논란을 겪는 것과 달리, 오르비스의 배터리는 한 번 충전에 4일에서 5일 동안 활용할 수 있다는 이야기도 흘러나온다. 갤럭시S6처럼 무선충전기술도 탑재됐다는 설도 있다.

▲ 오르비스. 출처=삼모바일

삼성전자는 오르비스를 통해 스마트워치를 IT기기에서 진짜 시계로 변신시키기 위한 특단의 조치를 취한 것으로 보인다. 바로 배터리 부분이다. 스마트워치가 IT기기라면 다소 번거롭더라도 배터리 충전을 하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질 수 있으나, 진짜 시계라면 상당히 불편한 일이다.

그런 이유로 애플워치가 등장했을 당시 많은 사람들은 생각보다 짧은 배터리 지속시간에 불만을 터트렸다. 만약 오르비스가 막강한 배터리 지속 경쟁력을 보유한다면, 더욱 시계에 가까운 스마트워치가 탄생하는 셈이다. 오르비스는 오는 9월 9일부터 미국 라스베거스에서 개최되는 북미무선통신사업자협회(CTIA) 행사에서 공개될 예정이다.

MWC 2015에서 프리미엄 스마트폰 대신 중저가 라인업을 중점적으로 공개한 LG전자는 어베인 시리즈도 ‘대박’을 쳤다. NFC 구현 및 다양한 연동기능으로 각광을 받았으며 디자인적 부분에서도 합격점을 받았다. 삼성전자와 비슷한 가격대를 유지하며 고가정책을 펴는 애플워치에 대항할 것으로 보인다.

▲ 어베인. 출처=LG전자

다양한 기술지원 및 자동차 제어 기술과 무전기 기능 등에서 높은 점수를 받으며 해외 유력 IT 매체들로부터 MWC 2015 최고의 스마트워치로 공식 인정받기도 했다.

화웨이도 MWC 2015를 통해 화웨이 워치를 선보였다. 심박수 확인이 가능하며 블루투스 및 스마트폰 연동이 자유롭다. HTC도 페트라라는 스마트워치를 발표하며 이목을 끌었고 ZTE는 G1과 S2를, 레노버는 모토360을 런칭했다.

▲ 화웨이워치. 출처=화웨이

특히 모토360은 디자인적 측면에서 상당한 호평을 받았다. 운영체제는 구글에 맡기고, 말 그대로 패션 아이템으로 스스로를 강조하는 분위기다. 시간을 확인하는 전통적인 행위가 시계를 벗어나 스마트폰 등 다양한 디바이스로 퍼져 그 의미가 엷어진 상태에서, 모토360은 온전히 패션 아이템에 스스로를 던졌다는 평가다.

웨어러블을 잘 몰라도, 시계를 잘 몰라도 부담없이 착용할 수 있는 가장 원초적 아이템이다. 기능은 구글이라는 ‘믿을만한 파트너’에 맡기고, 그 외 디자인을 포함한 차별적 스마트워치 존재감은 극적으로 피력하는 셈이다.

이러한 IT기업들의 스마트워치 면면을 분석하면 흥미로운 결과를 발견할 수 있다. 스마트폰이 다양한 기능을 흡수하며 이동통신기술의 발전을 견인했듯이, 이들 스마트워치는 IT기술의 집약체를 자임하며 패션의 영역으로 뻗어가는 한편, 사물인터넷이라는 초연결 시대의 일부로 여겨진다는 점이다. “왜 스마트워치가 필요한가?”라는 질문에 가장 확실히 대답해야 하는 IT기업의 숙명이다. 최근 다양한 패션계 인사들이 속속 애플과 같은 IT회사로 합류하는 현상을 유심히 지켜봐야 하는 이유다.

전통적 시계업체, “우리도 있다”

전통적 시계업체의 입장에서 IT회사들의 스마트워치는 상당한 위협이다. 초기에는 대수롭지 않게 여겼으나 이제는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표면적으로 이들은 “시장의 선택을 받기 어려울 것”이라는 입장을 보이면서도 IT회사들의 스마트워치를 견제하기 위한 움직임에 돌입했다.

여기서 두 가지로 갈린다. 내부의 경쟁력으로 IT기술에 진출해 스마트워치를 견제하거나, 혹은 손을 잡고 새로운 시너지 효과를 노리는 방식이다.

현재 글로벌 시계업체는 스와치그룹과 리치몬드 그룹이 양분한 상태에서 LVMH(Moet Hennessy Louis vuitton) 그룹이 캐스팅 보트를 쥔 상태다. 스마트워치 시장에서 전문가들은 당장 스와치그룹을 주시하고 있다. 19개에 달하는 브랜드를 거느린 스와치그룹은 리치몬드그룹과 LVMH그룹을 다소 압도하는 시장 지배자적 위치를 점하고 있는 거물인데다, 닉 하이에크 CEO는 꾸준히 스마트워치를 견제하는 발언을 쏟아내면서도 나름의 준비에 박차를 가하고 있기 때문이다.

▲ 터치. 출처=스와치그룹

닉 하이에크 CEO는 지난 2월 스마트워치에 대한 조소를 멈추지 않으면서도 “충전이 필요없는 NFC 기반의 스마트워치를 출시할 전망이다”고 밝혔다. 구체적인 출시날짜는 5월, 이름은 ‘터치’다. 스와치그룹은 블루투스와 NFC 기반의 새로운 스마트워치를 선보이는 한편, 간편결제까지 지원하기 위해 중국 최대 카드사인 유니온페이와 협력할 전망이다.

특히 ‘충전이 필요없는’ 이라는 부분이 의미심장하다. IT기기라면 충천이 일상이지만 시계는 어색하다. 이런 상황에서 스와치그룹은 ‘전통시계의 존재감’ 중 하나를 충전이 거의 필요없는, 우리가 알고있는 익숙한 시계의 이미지를 스마트워치에 투영시켰다. 게다가 스와치그룹은 시계제조 측면에서 독보적인 기술을 보유하고 있다. 전문가들이 스와치그룹의 스마트워치 시장 진출에 촉각을 곤두세우는 이유다.

리치몬드그룹은 이스트랩을 공개하며 일찌감치 스마트워치 시장에 뛰어들었다. 재미있는 것은 이스트랩이 스마트 기능을 본체에 넣은 것이 아니라, 시계 스트랩에 기능을 탑재했다는 점이다. 충전하면 5일을 쓸 수 있으며 스트랩에 0.9인치 흑백 LED가 탑재되어 있다. 250유로 수준인 금액은 부담스럽지 않은 패션 아이템이 될 전망이다. 이는 무엇을 의미하는가.

스트랩에 스마트 기능을 삽입한 것은 신의 한수다. 스마트워치가 패션 아이템으로 스스로를 포지셔닝한 상태에서 이용자의 기호에 따라 스트랩을 교체할 수 있다는 것은 말 그대로 ‘패션’에만 집중한 선택이다. 여기에 강력한 충전기능과 사용자 경험에 가까운 넓은 선택 스펙트럼은 전통적인 시계업체가 어떻게 스마트워치에 적응하는가를 여실히 보여준다는 평가다.

LVMH는 테그호이어를 통해 인텔 및 구글과 합작했다. 스와치그룹과 리치몬드그룹이 자신들의 존재감을 피력하며 스마트워치 시장에 진입하는 것과 달리 구글과 인텔 등 IT기업과 협력한 대목이 새롭다. 태그호이어는 이 시계의 기계식 메커니즘 부분을 직접 담당한다. 인텔은 프로세서 칩셋을 제공할 계획이며, 구글은 스마트워치 운영체제(OS)인 안드로이드웨어를 제공한다.

▲ 태그호이어-구글-인텔 협력. 출처=태그호이어

이 대목에서 모토360과 비교하자면, 모토360은 운영체제를 구글에 전담시키며 패션에 방점을 찍었지만 태그호이어는 이러한 협력을 더욱 세분화시켜 스마트워치 시장에 도전장을 내밀었다. 기계식 매커니즘을 포기하지 않은 것은 전통적 시계업체의 자존감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다른 경쟁자들과 달리 상대적으로 ‘젊은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테크호이어를 통해 다소 약세인 LVMH그룹이 색다른 방식으로 스마트워치 시장에 진입했다는 점을 유심히 지켜볼 필요도 있다. 마지막으로 브라이틀링도 스마트폰과 연동되는 스마트워치 ‘B55 커넥티드’ 시제품을 소개했다.

스마트워치, 가장 유력한 승자는 누구인가

스마트폰이 다양한 기술을 흡수하며, 이제 사람들은 시간을 굳이 시계로 확인하지 않는 시대를 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스마트워치가 먼저 등장했다면 성공 가능성은 올라가지만, 냉정하게 말해 시계의 존재가치가 점점 떨어지는 상황에서 스마트워치가 화두로 부상한 셈이다.

그런 이유로 구찌는 유명 음악 프로듀서인 윌 아이엠과의 협업을 바탕으로 지난 19일 열린 시계 박람회 바젤월드 2015에서 자사의 스마트워치인 ‘꾸지 앤 아이엠 플러스 스마트밴드’를 첫 공개했다. 모두가 스마트워치로 패션을 노리는 상황에서 아예 패션계가 움직인 단적인 사례다.

스마트워치 시장 규모는 오는 2018년 100억달러(약 11조2000억원)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결국 스마트워치 시장은 누가 유력한 승자일까? 만약 스마트워치 전용 OS가 표준으로 정해지면 ‘시간을 확인하는 장치에서 패션으로 발전한’ 스마트워치 시장은 또 한 번 급변할 것으로 보인다.

궁극적으로 승자는 ‘패션으로 향한다’는 큰 그림을 두고 IT기술이 기본이 되어 방향을 잡을 것이냐, 시계적 본질을 추구하는 철학이 신기술을 도입하는 방식으로 가닥을 잡을 것이냐, 아니면 패션업계가 그 과실을 가져갈 것인가. ‘오래전 비어버린 손목’을 차지하는 한편, ‘차지해야 하는 이유를 설명해야 하는’ 각자의 이해관계가 충돌하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