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콴유(李光耀) 전 싱가포르 총리가 향년 91세로 타계했다. 그는 싱가포르의 1대 총리를 역임했으며 사실상 국부로 존경받는 아시아의 대표적인 지도자로 손꼽힌다.

BBC는 23일(현지시각) 리콴유 전 총리가 새벽 3시 18분 싱가포르 종합병원에서 눈을 감았다고 보도했으며, 그의 아들이자 현 총리인 리센룽 싱가포르 총리는 “매우 깊은 슬픔을 느낀다”는 말로 아버지의 타계 소식을 알렸다.

리콴유 전 총리는 작은 도시국가에 불과한 싱가포르를 부강한 나라로 만든 인물로 존경받고 있다. 싱가포르를 아시아에서 손꼽히는 경제부국으로 만들었으며, 부정부패가 없고 깨끗한 사회로 견인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그는 1929년 영국 식민지 시절 부유한 화교 이민자의 자식으로 태어났으며, 1949년 영국 케임브리지대학교 소속인 피츠윌리엄 칼리지에서 법학을 전공했다. 1951년 싱가포르로 돌아와 변호사로 개업했으며 1954년 인민행동당을 창당하고 사무총장에 올라 정치에 입문했다.

1959년 불과 35세의 나이로 자치정부 총리의 자리에 올랐으며 1965년 말레이시아 연방에서 독립한 싱가포르의 초대 총리로 취임해 1990년까지 26년간 싱가포르의 ‘정점’에서 개혁을 주도했다. 자치정부 시절까지 합치면 총 31년간 총리로 재직해 세계에서 가장 오랫동안 총리로 재직한 진기록을 남기기도 했다.

그에 대한 평가는 엇갈린다. 작은 도시국가에 불과한 싱가포르가 아시아 물류의 중심지, 동서양 항공의 요충지로 변신한 배경에는 리콴유 전 총리의 강력한 리더십이 있었기에 가능하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지만, 가부장적 군림과 온건한 독재에 대한 비판도 상당한 편이다. 그는 ‘아시아의 히틀러’라는 평가를 받을 정도로 일벌백계와 엄벌주의를 고수했으며 노조활동을 억제하고 이를 탄압했다.

하지만 그가 유능한 인재의 공직진출을 독려하고 항만공사를 설립해 최고 수준의 컨테이너 항구를 건설하는 한편 국제공항 건설, 금융사업 투자 등 장기적 관점에서 ‘아시아적 가치’를 싱가포르에 투영시켜 커다란 성공을 거둔 대목은 이견의 여지가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평가다.

현재 리콴유 전 총리의 아들인 리셴룽 총리가 싱가포르를 이끌고 있으며, 권력세습에 대한 비판은 있으나 대체적으로 정치, 행정 분야 요직을 거치면서 지도자 교육을 받았던 리셴룽 총리는 싱가포르 국민뿐만 아니라 아시아에서 대체로 존경받는 지도자로 통한다.

한편 리콴유 전 총리는 2010년 세상을 먼저 떠난 부인 콰걱추(柯玉芝) 여사와 2남 1녀를 뒀으며, 구체적인 장례일정은 아직 발표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