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원외교 및 비자금 조성과 관련한 정부의 기획 사정이 일로 확산되는 양상이다. 지난 13일 포스코건설을 시작으로 포스코그룹은 물론 신세계그룹과 동부그룹, SK건설, 경남기업, 동국제강까지 줄줄이 검찰의 압수수색과 조사를 받고 있다. 이외에도 많은 그룹과 기업들이 검찰의 수사선상에 있다는 이야기가 나온다.

비리척결이 갖는 도덕적 당위성에도 불구하고 기업 사정에 대한 시장의 반응은 예상보다 부정적이다. 검찰이 하루에 한 기업씩 수사대상을 늘리고 있다는 뜻의 ‘1일 1사’를 비롯해 ‘기업 길들이기’, ‘MB를 겨냥한 사전작업’, ‘앞과 뒤가 다른 정부’ 등 비판 일색이다.

특히 기획 사정이 지난 몇 년간 표면으로 드러나지 않다가 올 들어 갑작스럽게 진행되는데 대해 다들 의아하게 생각하고 있다. 이 때문에 정부의 해명에도 불구하고 시중에서는 기획 사정에 숨은 배경이 있다는 시나리오가 힘을 얻고 있다.

시중의 시나리오는 대략 3가지다. 우선 경제 살리기 차원에서 정부가 임금인상 등을 거듭 재계에 협조를 요청했지만 기업들이 적극적인 협조의 모습을 보이지 않자 ‘버릇 고치기’에 나선 것이라는 해석이다.

두 번째는 가장 구태의연한 배경이지만, 기업들을 희생양으로 총선 분위기를 유리하게 이끌려는 정치적 노림수가 깔려있다는 것이다. 그동안의 경제정책 실패의 책임을 재계로 돌려 그 정치적 부담에서 벗어나려 한다는 지적이다.

마지막으로 지난 3년 동안 경제정책 집행에서 별 효과를 거두지 못했던 정부가 최근 부동산 시장이 변화의 조짐을 보이자 경제회복을 앞당기기 위해 기업들의 협조를 촉구(?)하기 위한 카드로 활용하고 있다는 분석도 있다.

한 재계 관계자는 “재계에서는 이 가운데 첫 번째 시나리오를 유력하게 보고 있다”면서 경제 활성화를 위해 기업들에게 우호적인 제스처를 보이던 정부가 갑작스럽게 태도를 바꾼 것을 그 정황근거로 제시했다.

그는 “최근 임금인상과 고용증대를 통한 경제 활성화를 추진하고 있는 정부에 대해 기업들이 호응하지 않자 ‘기업 길들이기’에 착수한 것 같다”며 “정부의 돌변한 태도에 많은 기업들이 크게 당혹해 하고 있다”고 말했다.

재계의 우려는 비리조사 그 자체가 아니다. 문제는 현재 검찰 수사가 진행되고 있거나 수사대상으로 거론되고 있는 기업들 가운데 기업의 사활이 걸린 매우 중요한 거래나 프로젝트가 한창 진행 중인 곳이 많다는 점이다.

현재 포스코는 선택과 집중을 통한 부활을 위해 M&A 등 사업군 조정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동부는 생존을 위한 구조조정과 계열사 매각을 추진 중이다. 신세계는 백화점 사업의 손실을 매우기 위한 아웃렛 확장에 매달리고 있다. 다른 수사 대상 기업들 역시 법정관리나 부도위기, 침체를 극복하기 위한 피나는 자구노력을 펼치고 있다.

경제전문가들과 정부는 한 목소리로 ‘올해가 경제를 살리기 위한 골든타임’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경제 살리기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도 수차 ‘골든타임’론을 언급한 바 있고, 최근에는 중동을 순방하며 ‘제2의 중동 붐’을 일으키자고 강조하기도 했다.

하지만 이 같은 견해와 주장과는 달리 중동 순방 후 이뤄진 사정의 칼날이 자칫 ‘경제 살리기 골든타임’을 무의미하게 흘려버리거나 오히려 악화시킬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포스코의 경우 이번 사정으로 사우디아라비아와의 건설 합작사업, 국민차 사업 등 굵직굵직한 사업 일정에 차질이 예상된다. 포스코는 이달 말 사우디 국부펀드인 퍼블릭인베스트먼트펀드(PIF)와 포스코건설 지분 40%를 매각하고 합작사를 설립하기 위한 협약서에 서명할 예정이다.

하지만 검찰이 포스코 건설 비자금 수사에 착수하면서 PIF 측이 지분 인수를 재검토하거나 미룰 가능성이 높다는 의견이 제기되고 있다. 수조원에 이르는 사우디와 포스코간 협력 자체가 물 건너간 일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증권가 관계자도 “PIF가 국부펀드인 점을 고려하면 상대 기업이 검찰 조사를 받게 되면 거래가 중단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국부펀드 특성상 비리가 있는 업체와의 거래만으로도 내부 인물이 처벌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06년 정몽구 현대자동차 회장이 비자금 조성 혐의로 검찰에 구속됐을 때도 대외신인도가 추락하며 막대한 경제적 피해를 입은 바 있다. 당시 현대차 사태가 터지자 외국인 투자자들이 연일 현대차 주식을 내다 팔아 외국인 지분율이 3년여 만에 최저치로 떨어졌고, 이 여파로 주가도 크게 하락했다.

일부 전문가들은 총선을 앞두고 있는 시점에 기획 사정이 벌어지고 있는 것과 관련해 의심의 눈초리를 거두지 못하고 있다. 책임총리가 나서서, 그것도 절반 이상이 정치인 출신으로 구성된 각의 상황에서 비리척결을 강조한다는 것만으로도 국민들에게 충분히 오해를 살 수 있다는 지적이다.

약을 쓸 때도 상황을 살피면서 써야 한다. 새로운 전환기에 기획 사정으로 골든타임을 다 써버리는 우를 범해서는 안 된다. 기로에 선 한국 경제의 골든타임이 헛되이 흘러가는 것은 아닌지 많은 이들이 우려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