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이 다락방에서 만화책을 본다. 사방에는 장르 불문의 만화책이 가득하다. 무슨 만화든 닥치는 대로 보는 만화책벌레 소년이다. 그러다 질리면 홀로 컴퓨터 프로그래밍을 익힌다. 독학인데도 제법 능숙하다. 만화책을 보며 기른 상상력과 프로그래밍 실력을 버무려 12살 때 ‘블라스타’를 만들었다. 우주전쟁 게임이다.

엘론 머스크다. 천재 사업가 엘론 머스크 말이다. 2002년 스페이스X를, 2004년 테슬라 모터스를 창업한 그 사람의 어린 시절이다. 머스크는 ‘지속 가능한 교통수단’인 전기차를 개발했으며, 민간 우주선을 만들어 국제우주정거장에 보내기도 했다. 또 1200km/h로 달리는 초고속열차 ‘하이퍼루프’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며, 20년 안에 화성에 식민지를 만들겠다는 계획도 세웠다. 머스크에게 이상과 현실의 간극 따윈 중요하지 않다.

‘한국 어린이’ 머스크의 하루

그런데 만약 머스크가 한국의 어린이로 2015년을 살고 있다면 ‘천재 사업가’로 자라나는 게 가능할까. 만화책벌레? 소설책을 읽고 있어도 엄마가 “그 시간에 공부나 해!”라고 잔소리하는 곳이 한국이다. 머스크는 곧장 학원으로 유배당하고 말 것이다. 빡빡한 스케줄을 소화하다 보면 프로그래밍을 독학할 시간은 거의 없다. 짬짬이 프로그래밍을 하다 엄마한테 들켰다면? “너 또 게임하지? 쓸데없는 짓 하지 마!”라고 구박받는다. 그렇게 머스크는 현실과 타협하는 어린이가 되어간다.

자유시간은 희박하다. 자유의지도 꺾이고 만다. <재미의 본질>의 저자 김선진 경성대 교수는 “스타 CEO가 탄생한 사회에서는 아이들의 자발성을 보장해주는 것이 사회적 지지를 얻는다. 반면 한국의 학습 환경은 아이들을 수동적으로 만들어버린다”고 지적했다. 아무리 머스크라도 한국에선 평범하게 클지 모른다.

▲ 출처=세이브더칠드런

‘한국 어린이’ 머스크는 '집·학교·학원·집·학교·학원'이라는 쳇바퀴에 감금된다. 한국의 아동‧청소년 일일 학습시간은 4시간 55분으로 OECD 국가 중 최고 수준이다. 이런 현실은 사회가 권했고, 학부모와 교사들이 조장했다. 상황은 자꾸만 악화일로다. 사교육 시장은 모든 연령대로 확대 중이다. 아이는 엄마한테 “싫어요” 그 한 마디 하기가 어렵다. 한국에서 ‘자유로운 공상’은 사치다.

머스크는 삐딱해진다. 성적은 오르지 않고 학업 스트레스만 증가한다. 통계를 보면 한국 어린이와 청소년은 사흘에 1명 꼴로 자살한다. 인터넷에 떠도는 어느 초등학교 5학년의 일기엔 머스크가 느낄 감정이 잘 나타나 있다. "오늘도 학원 숙제에 치여 밤 11시에 잠이 든다. 시험지에 파묻혀 죽을 수도 있겠다. 온 사방 곳곳 좋다는 학원만 바꿔서 다니는 내 인생. 학원은 스트레스를 공급하는 곳. 못된 어른들아, 우리는 스트레스 받으면 안 죽는 줄 아니?"

이 일기가 시적이라면 ‘안티부모카페’는 외설적이다. 아이들이 인터넷에 개설한 부모 험담 커뮤니티다. “아빠 ×끼가 폰 압수했어. ×발 아빠 죽었으면 좋겠다.” 이 카페엔 이런 내용이 수두룩하다. 지난 2009년 처음 등장한 안티부모카페는 사회적인 논란을 일으키면서 대부분 폐쇄됐다. 어쨌든 이는 아이들의 내면을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스크린이다.

‘놀 권리 점수’ F학점

늦은 감이 있지만 작년부터 한국 땅에서 ‘놀 권리’라는 개념이 주목을 받았다. ‘놀 권리’가 이슈로 떠오른 이유는 이게 제대로 지켜지고 있지 않은 현실 탓이다. 유엔아동권리협약 31조에는 ‘세상 모든 어린이는 충분히 쉬고 놀 권리가 있습니다’라고 적혀 있다. 제충만 세이브더칠드런 권리옹호부 대리는 “놀이는 아이들의 삶에서 필수불가결한 것”이라고 설명을 보탰다.

아동문학가 방정환 선생도 일찍이 ‘놀 권리’를 주장했다. 그는 1923년 5월 1일 제1회 어린이날 기념식에서 아동권리공약을 선포했다. 여기엔 “어린이에게 그들이 고요히 배우고 즐거이 놀 만한 각양의 가정 또는 사회적 시설을 행하라”는 내용이 담겼다. 그런데 ‘놀 권리’는 2015년 현재, 계류 상태다.

“한국 아이들의 놀 권리 지수를 학점으로 매긴다면 F다.” 김선진 교수가 말했다. “놀이터에 갔더니 놀 친구가 없다. 친구 만나려면 학원에 가야 된다. 왕따가 안 되려면 학원에 가야 된다”며 악순환이라고 했다. 그는 강한 어조로 덧붙였다. “놀 권리가 보장이 안 돼서 한국 사회가 분노사회가 되고 있는 거다.” 인간이 누려야 할 최소한의 권리를 박탈당했기 때문에 생긴 반작용이다.

숫자도 이런 현실을 가리킨다. 유니세프한국위원회가 한국아동권리학회와 함께 진행한 <한국 아동의 놀 권리 증진방안> 연구에 따르면 놀이와 여가가 자신의 권리인 것을 모르는 어린이가 50.4%나 됐다. 기자가 놀이터를 홀로 배회하는 한 소년을 붙잡고 물었다. “놀 권리가 뭔지 아니?” 소년은 고개를 가로저을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놀이가 묘약이다

한국에 놀이가 없는 것은 아니다. ‘가짜 놀이’가 판친다. 어른들이 기획한 놀이 프로그램들이 대부분이다. 한국아동권리학회장인 황옥경 서울신학대 교수는 “기획된 놀이 프로그램에선 자기 욕구가 표현되지 않는다. 놀이는 자발적인 참여와 창의적인 활동이 핵심이다. 현재 정부에서 여러 시도를 하고는 있지만 기본적인 놀이의 의미를 담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간혹 ‘놀이를 잘해야 공부도 잘한다’고 생각하는 부모들도 있다. 근데 황옥경 교수는 이 생각도 문제가 있다고 꼬집는다. “놀이가 가져다주는 결과에 매몰되다 보면 아이들이 결과 중심의 놀이를 하게 만든다. ‘무목적성’이라는 놀이의 본래 목적을 상실하는 셈이다. 이때 아이들은 놀이를 공부처럼 하게 된다.”

▲ 출처=세이브더칠드런

전문가들은 ‘놀 권리’가 보장되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먼저 ‘논다’에 대한 인식을 개선해야 한다고 말한다. 이 단어에는 ‘게으름’, ‘시간 허비’ 등 부정적 이미지가 담겨 있다. 황옥경 교수는 “우리는 놀이의 중요성을 모른다. 놀이가 무엇인지 의미를 모른다”며 인식 개선의 필요성을 주장했다.

다시 머스크를 보자. 그가 엄마 말 잘 듣고 공부 열심히 해서 서울대를 갔다면 ‘천재 사업가’가 될 기회는 남아 있는가. ‘서울대’ 타이틀은 장기간 놀 권리를 유예하고 받을 수 있는 최고급 보상이다. 서울대생만 된다면 창의적인 인재가 되는 건 시간 문제일까. <서울대에서는 누가 A+를 받는가>의 저자 이혜정은 그렇지 않다고 잘라 말한다. 그녀는 서울대에서 높은 학점을 받는 학생들의 2가지 특징을 발견한다. 하나는 수용적인 학습태도다. 비판적인 학습 태도는 현저히 부족하다. 교수의 말이 곧 진리인 셈이다. 둘째는 복습만 죽어라 하지, 예습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혜정은 이를 지적 호기심이 결핍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머스크가 서울대에 들어갔다고 당장 창의 인재로 거듭나기 힘든 이유다.

그런데 시대는 창의 인재를 원한다. 공장 부품 같은 규격화된 인재는 요즘 세상에 어울리지 않는다. 요즘 시대는 앞날을 예측하기가 어려운 만큼 상황에 창의적으로 대처할 수 있는 유연한 인재를 필요로 한다. 시대가 요구하는 인재상이 바뀐 것이다. 이 지점에서 ‘놀 권리’는 솔루션으로 등장한다. 김선진 교수는 “놀이는 창의성과 직접적인 연관이 있다. 놀이는 발상을 전환하는 것, 다르게 생각하는 것, 고정관념에서 벗어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선진국들이 아동의 놀 권리에 투자하는 이유는 국가의 존속이 달려 있기 때문이다. 우리 정부는 그걸 잘 모른다.” 황옥경 교수의 말이다. 물론 정부만 탓할 것은 아니다. 모든 어른의 역할이 중요하다. <아이들은 놀이가 밥이다>의 저자 편해문 작가는 한 칼럼에서 “아이들이 세상을 살려면 삶의 기운, 생기라는 것을 이 시기에 몸 가득 담아야 하는데 그걸 도와주기는커녕 방해하고 있다면 당신은 부모가 아니다”고 일갈했다. 마지막으로 황옥경 교수는 편해문 작가보다 다소 부드럽게 학부모들에게 당부했다. “종일 일할 때 생산성이 높은가. 아니면 잠깐 커피라도 마셔야 생산성이 높나. 확신을 갖고 아이들에게 놀이 시간을 돌려줘라. 놀이가 묘약이다.”

 

<미니 좌담> 세이브더칠드런이 말하는 ‘놀 권리’

제충만(제) 권리옹호부 국내옹호팀 대리

이우철(이) 마케팅본부 후원개발부 부장

서영진(서) 후원개발부 기획팀 대리

육진영(육) 커뮤니케이션부 미디어팀장

 

놀 권리는?

서: 살 권리처럼, 기본권이다.

제: 아이들에게 놀이는 밥을 먹는 것, 숨을 쉬는 것, 화장실 가는 것과 같다. 그야말로 삶 그 자체다.

이: 놀 권리가 중요한 이유? 인권에 근거가 있나? 놀 권리도 똑같은 거다.

 

한국 현실은?

제: 아이들이 놀기엔 시간, 공간, 친구 모두가 부족하다.

이: 어른들은 놀 권리가 중요하다는 것쯤은 안다. 그런데 다 너희들을 위한 거라며 놀 권리를 빼앗는다.

서: 외국에선 놀 권리 자체가 큰 이슈 아니다. 자연스럽게 보장되기 때문이다.

 

해결책은?

이: ‘공부’의 반대말이 ‘놀이’인 현실이다.

육: 놀이라는 단어엔 방임주의, 무질서라는 착각이 스며 있다. 놀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개선돼야 한다.

이: 놀이를 도구로만 생각하지 말고 천부인권으로 이야기할 필요가 있다.

 

‘놀 권리’의 미래는?

서: 부모들은 자신이 행복하지 않다고 느낀다. 그래서 자녀는 더 좋은 삶을 살게 하겠다며 공부를 많이 시킨다.

제: 우리가 어렸을 때 잘 놀았던 기억에서 오는 행복감 같은 게 존재한다. 그 당시 잘 놀았던 어른들이 왜 아이들의 행복감을 빼앗으려 하는가. 어른들은 이에 대해 부채의식을 가질 필요가 있다. 아이들도 이 행복감을 동일하게 느낄 수 있게 해줘야 한다.

이: 교육이 바뀌어야 한다. 그러면 여러 사회문제가 사라질 것이다. 교육이 바뀌면 대한민국도 바뀐다. 일단 부모가 바뀌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