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나 환자편서 생각 공통의 철학… 수술 임상연구 게을리 않는 노력파

우리나라 국민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병은 바로 암이다. 한때는 불치의 고지로 치부됐던 병이지만 의학 기술의 무한한 발전으로 치료의 가능성이 매우 높아졌다.
암을 정복하기 위한 의사들의 노력은 오늘도 그침이 없다. 암 환자들이 새 삶을 찾을 때 의사들은 비로소 희망과 보람을 얻는다. <이코노믹리뷰>는 한국인들에게서 가장 많이 발병되는 주요 암에 대한 톱 명의들을 선정해 그들의 면면을 살펴봤다.


‘메스 없는 수술의 대가’ 노성훈 박사

연세암센터 원장을 지냈던 ‘위암 톱 명의’ 노성훈 박사는 ‘3무(無) 의사’로 불린다. 메스(수술용 칼), 콧줄, 그리고 심지(고름 배출을 위해 환자의 뱃속에 넣는 것)가 없다.
그에게 메스 없이 수술을 받은 환자들은 수술 뒤 콧줄을 달지 않는다.

위암 수술 환자들은 수술 부위의 분비액과 가스가 빠져나가도록 코로 넣어 수술 부위까지 연결되는 콧줄을 고통스럽게 달아야 한다. 그는 수술 때 주사로 가스를 간단히 빼내 콧줄을 달지 않게 했다.

노 박사만의 독특한 수술법 덕분에 수술시간이 기존 4시간에서 2시간으로 줄었다. 출혈도 다른 수술 사례보다 적어 환자의 5%만이 수혈을 받는다. 수술 시간이 짧아 마취제를 덜 쓰게 되고 체액 증발과 신체적 스트레스도 적어 환자의 후유증이 적다.
그는 환자들에게 무엇이 불편한지를 묻고 또 물어 이러한 수술법을 개발해냈다.

‘갑상선암 치료 도사’ 조보연 박사

최근 서울대병원에서 중앙대병원으로 자리를 옮긴 ‘갑상선암 톱 명의’ 조보연 박사. 그는 서양인과 달리 한국 일본에는 갑상선의 기능을 억제하는 ‘차단형 항체’가 많다는 사실을 유럽내분비학회에 발표하면서 국제무대에 데뷔했다.

1995년에는 갑상선항진증을 일으키는 자가항체가 개인마다 다르다는 사실을 세계 최초로 규명, 세계갑상선학회에서 발표했다. 조 박사는 ‘도사’로 통한다. 매사에 늘 초연한 듯 살아가기 때문이다. 하루에도 수많은 환자들을 만나지만 도사 같은 미소는 사라지지 않는다.

‘원조 금연 전도사’ 박재갑 박사

물론 돌부처 같은 그를 화나게 만드는 환자도 물론 있다. 의사를 믿지 않고 따지는 환자들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조 박사는 끝까지 참으려고 노력한다. 의사와 성직자는 기본적으로 비슷한 역할이라는 자신만의 지론이 있기 때문이다.

2002년 폐암으로 세상을 떠난 ‘코미디의 황제’ 고 이주일씨는 별세 이후 ‘금연 전도사’라는 이름을 얻었다. 의료계에도 ‘원조 금연 전도사’가 있다. 초대 국립암센터 원장을 지낸 박재갑 국립중앙의료원 원장이다.

그는 대장암 치료가 전공이었지만, 금연 운동에 더 앞장섰던 인물로 더 유명하다. 대장암을 키우는 가장 큰 원흉이 바로 담배였기 때문이다. 박 원장은 2006년 각계 인사 158명과 함께 ‘담배 제조 및 매매 금지에 관한 입법청원서’를 국회에 제출하기도 했다.

박 교수는 흡연하는 환자들에게 크게 호통을 친다. “아무리 열심히 수술을 해도 1년에 300명밖에 살릴 수 없지만 담배를 끊게 하면 1년에 5만 명은 살릴 수 있다”는 지론 때문이다.

박 원장은 ‘항문을 지켜주는 의사’로 유명하다. 과거 항문 3~5cm 내외에 종양이 있을 경우 항문을 보존할 수 없다는 게 일반적이었으나, 그가 고안한 새 수술법으로 항문을 보존하면서 암 세포만 도려내는 것이 가능해졌기 때문이다.

‘수술만 외고집 칼잡이’ 심영목 박사

‘폐암 톱 명의’ 심영목 삼성암센터 원장은 청년 시절부터 수술만 담당해온 ‘괴짜 의사’였다. 모두들 그를 비웃었지만 그의 실력은 뛰어났다. 그가 1990년대 초 1년 동안 폐암 환자 80여명, 식도암 환자 60여명을 수술하고 그 결과를 학회에서 발표하자 모두들 경악했다.

심 원장이 이끄는 폐암 수술팀은 현재 한 해 600여명의 폐암 환자를 수술한다. 그렇다고 수술 건수만 많은 것이 아니다. 그의 손을 거친 환자의 5년 생존율을 보면 1기 암일 때 71.1%, 2기는 40.8%, 3기 30.7%인데 이 정도면 MD앤더슨 암센터에 버금가는 수준이다.

그는 암 환자가 오면 하루 만에 진단을 끝내고 1주 만에 치료에 들어갈 수 있는 ‘원 스톱 시스템’을 삼성암센터에 도입했다. 또 협진 시스템을 강화해 치료의 정확도를 강화시키려 애쓰고 있다. 환자에게 도움이 된다는 생각 때문이다.

‘영원한 핑크리본 닥터’ 노동영 박사

‘유방암 톱 명의’ 노동영 서울대 교수. 그의 별명은 ‘핑크리본 닥터’다. 2000년 한국유방건강재단을 직접 만들어 매년 가을 핑크리본 행사를 치르고 있기 때문이다. 핑크색 리본은 유방 건강을 상징한다.

그는 치료뿐 아니라 유방암 연구에서도 국내 1인자다. 국제 학술지에 110여 편의 논문을 발표했다. 미국 스탠퍼드대와 함께 유방암을 진단하는 유전자 칩을 개발 중이다. 줄기세포로 유방암을 치료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연구했다. 그는 2008년 11월 정부가 암 기초연구에 대한 임상 적용 분야 발전을 위해 만든 ‘이행연구센터’의 총책임자로 선임되기도 했다.

‘부인암 진단의 마이스터’ 박종섭 박사

‘자궁경부암 톱 명의’ 박종섭 가톨릭대 교수는 국내에서는 드물게 부인 암을 진단하고 수술하는 임상 의사다. 뿐만 아니라 생명과학자로서의 명성도 함께 지니고 있는 인물이다. 하루 100여 명의 환자를 진료하고, 외래 진료가 없는 날은 10여 건의 부인과 수술을 집도하는 그는 틈틈이 연구 활동에도 매진한다.

그 결과 2001년, 자궁경부암에서 면역회피 기전(바이러스의 암을 일으키는 단백질이 면역기능을 약화시키는 작용)으로 암이 발생하는 과정을 분자생물학적으로 최초 규명해 서울시 의사회에서 주는 유한의학상 대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2003년엔 그가 쓴 논문 ‘여성암 전이와 관련된 유전체 변화의 기능적 평가’가 우수연구 성과 30선에 선정돼 과학기술부 장관상을 받았으며, 한국과학기술단체 총연합회 과학기술우수논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정백현 기자 jjeom2@asiae.co.kr